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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중국몽

 

지식인들은 개혁개방 전의 중국을 '잠자는 용'이라고 불렀다. 자본주의를 받아들이자 용이 깨어났다고 했고, 너무나 당연하게도 그 말은 맞았다. 중국은 정말이지 슈퍼드래곤이 됐다. 

 

그래서 '중국몽(세계의 중심 역할을 했던 과거의 영광을 21세기에 되살리자는 의미다)'을 향해 가고 있냐고 하면, 그건 좀 다른 얘기가 된다. 엄밀히 말해 지금의 중국몽은, 중국 인민, 특히 드센 경제발전 과정에서 낙오된 사람들과는 동떨어져 있다. 그래서 중국몽은 '중국공산당몽', 전근대식 표현을 하자면 '중국조정몽'이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서민도 아니고 빈민층도 아니고, '극빈층'이 6억 명이라고 한다. 그나마도 중국 정부가 언급한 숫자다. 중국에서 극빈층이란 도시에서는 시멘트 토굴과 천막에서 살고 시골에서는 1년 내내 거의 옥수수죽만 먹고 사는 사람을 뜻한다. 

 

이 글은 분석이 아니다. 나 개인의 궁금증에 관한 것이다.  

 

 

2. 진시황의 중국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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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시황이 천하를 통일해 중국을 발명한 그 순간부터, 백성에 대한 완벽한 통제는 황제와 조정의 로망이었다. 과거 중국 속담에 <천하는 넓고 황제는 멀다>는 말이 있다. 지금은 <천하는 넓고 당(공산당)은 멀다>는 말로 바뀌었다. 

 

이 말을 뒤집으면, 황제의 입장에서도 백성 개개인은 멀다. 중국은 한반도 왕조처럼 '적당한' 사이즈를 한참 초월해있다. 통제와 감시에 특별한 공을 들이지 않는 한, 조정은 막막한 공포에 시달려야 하는 환경이었다. 

 

진시황과 그의 조정(이사, 조고)은 폭압적인 법가사상(말이 사상이지 그냥 방법론이다)으로 백성들을 통제하고 감시했으며, 백성들끼리도 감시하게 했다. 그 결과는 누구나 아다시피 진승, 오광의 난이다. 거기서 이어진 항우와 유방의 대결로 진나라는 멸망하고 한나라가 세워졌다. 

 

 

3. 유방의 중국몽

 

진시황의 실수로 유방은 귀중한 깨달음을 얻었다. 황제가 아무리 강해도 수많은 농민을 통제할 수 없으며, 그들의 마음은 더더욱 어찌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하긴 그 자신이 이웃집 남자들을 데리고 봉기한 농민 출신이다. 

 

법 없이 통치할 순 없으므로 유방과 장량은 법가를 통치체제로 이어받았지만 간판은 유가로 달았다. 얼핏 보면 속임수 같지만 그렇지 않다. 장량의 계획은 전란으로 피폐해진 농민들에게 회복할 시간을 주고, 하나의 정부가 하나의 체제로 통치하는 천하를 만들되 몇 세대를 기다리더라도 무리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조정이 무리하면, 결국 실제로는 백성들이 무리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면 백성은 참지 않는다. 그래서 한나라는 400년을 갔지만 부의 재분배에 실패한 말기에는 '참지 않는 백성'이 황건적이라는 형태로 나타나며 무너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늙다리 주정뱅이 양아치 유방은 중국문명의 비조(鼻祖)다. 여러 이유가 있지만 그 중에 하나는 <농민을 거스르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는 원칙을 세운 일이다. 유방 개인의 무절제한 주색잡기 정도는 백성의 삶에 거의 아무런 영향도 끼치지 못한다. 

 

 

4. 유교의 중국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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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로운 세상은 옳다"

 

수직적인 공자와 수평적인 맹자는 사상의 근본도 방법론도 다르지만 목적의식은 같다. 평화로운 세상은 당연히 옳은데, 그 평화는 의사결정권자(황제와 조정)가 아닌 백성 입장에서의 평화다. 

 

이것은 보다 사회주의적인 묵가보다도 실은 범위가 더 넓다. 묵가는 경제적, 정치적 기득권을 수구세력으로 부정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그들의 기득권조차 백성들이 별 탈 없이 살아가는 '도구'로 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유가는 민중혁명에 들어가는 핏값조차도 쓸데없는 비용이라고 여긴다. 

 

즉 유가에서 말하는 평화란 단순히 안정적이거나 고정된 체제를 말하지 않는다. 다수가 착취당하면서도 체제 자체는 안정적일 수 있으니까. 그러나 백성의 입장에서 보자. 치안과 법률, 기타 다른 문명적인 서비스를 받는 대가로 납득할 만한 수준의 조세를 내고 부모자식 건사하고 노동한 만큼 먹고 사는 게 평화다. 

 

그리고 중국철학사의 최종승자는, 모두가 아는 그대로 유학이다. 

 

 

5. 인민의 중국몽

 

천하는 넓고 황제는 멀다. 어디엔가 살아있다고 하는 황제는 황제대로 부귀를 누리며 나를 별달리 괴롭히지 않은 채 내 깜냥대로 사는 것. 이것이 오랫동안 절대다수 중국인이 원하는 바였다.  

