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딴지에 리뷰 노예로 납치된 불가사리. 거액의 제작비로 복수하겠다 다짐했지만, 딴지가 던져준 주제는 온통 싸구려들. 편집장 죽지않는돌고래(이하 죽돌)는 급기야 약국에서 그냥 주기도 하는 물건, 대일밴드를 리뷰하라는 미션을 준다. 과연 불가사리는 언제쯤 딴지의 등골을 빼먹을 수 있을까?

 

불가사리의 소비대모험, 기대하라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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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를 향한 고백

 

편집장 죽돌이 ‘대일밴드’를 이야기하는 순간, 사실 충분히 짐작했다. 모두를 놀라게 하는 흉악한 택배 박스, “(주)딴지그*(김어준)”의 이름의 박스가 조만간 또 우리집을 습격할 것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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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 믹스커피 박스에 박힌 '김어준' 세글자에 동공지진이 리히터 9.0으로 왔던 아내에게도, 이제 솔직히 모든 걸 털어놨다. 아무래도 내가 딴지에 리뷰 인질로 잡힌 거 같다고, 또 검은 박스가 와도 놀라지 말라고. 웬만해선 놔줄 것 같지 않으니 마음 단단히 먹고 있으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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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도착한 밴드의 양은,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었다.

 

죽돌 : 아 여보세요?

 

불가사리 : 아니 대체 뭡니까 이거...??

 

죽돌 : 리뷰를 하시려면 그 정도는 필요하시겠죠? 후후

 

불가사리 : 아무리 그래도 이 많은 걸 어떻게 리뷰 합니까. 이 정도 양이면 어디 전쟁터에서 응급 수술을 해도 되겠네요.

 

죽돌 : 호오! 새로운 아이템 발제라면 대환영입니다.

 

불가사리 : 아 진짜 왜 항상 그런 식이에요 정말!! 게다가 캐릭터 밴드는 어차피 거기서 거길 텐데, 뽀로로 키티 요괴메카드 라인프렌즈 겨울왕국.. 제길 많기도 하네. 이걸 다 종류별로 보내는 심보는 대체 뭔가요?

 

죽돌 : (흐뭇) 어차피 다 합쳐도 10만 원도 안 하는데요. 후훗.

 

불가사리 : 아니, 리뷰하는 사람 입장도 생각을 하셔야...

 

죽돌 : 아 불가사리님 저 아이를 데리러 가야 해서요! 안녕히! (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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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라질.

 

하악하악

 

우연치고는 얄궂지만, 불가사리는 마침 밴드에 관심이 많다.(우라질!!) 이미 그동안 여러 가지 밴드를 사용해본 사람이다. 그리고 밴드에 얽힌 역사에 대해서도 흥미가 있었다. 죽돌 편집장의 마수에 걸려든 것이 너무나 약오르지만, 밴드를 팔뚝에 이리저리 붙여보며 왜인지 즐거워 하고 있을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될지도 모른다. 하 난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 정말 스톡홀름 증후군 같은 거에 걸려버린 걸까. 이런 나도 싫고, 이 모든 걸 예상했다는 듯 자꾸 검은 박스를 투척하는 죽돌 편집장도 싫다. 하.. 그런데 박스에 못 보던 밴드가 참 많네? 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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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 수 없지 모..

 

자 그럼, 우선 밴드에 관한 배경 지식부터 시작하도록 하자. 이름하야 히스토리 오브 밴드. 

 

가자지구와 거즈

 

밴드 이야기는 생뚱맞게도, 이스라엘-팔레스타인의 가자지구에서 시작된다. 가자지구는 서안(west bank)과 함께 팔레스타인인들의 자치가 승인된 유이한 지역으로, 국지전과 테러가 끊이지 않는 곳이다. 잊을만하면 한 번씩 가자지구에 대한 폭격이나, 가자지구에서 이스라엘로 보내는 로켓포를 요격하는 ‘아이언 돔’의 영상을 뉴스에서 볼 수 있다. 현재 존재하는 가장 위험한 지역 중 하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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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가자지구는 과거 나폴레옹이 ‘아프리카의 교두보, 아시아의 관문’이라고 칭할 정도로 절묘한 위치에 있다. 서쪽으로는 이집트와 바로 이어져 있고, 가자지구 오른편으로는 바로 아시아가 시작된다. 바다로는 키프로스 등 그리스 문화권과 쉽게 연결될 수 있는 지역이기도 하다. 이런 이유에서 1838년 미국 학자 에드워드 로빈슨은 가자 지구를 두고 ‘예루살렘보다 큰 도시’라고 칭하기도 하는 등, 고대부터 발전된 도시 중 하나였다.

