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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시국에 베트남에서 아프다는 것

 

이가 부러졌다. 하필 이 엄중한 코시국에 밥을 먹다가 이가 부러졌다. 

 

이가 아프기 시작한 지는 한 달이 조금 넘었지만, 이 시기에 베트남 시골에서 치과에 간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 치과, 안과는 문을 연 곳을 거의 찾기가 어렵고, 열었다고 해도 환자가 잔뜩 몰린다. 코로나 감염에 대한 두려움이 커서 선뜻 가기가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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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의 일반적인 치과

 

지금 베트남에서 공장을 가동하기 위해서는 지켜야 하는 여러 조건들이 있다. 하나는 주기적으로 코로나 검사를 받는 것이다. 물론 모든 비용은 회사 부담이다. 지역별로 주기가 다르긴 한데, 우리 회사가 있는 지역은 3일마다 한 번씩 검사를 받아야 한다. 처음엔 7일 간격이었는데, 두 달 전부터 3일 간격으로 변경돼 일주일에 두 번씩 콧구멍 속으로 면봉을 깊숙하게 넣고 있다.

 

이 검사를 받고 나면 두통이 생기기도 하는데, 치통도 이때쯤부터 생기기 시작해서 치과 질환이라고 생각을 못하고 턱관절 쪽에 염증이 생겼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회사에 비치된 진통제를 먹으며 지내고 있었다. 그러다 9월 초, 지내고 있는 호텔의 사장님이 정성껏 만들어 주신 저녁을 먹다가 아래쪽의 앞니와 어금니 사이에 있던 이 하나가 썩어서 툭하고 부러져 나왔다. 

 

'치통이 맞았구나'

 

이가 부러져 나왔으니 어쩔 수 없이 이를 새로 하러 치과에 가야만 한다. 어쩌면 임플란트를 해야 할 수도 있는데, 가급적 좋은 치과로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한국으로 가는 건 생각할 수도 없고, 호찌민에 있는 한국 치과로 가는 것이 그나마 나은 선택이었다. 조금만 기다리면 호찌민에 있는 치과에 갈 수 있을 거라 생각하고 좀 더 참기로 했다. 아직은 호찌민과 우리 회사가 있는 지역 사이에 바리케이드가 있어서 통행이 어렵지만, 9월 15일이 지나면 일부 봉쇄조치가 완화될 것이라는 기대감이 퍼져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 기대는 현실이 되지 못했다. 9월 15일 무렵, 호찌민은 9월 30일까지 봉쇄 조치를 연장한다고 발표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9월 15일부터 일부 지역에 한해서 택배와 우편 서비스가 재개되고, 식당의 배달 방식 영업이 가능해졌다. 이런 분위기면 어쩌면 호찌민에 있는 치과에 갈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고, 회사 직원들에게 호찌민에 갈 방도를 알아보라고 지시했다.

 

직원이 알아본 결과, 현재의 규정에 따라 치료를 위해 병원에 방문해야 한다는 진료 예약증을 첨부하고, 코로나 검사 결과를 첨부해서 회사가 통행증을 만들면 호찌민에 갈 수 있다고 한다. 이렇게 해서 이가 부러진 지 열흘 정도 지난 뒤에 호찌민에 들어갈 수 있는 통행증을 만들 수 있게 되었다.

 

병원과 미리 통화를 해보니, 아마 3번 정도 치료를 받아야 할 거라고 했다. 그리고 현재는 병원이 일주일에 3일-이틀에 하루씩- 진료를 할 수 있는 상황이라고 한다. 이 말은 내가 5일간 호찌민에 있어야 한다는 얘기다. 약 일주일 치의 결재 서류에 사인을 미리 다 해두고 직원들과 인사를 한 뒤에 호찌민에 들어가는 차에 올라탔다.

 

호찌민으로 들어가는 마지막 다리를 건너고 드디어 베트남의 경제도시 호찌민에 도착했다. 이게 얼마 만에 보는 도시 풍경인지 모르겠다. 

 

바로 호찌민에 위치한 한 검문소에 도착했다. 운전기사가 통행증을 보여주고 몇 마디 했는데, 어째 심상치 않아 보인다. 차를 갓길에 대고, 운전기사가 내렸다. 차창밖을 보니 운전기사가 건넨 서류를 방호복을 입은 사람들끼리 돌려보고 서로 얘기를 오랫동안 하고 있다. 뭔가 불길하다. 약 10분 정도가 지난 뒤에 운전기사가 돌아와서, 통과가 안된다고 간단히 얘기를 하고 회사에도 연락을 한다.

 

회사에서 총무 직원한테 전화가 왔다. 검문소에서 '치과 진료가 중한 질병이라고 볼 수 없기 때문에 통과가 안된다'며 진입을 거부했다고 한다. '이게 무슨 일인가? 이 부러진 게 중한 질병이 아니면 뭐가 중한 질병인가? 그리고 이걸 왜 검문소 관리자가 판단하는 건가? 코로나 검사도 다 받아서 증명서도 만들고, 공무원한테 미리 전화해서 확인도 했는데 왜 안되냐고 회사 직원과 얘기해봤지만, 우리끼리 아무리 얘기하고 뭐가 합리적인지 말해봤자 아무 소용이 없다. 검문소 관리자가 아니라고 하면 통과가 안된다.

 

다른 방법을 찾아보기로 했다. 호찌민에 다 들어와서 그냥 돌아갈 수는 없다. 여기저기 전화해보고 궁리한 끝에 엠뷸런스를 생각해냈다. 엠뷸런스를 부른 뒤 검문소를 지날 수 있었고, 무사히 호찌민의 한국 치과에 도착했다. 오랜만에 방문한 집에 머물며 5일 간의 치료 끝에 새로운 이가 생겼다. 다행히 뿌리가 살아있어서 임플란트를 하지 않고 치료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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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행을 거부한 호찌민의 한 검문소

 

엠뷸런스 비용까지 합쳐서 거의 임플란트를 할 수 있을 정도의 비용을 지출했다. 부디 임플란트 한 것처럼 오래오래 잘 버티길 바란다.

