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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의민은 고려 때 사람이다. 경주 출신으로 많은 이들이 경주 이씨라고 착각하나 사실은 정선 이씨다. 정선 이씨가 망명한 베트남 왕족의 후예라는 말이 있으나 불분명하고 최소한 이의민은 소금장수 아버지와 절에 딸린 종 사이에서 태어났으니 천민이었다. 그러나 어려서부터 기골이 장대하였고 용력이 뛰어났다. 8척이라고 기록돼 있으니 190센티미터 가까운 거인이었다. 형들도 비슷했던지 경주의 대로를 쏘다니며 불량배 노릇을 톡톡히 했다.

 

이들의 행패를 벼르던 안렴사 김자양은 날을 잡아 3형제를 모두 잡아들였고 죽어도 좋다는 식으로 혹독한 고문을 가했다. 어차피 천민 양아치 형제 죽어도 그만 살아도 그만이었다. 실컷 매를 때리고 주리를 튼 뒤 옥 안에 내던졌는데 형 둘이 숨이 끊어져도 이의민은 멀쩡했다. 안렴사 김자양이 눈을 크게 떴다.

 

“이놈 봐라?”

 

이 정도 용력에 맷집이면 군인으로 풀리면 한몫을 하겠다 싶었던 김자양은 이의민을 풀어 주고 개경으로 올려보낸다. “서울 가서 한 번 제대로 군인이 돼 봐라.” 김자양의 예상은 적중했다. 이의민은 타고난 무골이었다. 특히 그는 맨손격투기라 할 수박(手搏)의 명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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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드라마 <무인시대>

 

그의 주먹에 숱한 장사들이 나뒹굴었다. 이 모습을 보고 왕 의종은 이의민을 무척 총애했다. 경주 천민 이의민은 분에 넘치는 출세를 했고, 무신의 난 당시 계급은 정7품 별장으로 얼굴마담 정중부에 미칠 것은 못되었지만 사실상 주도자인 이고나 이의방(정8품) 위에 있었다.

 

난의 주동이 되지는 못했으나, 그 열등감을 극복하려던 것인지 새로운 권력자가 된 하급자들에게 충성을 보이려던 것인지 문신들 잡아 죽이는 데에는 누구보다 잔인함을 발휘했다. 그 절정은 자신을 그렇게도 총애하고 출세길을 열어주었던 의종을 죽인 일이었다.

 

이의민은 의종을 찾아가 술을 나누다가 말 그대로 의종의 허리를 접어 죽였다. 인간이 인간의 허리를 완력으로 부러뜨린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인데 정사 기록에 이의민은 그렇게 했다. 그리고는 가마솥에 넣어 연못에 던져 버렸다. 의종은 죽어가면서도 믿지 못했을 것이다.

 

“어찌 의민이 네가 이럴 수가 있느냐.”

 

이의민은 무장으로서는 출중한 사람이었다. 조위총이고 김보당이고 그 앞에서는 상대가 못됐다. 삼국지에 등장하는 애꾸눈 하후돈의 고사, 즉 화살에 눈을 맞고도 활을 쏜 놈을 찾아 죽여 버렸다는 말도 안되는 이야기를 현실에서 구현한 용장이었다. 그런 검사(劍士)는 세상에 또 없다 할 만큼 유능한 칼잡이였고, 그의 칼이 번쩍이면 고려 천지가 떨었다. 정중부를 죽인 경대승조차도 그를 응징하겠다 벼르면서도 경주로 물러나는 이의민에게 손을 쓰지 못했고, 경대승이 죽은 뒤 이의민은 마침내 고려 천지의 권력을 한손에 틀어쥔다.

 

거기서 그쳤으면 잘 먹고 잘 살다가 갔을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 역사에서 천민 출신으로는 거의 유일하게 막강 권력자에 오른 그는 그래도 배가 고팠다. 왕이 되고 싶었던 것이다. 고려 중기 이후 내내 유행했던 ‘십팔자위왕론’ 즉 이씨가 왕이 된다는 참언의 포로가 돼 있었던 그는 돌아오지 못할 다리를 슬금슬금 건넌다.