 

고대부터 가자지구에서 나오는 특산물이 있었다. 주로 실크 등으로 성글게 짠 가벼운 천이었는데, 밖이 훤하게 들여다 보이는 특성상 베일 등으로도 많이 이용되었고, 옷에도 많이 이용되었으며 음식을 만드는 데도 흔히 이용되었다. 이후에는 실크 외에도 면으로 만들어 정말이지 다양한 용도로 사용되었고, 특히 의료용으로 광범위하게 사용되었다.

 

이 천을 생산 지역의 이름을 따서 ‘가자(غزة‎ ghazza)’라고 불렀다. 이를 영어식으로 표기하면 ‘거즈(Gauze)'가 된다. 그렇다. 여러분이 흔히 아는 ’의료용 거즈‘, ’가제수건‘이 바로 이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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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즈로 만든 베일

 

거즈와 존슨앤존슨

 

19세기 중반, 그러니까 1850년부터 1900년까지의 시기는 인류 역사상 유례없는 발전과 변동의 시기이자, 벨 에포크(Belle Époque, ‘아름다운 시기’)로 상징되는 호황기였다. 1815년 나폴레옹 전쟁부터 1914년 1차 세계대전 발발까지 유럽은 전쟁이 없는 ‘백 년 평화’ 시대였다. 엄청난 발전과 그만큼이나 큰 부작용을 야기했던 산업혁명은 드디어 모든 걸 극복하고 엄청난 생산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영국은 아편전쟁 승리와 무굴 제국 점령으로 중국, 인도에 대한 광대한 영향력을 구축했고, 각국이 제국주의 경쟁을 하는 동안, 유럽 대륙은 평화와 번영의 정점에 있었다. 이 발전상을 드러내는 것이 만국박람회였다. 근대 건축의 기틀이 된 영국의 수정궁(Crystal Palace)과 프랑스의 에펠탑 등이 만국박람회를 통해 공개되고, 인류의 번영과 과학의 승리를 상징했다. 바야흐로 상품이라는 신이 세계를 지배하고, 자본주의라는 새로운 종교가 인류에게 천년 왕국을 약속하는 것만 같은 시대가 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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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궁과 에펠탑

 

‘주식회사’의 발명과 산업혁명이 어우러진 이 시기의 또 다른 특징은 저작권과 특허권이 인정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평화와 풍요, 돈에 대한 열정, 그리고 발명이 돈으로 이어지는 시대가 되자 수많은 발명품들이 생겨났다. 직류와 교류 전기, 전구, 모르스 전신과 라디오, 전화 등이 몽땅 이때 발명되었다. 에디슨과 테슬라, 알렉산더 벨 등 우리가 알고 있는 대부분의 발명왕들이 이 시기에 활동했다. 그리고 우리 이야기의 주인공 또한 이때 태어난 사람이다.

 

그 인물은 바로 로버트 존슨. 변동의 시기인 1845년, 미국의 한마을에서 태어났다. 이 아이는 어린 시절부터 오촌 당숙의 약재상에서 수습 약사로 일했다. 그러던 중 “조셉 리스터”라는 의사의 소독법에 대한 강연을 듣고 뭔가 삘이 온 로버트는 동생인 제임스 존슨과 에드워드 존슨과 함께 소독된 외과용 붕대, 거즈, 실 등을 생산하는 공장을 세웠다.

 

이 회사의 이름이 바로 ‘존슨 앤드 존슨’이다(삼형제가 한 건데 왜 존슨앤드존슨앤드존슨이 아닌 것인지에 대해서는 넘어가자). 존슨앤드존슨은 ‘조셉 리스터’의 이름을 자사의 물건에 많이 사용한다. 현재까지 남아있는 대표적인 물품으로는 ‘리스테린(Listerine)'이 있다. 이 회사는 멸균 붕대, 거즈 등을 공급하면서 성장했고, 생활 영역에서도 멸균, 소독된 물품들을 판매했다. 회사는 위생 의식이 발전하던 시기와 맞아떨어져 크게 성장하게 된다. 19세기 이 회사가 발명한 유명한 물품들이 구급함, 치실, 베이비 파우더, 덕트 테이프, 종이 냅킨 등이다. 이후 이 회사는 1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엄청나게 성장한다. 전쟁에는 총알만큼이나 붕대가 많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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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슨앤존스의 발명품들 중 몇 가지

 

존슨앤드존슨사가 보급한 중요한 물건으로는, 현재 우리의 일상과 함께하는 ‘전염병 마스크’도 있다. 현대식 마스크를 최초로 발명한 사람은 말레이시아인인 오연덕(伍連德, Wu Lien-teh)이다.

