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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록은 재작년 12월경 집을 구입한 뒤, 지금까지 겪은 일들을 옮겨놓은 모험기다. 장르가 ‘모험’인 까닭은, 주인공인 내가 온갖 삽질과 고생하는 내용들이기 때문이다. 본 이야기에 앞서, 내가 엄청난 불행을 겪고 있을 때 (똥물이 범람한 지하실에서 이 글을 쓰고 있다), 죽지않는돌고래 편집장이 위로는 못해줄망정 빨리 기사 써서 올리라고 재촉했음을 고발한다. 원래 싸이코패스인건 알았지만, 기사오패스..

 

집을 사다

 

집을 산 과정부터 스펙타클했다. 아침에 별생각 없이 Zillow(호갱노노 같은 미국 부동산사이트) 를 들여다보던 중, 내가 평소 원하던 지역에 괜찮은 매물이 저렴한 가격으로 올라온 것을 확인했다. ‘오, 괜찮네?’ 모든 모험은 이 생각 하나부터 시작된 것이다.

 

당시 나는 처갓집에서 '기생' 하고 있었다. 그곳은 방 세 칸짜리 타운하우스로, 장인 장모님 우리 부부 그리고 아이가 살기엔 별 부족함이 없었다. 그런데 견물생심이라 했던가. 괜찮은 물건을 보니 더 큰집으로 이사 가고 싶다는 생각이 문득 샘솟았다. 여기서 포인트는 ‘문득’ 들었다는 거다. 그 이전까지 매물을 보러 다니긴커녕, 부동산 사무소 근처에 가본 적도 없었다.

 

매물을 올려놓은 사무소로 전화를 걸었다.

 

1) 이 매물은 시세보다 다소 낮게 나온 급매물이고,

 

2) 판매자는 세계은행 경제학자인데, 아프리카로 전근 가게 되어 이달안에 반드시 계약 완료 및 잔금처리가 이뤄지기를 원하며,

 

3) 이미 4팀 정도가 매물을 본 상태

 

라고 했다.

 

매물이 그날 내로, 오퍼 (계약서)를 쓰지 않으면 이 집은 다른 사람에게 넘어갈 것이라는 얘기다. 허겁지겁 반차를 쓰고 달려갔더니, 이미 두 팀이 먼저 도착해서 집을 보고 있는 상태였다. 태어나서 처음 부동산 매물을 보는 거라, 보는 당시에는 별다른 생각이 없었다. 그냥 마당이 넓네, 지금 사는 집보다 훨씬 커서 좋네. 이 정도만 생각했다. 그땐 몰랐다. 이것이 불행의 씨앗이 될 줄은.

 

매물을 확인 뒤 얼떨결에 오퍼(매매 의향서)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이미 여러 매수자가 나타난 상태이기 때문에, 집주인은 자정까지만 오퍼를 받아보겠다고 했다. 시간에 쫓기면서 매수 가격 등을 써내고, 동시에 은행으로부터 사전 대출 승인을 받는 등의 서류작업을 했다. 오후 11시 30분. 오퍼 마감 30분 전에 거래 계약서 작성을 완료하고 잠에 들었다. 워낙 정신이 없는 상태인데다가 (태어나서 처음 부동산에 전화를 걸고, 매물을 보고, 거래 계약서를 썼다. 그리고 그 모든 일이 하루 동안 벌어진 것이다), 여러 구매자가 경쟁을 했기 때문에 집을 사는구나라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본격적으로 집을 사게 됐다는 걸 깨달은 건, 다음날 아침이었다. 새벽부터 부동산 중개인의 전화가 왔다. 구매에 성공했으니 이제부터 할 일이 많다는 것이다. 판매자는 전날 오퍼를 5- 7개를 받았는데, 그중에서 내 오퍼를 수락했다고 한다. 최고가를 제시한 구매자는, 내가 써낸 가격보다 무려 4천만 원을 더 써냈다고 한다. 그런데도 내가 경쟁에서 이길 수 있었던 이유는 아직도 모르겠다.

