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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가디슈와 두 장군

2021-08-24 1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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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육병아리 추천51 비추천0

이 글에는 영화의 중요한 내용들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영화의 재미를 오롯이 만끽하고 싶으신 독자분께서는 관람 후에 읽으시길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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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군의 귀환

 

이번 홍범도 장군 유해 봉환식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장면은 맨 마지막, 국군 의장대의 "장군님께 대하여 경례"였다. 상징적 의미의 독립군 '장군'이 대한민국 국군의 '제너럴'로 추존되면서, 역사의 통로가 확장되고 완성되는 느낌이었기 때문이다. 단지 가슴이 웅장해지기보다, 거대한 파노라마의 방점 앞에 엄숙해지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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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시에 그 장면은, 내가 살고 있는 대한민국이라는 국가를 새삼 생각하게 했다. 나는 어디에 속해있고, 어떤 이들과 살고 있으며, 어떤 역사를 가졌고, 그래서 어떤 믿음과 신념의 울타리를 치고 사는지.

 

내가 젖먹고 똥싸고 푹자는게 유일한 효도였던 시절. 체육관 선거로 대통령이 된 군인은 또 다른 군인에게 청와대를 물려주고 있었고, 한 대학생이 남영동에서 모진 고문으로 숨졌으며 또 다른 대학생은 학교 앞에서 최루탄을 맞아 요절했다고 했다. 누워보는 천장무늬와 업혀보는 어른들이 등짝이 세계의 전부였던 나는, 그때의 공기를 알 턱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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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럭무럭 자라 철없는 대학생이 된 내가, 배낭 메고 어느 나라 입국 심사대 앞에 서서 '나를 안 들여보내주면 어쩔 건데 후후'하고 당당할 수 있었던 건, 내 여권에 어떤 누군가의 삶들이 켜켜이 쌓여있기 때문이다. 나는 그들의 삶에 주렁주렁 매달려 있을 뿐이다.

 

맥빠진 신봉자들

 

영화 <모가디슈>는 단순한 탈출 서사다.

 

'반군 쿠데타로 무정부 상태에 빠진 소말리아 수도에서 본국으로부터 손절당한 남북한 대사관 직원들이 힘을 합쳐 탈출하는 이야기'

 

이게 전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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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숨을 건 탈주극에서 이념은 무의미하다. '살고 보자'라는 명료한 목표만 남는다. 안기부 조인성과 보위부 구교환이 때때로 대립 하긴 하지만, 그들의 아웅다웅은 탈출 직전까지 아프리카에서 치열한 체제 경쟁을 하고 있었다는 흔적 정도만 보여줄 뿐이다. 이역만리에서 까딱하면 개죽음을 당할 판인데, '빨갱이'나 '반동분자'같은 말들이 무슨 헛짓거리란 말인가.

 

시대의 공기를 다룬 이전 작품들에서, 조인성과 구교환의 직장 동료들은 단연 주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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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보통사람>

 

신념에 가득 찬 그들은 그 자체로 시대를 설명하는 유용한 장치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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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1987>

 

신념에 균열이 생길 때 작동하는 그들의 폭압은, 시대의 남루함을 보여주기에 제격인 도구들이었다. 그 시대를 설명하는 데에 그들만한 사람들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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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모가디슈>에서 두 정보요원은 이야기 줄기에서 한발 물러서있다. 안기부 요원은 변두리 대사관에 좌천되어 한심하게 건들대고 있고, 보위부 전사는 당장 모가지를 따버릴거처럼 덤비지만 여기저기서 쥐여터지기만 한다.

 

사람을 뚜까패고 권력의 희생양을 만들어내는 데에 발휘되던 그들의 능력과 기지는, 대사관 식구들의 탈출 루트를 뚫는 데에 오롯이 사용된다. 이제야 비로소 국가와 민족을 수호하는 본연의 임무를 다했달까. 그들의 한결 다른 모습이 남북 대립의 의미가 시시껄렁해져 가던 그때의 반영이었다면, 이들도 시대의 상징이라면 상징일 수 있겠다.