 

 

4개월 만의 퇴근

 

이번 10월부터 코로나로 인한 봉쇄 조치가 호찌민에서 조금씩 풀리고 있다. 이미 10월 1일부터 호찌민은 시내에 있는 바리케이드를 철거하겠다고 발표했고, 1차 백신을 접종한 지 14일이 지나면 또는 2차 접종을 마친 뒤에는 집 밖으로 외출이 가능하다고 발표했다. 여전히 음식점에서 식사를 할 수 없지만 식당의 배달 영업을 허가했다. 마트도 다시 개장할 수 있다는 완화된 코로나 대응책을 공지했다.

 

내가 있는 '동나이' 지역도 곧 봉쇄 조치가 풀릴 수 있을 것 같다는 희망이 생겼다. '동나이'성은 호찌민의 바로 옆에 붙어있는 성급의 지역으로, 호찌민이 서울이라면 동나이는 경기도다. 지금껏 호찌민에서 발표한 코로나 관련 조치를 동나이에서도 그대로 따르는 경향을 보여왔기 때문에, 이제 공장에서의 긴 숙식 생활을 마치고 곧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 거란 희망이 공단 내에 많이 퍼졌다. 

 

아마 이번 10월의 첫 주나 둘째 주부터는 집으로 돌아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며 10월의 첫 번째 일요일을 공장에서 보내고 있었다. 사무실에서 책을 꺼내 읽고 있는데 생산 매니저가 찾아와서 직원들에게 맥주 한 캔씩 주면 안되는지 물어본다. 알겠다고, 대신 많이 마시면 내일 힘들어지니까 적당히 마시게 하라고 당부해두었다.

 

어떻게 쉬고 있는지 보려고 공장 순찰을 한 바퀴 돌았다. 한 무리는 공터에서 축구를 하고 있고, 몇 명은 서로 이발해주거나 빨래를 널면서 개인 정비를 하고 있다. 또 아까 나눠준 맥주를 마시려고 공장 바닥에 앉아서 안주거리를 만들고 있는 직원도 있다. 낮시간이라 더워서 그런지 많은 직원은 웃통을 벗고 앉았다. 나도 섞여 앉아서 직장 숙식 생활을 위로해주기로 했다.

 

"여러분들 모두 고생 많았어요. 엊그제 호찌민에서 봉쇄 조치를 완화했으니까, 여기도 곧 풀릴 겁니다. 조금만 참으세요. 내가 생각할 때 길어야 열흘 정도 남은 것 같습니다."

"맞아요. 소문 들으니까 금방 풀릴 거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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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일에 공장에서 시간을 보내는 직원들

 

그렇게 공장 순찰을 마치고 사무실에 다시 앉아 있는데, 총무 매니저한테 연락이 왔다. 내일(월요일)부터 호찌민과 동나이 간에 이동이 가능해진다고 한다. 갑작스러운 소식. 희소식이라 좋긴 하지만, 베트남 정부는 이렇게 갑작스럽게 전달할 때가 많다. 사업장에 코로나 환자가 발생하면 갑작스럽게 공문 들고 찾아와서 그 시간부로 영업 정지를 시키기도 하고, 당일에 갑자기 호텔 영업을 중단시키기도 한다. 호텔의 신부 대기실에서 화장하던 신부가 울면서 집으로 갔다는 얘기도 들은 적이 있다.

 

코로나 관련 정책들도 이렇게 갑자기 이뤄진 경우가 많았다. 전국적인 식당 영업도 갑자기 중단시켜서 준비해두었던 식재료를 전부 못쓰게 되었다고 하고, 이미 등교했는데 당일부터 등교 금지를 시켜서 갑작스럽게 단체로 하교를 하기도 했었다. 코로나 초기에 있었던 아시아나 항공 회항 사건도 이런 베트남 정부의 업무 방식이 영향을 줬을 것 같단 생각이다. 아직까진 행정이 그렇게 세련된 나라가 아니다.

 

드디어 4개월 만에 운전기사를 만났다. 호찌민에 살고 있는 그는, 집에 격리돼 있던 사이에 부인이 둘째 아이를 출산했다고 한다. 축하하고 또 오랜만에 만나서 반갑다는 인사를 하며 호찌민으로 들어가는 차에 올라탔다. 얼마 전 치과 치료받으러 갈 때만 해도 도로에는 오토바이가 거의 없었는데, 오늘은 호찌민으로 들어가는 오토바이가 많이 보인다. 아이와 함께 3명, 4명이 타고 있는 오토바이도 보이고, 장바구니에 가재도구를 가득 싣고, 또는 선풍기와 같은 큰 짐을 들고 이동 중인 오토바이들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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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찌민으로 들어가는 베트남 사람들

 

이전보다 검문소 개수가 확실히 줄어든 것 같다. 이가 부러져서 치료를 받아야 된다고 해도 허락을 안해주던 검문소 직원들이 이번엔 통행 허가증도 보는 듯 마는 듯 통과시켜준다. 그것도 모든 차량을 검사하는 게 아니고 랜덤하게 몇 대씩 본다. 치과 치료받으러 가던 날이 계속 생각난다. 불과 며칠 사이에 너무 많이 바뀌었다.

 

"안녕! 아빠 왔다."

 

이렇게 지난 6월, 2주 동안 나갔다 올 거라는 생각으로 집을 나선 지 4개월 만에 다시 호찌민의 집으로 퇴근을 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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