 

그는 동북 지방의 흑사병이 비말에 의해 전파된다는 점을 찾아내고 중국 폐 페스트를 종식시키는데 큰 기여를 하는데, 그가 비말 전파를 막기 위해 발명하여 사용한 것이 ‘의료용 마스크’였다. 현재 마스크를 개념상 처음 사용한 사람이 오연덕이라면, 현재 마스크의 형태를 완성시킨 것, 그리고 상품화해서 판매한 것이 존슨앤드존슨이다. 그리고 이 마스크는, 1918년 발생해 2년간 전 세계 5,000만 명의 목숨을 앗아간 스페인 독감 당시에 광범위하게 쓰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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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연덕의 마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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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슨앤드존슨의 마스크

 

이렇듯 존슨앤드존슨은 19세기에 이미, 우리가 알고 있는 현대 사회의 많은 부분을 만드는 데 기여한 회사였다. 그러나 이 회사의 진정한 히트작은 따로 있었다.

 

밴드-에이드의 개발

 

존슨앤존슨에서 면직물 바이어 겸 세일즈맨으로 일하던 ‘얼 딕슨’이라는 사내가 있었다. 그는 덜렁이(도짓코) 성향의 아내가 있었는데, 이 아내는 음식을 만들면 ‘데헷! 또 베어버렸잖아?’라면서 손을 베기 일쑤였다. 얼 딕슨은 회사에 쌓여 있는 거즈와 붕대 등을 집에 가져가 아내가 다칠 때마다 손을 붕대로 감거나 거즈를 붙여 주었는데, 해도 해도 계속 다치자 슬슬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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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두 번 볼 때까지는 귀엽지만...

 

얼 딕슨은 자신이 회사에 나가 있을 때도 다치기 일쑤인 아내를 걱정하는 마음에서, 그리고 ‘이제 도저히 못해먹겠다, 니가 좀 해라!’ 라는 마음으로 거즈와 테이프를 오려 둔다. 그러나 덜렁이 아내는 주로 오른손을 다쳤는데 왼손에 거즈와 테이프를 붙이는 것도 잘 하지 못했고, 이에 테이프 위에 거즈를 붙여 놓은 형태의 물건이 있으면 어떨까 생각하게 된다. 이에 회사에 쌓여 있는 붕대와 거즈, 테이프 등을 본격적으로 횡령... 아니 가져와서 개발에 열중하는데, 상처에 달라붙지 않는 거즈, 접착력이 적당한 테이프를 만드는 것에 꽤 어려움을 겪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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덜렁미가 보이는 Josephine Knight Dickson 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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밴드를 개발하느라 머리숱이 적어진 것으로 보이는 Earle Dickson씨

 

얼 딕슨은 점점 (회사에 있는) 여러 소재를 사용해 연구를 이어가고, 회사의 테이프와 거즈들을 더 많이 사용한다. 그러다 드디어 얼 딕슨은 ‘크리놀린’이라는 소재를 찾아 테이프 위에 붙여서 최초의 일회용 반창고를 발명한다. 그러나 그는 기껏 열심히 만든 반창고를 덜렁이 아내를 위해서 사용했는데, ‘로버트 존슨’의 동생이자 존슨앤드존슨의 회장이었던 제임스 존슨이 반창고와 테이프가 너무 많이 비자 누가 가져간 것인지를 찾다 얼 딕슨을 찾아낸다.

 

야 딕슨 너 일루와바. 그거 다 가져가서 어디에 썼냐? 팔아먹었냐?

