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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훈이라는 문장가(文章家)


김훈의 신작을 읽었다. <라면을 끓이며>. 문학동네, 2015년 10월 5일 발행, 1판 2쇄, 4*6판 양장 412페이지의 책. 밥(13), 돈(10), 몸(13), 길(14), 글(3)이라는 다섯 가지 홑글자의 소제목을 따라 총 53개의 토막글들이 들어 있다.


문학동네 측에서 알라딘에 올린 책의 광고 문안이 눈에 띄었다.



소설가 김훈 산문집. 오래전에 절판되어 애서가들로 하여금 헌책방을 찾아다니게 한 김훈의 전설적인 산문 <밥벌이의 지겨움>, <너는 어느 쪽이냐고 묻는 말들에 대하여>, <바다의 기별>에서 시대를 초월해 기억될 만한 산문들을 가려 뽑고, 이후 새로 쓴 산문 원고 400매가량을 합쳐 엮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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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깨나 읽는다는 사람 치고 김훈의 글을 좋아하지 않는 이는 드물어 보인다. 나 또한 다르지 않다. 수많은 그의 애독자들에게 문장(文章)은 김훈의 것과 그 이외의 것으로 나뉜다. 김훈의 글을 좋아하지 않기 어디 쉬운가? <칼의 노래>나 <난중일기> 그리고 무인의 문장 등을 언급하지 않더라도 읽어보면 안다. 그의 문장은 단호하다. 가장 큰 김훈의 매력일 것이다.(이 문장의 앞에 ‘아마도’를 썼다 지웠다. 김훈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글이므로 그리했다.)


컴퓨터가 아닌 연필과 지우개로 원고지를 한 칸씩 성실하게 채워가는 것이 그 이유일까? 그의 문장에는 무의미한 단어나 가식이 보이지 않는다. 버릴 것이 없어 보인다. <칼의 노래>의 첫 문장, ‘버려진 섬마다 꽃이 피었다’의 ‘꽃이’와 ‘꽃은’ 사이에서 그가 치열한 고민을 했다는 이야기는 유명하다.


“한국 문단에 떨어진 벼락같은 축복”이라는 찬사를 받으며 <칼의 노래>를 들고 그가 등장한 지 16년이 되었다. 아니 이것은 잘못된 얘기다. 이전 해인 2000년에 그는 <자전거 여행>(생각의 나무)이라는 질박하고 아름다운 산문으로 먼저 우리에게 왔다. 그리고 그보다 앞서 <풍경과 상처>(생각의 나무)를 1994년에 이미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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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 - <전라도닷컴>


<풍경과 상처>는, 주인만큼 유명해진 그의 자전거 풍륜(風輪)을 타고 우리 산하를 누비며 쓴, 김훈의 첫 기행 산문이다. 이 책의 출간은 계간 <문학동네>에 연재했던 그의 첫 소설 <빗살무늬토기의 추억>(1994)이 나오기 얼마 전의 일이다.


김훈은 2001년 장편 <칼의 노래>로 동인문학상을 수상했다. 또한 2004년 단편 <화장>으로 이상문학상을 수상했으며, 2005년 단편 <언니의 폐경>으로 황순원문학상을 수상하였다. 크고 작은 많은 문학상들이 한꺼번에 몰린 것 이상으로 그에게 쏟아지는 독자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평화로운 꽃밭의 문단에 야수가 나타났다”는 한 평론가의 감탄은 또한 그 감탄스러운 문장과 더불어 널리 회자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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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 독자의 말처럼 “김훈의 소설을 읽는 것은 사실은 그의 문장을 읽는 일이다.” 김훈은 칼과도 같은 그의 문장으로 <칼의 노래>(생각의 나무, 2001) 이후 <현의 노래>(생각의 나무, 2004), <개>(푸른숲, 2005), <강산무진>(문학동네, 2006) <남한산성>(학고재, 2007), <공무도하>(문학동네, 2009), <내 젊은 날의 숲>(문학동네, 2010), <흑산>(학고재, 2011) 등의 소설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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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무십일홍. 여전히 많은 독자들이 그의 소설에 열광했지만, 언젠가부터 다른 이야기를 하는 이들도 생겨나기 시작했다. 동어반복이라는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했다. 이문열의 아버지 이야기에 빗대며 그의 문장이 반복된다는 이야기를 하는 이들이 이제는 늘었다. 서사보다는 간결하고 단호한 문장의 힘으로 이야기를 밀고 나가는 김훈의 방식이 그 에너지가 여러 소설을 거치며 점차 소진되어가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는 이들의 목소리일 것이다.


