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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입사 2011년 퇴사.

 

9년간 스타벅스에서 일했고 퇴사한지 10년이 지났다. 그 덕인진 모르겠지만 지금도 같은 업종에서 매장을 맡아 일하는 중이다.

 

무리한 행사 진행으로 스타벅스 파트너들이 분노를 표하는 지금, 옛날 생각이 난다. 과거 스타벅스는 어땠는지, 그들이 왜 분노하는지, 약 10년 정도 몸담았던 사람으로서 그때 이야기를 조금 해볼까 한다. 

 

아, 글을 쓰게 된 이유는 딴지일보 편집부가 스벅의 내부 분위기가 바뀌던 시기를 알만큼 과거에 오래 일했던 사람을 수소문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이고 딴지가 대기업의 광고를 일절 받지 않는 곳이라 이해관계가 없을 것이란 믿음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물론 한 번도 글을 써본 적 없는 내가 잘 풀어낼진 자신이 없지만...  

 

일단 스타벅스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입사하면 무엇부터 하는지 썰을 풀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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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로어 포지션: 물지게를 나르는 성룡

 

20대 중반, 나는 외국계 커피회사라는 것과 초록색 엠블럼에 반해 파트 타이머로 입사했다. 최저시급 2100원이 나의 시작이다. 

 

처음 두 달간은 백룸&플로어 포지션만 했다. 백룸은 설거지도 하고 재료도 있고 사무실도 겸하는 곳으로(스타벅스에 가보면 직원들이 들락날락하는 방 있잖은가), 나는 고객이 사용한 머그컵과 트레이, 빵 접시, 포크 같은 것들과 바에서 사용된 빵 집게, 소스통, 휘핑크림통, 뚜껑과 고무패킹 등까지 꼼꼼하게 전용 살균액에 일정 시간 담가둔 후 헹궈내는 등의 작업을 했다. 휘핑크림은 유제품이라 세균번식이나 식중독의 위험이 있어 위생에 더욱 신경 써 관리했다.

 

플로어는 어디냐고? 흔히 고객들이 이용하는 컨디먼트바, 일반카페는 서비스바라고 부르는 곳인데 냅킨 놔두는 곳이라 보면 된다. 그러니까 이쪽 담당은 냅킨, 설탕, 빨대, 스틱, 물, 우유(당시에는 서비스바에 우유가 비치되어 있었다)를 채우고 주기적으로 교체해 주는 일을 한다. 그 외 사용된 머그잔과 트레이, 포크, 접시 등을 수거하고 휴지통을 비운 후, 고객이 사용한 의자와 테이블을 닦고 정리한다. 이후, 바닥의 청결상태를 확인하고 화장실 청결관리와 비품을 채우고 등 고객이 사용하는 플로어 공간을 관리하는 게 내 업무였다.

 

플로어 포지션에는 10분 규칙이란 게 있다. 10분마다 플로어의 바닥 얼룩이나 떨어진 휴지 같은 것이 없는지 청소상태를 확인해야 한다. 그 외 교체가 필요한 전구를 확인하고 전구의 갓 등에 먼지가 쌓이지 않도록 주기적으로 관리한다. 서비스바 용품이 부족하면 발주 담당 직원에게 말해주는 일도 잊지 말아야 한다. 한마디로 매장 구석구석을 청소, 관리하는 것이다.

 

물론 담당자가 발주 전에 모두 체크하지만 그래도 업무적 보완이 필요한 의사소통은 늘 함께한다. 이는 '고객이 스타벅스에서 만나는 순간이 모두 최고의 경험'이어야 한다는 스타벅스의 기본 정신에서 나온 업무 방식이다. 즉, 고객이 매장에서 겪는 한순간조차 불편함 없이 즐겨야 한다. 

 

나로선 커피회사에 들어왔는데 한 달 동안 커피 한잔 만들지 못하고 청소 뒷정리 같은 업무만 해서 손이 근질근질했다. 마치 소림사에서 물지게만 나르는 성룡이 된 거 같은 느낌이랄까.

 

두 달 후, 나는 플로어 관리의 달인이 되었다...! 매장의 모든 재료 재고 상태를 빠삭하게 기억해 관리하고, 요일에 따라서 필요한 휘핑크림 수량을 미리 알고 준비를 해두게 되었다. 1층 컨디먼트 바에 쌓여있던 머그와 트레이들을 식기세척기에 돌리고 세척기가 돌아가는 몇 분 동안 나머지 층에 쌓인 머그들을 세 겹으로 쌓아 올려 수거하는 스킬과 스피드도 탑재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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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 포지션: 빌어먹을 카라멜 마끼아또

 

두 달 후, 바 포지션에 처음 배치되었다. 바에는 두 파트가 있다. 음료를 주문받고 샷을 뽑고 시럽을 넣는 바1 포지션, 스팀우유를 만들고 음료를 완성해 고객에게 직접 전달하는 바2 포지션. 여기서 직원에게 강조되는 바는 이렇다.