 

최고 권력자의 처지로 신라 부흥을 외치는 반란의 주동자 김사미와 효심과 내통한 것이다. 진압군을 편성해서 보내놓고 아들을 시켜 반란군에게 무기와 물자를 공급했다 하니, 글자 그대로 권력을 사유화한 정도를 넘어 국가 기강을 송두리째 무너뜨리고 있었다.

 

진압군 사령관 전존걸은 기가 막혔다. 부장이랍시고 따라와 있는 이의민의 아들 이지순이 대놓고 정보를 흘리고 적을 무장시키고 있었다. 그러니 싸워도 이길 리 없고 어쩌다 이긴들 의미가 없었다. 이지순을 군법으로 처단하고 싶었으나 이의민이 걸렸고 이지순을 모른 체 했다가는 반란군을 진압할 수 없었다.

 

권력을 쥔 이들이 더 큰 권력을 얻기 위해 나라의 근간을 뒤흔들고 비밀을 반란자에게 흘리고 이쪽의 전략은 이러하니 어디를 들이쳐라 속삭이는 상황에서 이길 수 있는 장수도 없었고 버틸 수 있는 나라도 없었다. 전존걸은 자살하고 만다.

 

이후 난은 진압되었으나 이의민은,

 

“헛된 생각을 품고서 탐욕스러운 마음을 자못 억누르고 이름난 인사들을 불러 등용시킴으로써 헛된 명예를 추구하였다.”

 

라고 기록돼 있는 것처럼 제 권력에 취하여 좌우를 보지 못하였고, 그 아들 이지순마저,

 

“지금 (아버지의) 자손들이 횡포하여 다른 사람들에게 원망을 사고 있으니, 화가 반드시 금방 닥칠 것입니다.”

 

라고 경고하였으나 그를 듣지 않다가 최충헌 형제에게 죽었다.

 

그의 목이 잘렸을 때 사람들은 원통하게 죽은 대장군 전존걸을 애도하며 제 권력을 이용해 반란군과 내통하며 더 큰 권력을 위해 무슨 음모든 서슴지 않았던 이의민을 저주하였다 전한다. 이 때 한 서생이 전존걸의 아픔을 노래한 시가 고려사 외전 '검사열전(劍士列傳)'에 남아 있다. 작자는 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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膏醱將黔使逸陰 고발장검사일음

살찌고 술취한 장수, 시커먼 사신들이 그늘로 달아난다.

 

限業弑命確何孤 한업시명확하고

일을 가로막고 맡은 임무 확실히 없애니 얼마나 외로우셨을꼬

 

尤滯痛雄宜怨殷 우체통웅의원은

꽉 체한 듯 아픔은 크고, 원한 또한 무성하구나

 

潛考對妖亂昰藁 잠고대요란하고

생각에 잠겨 이 요사스런 난리 마주하매 나라는 시들어갈 뿐

 

友離奈憁將臨垠 우리내총장임은

벗들은 떠나가네 어찌할꼬. 갈길바쁜 장수는 벼랑 앞에 섰다

 

造作以戇遇基誤 조작이당우기오

어리석은 조작은 뒤틀린 기틀과 맞닿고

 

難每易齟蠻呠多 난매이저만본다

어려움은 늘상이고 쉬운 일은 어긋나니 오랑캐(반란군)도 즐겨 꾸짖는다

 

乃撫囁那褻幟高 내무섭나설치고

이에 속삭여 달래노라 어찌 더러운 깃발 드높겠는가

 

 

 

 

추신: 초원복국집 사태 당시 핵심은 관권선거와 고관대작들의 지역감정 조작 선동이었다. 이게 도청 프레임으로 옮아가면서 정작 처벌받아야 할 사람들은 출세 가도를 달렸다. 만약 정권 교체가 되면 김웅이나 손준성이 그렇게 되지 않을까. 그런 나라를 30년만에 또 봐야 되나? 

 

[썸데이 토크] 초원복국집 2021? '우리가 남이가' VS '검찰의 정치질(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