동의하지 않는 이들도 많을 것이다. 나는 김훈의 소설보다 그의 산문에 눈이 더 간다. 그의 기행 산문은 탁월하다. <풍경과 상처>, <자전거 여행 1>, <자전거 여행 2> 등의 김훈이 쓴 기행 산문들은 쉬 읽히지 않는다. 소설과 달리 문장을 넘어가는 일이 쉽지 않다. 눈에 쏙쏙 들어오지 않는다. 하지만 읽을수록 그 참맛에 감탄하게 된다. 이유가 무엇일까.


풍륜이라는 자전거를 타고 바퀴가 도달한 모든 곳을 꼼꼼하게 훑는 그의 걸음. 그는 통상의 달달하고 빤한 이야기들을 늘어놓는 법 없이 곧장 해당 지역과 문화에 깊이 천착해 톺아보며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이야기는 담백하고 깊다. 많은 이들에게 특유의 개성과 실력을 인정받았던 그의 오랜 문화부·사회부 기자 경험이 그 비결인가 싶다.


김훈에 의해 생성된 새로운 이야기들은 일체의 수식의 장치(형용사, 부사)들이 배재된 꼼꼼하고 단호한 단문으로 표현된다. 그의 표현들은 연필과 지우개로 수없이 적혔다 지워졌다를 반복하며 200자 원고지에 단단하게 뿌리를 내린다. 이런 과정을 거쳐 원고지에 자리 잡은 김훈의 글자들은 굳건하다. 그 굳건함을 알아보는 눈 밝은 독자들이 적지 않다.



<라면을 끓이며> 김훈 유감


그러나 <라면을 끓이며>를 읽으며 흔쾌하지 못했다. 기존에 출판된 김훈의 책들에 실려 있는 글이 지나치게 많았다. 과했지 싶다. 412페이지라고는 하지만 기존의 신국판 사이즈의 책에 앉혔으면 300페이지도 되지 않았을 <라면을 끓이며>. 이 책에서 김훈이 새로 써 처음 선보이는 글은 채 1/3이 안 돼 보인다. 나머지 글들은 이미 여러 책에 실리고 읽힌 글들이다. 비록 그가,



"이 책은 오래 전에 절판된 산문집 <너는 어느 쪽이냐고 묻는 말들에 대하여>(생각의 나무 2002), <밥벌이의 지겨움>(생각의 나무 2003), <바다의 기별>(생각의 나무, 2008)에 실린 글의 일부와 그 후에 새로 쓴 글을 합쳐서 엮었다. 이 책의 출간으로 앞에 적은 세 권의 책과 거기에 남은 글들은 모두 버린다."



라고 책의 첫 페이지에, 숨겨진 깊은 뜻이라도 있었던 양, 엄숙하게 이야기했지만 좋게 보기 힘들다. 아니 궁색하다.


<바다의 기별>에서 이미, 페이지를 늘이고자 그동안 써 온 여러 소설의 서문들을 뽑아 넣고, 각종 문학상의 수상 소감을 추려 새로운 페이지로 채워 넣은 것은 보기에 좋지 않았다. 그뿐인가? 40여 년 전(1975)에 썼을 박경리와 김지하에 대한 기사를 토대로 20여 년 전(1994)에 쓴 글을, <바다의 기별>(2008)에 실었다. 그 글은 다시 <라면을 끓이며>(2015)에 수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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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있다. <라면을 끓이며>에는 2002년 당시 한겨레신문 사회부 기자였던 김훈이 연재했던 '거리의 컬럼'에 실렸던 글들도 담겨 있다. 이 글들 또한 <너는 어느 쪽이냐고 묻는 말들에 대하여>에 실린 것들이다. 이 외에, 경우는 조금 다르지만 고은, 이인호, 정운찬 등과 함께 펴낸 <평화 오디세이>(메디치미디어, 2016,1)에 실린 글들도 일부 중복 게재되어 있다.


독자들이 기다리던, 새로 쓰인 김훈의 글은 그리 많지 않다. 조금 더 불쾌했던 건 이번에 중복되어 실린 글들의 제목이 원래의 것에서 대부분 바뀌었다는 점. 목차만 보았을 땐 처음 보는 글들인 줄 알았다. 구차하다.


<라면을 끓이며>는 문학동네에서 출판되었다. 앞에 언급한 지난 글들에 대한 판권의 변동이 있었으리라 본다. 김훈의 탐나는 예전 글들을 문학동네의 이름으로 출판하고 싶었을 마음은 어느 정도 이해가 간다.


