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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은 왜 신 커피를 싫어하는가

 

커피의 미묘한 향과 신 맛(산미)을 잘 살려내기로 유명한 오랜 단골 카페에 들렀다. 예전보다 산미가 많이 줄어든 느낌이 들어 사장님에게 물어보자, ‘신 맛 나는 커피라면 무조건 싫어하는 사람이 많아서요라는 푸념을 한다. ‘커피의 신 맛은 커피계의 뜨거운 논쟁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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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많은 한국인들은 커피에서 나는 신 맛을 좋아하지 않는다. 경험적으로도 그렇고, 각종 조사와 논문으로도 입증된다.* 그 이유에 대한 많은 해석이 있다. 예컨대 월간커피* * 라는 잡지는 2020년에

 

① 인간은 원래 신맛을 좋아하지 않아서

 

② 우리나라에 들어온 커피들은 대부분 강배전이었기에, 신맛 커피에 대한 경험이 적어서

 

③ 커피를 만드는 사람들이 제대로 산미를 살려내지 못해서

 

라는 이유로 분석했다. 그러나 이는 동의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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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으로 강배전(높은 온도로 또는 오래 로스팅한)한 원두일수록 신 맛이 적고, 쓴 맛과 구수한 맛이 많이 난다. 스타벅스 등의 커피전문점에서 제공하는 원두는 대부분 프렌치 또는 이탈리안 로스팅이고, 산미를 잘 살려냈다는 평가를 받는 드립커피 전문점에서는 시티또는 풀시티정도로 로스팅한 원두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우선 인간이 원래 신 맛을 좋아하지 않아서 신 맛 커피를 싫어한다는 입장이라면, 다른 나라 사람들이나 다른 세대의 사람들도 마찬가지로 기본적으로 신 맛을 싫어할 테니, 애초에 왜 한국인들은신맛을 싫어하는지에 대한 질문 자체가 의미가 없다. 한국인들이 사과, , 포도 등 신 맛의 과일을 좋아하고,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음식인 '김치''물김치', '동치미' 모두 세계적으로도 신 맛이 많이 나는 음식임을 생각하면 더욱 말이 안 된다.

 

두 번째, 우리나라에 들어온 커피들이 대부분 강배전이었다고 볼 수 없다. 전통적으로 서유럽과 남유럽은 터키의 영향과 커피 문화의 영향으로 강배전 커피를 선호했고, 북유럽은 터키에 대한 반감, 신 맛의 와인을 대체하는 용도로 커피가 사용되었던 역사적 경험으로 중배전 내지 약배전의 커피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리고 미국은, 1990년대까지만 해도 북유럽보다도 더 중배전 커피를 선호하는 곳이었다. 이는 신 맛이 많이 나는 미디엄 로스팅아메리칸 로스팅이라 부르는 것만 보아도 확인 가능하다. 그래서 레귤러 커피(간 커피 가루, 끓여 먹는 용도로 사용했다), 인스턴트 커피 모두 북미의 맥스웰 하우스브랜드는 신 맛이 많이 나는 편이었다. 미국에서 강배전의 커피가 유행한 것은 1980년대, 유럽의 커피 문화를 가져와 판매했던 카페들(스타벅스가 대표적이다)이 대중화되면서 이루어진 일이다.

 

한국은 커피를 대부분 미군부대를 통해 받아들였기에, 한국전쟁 이후 커피들은 레귤러 커피 인스턴트 커피 모두 미디엄 로스트 정도의 볶기로, 선명한 신 맛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당시에도 한국인들은 커피의 신 맛을 좋아하지 않아서, 달걀껍질을 넣어 탄산칼슘 성분으로 커피의 신 맛을 제거하려고 했다. 일제강점기와 해방 전후에 나온 신문기사들에는 커피를 끓일 때 달걀껍질을 넣는 것을 표준인 방법으로 제시하고 있을 정도이다. 프림과 설탕을 넣는 것이 표준이 된 것 역시 신 맛을 줄이기 위한 방편인 점을 배제할 수 없다. 그리고 어떤 커피를 선호하는지만 보아도 한국인이 원래부터 커피의 신 맛을 좋아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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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4. 12. 28. 동아일보 4. '커피는 한사람 앞에 차술 수북하게 한 술 비례로 하되, 인수가 만흔(많은)때는 좀 적은 비례로 너허도 좃습니다(넣어도 좋습니다). 또 계란껍질을 가로를 맨드러(가루로 만들어)두었다가 함께 좀 너흐면 풍미가 더 납니다.'>

