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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설기현

 

개인적인 인연은 전혀 없지만 나는 축구 감독 설기현을 존경한다. 설기현 선수는 2001년 벨기에 프로 축구 리그에 진출한다. 유럽 축구를 경험하고 돌아온 그는 마지막에 한국 프로축구 리그에서 은퇴했다. 은퇴 후 설기현 감독은 성균관대 축구부 감독으로 부임한다. 내가 설기현 감독을 존경하게 된 이유는 대학 감독으로 부임한 후 성균관대 축구부를 운영한 방식 때문이다.

 

설기현 감독은 2015년 성균관대에 취임하면서 이런 약속을 했다.

 

‘단체 훈련은 하루 1시간 10분 이내, 주말은 무조건 휴식, 아침은 먹고 싶은 사람만.’

 

단체훈련을 강조하던 기존의 축구 문화와 정반대로 선수들의 자율성을 최대한 존중하는 감독이 나타난 것이다. 개인적으로 부족한 부분은 개인 훈련을 통해서 극복할 수 있다. 휴식이 동반되지 않으면 운동을 잘할 수 없다. 아침밥보다 아침잠을 더 자야지 컨디션이 좋아지는 선수도 있다. 이런 생각들로 내건 원칙들이었다.

 

처음에 반신반의해 하던 선수들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이 방식이 실패해도 너희들을 탓하지 않겠다. 모든 책임은 내가 진다. 하지만 이게 옳다는 걸 너희들이 증명해 줬으면 좋겠다.”

 

정말 멋있는 말이다.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설기현 감독은 선수 생활 동안 다양한 곳에서 축구를 하면서 훈련 문화를 익혔다. 지도자가 된 그는 경험했던 좋은 부분만 가져와서 적용했다.

 

“1시간 10분의 훈련시간에는 조직력을 높이는 훈련만 한다. 나머지 시간은 선수 개인이 부족한 부분을 스스로 보완하는 것이다. 개인 능력이 좋아지면 자연스럽게 더 강한 조직력이 나올 수 있다고 믿는다.”

 

설기현 감독이 부임하자마자 성균관대는 추계대학연맹전 4강, U리그 왕중왕전 준우승 등의 성과를 내며 대학축구의 강호로 자리매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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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난 선수들의 자율성에 대한 얘기를 많이 해왔다. 공감한다는 사람도 있겠지만, 현실적으로 어려움을 말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설기현 감독은 성공한 이유를 난 이렇게 생각한다. 국내에서 선수 생활을 하며 느꼈던 납득할 수 없었던 방식들을 개선하고, 외국에서 선수 생활하면서 좋다고 느낀 것들을 그냥 실행한 것이다. 혁신을 시도하는 것이 두려운 지도자가 있다면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머리로 이해하고, 합리적이라는 생각이 들면, 의심하지 말고 선수들을 믿고 실행해 보라고. 일단.

 

좋은 트레이닝 코치는 누가 만드는가

 

그동안 야구팀에서 트레이닝 코치로 좋은 대우를 받으며 일해 왔다. 좋은 평가가 있는 반면에 안 좋은 평가도 있었다. 그래도 코치로서 나름 이름이 나기도 했으니 나는 성공한 트레이닝 코치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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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것이 나의 대단한 능력의 결과인가라는 질문을 스스로 던져봤을 때, 결코 그렇지 않다는 대답이 돌아온다. 내가 그동안 인정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내가 만났던 좋은 코치들 때문이다.

 

난 벌크업을 해서 힘을 기르면 타구스피드가 빨라지고, 타구스피드가 빨라지면 안타수가 증가하고 자연스럽게 비거리가 증가하여 홈런 개수가 늘어날 것이라고 얘기해왔다. 그럼 모든 선수가 그렇게 힘을 키우면 좋은 타격의 결과가 따라오는가? 그렇지 않다. 아무리 힘을 키워도 힘을 제대로 쓰는 방법을 잘 가르치지 못하면 아무 효과가 없다. 좋은 타격코치가 필요한 이유다.

