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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내가 바빴다. 무쟈게 바빴다. 먹고 사느라 눈코 뜰 새가 없었다. 세상 돌아가는 소식도 귓등으로 들었다. <기사실명제>야 뭐, 하루 날 잡고 조중동문과 한국경제만 쓰윽 뒤져도 쓸 거리가 쏟아지니 소재 걱정은 없었다. 하지만 정작 뭐라도 쓸 시간이 도무지 나질 않았다. 

 

그런 와중에 장발장인지 고발장인지가 장안의 화제였나 보더라. 처음엔 고발 청부 어쩌구 하길래 불륜 같은 치정 사건인 줄 알았다. 나중엔 은근슬쩍 고발 사주로 바뀌더라. 

 

잠깐 짬이 난 시간에 우연히 윤석열 후보의 긴급 기자회견을 봤다. 

 

윤석열 기자회견.JPG

 

졸라 무서워. 나 쫌 지렸다. 

 

내 나이가 내일모레 50이다. 어디 가서 야단을 치면 쳤지, 마누라 빼곤 나한테 성질을 내며 야단을 치는 사람은 없다. 헌데 기자회견을 보는 내내 고딩 시절 가방 검사에서 담배가 나오는 바람에 학생주임에게 귀싸대기 처맞던 순간의 참담함이랄까. 그런 기분이었다. 

 

윤석열의 윽박지름에 오금이 저릴 판이었다. 햐아~ 저 냥반 성깔이 장난 아니구나.

 

물론, 십분 이해는 간다. 여권의 근거 없는 정치공작에 당한 거라 생각하니 부화가 치밀 수 있다. 근데, 

 

“애시당초 제보자는 야권이란다.” 

 

여권은 지금 “와아~ 강 건너에 불이 났다! 쒼난다아아~” 이러고 있는 중이다. 애초 번지수부터가 빵꾸다. 

 

윤석열은 억울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윤석열이 시켰느냐, 또는 새까맣게 몰랐느냐는 중요하지 않다. 이 사건의 핵심은, 검사가 여권 인사들과 언론사 기자들을 압박하기 위해 야당에 고발장을 대신 좀 접수해달라고 문건을 던졌느냐, 아니냐다. 이것 이외에 제보자가 누군지, 고발장 작성 주체는 누군지, 윤석열이 알았는지 몰랐는지 따위는 전두환 머리카락이 몇 개냐는 문제만큼이나 하등 중요하지 않다. 설령 제보자가 그 악랄한 죽돌 편집장이면 어떠한가. 제보한 내용이 팩트인지 아닌지가 중요한 게지. 

 

고발장 비교.jpg

고발장2.JPG

 

고발장 사이의 차이점

-소제목 앞의 번호가 사각형으로 바뀜.

-고민정 의원의 호칭이 후보자에서 당선자로 바뀜.

-고발장 끝엔 '제출한 증거가 있습니다'에서 '제출한 증거가 없다.'로 바뀜.

 

공통점

-최강욱 의원의 틀린 주민번호, 매불쇼 최강욱 의원 출연 동영상 조회수, 인용 판례, 결론 단락의 문장 등 통째로 똑같음. 

 

 

고발 사주 의혹은 그냥저냥 지나갈 것이다

 

하지만 말이다. 

 

사법농단 의혹이 일었을 때 어떠했는지 상기해 보자. 

 

당시 자유한국당에서조차 “만약 의혹이 사실이라면”이란 토를 달지언정 ‘나라의 근간이 무너지는 일’이라고 평가했더랬다. 헌데 그 후 어떻게 됐는지 기억들은 하고 계신가? 나라가 무너졌나? 사법부가 발칵 뒤집혔나? 대법원장이 책임지고 사퇴하고 대대적인 사법개혁이 시작됐나? 니주가리 씹빠빠다. 윗선의 재판개입은 사실이지만 애초 개입 권한이 없음으로 유죄가 성립하지 않는단 괴랄한 이유로 핵심 피의자들은 줄줄이 무죄가 선고되고 그냥저냥 지나갔다. 

 

임성근 뉴시스.JPG

출처-<뉴시스>

 

이데일리 사법농단 무죄.JPG

출처-<이데일리>

 

고발 청부 건도 똑같다. 그냥저냥 지나갈 거다. 

 

설마라고? 어디 한번 김웅의 행태를 보라. 

 

김웅2.JPG

 

“내가 문서를 받아 당에 전달했는지는 기억 못 하지만, 보도가 사실이라면 문서를 누구에게 전달했는지는 알고 있다.” 

 

대체 이게 뭔 개소리야? 내가 어제 불닭볶음면을 먹은 기억은 없지만, 다음날 똥 쌀 때 똥꾸녕에서 불이 나는 게 사실이라면 뭘 먹었는지는 알겠다, 뭐 이런 소리야?

 

검사가 “지금 몇 시인지 아십니까?”라는 질문을 한다면, 정답은 “예” 또는 “아니오”란다. “3시 42분인데요.”라고 답하면 안 된단다. 지금 몇 시냐고 물은 게 아니라, 몇 시인지 아느냐라고 물었기 때문에, 안다 또는 모른다라고 답해야 한단다. 이런 게 소위 ‘법 기술(技術)’의 세계다.

 

일반상식으론 해괴한 논리이자 문장이지만 법 기술적 측면, 그러니까 흔한 말로 ‘법꾸라지’의 문법으로는 “전달한 기억은 없지만, 보도가 맞다면 누구에게 전달했는진 알겠다”는 문장이 성립될 수 있는 거다.

 

가만 보면 참 웃기지도 않은 게, 법은 도덕의 최소한의 규율일진대 어쨌거나 법적으로 무죄면 다 괜찮다는 의식이 사회 곳곳에 팽배하다. 