 

회장님 저 그걸로... 이걸 만들었습니다 (짜잔)

 

제임스 존슨은 얼른 이 물건을 가져가서 팔아먹는다. 존슨앤드존슨은 구급함(First-aid)도 만드는 회사였기에, Band와 Aid를 합쳐서 1921년부터 Band-Aid라는 이름으로 판매하기 시작한다. 결국 이 밴드는 모든 가정에 구비되는 엄청난 히트작이 된다. 그리고 얼 딕슨은 회사의 물건 횡령범이 될 위기에서 벗어나, 존슨앤드존슨 사의 부사장까지 승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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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밴드-에이드는 넓적한 테이프 가운데에 거즈를 붙이고, 필요한 만큼 잘라 쓰는 물건이었다. 이 물건이 처음부터 히트친 것은 아니지만, 푸줏간을 상대로 한 세일즈 마케팅이 먹혀들어가면서 서서히 사람들에게 팔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1회용으로 포장한 밴드-에이드가 팔리기 시작하면서 사람들의 필수품으로 자리 잡는다. 결정적으로 2차 세계대전의 군인들에게 보급되면서, 최초의 일회용 반창고는 모든 집에 반드시 사야 하는 물건으로 자리매김한다. 이후 밴드-에이드는 심지어 아폴로 11호와 함께 달에까지 다녀오는 영광을 누린다.

 

‘얀센 백신’을 맞고 ‘타일레놀’을 먹은 뒤 ‘퓨렐’ 손세정제로 손을 소독하고, ‘n95마스크’를 쓰고 ‘아큐브 콘택트렌즈’를 뺀 후 ‘뉴트로지나’로 세안을 하고 ‘니조랄’로 머리를 감은 뒤 ‘리스테린’으로 입을 헹구는 우리의 삶은 거의 존슨앤드존슨 사의 제품과 함께 하고 있다고 보아도 과언이 아니지만, 이 중에서도 밴드-에이드는 전 세계 시총 13위(2021. 7. 17. 기준)의 거대 기업 존슨앤드존슨을 만들어낸 제품이라 보아도 과언이 아니다. 존슨앤드존슨은 이미 1932년에 방수밴드(DryBak)을 개발 시판하는 등 기술적으로도 앞서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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밴드-에이드가 시장을 연 후, 비슷비슷한 모양의, 조금씩 다른 반창고들이 엄청나게 많이 양산된다. 접착력과 접착 유지력, 떼었을 때 접착 성분이 남는지 여부, 테이프 부분이 피부와 함께 늘어나는지 여부, 방수 정도 등에서 수많은 시도와 혁신이 일어나고, 특허 또한 엄청나게 많이 출원된다. 미국 특허 자료를 살펴보면, 수많은 재질과 수많은 모양 등의 특허가 존재함을 알 수 있다. 그만큼 많이 사용되는 물건이고 많은 발전이 있었던 것이라고 볼 수 있고, 한편으로는 그만큼 사람들이 부족함을 느끼는 부분이 많았다고도 볼 수 있다.

 

https://www.youtube.com/watch?v=MX8aK0ZsQHo

아무리 봐도 다른 밴드를 붙일 때는 대충 붙인 것 같은데...

 

한국, 대일밴드의 등장과 몰락

 

한국에서는, 거의 50년이 지난 뒤에야 이러한 밴드가 판매되기 시작한다. 한국전쟁 이후부터 미군에서 흘러나오는 밴드를 구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으나, 비싼 가격 등으로 완전히 대중화되지는 못했다. 그러나 한 회사가 등장한다. 바로 ‘대일밴드’의 이름을 만든 기업, 대일화학공업이다.

 

대일화학공업(주)은 1961년 창업한 테이프 회사이다. 1958년 ICA(국제협조처) 원조자금으로 독일에서 접착테이프 생산기술과 생산시설을 도입해서 테이프를 생산했는데, 이 회사의 주력 제품은 ‘전기절연용 접착비닐 테이프’였다. 흔히 알고 있는 덕트 테이프이다. 재미있게도 밴드-에이드를 만든 존슨앤드존슨이 최초로 만든 물건인데, 현재도 만능 수리 도구로 사용되는 바로 그 물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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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이프 회사인 대일화학공업이 밴드 생산에 나선 것은 그리 신기한 일은 아니다. 일회용 반창고는 결국 테이프에 거즈를 올려놓은 것인데, 거즈의 생산은 상대적으로 쉬운 일이어서, 결국은 테이프를 잘 만드는 회사가 일회용 반창고도 잘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일회용 반창고로 유명한 존슨앤드존슨이 덕트 테이프를 개발한 것도 같은 맥락의 일이고, 테이프나 접착제 계열의 본좌인 3M이 반창고에서도 대단한 존재감을 보이는 것(3M의 일회용 반창고 브랜드 이름은 ‘넥스케어’이다)도 같은 이유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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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7년 대일밴드 광고. 당시의 캐릭터와 폰트 등은 1980년대 후반까지도 그대로 이어진다.