지난 시절의 중복 게재들은, 출판계에서 이런저런 뒷얘기로 유명한, 출판사 생각의 나무의 과욕이 컸던 것이라 본다.(<칼의 노래>가 많이 팔리자 <청소년용 칼의 노래>를 무려 두 권짜리로 출판한 곳이다. 쉬 수긍이 가지 않는다. 그 출판사 책들의 제본 품질은 악명 높기로 유명하다. 책이 쩍쩍 갈라진다. 씨바, 책이 무슨 홍해냐?) 하지만 그런 과욕의 책 장사가 저자의 허락 없이 출판사만의 결정으로 어디 가능한 일인가?


아아, 책 만드는 사람들아. 대체 어쩌려고 이러는 건가? 힘들여 밥벌이한 돈의 일부를 떼어내 꼬박 꼬박 당신들의 책을 사 읽는 이들의 기분도 살펴 달라. 김훈과 당신들의 밥벌이만 고달픈 게 아니다.


1980년대와 90년대 일부까지, 많은 출판사들은 이문열의 이름으로 먹고살기를 소원했다. 이문열의 책을 가장 많이 출판했던 민음사를 제외한 대부분의 출판사들은 이문열이라는 이름에 목을 빼야 했다. 몇 페이지에 불과한 그의 짧은 서평이나 별 의미 없는 감상문이라도 실리는 잡지와 책들의 표지는 커다란 이문열의 이름으로 뒤덮였다. 수십 명의 작가들이 각자의 짧은 산문으로 메우는 옴니버스식 에세이집들도 사정은 다르지 않았다.


수많은 문학평론가들이 이문열 단편의 백미로 꼽는 <필론의 돼지>는 30여 종이 넘는 책에 중복 게재되었다. 많은 출판사들이 이문열의 중단편들을, 이렇게 엮어서 팔고 또 저렇게 묶어내 팔았다.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여러 출판사에서 나온 이문열의 중단편집들이 팔릴 만큼 팔리고 독자들의 볼멘소리가 높아질 즈음, 출판사 둥지(아침나라)에서는 다섯 권짜리 이문열 중단편전집을 새로이 출판했다. 이 또한 이문열의 동의가 있었으리라. 이 전집의 서문에는 지나친 중복 출판에 대해 민망해하는 이문열의 글이 몇 줄 있다.



중단편 선집을 묶는 일은 최근 몇 년간 나의 은근한 골칫거리였다. 다 합쳐야 서너 권 분량 밖에 되지 않은 작품들이 이런저런 명목의 선집으로 일여덟 종이나 나와 있는 까닭이다. 그렇게 되면 내용의 중복은 피할 길이 없다.




책을 소장하기 좋아하는 열혈 독자들에게 이 전집은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갔다. 수많은 독자들이 이문열의 새 글에 목말라하던 세월이었다. 이문열의 이름이 들어가는 책은 무조건 팔리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의 김훈이 그렇다. 김훈은 작금의 출판계에 있어 최고의 블루칩이다. 많은 출판사들은 어떻게 해서든 김훈의 이름을 통해 책을 팔기 위해 애쓴다.


앞서 이야기한 청소년을 위한 두 권짜리 <칼의 노래> 외에, 세 권짜리 만화 <칼의 노래>도 출간되었다. <진돗개 보리>(현북스, 2015)는 2005년에 낸 그의 소설 <개>를 열다섯 권짜리 그림 동화책으로 만든 것이다. 기행 산문이 아닌 일반 산문의 재탕 삼탕 우려먹기는 지금까지 이야기한 바와 같다. 앞에 이야기한 <풍경과 상처>, <자전거 여행 1>, <자전거 여행 2> 세 권의 기행산문은 계약 기간이 만료되어 최근 문학동네에서 새로이 출간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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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인상부터 좋지 않은 책을 만날 때가 있다. 김훈의 산문 <밥벌이의 지겨움>(생각의 나무, 2003)도 그런 경우의 하나다. 신국판을 반쯤 잘라놓은 사이즈의 277페이지짜리 이 책은 매우 독특한 판형이다. 독특한 판형? 이것은 말장난이다. <밥벌이의 지겨움>은 정상적인 신국판 판형과 보편적인 레이아웃으로 만들었다면 100페이지조차 도달하지 못할 책이다. 한 권의 값을 받을 책이 아니다. 아니 한 권으로 만들어지기에는 낯 뜨거운 분량이다. 다시 한 번 이야기한다.