 

전날 뛰어다닌 덕에, 구매에 필요한 현금 및 대출 서류를 당일 구비한 덕인지 (최고가 제시자는, 잔금을 치를 현금이나 대출 상환능력이 부족했다), 아니면 내가 경제학자의 논문을 찾아보고, 그의 공직활동에 존경을 표하는 편지를 써냈던 게 유효했던 건지는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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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거나 나는 매수자로 선정되었다. 이후 한두 달간 중개인에게 질질 끌려다니며 온갖 집 구매 과정을 밟아나갔다. 재미있는 점은, 구매 계약서를 무효로 할 수 있는 예외 조항(Contingency)이 두 가지 삽입돼있다는 것이다. 첫 번째는 대출에 관한 것으로, 은행으로부터 대출이 거절될 경우 거래 계약서를 무효화할 수 있다. 나 같은 경우 집값 대비 저축액이 충분하고, 소득증명이 확실했기 때문에, 이 부분은 별로 문제가 되지 않았다.

 

문제는 두 번째 예외 조항이었다. 집 상태 점검 (Inspection)에 관한 것이다. 한국의 아파트가 공산품이라면, 미국의 주택은 수공예품이다. 한국 아파트에서도 가끔 부실공사 / 설계가 문제 되긴 하지만, 어쨌든 대기업 건설사가 브랜드를 내걸고 품질을 보장한다. 적어도 물 /전기가 안 들어온다거나, 비가 새는 정도의 일은 거의 없다. 그런데 미국 주택은 소형 시공사가 건축자의 요구대로 집을 짓다 보니, 집 구조가 천차만별이다. 게다가, 관리 및 유지 보수에 따라 그 상태는 완전히 달라진다. 나 같은 일반인은 아무리 봐도 집 상태를 제대로 알 수가 없으니, 전문 업자를 고용해서 집을 탈탈 털어본다. 개인적으로 이게 집 구매 과정에 하이라이트였지 싶다.

 

150만 원 정도의 검사비를 내고 전문가 둘을 불렀다. 지하실부터 다락방까지 집 내부를 하나씩 점검했다. 노후한 집 (1991년생)이다 보니, 무수한 문제들이 발견됐지만 대부분은 사소한 것들이었다. 목재가 낡았다던가, 카펫이 오래됐다던가 하는. 구조나 안전처럼 중대한 문제는 발견되지 않았다. 마음 같아선 모두 수리받고 싶었지만, 급매로 싸게 사는 입장이라 가능한 좋게 좋게 넘어갔다. 적당히 잔금을 깎아주는 선에서 합의를 하고 마침내 계약을 완료했다. 간단하게 요약하자면, 미국서 집을 사는 것은 중고나라에서 올라온 매물을 가지고 판매자와 흥정을 하는 과정과 비슷하다는 것, 그리고 주택이다 보니 체크해야 할 것이 훨씬 많다는 점이다.

 

잔디는 공짜로 자라지 않는다

 

집을 구입할 때 가장 마음에 들었던 것은, 넓은 면적이다. 넓은 앞마당에는 잔디가 심어져있고, 뒷마당에는 나무가 숲처럼 우거져있었다. 한국에서 좁은 공간에 사는데 익숙해져 있던 나로서는, 넓은 공간을 갖게 된다는 게 기뻤다. 넓은 마당에서 아이랑 뛰놀고, 마음껏 바비큐를 굽는 모습을 상상했다. 이런 기대는 어느 정도 충족되었다. 아이가 나랑 같이 노는 걸 별로 좋아하지도 않고, 집주변이 맨 공원이라 굳이 마당에서 뛰어다니지 않아도 된다는 점만 빼면 말이다. 어쨌든, 어린 자녀를 기르는 입장에서 좀 더 널찍하고 자연과 가까운 환경에서 아이를 기른다는 것은 큰 축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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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러한 좋은 환경을 유지하는 데는 돈과 시간이 든다. 앞마당에 꽃과 잔디를 기르는 일은 농사와 비슷하다. 그것도, 상당히 난이도가 있는 농사. (조그만 텃밭에서 오이, 토마토 같은 걸 키워보니 확실히 알겠다. 잔디는 졸라 지랄맞은 작물이다). 봄에는 비료 주어 화단에 꽃이 피게 하고, 여름에는 들끓는 잡초를 계속 뽑아줘야 되고, 가을에는 낙엽을 치우고, 겨울에는 눈 치워야 된다. 여기에 주기적으로 물을 데고, 일주일에 한번 잔디를 깎아주는 것은 물론이다. 내가 부지런한 성격이라서가 결코 아니다. 동네 미관을 해치지 않으려면, 최소한 이 정도는 해야 되기 때문이다.

 

넓은 마당을 갖는다는 건, 그만큼 관리해야 할 의무가 늘어난다는 것을 의미한다. 직접 할 수 있는 건 시간을 들여 해결하고, 여의치 않은 건 돈을 들여 해결해야 한다. 대부분 집안일이 그렇듯이, 내가 다하긴 힘들고, 남에게 시키면 비싸다. 잔디는 돈과 시간을 먹고 자란다.