 

우리 같은 서민이야 뭐 그럴 수도 있지. 근데 정치인이나 공직자의 공적 윤리의식이 그렇게 바닥을 쳐도 되냐고요. 하지만 늘 그래왔잖은가. 위에 언급했듯 심지어 나라의 근간이 무너지는 일이라는 ‘사법농단’도 그냥저냥 지나갔잖냐. 하물며 검사 나부랭이 하나가 오바 좀 했나 부지. 어, 그럴 수 있어. 잘했다고는 못하겠지만 충분히 그럴 수 있지 뭐. 이런 ㅅㅂ...

 

이 나라는 ‘정서’를 건드려야 움직인다. 백날천날 윤리의식이 어떻고 공적 논리가 저떻고 해봐야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다. 

 

최소한의 비용으로 고스란히 경영권을 물려받기 위한 이재용의 삼성 불법승계 의혹, 재벌들에게 행해지는 특혜 사면/가석방, 사법농단, 검언유착, 검찰 쿠데타, 국정원의 민간인 불법사찰, (특히 어느 진영)정치인들에 대한 부동산 투기/권력남용 등등 국가 시스템의 근간을 흔드는 사건들로든 국민 정서는 크게 동요되지 않는다.

 

국민 정서가 움직이려면 최소한 힘없는 개인이 억울하게 당한 사건, 비극적인 가족사, 약자에 대한 학대 사건 등 정도의 서사는 되어야 한다. (이런 사건들이 중요하지 않다는 의미는 절대 아니다)      

 

나경원.jpg

 

나경원이니, 누구니 하는 저들만의 리그에서 벌어진 일이라면 그냥 그네들의 일이니까 내 알 바 아닌 거다. 하지만 저들만의 천상계에서 놀 법한 인물이 미천한 인간계로 내려와 평소 입 바른 소릴 해대다가 ‘내로남불’이 들통나야 국민 정서의 뭇매를 맞을 수 있다.  

 

진짜로 불행한 것은, 그런 사회적 본보기(?)로 인해 반칙이나 잘못된 관행이 바로잡히는 것이 아.니.라. 천상계와 인간계는 더 철저히 분리되고 그 간극은 더욱 벌어지며 나중엔 모든 이들은 차라리 위악을 떨칠지언정 아무도 위선을 부리지 않게 될 것이라는 점이다. 

 

내가 방구석에서 또는 내 뇌내망상 속에서 그 어떠한 추접한 짓거리를 하든, 대외적이고 사회적인 공간에선 위선이라도 떨어야 사회가 평화롭게 굴러가지 않겠는가. 

 

하지만 이 나라에선 애초 탐욕에 쩔은 인간들은 온갖 편법, 탈법, 불법을 저질러도 ‘원래 그런 애들’이라며 외려 관대한 시선을 받는 반면, 평소 옳은 소리하는 인간들은 터럭만치라도 잘못한 일이 발각되면 가차 없이 아웃되는 것이 국룰이다. 

 

그러니 고발 청부니, 고발 사주니 온갖 쌩쑈를 하고 떠들어봤자, 이 또한 그냥저냥 지나갈 거란 말이다. 아니냐?

 

그러므로 고발 사주 의혹이야 어차피 지나갈 일이기에 별 관심 없다. 

 

 

기자회견에서 인상 깊었던 건 그의 ‘주류의식’이었다

 

정작 내가 윤석열 기자회견에서 인상 깊었던 것은 그의 ‘주류의식’이다. 

 

윤석열 메이저언론.JPG

 

“KBS, MBC 정도는 되어야 ‘공신력 있는’ 언론매체로 쳐주겠다는 호연지기.” 

 

왜 뉴스타파니 뉴스버스니 하는 ‘인터넷 매체’에 들고 갔느냐. 그렇게 자신 있으면 메이저 언론사에 갖고 가지 그랬냐는 것이 윤석열의 주장이다. 메이저 언론은 공신력 때문에라도 기사회 하기 전에 철저히 검증할 텐데 손바닥만 한 인터넷 매체는 삼류쌈마이저질엘로우페이퍼니까 이렇다 할 검증도 없이 막 싸지르는 거 아니냐는 말씀이겠다. 

 

그러게. 이왕 허접한 매체에 넣을 거, 석열 기준을 따라 천박한 오리지날 삼류쌈마이저질엘로우페이퍼 앤드 연식도 오래되고 규모도 되는 딴지일보에 넣었으면 훨씬 재미졌을텐데. 앞으로 유사한 제보 거리가 있으면 주저 없이 딴지일보에 믿고 던지시라. 자극적인 황색 저널리즘이 뭔지 확실히 보여드리겠다.

 

서울대, 연,고대 정도는 되어야 대학으로 쳐주겠다는 인식, 연봉 5천 이상에 근로자 100인 이상 규모의 직장에 다녀야 멀쩡한 직장인으로 쳐주겠다는 인식, 발기 길이가 최소 11cm 이상은 되어야 비로소 남성 생식기로 쳐주겠다는 인식, 직경 2cm 이상에 적당히 단단하고 황금색을 띠어야 건강한 변으로 쳐주겠다는 인식. 

 

본인 뇌피셜 윤석열 대통령이 되실 기준에 맞추면 국민과 비국민, 멀쩡한 국민과 멀쩡하지 않은 국민, 정상적인 국민과 어딘가 좀 모자른 국민으로 나뉘어 국가정책이 시행될 거라고 지레짐작하는 건 내가 자격지심에 쩔어 사는 인간이기 때문일 테다.

 

내 탓이오, 내 탓이오, 내 못난 탓이로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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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가오면 찌른다-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