 

신선한 에스프레소로 최고의 커피가 제공되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

 

스타벅스는 고객 응대를 무척 중요하게 생각한다. '우리는 단순히 커피를 파는 것이 아니라 커피 문화와 지식을 판매하고 고객들에게 제3의 문화적이고 특별한 경험을 제공하고 있다는 것'을, 스타벅스 파트너로서 사명이라 강조한다.

 

레시피를 달달 외우고 일이 손에 익으면 바 포지션이 쉬울 것 같지만... 아아, 그래도 매번 까다로운 음료가 몇 가지 있다. 카라멜 시럽이 들어가는 카라멜 라떼와 카라멜 마끼아또가 헷갈리고 어렵다! 카라멜 라떼에는 카라멜 시럽이 들어가지만 카라멜 마키아또는 바닐라 시럽에 카라멜 드리즐(토핑)이 들어간다. 아... 헷갈려! 

 

특히 카라멜 마끼아또는 바닐라 시럽에 우유를 넣고 샷을 넣을 만큼의 1.5~ 2센티 정도 공간을 준 후, 샷을 넣어줘야 한다. 스타벅스는 신선한 음료를 제공하기 위해 추출된 지 10초가 경과된 샷은 폐기해야 한다는 규정이 있다. 때문에 적절한 타이밍에 샷을 추출하는 것이 중요했다.

 

딱히 매뉴얼이 바뀌지 않았다면 지금도 그럴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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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 포지션: 완전체의 등장 

 

그 다음으로 가는 게 포스 쩌는(?!) 포스다! 포스 업무는 고객에게 권유하거나 소개할 수 있는 커피 지식이 있어야 한다. 판매되는 모든 음료와 음식, 원두, 텀블러, 커피메이커 ,프렌치 프레스, 모카포트 같은 제품에 따른 추출방법과 원두 굵기 등을 고객에게 안내할 수 있어야 한다. 당시에는 스타벅스에서 커피 추출도구를 팔았는데 요즘은 추출도구는 잘 보이지 않는 것 같다.

 

포스는 매장을 방문한 고객이 매장 전반에 대한 첫인상을 결정하는 곳이다. 때문에 포스는 완벽하게 교육된 파트너만이 배치될 수 있다. 자. 그럼 이제 여러분이 스타벅스를 방문했을 때 누가 가장 고참인지 알게 될 거다. 어떤 파트너가 포스 포지션에 섰다면, 그는 전반적인 바리스타 업무를 모두 익힌 사람이라고 보면 되는 거다. 

 

처음 포스 앞에 섰을 때 뭐가 가장 어려울까.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나로선 아이컨텍이었다. 손님도 나도 아이컨텍이 익숙하지 않은 문화에서 자랐지만 '프로페셔널한' 스타벅스 파트너가 되면 달라야 했다. 낯선 사람과 눈을 맞추고 주문을 받고 음료를 건네는 일이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았지만, 물지게를 나르던 성룡이 못할게 무엇이겠나.

 

누군가에게 별 거 아니지만 언젠가 매장에 자주 오던 고객이 내가 만든 라떼를 한입 먹더니 오늘 유난히 맛있다고 활짝 웃었던 그 눈빛을 잊지 못한다.

 

그 순간의 뿌듯함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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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스타벅스는 왜 남다른 직장이었을까 

 

내가 일한 매장 주변에는 공연장이 있었다. 공연이 있는 날은 빼박 러시타임이 발생한다. 포스 바1, 바2가 바쁘게 돌아가는 와중에 패스츄리같은 음식 주문이 밀려온다. 바 업무에 투입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아직 일이 손에 익지 못했던 어느 공연 날이다. 내게 바1 포지션이 맡겨졌다! 

 

주문받은 음료를 마킹하고 샷을 뽑고...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게 40여 분의 폭풍러시가 흘러갔다. 하얗게 불태우고 한숨 돌리고 있을 때, 함께 일하던 매니저가 내게 말했다.

 

어! 로스가 하나밖에 없네. 잘했어! 다음에는 더 잘할 거야!

