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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였던 나는, 2018년 8월 기자 생활을 마무리하고 경남도청 소통기획관실(기업으로 치면 홍보실)로 자리를 옮겼다. 그곳에서 약 2년 동안 주로 김경수 도지사 행사를 취재하는 역할을 했다. 도지사를 영상으로 촬영하거나, 촬영한 영상을 편집해 유튜브에 올리는 것이 주 업무였다. 

 

수행원은 아니었다. '취재 업무'를 하는 입장이었기 때문에 아주 밀착해 있진 않았다. 나 또한 카메라 렌즈나 행사 참가자의 눈에서 지켜볼 따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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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번 업무 보고를 간 적이 있어도 업무에 대해 얘기했을 뿐, 개인사에 대한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얼마 전 장인상을 당했을 때도 도지사 장인이 계신 줄 그제야 알았다. 아들이 둘 있다고 하는데,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가족이라고 해봐야 정말 1년에 두 어 번 도지사 부인을 행사장에서 잠시 볼 수 있을 따름이었다. 내가 둔감한 것인지, 공사 구분이 엄격한 것인지는 모르겠다.

 

어쨌든 2018년 8월부터 2020년 7월까지 약 2년 동안 김경수 도지사를 꾸준히 지켜볼 수 있었다. 그 이후에는 대외협력담당관실로 옮겨 남북교류를 지원하는 업무를 했다. 

 

이 글은 부서를 옮기기 전 2년 동안 지켜본 김경수 도지사에 대한 기록이다.

 

 

메모와 경청하는 도지사, 김경수

 

"적 자 생 존 ." 

 

사전적으로 보자면 생물의 생존 경쟁으로 환경에 적응하는 생물은 살아남고, 그렇지 못한 생물은 도태된다는 말이다. 하지만 정치판에서는 또 다른 의미가 담기곤 한다. 

 

“적는(write) 자만이 살아 남는다”

 

특히 박근혜 정부 시절 이런 말이 많았다. 대통령과 장관, 보좌진 회의에서 토론이나 협의라고는 일절 볼 수 없었고, 오로지 대통령 지시와 그걸 미친 듯이 받아쓰는 사람들만 있었다. 그리하여 나온 말이 바로 ‘적자생존’이다. 기자들이 붙여준 별명인지, 박근혜 정부 내부에서 자조적으로 나온 말인지는 알 수 없다. 

 

정치인, 특히 도지사쯤 되는 단체장이 되면 공식적인 행사에서 굳이 메모를 할 필요는 없다. 하더라도 아주 간단하게 하면 될 일이다. 왜냐하면 이미 도지사 앞에는 부서에서 만든 잘 정리된 자료가 있기 때문이다. 보통 그 자료에는 참석자의 신상정보까지 다 명시돼 있다.

 

대부분 '회의형 행사'의 참가자 책상에는 각각 메모지가 있긴 하다. 하지만 거기에 메모를 하는 이들은 극히 드물다. 특히 정치인은 더더욱 드물다. 다른 이가 말하고 있을 때, 대부분 폰을 보거나 사람들을 둘러보거나 앞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그들에게 다른 이의 이야기는 스쳐 지나는 음파로 여겨지는 듯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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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6월 12일, 지역인재혁신플랫폼을 위해 경상남도-대학-기업-연구기관 거버넌스 구축 협약 때 참석자의 발언을 메모하는 모습. 사실 도지사가 고개를 숙이고 메모하는 모습은 보도사진으로 좋지 않다. 현장이 아니면 이런 모습을 볼 수 없다.

 

하지만 김경수 도지사는 메모했다. 

 

야외 행사장에는 책상이 없이 그냥 의자에만 앉아 있을 때도 있다. 그럴 땐 주머니에서 메모지와 펜을 꺼내 메모했다. 그냥 단순 메모만 하는 것이 아니라 메모를 하면서 미리 정리해 둔 도지사 발언 내용(일명 ‘말씀자료’)을 수정했다. 

 

다른 이의 말을 들으며 메모한 것과 그 말을 들으며 떠오른 생각을 실시간으로 정리했다. 그래서 부서에서 올린 내용과 실제 행사장에서 말한 내용이 다를 때가 많았다. 도지사가 무슨 말을 할지 알 수 없었다.

 

도지사가 메모를 하려면, 일단 누군가 무슨 말을 해야 한다. 하지만 알다시피 대부분 경남도 내 공식 행사나 회의의 경우 직위가 높은 사람이 (뻔한) 몇 마디를 한 후 도지사가 마무리하는 것이 다수다. 그 와중에도 메모를 하지만 그렇게 해서는 별 내용이 없다. 