 

대일화학공업이 1971년 밴드를 출시하고 한동안, 다른 회사들은 감히 범접할 수 없는 독점에 가까운 위용을 뽐냈다. 현재까지도 ‘대일밴드’가 밴드의 대명사가 된 것, 1990년대 일회성 만남이나 ‘원나잇 스탠드’를 두고 ‘대일밴드’라고 불렀던 것이 그 위용을 알려 준다. 대일화학공업은 내친김에 1984년 일본 데이카 제약의 기술을 도입하여 ‘파스’ 시장에 진출했고, 파스 점유율 1, 2위를 늘 다투었던 낙타가 그려진 ‘네오파스’, ‘대일시프’. ‘대일파스(대일파프)’를 개발했다. 구멍이 송송 뚫린 모양을 보면 연세 좀 있는 분들은 기억하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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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일파스 광고

 

그러나 대일밴드의 승승장구가 지속되지는 못했다. 기술적으로 단순한 물건이다 보니, 80년대가 되면서 수많은 밴드 회사들이 쏟아져 나왔고 기술력에서도 전혀 뒤지지 않아서 90% 이상에 달하던 대일밴드의 시장 점유율은 점점 떨어져갔다. 그러던 와중에 1990년 회장 박대식 씨는 11억을 횡령하여 형사 처벌을 받기도 했고, 1991년부터는 일제 밴드가 수입되면서 대일밴드의 점유율은 더 떨어진다.

 

1991년 수입된 밴드는 리뷰편에서도 살필, (주)서통이 수입한 일본 아소제약의 ‘밴드닥터’가 대표적이다. 이 (주)서통은 (주)서통산업의 자회사로, (주)서통산업은 당시 대일화학공업과 함께 덕트 테이프 점유율 1, 2위를 다투던 기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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밴드닥터 광고

 

이 밴드닥터는 당시 기준에서 혁신적인 물건이었다. 우선 대일밴드가 불투명한 살색이라 붙이면 티가 많이 나는 데 비해, 반투명한 갈색빛이라 붙여도 거의 티가 나지 않았다. 좀 더 얇았고, 접착력은 큰 차이가 없는데 피부에 테이프 자국이 남는 등의 문제가 없었다. 거즈는 소독약이 발려 있다는 것을 드러내듯 노란색이었고, 거즈 위에 얇은 폴리에틸렌 망이 있어서 상처에 달라붙지도 않았다. 당시 한국과 일본의 기술력 차이가 밴드 하나에서 여실히 드러난 것이다.

 

대일밴드의 점유율은 몇 년 만에 60% 이하로 떨어졌고, 국산을 강조하거나 대대적인 광고를 했으나 광고조차 ‘밴드닥터’나 신규 밴드들에 비해 촌스러운 느낌을 주었다. 대일화학공업은 93년에야 반투명 대일밴드를 발매했으나 이미 좋은 기능의 제품이라는 이미지는 빼앗긴 상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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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 3월, 대일밴드 광고

 

이에 대일화학공업은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려는 생각으로 ‘빠삐 자기방(밴드)’, ‘빠삐 자기 베드(자석요)’등의 제품을 런칭해 대대적으로 판매했지만, 효능이 전혀 입증되지 않았던 물건이라 오랫동안 히트할 리가 만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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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 대일화학공업의 빠삐 자기 베드 광고

 

대일밴드는 이렇게 1990년대 내내 천천히, 그러나 꾸준히 점유율이 하락했고, 1996년에는 관리종목으로 지정되는 등 휘청이는 모습을 보였다. 이후 세무조사를 받고 주가 조작 의혹을 받는 등 여러 악재가 겹쳤다. 그리고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 한국 재벌이 무너지는 아주 전형적인 경로, 즉 경영권 분쟁이 일어났다. 2001년 박대식 씨 형제들의 분쟁이 일어났고, 이 사이 회사는 더욱 몰락했으며, 2002년 상장폐지가 되면서 완전히 몰락한다. 그 이후에도 밴드 생산은 하였지만, 2004년 비위생시설이나 무허가 시설에서 제품을 만들어 공급했다는 것이 적발되면서 박대식 회장이 외국으로 도피하고, 식약처 처벌이 내려지면서, 30년간의 독과점 기업, 밴드의 대명사가 된 ‘대일밴드’는 거의 생산도 되지 않는 지경이 된다.