 

실수도 칭찬으로 돌아오는 여유와 분위기. 당시 스타벅스는 그런 곳이었다. 체계적으로 일을 배우고 함께 일하는 과정이 즐거운 곳. 특히 종업원이 아닌 닉네임을 부르고 파트너란 호칭으로 부르는 문화도 마음에 들었다.

 

너가 당시에 스타벅스에서만 일해서 그런 거 아니냐고? 아니다. 당시에 다른 까페나 여러곳에서 일한 분들이라면 알겠지만 한국의 서비스업 종사자들 처우와 근무환경은 정말 처참했다. 고객만족만을 지나치게 강조하거나 회사의 이익을 쫓느라 직원을 홀대거나 무시하는 것이 당연시되는 분위기였다. 물론 지금도 완벽히 개선되지는 않았지만 그때는 정말, 저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엉말 구렸다.

 

해서 우리같은 구직자에게 스타벅스의 정책과 분위기가 남다르게 다가온 것이다. 제일 처음 배운 것이 서로를 파트너라고 부르는 것. 알바도 직원도 모두가 동등한 파트너라는 것. 놀랍게도 안에서 일하며 진짜 그걸 느끼게 만드는 것.

 

조직사회가 그렇듯, 피드백은 대부분 위에서 아래로 이루어진다. 물론 아래 직급 의견을 구하는 경우도 가끔 있겠지만, 말이 쉽지 그게 제대로 될 리가 없다는 것은 두 번 말하면 입 아프다. 누군가 말 잘못 꺼냈다가 괜히 찍혀 고생하고 있다는 슬픈 전설은 어느 회사나 하나씩 있지 않은가.

 

놀랍게도 당시 스타벅스에는 전혀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그런 일이 없었다. 동등한 파트너의 의문과 의견에 언제든지 귀를 기울여주는 조직문화였다. 매장 전체를 총괄하는 운영팀장은 파트너들의 개인적인 어려움을 수렴하기 위해 개인 메일도 오픈하였다. 직급은 있돼, 수평적인 관계를 경험하니, 역시 외국계 회사는 다르다는 느낌을 받았다. 개인적으로는 감동과 자부심이 생겨나는 일터였다고 할까. 모두가 함께 서로 존중받는 느낌에 함께 성장하는 기분을 주었다. 

 

회사 역시 열정적으로 일하는 파트너인 당신을 존중한다는 메시지를 끊임없이 줬다. 파트너의 성장과 회사의 성장은 같은 길에 있다는 것을 언제나 강조했다. 고객에게만 주는 일방적인 감동이 아니라 회사가 파트너를, 파트너가 다시 고객을 감동하게 하는 순환이 스타벅스라는 조직의 기본정신이었다. 그 과정에서 나는 파트타이머에서 바리스타가 되었고, 슈퍼바이저, 부점장을 거쳐 점장이 되었다.

 

회사도 나와 같이 성장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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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렌 여신의 변심 : 이상한 조짐들

 

2002년 58개에 불과하던 스타벅스 매장은 2004년 110개로 뛰어올랐다. 2006년에는 188개로 매장 수를 대폭 확장했다. 내가 점장이 되고 2년 차가 되던 2007년 200호점, 2009년 300호점, 2011년 400호점으로 급성장하고 있었다.

 

이렇게 외연은 팽창하고 있었지만, 매장마다 일할 사람이 부족했다. 이상하다 싶을 정도로 인력을 뽑지 않았다. 매일 인력을 충원해 달라고 지역 매니저에게 요청했는데 말이다. 피드백에 철저하고 나를 존중해주던 스타벅스에게 받은 첫 이상신호였다.  

 

지금 생각해 보면 회사는 그 시기에 더 빨리 크고 싶어서 안달 나 있었던 게 아닐까 한다. 외적인 팽창과 이익을 위해 다른 방향으로 달리려 한 게 아닐까... 지금 생각하니 그렇다. 파트너들과 함께 여럿이 함께 가는 문화를 버리고 먼저 달려가 따라오는 놈만 데려가는 새로운 기류가 생겼다. 회사의 발전 방향에 따른 변화에 스타벅스는 파트너들의 요청과 의견에 점점 귀를 닫기 시작했다.

 

매장은 자꾸 늘어나는데 직원을 뽑지 않으니 매장마다 연장근로가 불가피했다. 연장근로를 있는 그대로 기록하면 비용이 증가하여 실적이 안 좋아지는 문제가 생겼다. 일하는 만큼 결재를 올리지 못하고 어느 정도 무료 봉사가 암묵적으로 강요되는 행태가 그때 자리 잡기 시작했다. 매장 실적은 연말 성과급과 직결되니 신경을 쓸 수밖에 없게 된다. 