 

맥스웰 하우스를 만드는 크래프트 푸즈사는 80년대에 유럽식에 가까운 좀 더 강배전한(이라고 해도 현대 기준에서는 시티에서 풀 시티정도의 로스팅이다. 다른 원두는 대부분 미디엄에서 하이정도였다) 인스턴트 커피를 미국에서 출시하는데, 미국에서는 큰 인기를 끌지 못하지만 유독 한국에서는 선풍적인 인기를 끈다. 이것이 맥심이다. 한국에서 스타벅스가 선풍적인 인기를 끈 요인도 강배전 원두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무관하다 보기 힘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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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맥심 광고. 저 여성분은 Patricia Neal이라는 분인데, 그 분의 '까다로운 남자(demanding man)'인 남편은 '찰리와 초콜릿 공장'을 쓴 로알드 달이다>

 

즉, 한국인들은 커피의 신 맛을 별로 맛보지 않아서 싫어하는 것이 아니고, 충분히 맛볼 수 있었을 때도 신 맛을 싫어해서 제거하려 여러 노력을 해 왔고, 신 맛이 줄어든 커피가 출시되면 여기에 열광했다. 이런 상황을 싸그리 무시하고, 신 맛을 싫어하는 것이 마치 계몽되지 않은 사람인 마냥 경험이 적어서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역사적 사실과 다를 뿐더러, 커피를 즐겨왔던 생활인들을 무시하는 태도이다

 

그렇다면 왜 한국인들은 커피의 신맛을 그렇게나 싫어했던 것일까?

 

 

역시 김치 때문!?

 

우선 산미(acidity)', 신 맛(sourness)에 대해 생각해보자.

 

인간이 맛을 느끼는 이유는 영양분과 연관이 있다. 대개 단맛은 탄수화물의 맛이고, 감칠맛은 단백질의 맛이며, 기름 맛은 지방의 맛이다. 짠 맛은 인간의 생명 유지에 필수적인 나트륨의 맛이고, 쓴 맛은 대개 채소의 맛이다. 식물이 먹으라고 준 열매와 달리 잎, 줄기에는 먹지 말라고 여러 독이 들어 있고, 인간은 이 독들을 쓴 맛으로 인식하기에, 인간은 생채소를 그리도 싫어한다. 물론 인간은 독을 적당한 농도로 이용하여 기호식품이나 약으로 쓰고(니코틴, 카페인 등등), //지의 균형을 잡아 주는 경우가 많기에, ‘어른의 맛은 종종 쓴 맛을 동반한다.

 

신 맛은 주로 산(Acid)에서 비롯되는 맛으로, 상한 음식의 맛이지만, ‘부패를 인간에게 유리한 방식으로 이용한 발효에 따른 맛이기도 하다. 한편 인간에게 필수적인 비타민군을 비롯하여 인간의 소화와 신체 항상성 유지에 도움이 되는 다양한 산(아세트산, 아스코르브산 등)의 맛이다. 즉, 신 맛은 주인공이 되기보다는 탄수화물(단 맛), 단백질(감칠맛), 지방(느끼한 맛)을 먹을 때 꼭 필요한 맛이고, 균형을 잡아 주는 맛이다.

 

그래서 모든 음식 문화는, ‘신 맛또는 쓴 맛으로 탄수화물, 지방, 단백질 맛의 균형을 맞추려는 경향이 있다. 예컨대 한반도에 사는 인간들은, 쌀밥(단 맛)과 장류(감칠맛)에 채소(쓴 맛), 김치(신 맛)를 다량으로 섭취해 왔다. 삼국 시대 중국 역사서에도 나오고, 오늘날에도 야채 소비 빈도 전세계 1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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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야채 외에도 발효유나 다른 발효식품이 신 맛의 역할을 담당하는 국가들도 있지만, 많은 사회에서 이러한 맛의 기능을 담당하는 것은 종종 음료. 특히 식사에 곁들이는 음료였다.