 

맹자는 백성의 편을 들어 '물이 배를 뒤집는다'는 논변을 펼쳤다. 물(백성)이 화가 나면 배(조정)를 뒤집어 버린다는 일종의 협박이다. 즉 군주와 조정은 비록 선량한 마음을 타고나지는 못했더라도, 다름 아닌 자기 자신을 위해서라도 물을 휘저어서는 안 된다는 이야기다. 

 

맹자의 협박은 여러 번 실현되었다. 황건적이 한나라를, 황소의 난이 당나라를, 홍건적이 원나라를, 이자성의 난이 명나라를, 태평천국운동이 청나라를 절단냈다. 

 

전근대 뿐 아니라 근대에 이르러서도, 중국에서 배는 물을 절대 거스를 수 없었다. 

 

 

6. 현대의 중국몽

 

지금은? 

 

극빈층 6억 명이라는 숫자는 중국사를 통틀어 한 번도 용인됐던 적이 없다. 지금껏 중국은 이 수치에 다다르기 이전에 물이 배를 뒤집어 체제를 재조정해왔다. 

 

하지만 환경이 바뀌었다. 과거 분노한 농민들이 손에 쥔 '죽창'과 농기구는 관군의 무기와 큰 격차가 없었다. 농민반란군은 몇몇 지역이 합세하기만 하면, 정부 전복까지는 못 가도 관아를 불태우고 지주를 때려죽이는 일 정도는 얼마든지 할 수 있었다. 

 

그러나 현재 '죽창'은 미사일과 전투기와 같은 현대의 고급무기체계를 결단코 당해낼 수 없다. 농민시위가 일어난들 장갑차가 출동하는데 무슨 수로 '조정'을 압박할 수 있단 말인가. 

 

다시 말해 지금 중국의 배는 맹자의 금언을 무시해도 된다. 아니, 적어도 물을 무시해도 된다고 여기고 있다. 

 

완벽한 인민통제 및 감시체제는 황제와 조정의 오랜 중국몽이었다. 지금까지 실현하지 못한 이유는, 착해서가 아니라 진시황의 실패 이후 조심성이 생겼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염치불구하고 할 수 있다면?

 

현대의 무한한 생산력과 미디어-통신기술의 발달로 중국은 완벽한 인민통제에 다가서고 있다. 소설 <1984>의 섬뜩한 설정이 인구 14억의 나라에서 구현되는 중이다. 배와 물 사이의 균형이 기울어지자, 배는 어떤 짓도 거리낌 없이 하는 중이다. 

 

 

7. 시진핑의 중국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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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한 인민통제라는 로망스는 시진핑만의 것이 아니다. 그전의 최고지도자들도 꿈꾸고 실행했다. 

 

진시황은 분서갱유로, 건륭제는 문자의 옥으로 피지배민들을 정신개조하려고 했다. 결과는? 사람은 많이 죽었지만, 그렇게 치명적이지 않았다. 

 

분서갱유 이전의 저작들이 여전히 남아있는 이유는 그 내용을 그대로 암기한 지식인들이 몰래몰래 암송하고 구전으로 전수할 빈틈이 있었기 때문이다. 문자의 옥도 마찬가지다. 전근대의 행정력과 통신력으로는 문화의 숨통을 빈틈없이 조일 수 없다. 

 

하지만 중국역사상 수많은 대대적 문화개조 시도가 있었음에도, 문화대혁명 한 번의 충격만은 못하다. 마오쩌둥조차 중국문명이 그 지경으로 철저히 파괴될 줄은 몰랐을 것이다. 현대의 물질적 조건이란 그만큼 무섭고, 성능이 확실하다. 

 

이제 시진핑은 마오쩌둥을 넘어 진시황의 욕망을 현실에 구현하고 있고 또 성공하고 있다. 이는 실로 기괴하고 섬뜩하다. 위구르족 전체 1160만 명 중 수용소에 갇힌 인구가 최소 100만 명, 최대 200만 명 이상이라고 한다. 산업화에 성공한 현대국가가 저지를 수 있는 폭력은 한 민족의 1/10을 '사육'할 수 있는 수준인 것이다. 

 

 

8. 미래의 중국몽

 

과거였으면 불가능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그런데 중국에서만 벌어진다. 그 이유는 뭘까. 

 

첫째는 중국이 물질적으로는 산업화에 엄청난 성공을, 그것도 짧은 시간에 성공한 국가라는 것이다. 

 

둘째는 '죽창'의 존재 여부다. 물질적으로 중국 정도로 발달한 나라라면, 가령 서구 선진국은 물론이고 한국처럼 나중에 선진국에 진입한 나라라면 이미 죽창을 대체할 수단을 갖고 있다. 

 

민주주의다. 

 

민주주의 체제 하에서는 화염병과 야구방망이, 아니 때로는 촛불에도 전차와 전투기를 가진 정부가 항복한다. 그러므로 민주주의가 정착된 국가에서는 역사가 최소한의 연결성을 가지고 흐른다고 할 수 있다. 

 

중국에서 그럴 일은 당분간 없어 보인다. 배와 물의 균형이 완전히 파괴된 상태이기 때문이다. 

 

중국은 어떻게 될까. 일단 황제의 중국몽은 지금 당장은 실현된 것으로 보인다. 민중의 중국몽 - 물이 배를 뒤집을 수 있을까? 없다면, 전 인류의 1/5이 완전통제사회에서 사육되는 그로테스크한 풍경이 언제까지 이어질까?

 

미래가 정말로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