 

‘대일밴드’는 계속 생산되었으나 품질 관리가 되지 않았고, 상표권 관리도 하지 못하여 ‘대일밴드’라는 상표 갱신신청을 하지 않아 상표권도 소멸된다. 이에 ‘대일제약’등의 별개 회사에서 ‘대일밴드’라는 이름으로 제품을 생산하고, 대일화학공업은 밴드 생산에서 거의 손을 놓은 상태가 되었다가, 2013년 칫솔로 유명한 ‘크리오’와 합병하게 되면서 다시 밴드 생산을 시작하고 ‘대일밴드’를 독점적으로 만드는 상태이다. 즉 현재 ‘대일밴드’는 과거 ‘대일화학공업’이 만드는 밴드이지만, 존재감은 예전에 비해 많이 모자라고, 약국에서 찾을 수 없는 경우도 많다. 다만 근래 신세계 ‘노브랜드’ PB로 ‘대일밴드’를 납품하고 있어서 반등의 기회를 노리고 있다.

 

습윤밴드의 등장

 

지금까지 살폈던 일회용 반창고는 소독된 거즈 위에 테이프를 붙인 형태이다. 상처를 덮어 외부로부터 보호하는 역할을 할 수 있고, 피나 고름, 진물 등도 약간은 흡수할 수 있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공기가 잘 통하기에 상처가 마르고, 상처 위에 딱지가 생기도록 한다.

 

상처에 자연스럽게 딱지가 생기고, 딱지가 외부의 균과 충격에서 상처를 보호하며, 딱지 안에서 상처가 아무는 것, 이는 인간의 가장 자연스러운 상처 치료법이다. 히포크라테스도 ‘상처는 감염되지 않도록 보호하고 건조시켜 딱지가 생기게 해야 한다’고 말했는데, 밴드는 이에 충실한 물건인 것이다.

 

그런데 의학의 발전과 함께, 딱지가 생기고 이 딱지가 피부를 압박해서 흉터가 남을 수 있다는 점이 밝혀졌다. 흉터가 그리 중요하지 않은 시대라면 모르지만, 미용적인 면이 중요시되는 시대에는 ‘딱지 없는 상처 치료’가 중요한 시대가 되었다. 그래서 나온 것이 딱지의 생성을 막거나 딱지의 역할을 대신하는 드레싱이다. 딱지가 생기지 않으니 흉터도 적게 생기고, 공기와 물에서 밀폐하여 세포의 재생을 도와준다고 한다. 바람이 통하지 않으니 세균이 증식될 수 있지 않느냐는 의문도 있지만 대개의 경우 백혈구가 활발히 활동할 수 있어서 문제가 없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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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윤 드레싱 회사의 자료라는 것은 염두에 두고 보시길.

 

시판되는 대부분의 드레싱은 폼 드레싱과 하이드로콜로이드 드레싱으로 나눌 수 있다. 폼 드레싱은 폴리우레탄 폼으로 되어 있다. 촘촘한 스폰지 비슷한 느낌이다. 물을 잘 빨아들이는 재질로 되어 있어서 상처에 붙이면 진물 등을 잘 빨아들인다. 딱지는 진물과 피 등이 건조하면서 생긴 것이니, 이렇게 분비물을 빨아들이고 딱지가 생기지 않고, 분비물을 머금고 있는 폼이 상처 위에 있으니 딱지가 있는 것과 비슷하게 상처 치료에 도움을 준다. 그리고 일종의 쿠션 역할을 해서 밖에서 충격이 생겨도 덜 아프다는 점이 장점이다.