 

먹고살기 힘들던 옛날에 잔디를 심는다는 건, 그래서 상류층만의 엄청난 돈 지랄이었다. 서양에서 잔디는 서양에서 권위와 재력을 상징해왔다. 특권적 의미는 사라진지 오래지만, 아직 미국 중산층들은 집집마다 잔디를 모시기 위한 노동을 한다. 나도 물론 그중 하나이다.

 

잡아족치고싶다람쥐

 

뒷마당은 숲과 접해져있다. 좋게 말하면 자연과 인간이 경계를 이루는 곳이고, 실상을 말하자면 원래의 상태를 회복하려는 대자연과 집을 유지하려는 나와의 땅따먹기 대결이 펼쳐지는 곳이다. 숲으로부터 나온 동식물들은, 임의로 그어놓은 인간의 공간을 침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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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여우와 사슴이 떼로 몰려와 화단을 헤집어놓고, 마당에 똥을 싸놓고 튀었을 때까지만 해도 마냥 신기했다. 본격적으로 쌍욕이 나오기 시작한 시점은 다람쥐의 출현이다. 그새끼들은다람쥐들은 귀엽게 생겼다. 하지만, 복실복실한 꼬리와 쫑긋 솟은 귀를 떼 놓고 보면 영락없는 쥐다. 나에게 다람쥐는 빌어먹을 유해 동물일 뿐이다. 마당에서 뛰어노는 것이야 상관없지만, 겨울에 기온이 내려가면 따뜻한 곳을 찾아 다락방을 침범한다. 다락방을 ‘쥐 죽은 듯이’ 다니는 쥐들과 달리, 다람쥐 새끼들은 야밤에도 다락방을 우당탕탕 뛰어다니며 명량운동회를 벌인다. 좀 잠잠하다 싶으면 어딘가에서 나무를 갉아먹는 소리를 낸다. 그럴 때마다 내 속도 갉아먹히는 것 같다. 층간 소음 매너라곤 전혀 없는 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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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람쥐가 문제가 되는 건, 소리뿐만 아니다. 다락방에 내장재를 망가뜨려놓는다. 난방 면적이 넓은 주택 다락에는 보온을 위한 내장재가 깔려있는데, 이곳은 쥐들에게 안락한 쉼터가 된다. 내장재 위에 똥오줌을 싸놓는 것은 물론, 심심하면 내장재를 파먹는다. 진짜 미치고 환장할 다람쥐다. 유해 동물로 지정되어 탄압받는 일반 쥐와 달리, 다람쥐는 야생동물로 분류된다. 해충관리 업체에서도, 다람쥐는 법적으로 잡을 수가 없다. 설치류계의 특권층인 셈이다. 야생동물 관리 업체를 따로 고용해서 잡아야 한다.

 

짠내나는 DIY 집수리

 

수년간 다람쥐떼에 공격받은 다락을 고치기로 했다. 500만 원이라는 업체 견적에 대충격을 받고 아웃소싱은 때려쳤다. 결국 직접 다락방에 기어올라가 다람쥐에게 유린당한 내장재를 뜯어내고, 새 내장재를 깔았다. 찜통같이 더운 다락방에서, 3M 공업용 마스크를 끼고 다람쥐의 똥오줌을 긁어내고 있자니 극심한 현타가 밀려왔다. 아니 내가 좀 잘 살아보겠다고 미국까지 유학와 개고생해 겨우 인생의 단맛 좀 보려나 했더니, 왜 갑자기 군대 보급 창고 미싱 하던 이등병 때로 되돌 간 것인가. 미칠 노릇이었다. 구석에서 죽어있는 다람쥐 사체를 발견할 때는 주저앉아 오열할 뻔했다.

