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딴지일보 독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인간쓰레기 마사오입니다. 존경하는 편집장님과의 마감 약속을 두 차례나 어긴 대역죄인으로서 이번 회차는 사죄의 마음을 담아 존댓말로 이어가겠습니다.

 

일단 민망하기 짝이 없습니다. 제 주제에 감히 ‘수준’에 대해 떠들어보려 하니 더욱 그렇습니다.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딴지일보>는 지금으로부터 23년 전인 1998년, 그러니까 이 땅에 인터넷이 막 활성화되던 초창기 시절 ‘B급 오락영화 수준을 지향하는 초절정 하이코메디 씨니컬 패러디 황색 싸이비 싸이버 루머 저널’이라는 선언과 함께 문을 연 “인터넷 패러디 신문”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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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동아일보 기사

 

여기서 주목할 것은, <딴지일보>가 “대놓고” <조선일보>를 패러디하며 태어났다는 점입니다. 심지어 당시 로고조차 <조선일보> 로고 서체를 그대로 가져다 썼습니다. 뿐만 아닙니다. 채워진 기사도 거진 ‘스토킹’ 수준으로 <조선일보>에 집착했습니다. 

 

일테면 당시 <조선일보> 김대중 주필이 쓴 칼럼의 월스트리트저널 기사 왜곡을 낱낱이 까발린 “性門지조때로영문법(링크)”은 고고히 전해 내려오는 전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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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수에 찬 눈빛의 김대중 주필.

 

유행이나 취향도 세월 따라 변하기 마련입니다. 1998년엔 “우끼고 자빠진 각종 사회 비리에 처절한 똥침을 날리”겠다고 말하면 많은 이들이 배꼽을 잡았지만, 2021년을 사는 그 누구도 “똥꼬깊수키”란 외침에 웃지 않습니다. <딴지일보>에 기고하는 그 어느 필진도 이제는 더 이상 소위 ‘딴지체’를 쓰지 않습니다. 

   

돌이켜 보면 <딴지일보>는 20여 년이란 세월 동안 여러 부침을 겪으며 내용과 스타일에 많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는 독자들의 높아진 수준에 맞추기 위한 처절한 생존의 몸부림이었습니다. 이를 두고 나름의 ‘발전’과 ‘진화’라는 평가를 내리는 것이 그리 낯간지러운 과대포장은 아닐 것입니다. 

 

 

조선일보, 딴지일보와 조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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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 초, 재미있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조선일보>와 <딴지일보>가 어느 선에서 조우하는 일이 벌어진 것입니다.

 

<조선일보> 오피니언-전문가칼럼란에 칼럼 하나가 실렸습니다. 어느 분야의 ‘전문가’인가 궁금해 필자의 이력을 보니 ‘시무 7조’ 청원 필자라고 합니다. 제가 무식해서 ‘7인의 사무라이’는 알아도 ‘시무 7조’가 무엇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청원자라고 소개하는 걸 보니 관공서에 의해 뭔가 억울한 일을 당한 분 같습니다.

 

[논객 조은산의 시선] 대깨문 게임이라는 타이틀의 칼럼이었습니다. 일단 재미있었습니다. 요즘 한창 밈으로 소비되는 흥행작 ‘오징어 게임’에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 등 여러 실책을 버무리고 대깨문이라 표현하며 친문 성향 지지자들의 행태를 비꼬아 패러디했습니다. 한마디로, “우끼고 자빠라진” 한편의 소동극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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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기사 링크 

 

이 칼럼을 읽고 든 생각은, ‘천하의 <조선일보>도 세월 앞엔 어쩔 수 없구나’였습니다. 제 아무리 고담준론을 목놓아 떠들어봤자 21세기의 독자들은 읽지 않습니다. 한 꺼풀 자극만을 쫓는 인스턴트와 밀키트의 시대가 된 지 오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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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미디오오늘>

 

 

<조선일보>도 먹고 살아야 합니다. <조선일보> 노동조합은 작년 대비 연봉 9% 인상과 우울증에 시달리는 직원을 위한 대책을 사측에 요구하고 있습니다. 

 

평소 <조선일보>의 논조대로라면, ‘노조’란 사회와 기업에 해악만 끼치고 개인의 배만 불리려는 이기적인 조직이니 그따위 조직의 요구야 면전에 웃으며 침을 뱉어주면 될 일이겠습니다만, 사회적 진화와 발전에 따라 노조의 얼토당토한 요구라도 어느 정도 듣는 시늉은 해야겠지요. 

 

여하간 <조선일보> 또한 땅 파서 회사를 운영할 순 없지 않겠습니까. 그러니 패러디를 하든 바지를 내리든 독자의 눈길을 끌 수 있도록 일단 ‘재미있는’ 글을 지면에 채우려 노력하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겁니다.

 

이 대목에서 ‘재미’에 대해 생각해 봅니다. 

 

초창기 <딴지일보>의 천박함엔 ‘쾌감’이 있었습니다. 이는 그 옛날 저잣거리에서 양반 등 당시 권력층의 위선을 까발리던 사당패의 해학-풍자와 맥이 닿아 있습니다. 故 김대중 대통령의 “담벼락에 대고 욕이라도 하라”는 말 또한 일맥상통합니다.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약자가 불의한 권력을 향해 똥을 던지는 행위는 그 자체로 통렬함이 있습니다. 반대로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강자가 내뱉는 해학과 풍자는 일종의 자해공갈이자 그 자체로 비아냥과 멸시, 혐오와 차별이라는 폭력성을 띠게 됩니다. 