 

단점이라면 잘 떨어진다는 점이 가장 치명적인데, 폼 외부의 접착 부분을 강하게 만드는 식으로 진화되고 있지만, 그렇더라도 상처에 붙어 있지 않고 떨어져 덜렁거리는 경우가 매우 많다. 분비물이 많은 상처에 사용하는 것이 정석이고, 죽은 조직이 자꾸 떨어져 나오는 상처에는 사용하면 안 된다. 한국에서는 2001년 ‘메디폼’이 처음 출시되었고, 현재도 시장 점유율 부동의 1위를 차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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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최초의 습윤 드레싱, 메디폼의 2004년 광고. 편의점 샛별아 울지마라 오빠 마음이 더 슬퍼진다ㅠㅠ

 

두 번째 하이드로콜로이드 재질의 습윤 드레싱은, 수분을 잘 흡수하는 일종의 젤라틴 같은 재질의 드레싱이다. 이 드레싱은 상처에 잘 밀착되어 있고, 분비물을 흡수하여 겔과 같은 형태가 되어, 딱지의 역할을 대신한다. 붙이고 있으면 상처 위로 젤이 하얗게 되면서 부풀어 오르는데, 딱지와 비슷한 역할을 하여 흉터 없이 상처가 잘 낫는다. 사용하기도 편하고, 보고 있으면 신기하기도 하다. 특별히 세균 감염이 의심되지 않는 상처라면 물이나 식염수로 씻어 이물질을 재생하고, 그 위에 습윤밴드를 붙이는 것이, 과거 당연하게 생각했던 ‘빨간약으로 소독하고, 후시딘(마데카솔) 바른 뒤 밴드를 붙이는 것’보다 상처 치료에 더 좋다고 한다.

 

다만 그래서 너무 오래 붙이고 있는 경우가 있는데, 이틀에 한 번은 교체해 주라는 것이 의사들의 의견이고, 심출물이 많이 나오는 상처에는 사용해서는 안 되며(콜로이드가 감당할 수 없는 양의 진물이 나오면 상처에서 떨어져 나오거나 콜로이드가 진득하게 상처에 붙는다), 이물질이 오래 남아있거나 상처가 오염되는 등 감염이 의심될 때는 습윤밴드 대신 상처연고를 바르는 것을 의사들이 추천한다.

 

미국 Convatec 회사 제품인 ‘듀오덤’이 정식 수입되기 이전부터도 ‘성형외과에서 쓰는 드레싱’으로 가장 유명했고 지금도 유명하다. 이 제품의 유명세 때문인지 비슷한 제품들의 이름은 이지덤, 네오드림덤 등 덤덤 돌림자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잘라 쓰는 시트 형태의 듀오덤 말고도, ‘습윤 밴드’라는 이름으로 나오는 밴드의 태반은 이 하이드로콜로이드 재질이다. 원조이자 본가인 Band-Aid의 습윤밴드들과, 세계적인 접착제의 명가 3M의 ‘넥스케어’ 습윤밴드들도 대부분 하이드로콜로이드 재질이고, 중외제약 하이맘, 동국제약 마데카 등 대형 제약회사에서 제공하는 습윤 드레싱도 주로 하이드로콜로이드 재질다. 밴드로 커버해야 하는 상처가 대부분 분비물이 많이 나올 만한 심한 상처가 아니라는 점에서 점점 하이드로콜로이드 습윤밴드가 더 많이 사용될 것으로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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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드로콜로이드 재질의 대웅제약 이지덤 광고.

‘너희에게 김유정이 있다면 우리에겐 추사랑이 있다’는 광고 문구로 유명하다(뻥이야).

 

습윤밴드의 등장과 함께 수많은 재질과 크기의 각기 다른 밴드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방수가 되는 밴드, 잘 떨어지지 않는 밴드, 캐릭터 밴드와 키즈밴드, 심지어는 뿌리거나 바르는 밴드도 있다(이걸 밴드라고 할 수 있을까...). 각 밴드들은 각기 장단점이 있고 사용처가 있다. 딱지가 생기지 않을 정도의 작은 상처라면 싸고 쉽게 휴대할 수 있는 일반적인 밴드가 좋을 것이고, 상처의 종류와 크기에 따라 다른 종류의 습윤 밴드가 상처를 낫게 하는 데 좋을 것이며, 약국에서 아이가 고액의 장난감을 사달라고 할 때 1000원으로 때우기에는 뽀로로 밴드가 좋을 것이다. (이 모든 것에 대한 완벽한 리뷰를 기대하시라)

 

밴드는 겉에 있는 상처만 치료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밴드는 단지 외상만 치료하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용도로 사용된다. 너구리들이 배꼽에 붙이는 용도로 사용하기도 하고, 주로 남성들이 옷에 보이는 젖꼭지를 가리거나, 마라톤 등의 경기를 할 때 젖꼭지의 부상을 막는 용도, 또는 안구의 충격을 최대한 줄여주기 위한 용도로 사용하기도 하며,

 

(사진링크) 

My Eye.... 반창고가 안구의 충격을 감소시키는 데 성공하지 못한 사례 중 하나. ‘밴드닥터’로 추측된다.