아아, 책 만드는 사람들아. 대체 어쩌려고 이러는 건가? 힘들여 밥벌이한 돈의 일부를 떼어내 꼬박 꼬박 당신들의 책을 사 읽는 이들의 기분도 살펴 달라. 김훈과 당신들의 밥벌이만 고달픈 게 아니다.


덧붙여, 출판 일에 종사하는 분들께 부탁이 있다. 한때 책을 만들어 밥을 벌었던 이로서, 출판 시장이 많이 성장하고 발전해가는 모습이 뿌듯하다. 다만, 갈수록 책 자체의 내실보다는 부수적이라 할 화장술과 성형술이 더욱 활성화되고 치열한 경쟁의 주요 수단이 되는 듯해 안타깝다.


<라면을 끓이며>의 판촉행사로 책 한 권에 양은냄비와 라면을 하나씩 끼워주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대한민국의 가장 크고 유명한 출판사가 벌인 이벤트였다. 어쩌자는 것인가? 책을 라면 냄비 받침대로 써 달란 이야긴가? 경품을 제공할 여력이 없는 작은 출판사들은 어쩌란 말인가? 천박하고 경박하다. 문학동네는 출판계의 삼성이고 현대라 할 수 있다. 당신들의 말대로 출판은 이른바 지식산업 아닌가? 일각의 이야기에 지나지 않기를 바란다. 활판인쇄로 만들어진 책으로 출판을 배우고 공부했던 책 동네 출신 흘러간 노땅의 기우이길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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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에 나온 김훈의 기행문과 산문 모음집 <풍경과 상처>(문학동네)에 실려 있는 천상병 시인에 대한 글이 떠올라 책을 찾아보았다. 이렇게 쓰인 부분이 있다. 김훈이 쓴 것이다.



천상병의 시집들은 1971년의 <새>를 제외하면 그 책들을 펴낸 출판사들의 에디터십이 철저히도 무너져 있음을 보여준다. 많은 부분들이 서로 겹쳐 있고, 겹쳐진 작품들은 아무런 계통이나 구획도 없이 서로 뒤섞여 있을 뿐 아니라 작품의 발표 연도를 꼼꼼히 추적해서 기록한 출판사도 없다. 한 시인이 사십 년 가까이 써온 작품들이 시간의 흐름을 따라가는 가장 단순한 배열 원칙조차 지켜지지 않은 채 마구잡이로 뒤섞여 있는 시집들은 독자를 혼란시킨다. 그 시집들은 시를 위하여 의미 있고 편안한 집이라고 할 수 없다.



험담이 길었다. 늘 그랬듯 김훈의 글은 좋았다. 책장을 넘길 때마다 남은 페이지를 아까워하며 즐겁게 읽었다. 새삼 느꼈다. 그의 산문이 소설보다 나는 좋다. <라면을 끓이며>를 읽고 난 후 김훈의 이 글들이 마음속에 남았다. 세월호에 대한 그의 글들이다. 나는 그에게 어느 쪽이냐고 묻지 않겠다.



“풍랑이 없는 바다에서 정규 항로를 순항하던 배가 갑자기 뒤집히고 침몰해서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는데, 그 원인과 배경이 불분명한 사태는 망자의 죽음을 더욱 원통하게 만들 뿐 아니라 살아있는 모든 사람들의 삶을 공허한 것으로 만든다.”


“이렇게 해서 지난해 4월에 남해바다 맹골수로에서 온 부고는 수취인 불명으로 팽목항에 되돌아갔으니 탈상의 날은 아직도 멀었고 유족들은 광화문과 팽목항에 모여 농성을 계속하고 있다. 그리고 다시 4월이 왔다.”


“세월호가 침몰한 사건과 그 모든 배후의 문제를 다 합쳐서 세월호 제1사태라고 한다면, 제1사태 직후부터 이 나라의 통치 구조 전체가 보여준 붕괴와 파행은 세월호 제2사태다. 이것은 또다른 난파선이다”


“세월호 이준석 선장과 선원들은 제1사태 때 승객과 배를 버리고 먼저 탈출했다. ...중략... 세월호 제2사태에서도 많은 책임 있는 자들이 난파선을 버리고 탈출했거나 탈출을 시도했고, 이준석을 욕함으로써 자신들의 탈출의 오욕을 희석시키고 있다. 이 난파선은 아직도 표류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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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딴지일보 coco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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