 

 

조선일보는 왜 그랬을까

 

설마하니 자칭 대한민국 1등 신문 <조선일보>가 지면에 대고 비아냥과 멸시, 혐오와 차별을 선동한다고는 상상조차 하기 힘듭니다. 따라서 <조선일보>와 <조선일보> 구독자들은 자신들을 현정권의 온갖 정책실패와 폭압적 통치에 피해를 입는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약자’라 여기고 있는 것이 분명합니다. 

 

그렇게 여기는 이유엔 나름의 근거가 또 있습니다. 해당 칼럼을 읽고 통쾌한 재미를 느끼는 독자들을 상상해 봅니다. 통계는 우리 편이 아닙니다. 명징한 논리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인터넷의 발달로 장삼이사들에게도 공론장이 활짝 열렸습니다. 손가락이 있고 한국어를 구사할 줄 안다면 그 누구라도 자신의 견해를 떠들 수 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구체적인 자료를 클릭 몇 번으로 누구나 손쉽게 구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 옛날 김대중 주필의 ‘장난질’ 같은 행태는 반나절은커녕 거의 실시간으로 까발려지게 됐다는 뜻입니다.

 

그러니 남은 건 ‘정서’밖에 없습니다. 욕을 하긴 해야겠는데 구체적인 맥락이나 팩트, 통계자료 따위는 들이밀 처지가 안되니 우스꽝스레 비틀어 비웃고 이를 통해 쾌감을 느끼는 ‘정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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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조선일보>

 

일부 친문 성향 지지자들이 보이는 ‘종교적 광기’를 질타하지만 이른바 ‘태극기 부대’로 일컬어지는 극우세력의 괴랄한 행태는 딱히 눈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조선일보> 입장에선 문재인 대통령의 “13평짜리 임대아파트” 발언이 어떠한 상황과 맥락에서 나오게 된 건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윤석열 후보의 문제적 발언엔 매번 발언 이면의 ‘취지’와 ‘맥락’이 중요합니다.-참고로, <조선일보>의 사시(社是)는 ‘불편부당’(不偏不黨)입니다.-논리나 데이터로 채우지 못하는 여백은 ‘핍박받는 약자’의 정서로 채울 수밖에 없는 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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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조선일보>

 

바로 이 지점에서 기괴한 폭력성이 발현됩니다. 

 

권력의 미디어 통제 틈바구니에서 자신들의 요구를 동료 시민 한 명에게라도 더 알리기 위해 목숨을 걸고 벌일 수밖에 없는 수단이었던 ‘단식투쟁’이 자유한국당 소속 국회의원들에 의해 희화화되는 꼴을 보는 것과 같은 의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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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회의 품격과 수준을 나타내는 지표로 곧잘 지목되는 것은 해당 사회의 언론사입니다. 흔히들 워싱턴포스트와 뉴욕타임스, 요미우리신문과 아사히신문 등등을 꼽습니다. 어디서 주워듣기론 슈피겔이나 무슨자이퉁, 르피가로 같은 게 있다던데 잘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언론사는 저마다 논조라는 것이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눈여겨 봐야 할 것은, ‘정론직필’로 칭송받는 언론사는 ‘보수’와 ‘진보’를 가리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주장하는 논조가 ‘보수’냐 ‘진보’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팩트에 기반한 냉철한 분석과 깊이 있는 해설에 따라 수준을 평가받는 것입니다. 

 

언론의 품격은 바로 이런 지점에서 드러납니다.

 

 

주류의 교체를 목도하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딴지일보>는 오랜 세월 부침을 겪으며 다양한 형식을 실험하고 스타일을 변화 시켜 왔습니다. 본사 사옥 78층에 위치한 편집부에선 오늘 밤도 편집부 기자들이 독자들의 니즈에 부응하기 위해 작년에 400억 원을 들여 장만한 슈퍼컴퓨터를 돌리며 밤새도록 데이터를 분석하고 있다고 합니다. 대한민국의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수많은 이슈와 난제들을 뒤쫓고 아젠더를 발굴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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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공개! 딴지 사옥 78층 슈퍼컴퓨터실에서 점검중인 직원들. 

(세간에는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 관계자들이

슈퍼컴퓨터 5호기를 둘러보며

이야기하고 있는 것으로 잘못알려져 있다)

출처: C영상미디어

 

반면 20여 년 전 <딴지일보>가 그랬듯 <조선일보>가 사회적 약자들의 마지막 무기인 해학과 풍자를 통해 독자들의 ‘정서’에 호소하는 모습은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큽니다.

 

그렇습니다. 대한민국 ‘주류의 교체’가 시작된 것입니다. 여러분은 지금 엄청난 역사적 변혁의 현장을 실시간으로 목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대한민국 1등 신문의 한 귀퉁이에서 평균 수준을 깎아 먹고 있는 제 자신이 너무 혐오스럽습니다. 목구멍이 포도청이라고, 서푼 원고료에 목매달며 이렇게 졸필을 흘리고 있는 것이 면목 없습니다만, 허락하여 주신다면 더욱 공부하고 정진하여 대한민국 1등 신문의 말석에서 영광을 함께 하겠습니다. 독자 여러분들 또한 대한민국 사회의 오피니언 리더이자 메인스트림으로서 국뽕, 아니, 자부심을 가지고 딴지마켓을 이용해 주실 것을 당부드립니다.

 

빠른 시일 내에 <수준> 3부작 중 나머지 2부와 3부에서 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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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가오면 찌른다-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