(편집부 주 - 독자분들의 안구 보호를 위해 첨부사진을 링크 처리 합니다. 사진 클릭으로 인한 심신 타격감은 딴지일보에 책임이 없음을 알려드립니다.

 

코에 붙이고 자면 코골이를 막아준다는 용도로 사용되기도 하고, 문신을 가리는 데 사용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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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손가락 모두 반창고를 고이 붙인 bts의 정국. 무슨 제품인지 궁금하다.

 

무엇보다 중요한 용도는 패션이다. 불가사리는 90년대 중후반, 귀여워 보이려고(!) 얼굴에 형광색 반창고를 붙이고 다녔던 기억이 난다. 아마 H.O.T.의 ‘캔디’의 모양을 따라 하려 그랬던 게 아닌가 싶기도 하고... 한편 누군가는 얼굴에 붙인 반창고를 반항의 상징으로 사용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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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에 반창고를 붙인 H.O.T.멤버들(뻥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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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대 가장 성공한 래퍼 중 하나인 Nelly는 광대뼈나 턱 등에 늘 밴드를 붙이고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러한 반창고의 다른 기능이 아주 잘 드러나는 것이 ‘키즈밴드’이다. 캐릭터가 그려진 반창고에 불과하지만, 약국에서 아이들 눈높이에 진열되어 있는 5000원 이상의 장난감 또는 포도당이 대부분의 성분을 차지하는 비타민 캔디를 사 주지 않고도 아이들을 달랠 수 있는 물건이다. 즉 이 반창고는 부모의 지갑과 아이의 영혼을 치료하는 물건이다. 이것을 스티커처럼 사용하면서 놀기도 하고, 배가 고프다, 배가 아프다, 오줌이 마렵다 등등 아이가 아프다고 하는데 별 이유가 없거나 당장 해결이 불가능할 때 붙여 주면 시간을 끄는 용도로 사용하는 데 적합하다. 그 종류는 뽀로로, 아기상어, 콩순이, 시크릿쥬쥬, 겨울왕국, 헬로키티, 펭수, 라인프렌즈, 포켓몬, 카카오프렌즈, 터닝메카드, 공룡메카드, 요괴메카드(이런 것도 있나), 헬로제인, 스누피, 옴팡이, 리락쿠마, 소피루비, 카봇, bt21, 짱구, 도티(!), 예수님(!!)까지 다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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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키즈밴드들은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그런데 잠깐..리뷰는 어떻게 하지?

 

이렇게 우리는 밴드에 대하여 많은 것을 아는 사람이 되었다. 그러나 불가사리는 밴드 글을 쓰는 내내 고민에 빠져 있었는데, 아직도 전혀 해결되지 않았다.

 

“이걸 대체 어떻게 리뷰할 것인가.”

 

밴드는 기본적으로 상처를 보호하고 치료하는 도구이고, 상처를 얼마나 잘 감싸고 치료하느냐가 밴드 리뷰의 핵심일 것이다. 그러나 이 수많은 밴드만큼 많은 상처가 내 몸에 있을 리도 만무할뿐더러, 동일한 상처가 아니라면 ‘리뷰’로서의 의미도 없다. 어쩔 수 없이, 일단 죽돌 편집장에게 전화를 했다.

 

불가사리 : 제가 고민이 있어서요. 제가 몸에 상처도 없는데 어떻게 밴드 리뷰를 할 수 있을까요?

 

죽돌 : 편집장 하하.. 상처가 없으면, 상처를 만드시면 되죠. 만들어 드릴까요?

 

불가사리 : 끊습니다. (뚝)

 

잠깐 내가 정신이 나갔었나보다. 범죄왕(링크)에게 이런 위험천만한 고민 상담을 하다니. 해맑게 웃으며 내몸 여기저기 꼼꼼하게 균일한 상처를 내고도 남을 인간이다.

 

그런데 정말로 어떻게 리뷰할 수 있을지 도저히 생각이 나지 않는다.

 

아 모르겠다. 뭐 어떻게든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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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시간!!

 

논리적이고 타당하면서도 스마트하고 위트있는, 현재 한국에서 그 누구도 시도해 보지 않은 질과 양의 압도적인 방식의 밴드 리뷰가 찾아.. 올까? 뭐 어쨌든 기대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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