 

모든 일이 그렇듯, 남의 손을 빌리면 비용이 발생한다. 내가 하기 싫은 족같은 일일수록 더 비싸다. 욕 나와도 돈이 아까우면 직접 하는 수밖에 없다. 집 관리는 돈 VS 스트레스 사이에서 끊임없는 밸런스 게임이다. 그중 최악은, 직접 하려다가 망쳐서 다시 해야 되는 경우이다. 괜히 다락방을 고치겠다고 올라갔다가, 발을 잘못 디뎌 천장 드라이월을 뿌셔버렸다. 멀쩡한 천장에 구멍이 뚫리고 그 사이로 다람쥐 똥오줌으로 오염된 내장재가 쏟아졌다. 갑자기 엄마가 보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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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트맨 등장

 

최근 나와 혈투를 벌이고 있는 것은 흰개미 (Termite)다. 다람쥐가 그저 짜증 나는 존재라면, 미시세계에서 온 이 빌런은 공포 장르다. 흰개미는 나무를 먹고산다. 이 새끼들은 우리집을 먹으러 온 것이다. 냅뒀다간 기둥뿌리채 무너뜨린다. 흰개미에 의한 피해는 보험처리도 안된다. 흰개미는 나무와 물을 사랑하는데, 잔디를 기르느라 물을 듬뿍 주고 나무칩이섞인 비료를 잔뜩 깔아놓은 우리집 주변은 이들에게 논현동 백종원거리다. 집주변에서만 거대한 흰개미 군락이 두 개나 발견되었다.

 

집 구매할 때 했던 흰개미 검사는 대체 뭐였는가. 업체에 왜 그땐 안 나왔냐고 따져 물어보았지만, 소용이 없었다. 집 구매 시 실시하는 검사는 (1) 집 내부의 (따라서, 마당에 존재하는 흰개미 군락은 검사 대상이 아님), (2) 육안으로 확인 가능한 데미지 (안에서부터 갉아먹었더라도 확인할 방법이 없음)만 체크하는 검사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집 밖에 흰개미 군락이 있는지 어쩐지는 해당사항이 없단다.

 

인생이란 모르면 눈탱이를 맞아가면서 하나씩 배워가는 것. 흰개미 퇴치를 위해 업체를 불렀다. 흰개미가 좋아하는 먹이에 독을 타 트랩을 만들어 집주변에 결계 치듯 둘렀다. 집 주변에 찾아온 흰개미를 유인하고, 군락을 파괴하기 위함이다. 흰개미들은 그렇게 집 기둥 대신 내 돈 300만 원을 쳐 잡수셨다.

 

똥물 튀기는 집

 

집이 크다는 것은, 온갖 사건사고가 발생할 수 있는 여지의 공간이 크다는 것과 같다. 살다 보면, 온갖 별일이 다 생긴다. 집을 구입하고 이사를 하기까지 두 달 정도 기간이 있었다. 그 사이에 뒷마당 나무가 쓰러졌다. 문제는 나무가 쓰러진 방향이 영 좋지 못했다는 것이다. 우리집 나무가 쓰러지면서, 옆집 펜스를 건드렸다. 이사를 하기도 전부터 옆집에 화끈하게 전입신고를 한 것이다. 나무 벌채 자격증을 갖춘 관리인을 고용했다. 문제의 나무를 제거하고, 이미 죽은 나무들을 치우는 데만 2백 정도가 들었다.

 

가장 최근에 발생한 사건은 더 기가 막히다. 아침에 지하실래 내려갔더니, 바닥이 온통 축축했다. 불길한 기운이 나를 감쌌다. 천장을 확인해봤다. 물이 샌 흔적은 없다. 점점 등골이 오싹해지기 시작했다. 하다 하다 이제 뭐 집이 쥬만지처럼 되려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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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인을 찾기 위해 이곳저곳 돌아다니다가, 설비실 (에어컨 실외기가 설치된 곳)에 말라붙은 휴지조각을 보고서야 알았다. 햐 씨발 내가 오늘 하루 종일 밟고댕겼던게 내가 싼 똥물이었구나. 똥물인지도 모르고 나는 이곳저곳 존나 돌아다녔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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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집은 동네가 노후한 관계로, 정화조를 거쳐 하수도로 오물을 내보낸다. 문제는 정화조 입구가 이물질로 막히면, 역류가 발생한다. 더 큰 문제는 싱크대에서 흘러간 기름때 정도로 똥물이 솟구칠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던 나 자신이다. 설거지 좀 잘못했다고, 아침에 싼 똥을 지하실에서 밟게 될 줄이야. 그래도 남이 싼 똥이 아니라는 사실에서 위안을 찾아야 할지 말아야 할지 잠시 심각한 고민을 했다.

 

똥은 똥 싼 놈이 치우는 법. 먼저, 그 악명 높은 '미국 배관공'을 불러 막힌 똥을 뚫었다. 그다음은 철거업체를 불렀다. 오염된 카펫, 드라이월을 철거하고 청소를 시작했다.