 

소설 <광장>이후로, 이토록 이데올로기를 엿먹이는 이야기는 없었다. 멀리 있는 깃발은 아무 소용 없다. 울타리 밖으로 던져진 사람들에게 이념과 신념은 건빵 한 봉지 만도 못한 것이다.

 

울타리 밖의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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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지고 보면, 국가가 시민에게 안전한 울타리가 되어준 역사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우리만해도 90년대에 들어서야 겨우 자리 잡기 시작한 신뢰다. 아직도 말 한마디에 쥐도 새도 모르게 사람이 증발하거나, 어느 편에 서느냐가 생존을 결정하는 나라들이 있다. 그 거리엔 오늘도 지프차가 시체를 넘어 다니고 부모 잃은 아이들이 총을 주워 집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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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저히 탈출자 시점에서 전개되는 영화는, 모가디슈 시내를 약탈자와 범죄자 그리고 전쟁광들이 날뛰는 아수라장으로 비춘다. 전두환의 공수부대가 시민들을 조준사격하던 1980년 전남도청 앞과, 전경의 최루탄이 직선으로 날아가던 1987년 연세대 정문의 광경도 3자의 눈엔 그렇게 보였을까. 양곤과 광주는 다른 공간일까. 우리는 그 거리로부터 얼마나 멀리 걸어 나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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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타리를 짓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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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의 가치는 '닥치고 생존'은 제로섬 게임이 아니라는 메시지에 있다. 안전한 곳을 향해, 남북의 외교관들이 손을 잡고 달리는 것은 '민족의 화합'이나 '인도주의적'같은 점잔 빼는 말들로는 설명이 부족하다. 극히 동물적인 감각이다. 내가 당장 죽게 생겼어도 도저히 넘어진 사람을 두고 갈 수가 없다. 생존본능만 남은 순수한 상황에서 인간은 꽤나 다정하고 친절하다. 결코 작위적으로 느껴지지 않는, 인간 된 우리 안의 어떤 기특한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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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라는 집단은 어느 영웅의 깃발로 만들어진 게 아니라, 이런 다정하고 친절한 이웃들이 벽돌을 하나하나 괴어 만든 마을 같은 것이 아닐까. 안팎의 빌런들이 울타리를 무너뜨릴 때 이웃과 마을을 지키는 사람들. 지금 내가 사는 안전한 국가와 나의 당당한 여권은, 그들이 그렇게 만들어왔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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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장군의 삶에 대하여

 

그러고 보니, 나의 첫 번째 대통령이었던 그 군인이 요즘 오늘 내일 하신다는 소식을 들었다. 독립군 장군이 긴 세월 먼 길을 돌아와 겨우 밟은 고국 땅에 반란군 장군이 떵떵거리고 잘 살고 있었다는 사실은 무척 씁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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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타파-KBS 공동기획 <전두환과 그들 재산 추적기>

 

그보다 더 통탄할 사실은, 국가장법과 국립묘지법은 아직 그를 국가유공자로 인정하고 있다는 것이다. 체육관 대통령과 그 후임 대통령은 반란수괴죄 및 살인 뇌물수수등의 혐의로 전직 대통령 예우를 모두 박탈당했지만, 현행법상 그의 국가장과 국립묘지 안장 가능성은 매우 활짝 열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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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역만리로 떠밀려 가면서까지 입국신고서에 '고려 독립'이라 소원을 적은 한 장군의 노년을 생각해본다. 자국민을 학살하고도 18홀을 팽팽돌며 나이스샷을 날리던 한 장군의 팔자 좋은 말년을 또한 떠올려본다. 천수를 누리고 떠난 전두환을, 정호용 허화평 장세동같은 자들이 호상이라는 소리를 해대며 현충원에 묻는 장면을 상상해본다. 홍범도 장군이 있는 그곳에.

 

두 장군의 삶을 어떻게 기억하느냐에 따라 우리가 사는 울타리의 이음새는 달라진다. 다정하고 친절한 마음으로 이웃의 고난을 외면하지는 않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의 마음과 노고가 가치 있고 명예롭다는 것이 아이들의 가슴에 심어지는 사회. 우리가 군화발 가득한 포화 속 거리로부터 걸어 나올 수 있었던 것은 그것 덕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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