 

선수의 본능을 깨뜨리지 않고 선수가 가진 힘을, 타구에 실을 수 있도록 가르치는 타격코치를 만나는 건 사실 쉽지 않다. 가끔 어떤 타격코치를 볼 때 한번씩 의문이 들때가 있다.

 

‘이 코치는 타격을 가르치는 코치인가? 아님 전력분석원인가?’

 

타격코치들이 전력분석실에서 상대 투수의 투구 습관을 찾는 시간이 훨씬 많은 건 정말 이상한 장면이다. 타격코치란 상대 투수가 어떤 공을 던지든 그걸 잘 치게 만드는 역할을 하는 사람이지만, 몇몇 타격코치는 상대 투수가 뭘 던질지 알려주는 일에 더 시간을 투자한다. 예를 들면 어떤 구종을 더 많이 던지고, 어떤 습관이 있는지 찾는데 더욱 집중하는 것이다. 습관을 알면 뭐 하는가. 기술이 부족하면 치지 못하는 것을.

 

전지훈련을 갔을 때, 텍사스 레인저스 포수 코치에게 질문을 한 적이 있다. 내일 포수 훈련하는 걸 참관할 수 있냐고. 그 코치는 흔쾌히 내일 피칭장으로 오라고 했다. 난 내가 영어를 잘못한 줄 알고 다시 물었다. 그랬더니 코치는 포수 훈련은 피칭장에서 다 이루어진다고 하였다. 맞는 말이었다. 투수의 공을 받고, 블로킹하고 등등 거기서 다 일어나는 것이었다.

 

또 다른 외국인 포수 코치가 전지훈련 기간 팀 훈련에 며칠간 참가한 적이 있었다. 며칠간 포수들이 하는 훈련을 지켜보기만 하였다. 어느 정도의 시간이 흐른 후 국내 포수 코치가 외국인 코치에게 질문을 했다.

 

“우리 팀 포수들 능력이 어떤 것 같냐?”

 

그 외국인 코치는 이렇게 대답했다.

 

“지금까지 포수 훈련하는 걸 보지 못했는데 어떻게 평가를 하냐”

 

외국인의 눈에는 포수 훈련이라고 생각되지 않는 훈련들이었던 것이다.

 

전지훈련 기간 많은 훈련 영상들이 인터넷에 올라온다. 수비수들이 연속적으로 다이빙을 하며 숨을 헐떡이고, 좌우로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장면. 이 영상을 외국인 선수에게 보여준 적이 있었다. 그 외국인 선수는 이게 도대체 무슨 훈련이냐며 거꾸로 물었다. 외국인의 눈에는 공을 계속 날라오는데 공을 잡지도 못하고, 공 근처에 가지도 못하는데 이게 어떻게 수비 훈련이냐고 의아해했다. 훈련을 시키는 코치는 체력훈련이라는 핑계를 대겠지만 난 체력을 강화시키는 훈련이 아닌 체력을 떨어뜨리는 훈련이라고 항상 얘기해왔다.

 

예전 팀 동료였던 지도자 한 분이 구단의 도움으로 보스턴 레드삭스에 2주간 연수를 다녀온 적이 있었다. 2주간 경험한 것 중 가장 인상적인 게 어떤 거냐고 물었다. 그분은 이렇게 대답했다.

 

"홈에서 3루까지 뛰는 베이스러닝을 제외하고 기술 훈련 중 야구장에서 숨을 헐떡이는 선수를 본 적이 없다."

 

우리나라에는 선수들이 훈련을 할 때 힘들어하지 않으면 훈련을 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지도자들이 많다. 지금 시키고 있는 훈련이 진정한 기술 향상을 위한 훈련인지, 그냥 힘들게만 하는 노동은 아닌지 고민이 필요하다.