 

2008년, 나는 새로 오픈하는 매장에 점장으로 발령났다. 영업시간은 7:30~23:00. 16시간인데 발령 인원과 파견 인원이 5-6인이었다. 그중에 이제 막 들어온 신입도 있었다. 손이 부족한 건 불 보듯 뻔한 일이었다. 일 매출 200만 ~300만 사이였던 그 매장은 최소 7-8명의 인원은 있어야 했다.

 

하는 수없이 전날 새벽 두시까지 오픈 준비를 하고 다음날 6:30분 출근을 해 마감까지 근무했다. 6시간 넘게 연장 근무했지만 4시간 정도만 결재를 올렸다. 이런 일은 나만 겪은 게 아닐 것이다. 당시 전국의 스타벅스 매장이 다 그런 식으로 돌아갔다.

 

당시 한 지역 매니저가 용기 있게 파트너 부족과 매장 인사 문제에 대해 의견을 냈다. 인사팀장은 그가 꽤나 거슬렸던 모양이다. 지방에 처자식과 살고 있는 그를 서울 본사 지원센터 인사팀으로 발령 냈다. 어떤 업무도 주지 않고 자리에만 있었다.

 

그는 그곳에서 꽤 버텼다. 한두 달쯤 지났을까. 그의 사표 소식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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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형 스타벅스의 탄생과 18주 유산 

 

어쩌면 그 조짐들의 근원지가 스타벅스가 스타벅스 코리아로 변태하는 과정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스타벅스는 그렇게 소중한 파트너들을 하나둘씩 버리고 달려가고 있었다. 자랑스러웠던 스타벅스의 파트너들은 점점 스타벅스 코리아의 소모품이 되어가고 있었다. 내가 가장 안타까웠던 곳은 내가 신입부터 차근차근 올라오면 했던 좋은 경험들을 내 후배들에겐 주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이 와중에 2009년, 테라스가 있는 특별한 매장이 오픈되었다. 그리고 그해, 홍콩 본사에서 (스타벅스 아시아 퍼시픽) 한국을 자주 방문했다. 본사 직원들 방문도 잦았던 걸로 기억된다.

 

그날도 vip 방문이 있었다. 당시 난 임신 18주였다. 아침에 배가 좀 아팠는데 무리한 일정을 소화하다가 vip 방문도 겹쳐 그날도 억지로 출근했다. 나는, 벌어야 하니까. 그들의 일정이 끝나고 나서야 병원으로 갔다. 유산이었다. 18주 유산은 출산과 비슷하다. 아이를 지키지 못한 죄책감과 함께 약 4주간 병가를 보냈다. 그리고 출근 한 날. 또 대표이사의 방문 일정이 있었다. DM 지역 매니저는 내게 말했다.

 

“당신이 유산한 사실은 대표님이 알 필요 없지?!”

 

그때 처음 퇴사를 고민했다.

 

현재 인력 부족에 대한 스타벅스의 문제는 그때부터 본격적인 시작이었던 거였다. 일부 점장이 해당 매장의 3인 체제 마감을 2인으로 줄이기 시작했다. 셋이 하던 일을 둘 이하가 하니 당연히 일은 버겁고 근무시간이 길어졌다. 마감 연장 급여는 1.5배로 30분단위로 시급계산된다. 그래서 어떤 점장은 일을 20분만 시키고 30분을 채우기 전에 퇴근을 지시했다.

 

스타벅스의 변심이었을까, 본색이었을까. 스타벅스는 대한민국이라는 곳을 너무 잘 이해했다. 조이면 조이는 대로 해내는 그 구린 한국적 조직문화를 완벽하게 채택했다. 관리하는 지역 매니저들도 스타벅스의 한국화에 암묵적으로 동조하는 분위기였다. 이렇게 스타벅스에 선명했던 파트너 존중의 기본정신이 매장에서 서서히 사라지기 시작했다.

 

2011년. 나는 스타벅스를 퇴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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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차 점장의 현재 

 

너무 지켜지길 바랐고 지켜내고 싶었던 근무환경을 나조차 지킬 수 없게 되었을 때, 더 이상 스타벅스를 다닐 수 없다고 생각했다. 어떤 이는 변화는 당연한 거고 변화에 적응하지 못한 당신이 낙오자라고도 할 거다. 그래, 이 무한경쟁사회에서 나는 낙오자 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내가 낙오자가 되더라고 마음 속에, 내가 사랑하고 믿었던 가치가 무너지는 것을 외면하거나 무시할 수는 없었다. 그것이 내 젊음을 함께한 스타벅스 정신이었다. 누군가에겐 우습게 들리겠지만, 그것은 곧 나의 자부심이기도 했다. 아마 당시에 스타벅스에 근무했던 많은 사람들이 그런 짝사랑을 간직하고 있을 테고. 