 

멘탈 나가있는 나에게, 철거업자가 위로를 건넨다. 같은 동네 이웃 중 한 명은 며칠 전 발생한 폭우로 정화조가 아예 폭풍 역류하여 지하실 40cm가량이 똥물로 완전히 잠겼단다. (내 경우엔 정화조가 터진 건 아니고, 정화조로 가는 길이 막혀 아침에 싼 따끈따끈한 오물이 퍼진 정도이다. 뭔 차이가 있겠냐마는 …) 그 피해 정도가 너무 심각하여 피해를 확인해야 할 보험조사관을 불렀는데, 지하에 똥물워터파크가 개장된 걸 보더니 '왓더뻑'을 외치고 지하실 출입을 거부했단다. 너네 집은 그냥 귀여운 똥칠 정도니까 러키라고... 시발 난 또 그 소리에 이동네서 똥 밟고 자괴감에 빠진 게 나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에서 위안을 찾고 앉아있었다. 왓더뻑.

 

(아이러니한건, 내가 사는 동네가 부촌이라는 점이다. 땅값이 비싼 탓에 시당국에서도 제대로 인프라를 손대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강풍이 부는 날이면 여지없이 정전이 발생한다. 나무가 쓰러져서, 전선이 주저앉는 일이 1년에 10번도 넘게 발생한다. 이젠 그러려니 한다)

 

똥물 말라가는 지하실에 앉아

 

현재는 전문 제습기를 여러 대 돌려 지하실을 건조하는 중이다. 철거 견적은 500만 원, 복귀 견적은 1천만 원이 나왔다. 껄껄. 다행히 보험이 적용되어 금전적인 부분은 다소간 커버가 될 것 같다. 앞으로 보험회사와의 기나긴 싸움이 펼쳐질 것으로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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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주택은 돈을 주고 샀다고 해서, 디즈니 동화처럼 ‘그래서 행복하게 잘 살았습니다’하고 끝나지 않는다. 끊임없이 돈과 시간을 써가면서, 구입한 상태로 유지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보유세가 실거래가에 매우 근접하게 책정돼있는 탓에, 막대한 보유세를 내야 하는 것은 덤이다. 나 같은 경우 한 달에 130만 원을 꼬박꼬박 보유세로 내고 있다.

 

하루 종일 똥을 밟고 다니고 글을 쓰려 하니 멘탈이 너덜너덜하다. 하지만, 이런 퀘스트들을 하나하나 해결해 나가다 보면, 서서히 집을 내 것으로 만들어간다는 정신 나간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 과정에서 스트레스와 금전손실이 발생하긴 하지만, 어쨌든 살만하니까 감수하면서 사는 것이다. 다양한 일을 겪다 보니 미운 정도 드는 셈이다.

 

어쩌면 미국 사람들이 주택을 재테크의 주요 수단으로 여기지 않는 이유도 여기에 있지 않나란 생각이 든다.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를 보듯, 투기의 대상이 되지 않았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미국인들은 재산의 절반 이상을 금융자산으로 보유하는 데서 알 수 있다시피, 부동산은 보조적인 자산이다. 적어도 우리나라처럼 부동산에 올인하진 않는다. 주택은 투자 자산이기에 앞서, 오랜 시간을 함께 보내면서 내 손길이 곳곳에 닿아있는 주거공간이니까.

 

여튼, 더럽고 짠내나는 미국집 모험기는 여기까지다. 앞으로도 어떤 빌런들이 우리 가족과 홈스윗홈을 위협할지 알 수 없으나, 딸아이가 잔디밭에 뛰노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내 개고생은 충분히 보상되..되...된다. 모두 가족들과 집에서 평안하고 쾌적한 여름밤이 되시길. 이상 끗.



추신

 

딴지스 여러분 덕분에, 『재무제표가 만만해지는 회계책』이 출간되었습니다. 이전에 쓴 딴지 연재물을 확장하여, 이때다 싶어 열쒸미 공부, 정리하여 낸 책입니다. 아마, 현직 회계사 중, 저만큼 회계공부를 싫어했던 회계사는 거의 없지 않을까 추측해봅니다(저만큼도 공부를 안 했다면 못 붙으셨을 테니까요). 회계 공부를 싫어했던 사람이 저와 비슷한 독자분들을 위해서 쓴 책이다 보니 재밌습니다(아마도...). 그동안 회계 공부가 하기 싫었다거나, 회계에 관심이 없었던 독자분들(사실상 전원)에게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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