 

지금까지 얘기한 비효율적이고 선수들을 힘들게만 하는 지도자를 나는 운 좋게도 아주아주 덜 만난 편이다. 그래서 선수들의 체력관리를 잘할 수 있었고, 부상 관리도 잘 할 수 있었다. 그게 내가 지금까지 트레이닝 코치로 잘 먹고 살수 있었던 이유다. 세상에 혼자의 힘으로 성공할 수는 없지 않은가. 많은 코치들에게 고마움을 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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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것도 하지 마라

 

얼마 전 예전에 함께했었던 A 코치한테 전화가 왔다. 내가 그 팀을 나오고 처음 통화하는 거였으니까, 2년 만에 첫 통화였다. A 코치는 2년 동안 나에 대해 오해를 해서 미안하다는 얘기부터 먼저 꺼냈다. 연유를 들어보니, A 코치가 처음 코치가 되었을 때 좋은 코치가 되고 싶으니 조언을 해달라고 했을 때 내가

 

"아무것도 하지 말고 지켜만 봐"

 

라고 얘기했었다고 한다. 이 말이 그에게 상처가 된 것이다.

 

난 누가 먼저 물어보지 않으면 먼저 얘기를 잘 하지 않는다. 2년 전에도 A 코치가 먼저 조언을 구해서 난 진심으로 조언해 준 것이었다. 2년이 지나는 동안 그 말이 서운했었는지도 몰랐다. A 코치는 2년이 지나서야 내가 왜 그런 조언을 해줬는지 이해가 된다고 했다. 처음 코치가 되면 다들 마찬가지지만 정말 의욕적으로 선수들을 지도한다. A 코치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선수 때도 아주 성실하고 후배들을 잘 챙기던 선배였다. 코치가 되어서는 그 마음이 어디 갈까. 얼마나 열과 성을 다하여 선수들을 지도했을지 짐작이 간다.

 

그렇게 열심히 일을 했지만 A 코치는 2년이 지난 후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코치로서 나이는 한참 어리지만 선수들에게 아주 나이 많은 꼰대 코치들 못지않은 평가를 받았다는 사실에 적잖이 충격을 받은 모양이었다. 그러고 나서 내가 해준 조언이 생각이 났다고 전화를 한 것이었다.

 

사실 코치들이 내가 ‘아무것도 하지 말고 지켜봐’라고 말해주면 다들 기분 나빠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구단에서 좋지 않은 평가를 내릴 것이고, 괜히 선수들도 코치로서 무시한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기 때문이다. 내가 말하는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건 선수가 뭘 요청하기까지 기다리라는 얘기였지, 진짜 아무것도 하지 마라가 아니었다.

 

2014년으로 기억한다. 넥센히어로즈가 2차 전지훈련으로 오키나와를 갔을 때의 일이다. 박병호 선수는 2차 캠프에서 슬럼프 아닌 슬럼프에 빠져있었다. 시즌 시작하기 전이라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시기일지라도 선수는 아마 많은 스트레스를 받았을 것이다. 타격코치였던 허문회 코치와 호텔방에서 대화를 나눴다. 내가 질문했다.

 

"코치님! 병호는 무슨 문제예요?"

 

그러자 그는 간단하게 ‘어떤 어떤 것이 문제다’라고 문제점을 바로 말하는 것이었다.

 

“근데 왜 얘기 안 해주세요?”

 

의아해서 되물었다. 그러자 허 코치는

 

“지금은 내가 얘기해 줘봐야 듣지 않을 가능성이 높아. 본인이 이것저것 다 해보고 찾아오면 그때 알려주면 돼”

 

맞는 얘기였다. 사람이 아파야 병원을 가듯, 본인이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을 수도 있는데 이래라저래라 해봐야 별 도움 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흡연자에게 백날 담배 끊으라고 해도 잘 못 끊지 않는가. 병원 가서 다음 달에 폐암 걸린다고 얘기하면 단박에 담배를 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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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코치란 진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게 아니라 선수들이 찾아올 때까지 준비하고 기다려주는 것이었다. 눈에 보이는 문제점을 지적하는 건 누구나 할 수 있다. 하지만 그 문제를 선수가 받아들이게 하는 게 중요하지 그냥 지적만 한다고 좋은 코치가 되는 건 아니다. 하지만 기다리는 게 보통 어려운 일인 건 맞다.

 

자기 통찰과 자기반성을 한 A 코치가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A 코치가 앞으로 코치로서 승승장구하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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