 

 

한국인들이 외국에 나가서 음식을 먹고 너무 느끼해서’, ‘너무 달아서’, ‘너무 짜서놀라는 경우들이 종종 있다. 꽤 많은 중국 음식은 한국인에게 지나치게 느끼한데, ‘와 함께 먹으면 균형이 맞는 경우가 많다. 프랑스 등 (영국을 제외한) 서유럽 음식들은 다량의 버터와 기름이 사용되어 느끼하다 느끼는 경우가 많은데. ‘와인과 함께라면 종종 균형이 맞는다. 같은 이유에서, 와인보다는 맥주 문화가 발전한 독일과 북유럽의 맥주는 서유럽과 중국의 맥주보다 더 시고(주로 에일Ale) 쓴 경향이 있다.

 

미국의 경우는 어떠할까? 음식과 함께 와인이나 맥주를 마시기도 하지만, 보편적인 신 맛 음료지위를 가지고 있는 것은 역시 탄산음료, 특히 콜라이다. 선명한 탄산(이것도 이다)과 단 맛으로 인해 흔히 간과하지만, 콜라의 pH2.5로 와인보다 더 산성이 강하다. 미국의 와인이 유럽의 와인보다 신 맛이 적고 알코올 도수가 높은 경우가 많은 이유는, 미국에서 와인은 식사와 함께 하는 신 맛 음료가 아닌 별도의 음주 과정에서 마시는 로 인식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리고 미국에서 콜라와 함께 식사와 함께 하는 신 맛 음료의 지위를 가진 것이 바로 커피이다. 커피는 확고부동한 아침식사의 친구이고, 점심과 저녁과 함께 하는 경우도 많다. 그래서 미국의 커피는 유럽의 커피보다 더 시다(시티보다 약배전인 미디엄-하이를 '아메리칸 로스트'라고 부르기도 한다). 와인의 지위가 확고한 프랑스 등지에서(와인이 아니면 탄산수를 마시는 경우가 많다. 탄산수도 산Acid이다!), 커피를 식사에 곁들이는 경우는 많지 않다. 커피는 대부분 별도의 커피 타임(티 타임)에 마시거나, 강한 단 맛의 디저트를 메인으로 하여 이를 보조하는 음료이기에, 더 진하고 더 쓰고 덜 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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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배전 로스팅의 명칭으로 이탈리안 로스팅과 프렌치 로스팅을 쓴다>

 

 정리하자면, 미국에서 커피는 콜라와 함께 식사와 함께 하는 신 맛 음료의 지위를 어느 정도 가지고 있었기에 맛이 시고, 해방 이후 한국인은 주로 미군부대를 통해 이런 신 커피를 들여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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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거!>

 

그러나 매 끼니 신 맛의 김치를 먹고 다량의 생야채를 먹는 한국인들은, ‘신 맛의 음료가 덜 필요했을 것으로 생각한다. 실제 한국에서 커피는 식사와 함께하는 음료로 받아들여진 적이 거의 없다. ''에 대한 인기가 예전부터 중국과 일본에 비해 떨어진 것, 한국음식과 와인의 마리아주를 찾는 것이 까다로운 것도 비슷한 맥락이라 본다.

 

, 한국인들이 신 맛의 커피를 좋아하지 않는 이유 중에는, 한국의 음식 문화, 그 중에서도 생야채와 김치의 영향이 있을 것이라 추측한다. 같은 맥락에서, 한국인의 곡물과 야채 소비량 및 김치 소비량이 줄고 고기 섭취량이 급격히 늘어나는 경향에 따라 커피의 산미에 대한 거부감도 줄어들 것이라 추측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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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타. 김치의 민족에서 고기의 민족으로...?!?>

 

 

 

그런데 의문이 든다. 이 추측이 맞다면, ‘의 인기가 시들했듯 커피의 인기도 시들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왜 한국인들은, 커피를 그리도 마셔대는가? 왜 매일 12:40이면 카페에 긴 줄이 늘어서고 믹스커피는 어디에나 비치되어 있는가?

 

그 해답은, 아주 가까운 곳에 있다.

 

<계속>

 

 



편집자 주 

 

본 글은 저자와의 긴밀하고 내밀한 협의 하에

원글에 약간의 수정, 보완을 거쳐 올라갑니다. 

원본과 댓글의 생생한 맛을 함께 감상하고 싶으신 분,

저자의 괴상망측한 매력을 느끼고 싶은 분은

아래 링크를 참고하시라.

 

변호사 박기태의 페이스북(링크)

 

 

 

참고자료

 

* 김영선, 이상혁. <커피 추출온도, 추출시간, 음용온도에 따른 맛의 차이 및 선호도 연구(링크)> , 2013  

** 월간커피(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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