 

그래서 특히 회의형 행사의 경우 김경수 도지사는 참가자에게 가능한 한 많은 말을 시켰다. 회의 시간이 길어지고 일정에 차질이 생기더라도 도지사는 말을 시켰다. 도지사 앞에서 얘기해 볼 기회는 흔치 않다. 귀한 자리다. 도지사는 이 기회를 최대한 살려주고 싶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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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5월 14일, 민현식 총괄건축가 위촉 때 총괄건축가의 타 지역 공공건축사례를 메모하고 있는 도지사 

 

반면 담당 직원 입장에서는 당황스러운 일이다. 도지사가 무슨 말을 할지도 가늠하기 쉽지 않은데, 예정에 없던 참석자들의 발언까지 모두 기록해야 하니 정신없었을 것이다. 

 

도지사의 경청과 메모는 조촐한 행사에서도 계속되었다. 

 

2019년 6월 30일, 장기재직자 정년퇴임 행사에서 어린이 합창단이 간디학교 교가 <꿈꾸지 않으면>이라는 노래를 불렀다. 노래 가사는 

 

"꿈꾸지 않으면 사는 게 아니라고, 별 헤는 맘으로 없는 길 가려네 (중략) 배운다는 건, 꿈을 꾸는 것" 

 

이라는 가사의 노래였다. 도지사는 인생 2막을 시작하는 퇴직자들 앞에서 노랫말이 인상 깊었다며 

 

"이제 공직을 마무리하시면, 다시 배우는 자리로 돌아가시는 것“

 

"여러분께서는 뭔가를 배우시면서 꿈을 꾸는 자리로 돌아가시는 것" 

 

"그 꿈을 도민들과 함께 꿀 수 있는 꿈을 꼭 꾸어 주시길 바란다.“

 

고 했다. 노랫말을 듣고 즉석에서 완전히 다른 송별사를 만들어낸 것이다.

 

2019년 10월 25일에는 학교공간혁신을 위해 경남도-도교육청-LH-경남농협 공동협약식이 창원 대원초등학교에서 열렸다. 짐작했다시피 4개 기관장들이 돌아가며 한마디씩 하고 마는 행사였다. 마침 그 자리에는 어린이 대표 2명이 '어린이 건축가'라는 직함으로 앉아 있었다. 아무도 그 어린이들에게 주목하지 않았다. 

 

각 기관 대표들의 예정된 발언이 끝난 뒤, 기념촬영을 하고 행사를 마무리하려 했다. 그때, 김경수 도지사가 행사 주최 측에 "잠시만요. 어린이 건축가 얘기도 들어봅시다"라고 했다. 

 

어린이 대표는 발언할 기회를 얻었다. 행사가 끝난 후 기념촬영을 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도지사는 어린이 대표를 먼저 챙겼다. 하지만 한 명이 사라지고 없었다. 

 

한 명만 데리고 기념촬영을 하려 하는데 도지사는 두리번거리며 계속 어린이를 찾았다. 도지사가 두리번거리고 있으니 촬영을 할 수 없었다. 한 20초쯤 흘렀을까? 도지사가 드디어 어린이를 발견하고 직접 오라고 손짓했다. 어린이가 모두 오고서야 기념촬영을 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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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0월 25일, 학교공간혁신을 위한 4자 협약식 때 ‘어린이 건축가’를 부르는 도지사

 

메모와 경청은 의식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었다. 습관적인 자세였다. 도지사가 되기 전 국회의원 시절에도 마찬가지였다. 

 

2017년 11월 4일 진주에서 김경수 국회의원 초청 행사가 있었다. 

 

본인의 강의를 마친 후 질의응답을 받는데, 온갖 질문이 쏟아졌다.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소속 의원에게 농협개혁과 농정에 대한 질문, 김해 지역구 의원에게 진주 지역 민원성 질문, 심지어 뇌파를 조작해 사람들을 세뇌시킨다는 음모론까지 온갖 질문이 쏟아졌다. (기자였던 나는 개헌이 가능하겠는지 질문을 던졌다) 

 

당시 김경수 의원은 여러 질문을 차근차근 메모하고, 30분 넘게 답변을 했다. 단, 뇌파 음모론은 답변하지 않았다. 또한 그 자리에서 즉석 여론조사를 하기도 했다. 

 

"개혁을 강력하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시는 분? 아니면 속도 조절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시는 분?" 

 

"지금 경기가 좀 풀리는 것 같습니까? 아닙니까?" 

 

"진주혁신도시가 진주에 도움이 됩니까?" 

 

이런 질문을 던지며 거수로 의견을 묻는 방식이었다.

 

정리하면, 김경수 도지사는 본인이 모든 것을 안다고 생각하지 않는 듯했다. 현장의 목소리, 다양한 사람들의 얘기를 들으려고 했고, 거기서 아이디어를 얻으려고도 했다. 아니면 성의껏 들어줌으로써 답답함이라도 풀어주려는 모습도 보였다. 그것이 설령 어린아이의 얘기라도 말이다.

 

김경수 도지사는 늘 듣는 자세가 되어 있는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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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보석 석방된 다음 날인 4월 18일, 경남도청에서 열린 현안점검회의에서 보인 김경수 지사의 메모지. (사진 클릭하면 확대)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