 

부점장 시절, 나와 함께 하는 점장은 꽤나 오랫동안 점장 자리를 지켰다. 매장 일이 좋았던 그녀는 지역 매니저로 승진을 원하지 않았다. 스타벅스 정신에 입각해서 보면, 그 사람은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그 누구도 갖지 못한 매장에서의 경험을 갖고 있다. 그녀가 스타벅스에서 보낸 시간 자체가 스타벅스의 훌륭한, 소중한 자산이다.

 

스타벅스 인터내셔널 직원들이 방문하면 그녀를 소개하고 자랑했다. 그런 그녀를... 본사는 탐탁지 않아 했다. 스타벅스 코리아에게 그녀는 그저 고인물이었다. 한자리에 그리 오래 있으면 호봉도 세지고 점장은 10년이 안돼도 아무나 할 수 있으니, 그녀 역량과 경험은 무가치한 것이었다.

 

몇 년 전 그녀가 퇴사하고 바리스타 사원을 할까 고민한다는 얘기를 들었다. 지금 그녀는 한 매장에서 시급제 바리스타로 일하고 있다. 그녀의 선택이지만 참 씁쓸했다.

 

그리고 지금 

 

스타벅스 파트너들의 트럭시위 소식을 들었을 때, 터질게 터졌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원센터는 오더만 내리고 현장과의 조율 따위는 없는, 파트너에 대한 배려도 보상도 없는 조직이 된 스타벅스. 10년이나 참아온 이들이 폭발한 것이다. 우리는 돈을 벌기 위해, 또는 과거의 문화에 익숙해져 폭발할 수 없었는데 요즘 세대는 그렇게 폭발이라도 하니 내심 멋지다는 생각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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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뉴시스>

 

트럭시위는 조용히 끝났다. 파트너들의 트럭시위는 소기의 성과를 거둔 것으로 보인다. 스타벅스 코리아는 10월12일 예정된 ‘겨울 e프리퀀시’ 행사를 2주 연기하기로 했다. 송호섭 스타벅스 코리아 대표는 제기된 문제에 대해 직원들에게 사과했고, 회사는 이달 셋째 주까지 관련한 공식 입장을 밝히기로 했다.

 

그러나 노조도 조직력도 없고, 시급제 사원과 월급제 사원으로 구성된 스타벅스 직원들이 뜻을 이룰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함께 일했던 동료들 얘기를 들어보면 요즘은 시급제, 월급제 직원으로 갈라져 다른 목소리를 내는 게 또 머리 아프다고 한다...) 

 

트럭시위 소식에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라'

 

하는 댓글이 달렸다.

 

'왜 안 떠나냐고? 우리가 스벅을 사랑하고 바꿀 수 있다 믿으며 전처럼 파트너쉽으로 일하고 싶기 때문이야. 대부분 갈곳이 없는 게 아니라 여기서 일하고 성장한 사람들인데 떠나고 싶지 않아'

 

라고 블라인드 앱에 글도 보았다. 스타벅스를 떠났지만, 옛 동료로서 마음 한끝이 저릿했다.

 

스타벅스 성공 신화 창립자인 하워드 슐츠 전 화장은 이렇게 말했다.

 

스타벅스에서 최우선되는 원칙은 고객 존중이 아니다. 고객 존중은 두 번째 가치이다. 스타벅스의 첫 번째 가치는 ‘직원 만족, 직원의 행복’이다.

 

스타벅스 공식 홈페이지의 스타벅스 사명은 이렇다.

 

첫 번째 우리의 가치 - 우리의 핵심을 지켜나가며 파트너와 고객과 함께하는 가치들을 실행한다.

 

지금의 스타벅스는 핵심가치를 가지고 있는 걸까? 아직도 내 맘에는 무수한 시간으로 새겨진 스타벅스의 가치가 있다. 

 

“늘 파트너와 함께 해야 한다”

"경험하게 하고 감동하게 하라”

 

“스타벅스의 큰 자산은 파트너입니다. 이를 잊지 마십시오” 트럭시위의 한 문구가 가슴을 때린다. 스타벅스 코리아가 돈이 우선이 아닌, 과거 스타벅스가 추구하는 가치를 진심으로 찾아내길 바란다.

 

그때 우리는 일하면서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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