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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이 별 무리 없이(?!) 여기까지 커 올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일까. 누가 뭐래도 ‘테러와의 전쟁’이라고 할 수 있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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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9월 11일 세계무역센터 빌딩이 무너져 내렸다. 911테러는 미국의 역사에 커다란 변곡점이 되었다. 역사상 처음으로 미국의 전체 영공이 봉쇄됐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이 사건은 특기할 만한 일이다.

 

이 당시 미국은 양당의 상하원 지도부들을 방탄차량에 태워 교외의 핵전쟁 대피 시설로 옮겼고, 뉴욕 항에는 2척의 항공모함이 입항했다. 이 당시 미국은 ‘준계엄령’ 상태였다. 상황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며칠 뒤에 있었던 부시 대통령의 의회 연설이다. 이 의회 연설은 전 세계에 생중계됐다. 아마도, 미 의회 연설 중계 역사상 가장 높은 시청률을 찍은 연설일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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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당시 아들 부시 대통령은 30번이 넘는 기립 박수를 받았다. 이 메시지의 핵심은 아들 부시가 내놓은 아주 ‘간략한’ 메시지였다.

 

“전 세계는 우리와 함께 할 것인지 테러리스트 편에 설 것인지 결정해야 할 겁니다.”

 

이보다 더 무서운 말이 있을까? 평소에는 온갖 생쑈를 다하던 북한마저도, 

 

“이번 사건은 테러의 심각성을 다시 한번 상기시켜 주고 있다. UN 성원국으로서 온갖 형태의 테러와 그에 대한 어떠한 지원도 반대한다.”

 

라며 몸을 사렸을까? 이 엄중한 상황에서 미국은 아프가니스탄으로 쳐들어갔고, 이라크를 박살 냈다. 늪에 빠져 버린 거다. 제국의 무덤에서 허우적거리는 건 기본이었고, 이라크를 박살 낸 빈자리에는 IS까지 등장해 미국을 괴롭혔다. 그 세월이 20년이었다.

 

이 20년 동안 중국이 치고 나온 거였다. 2008년 당시 중국의 GDP는 미국의 31% 수준이었다. 그러던 게 2010년 40.1%, 2020년에는 미국의 67% 그리고 2022년에는 71%대로 추격하게 된다.

 

(일본이 최고 정점을 찍었던 게 1995년이었는데, 이때 일본의 GDP가 미국의 71% 수준이었다. 플라자 합의 당시 32% 수준이었는데, 이때 정점을 찍고... 잃어버린 20년이 흘러가게 됐다. 지금 현재 일본은 미국의 23% 수준까지 떨어졌다)

 

타깃변경

 

미국은 중국을 견제할 타이밍을 놓쳤다. 일본이나 서독이 치고 올라올 때 미국은 이들을 플라자 호텔로 끌고 가 박살냈다. 소련의 경우, 작정하고 냉전의 상황으로 몰고 가 군사비 지출을 강요했다.

 

지난 20년 동안 미국은 ‘테러와의 전쟁’으로 시간을 낭비한 듯이 보였다.

 

“중국을 견제해야 할 시간과 돈을 엉뚱한 데 썼다.”

 

라고 말할 수도 있다. 물론, 그런 면이 있다. 그러나 이걸 달리 생각해 봐야 한다.

 

“미국은 그래도 된다.”

 

미 국방부 추산에 따르면 아프가니스탄에서 미군이 쓴 총비용은(2001년 10월부터 2019년 9월까지) 7780억 달러, 한화로 치면 약 930조 원 정도의 금액이다. 여기에 미 국무부에서 아프가니스탄 재건 사업이랍시고, 같은 기간에 쓴 돈이 약 440억 달러. 한화로 약 50조 원 수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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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파키스탄 쪽에 쏟아부은 돈이나 기타 전쟁 비용 등은 싹 제외 한 거다. 전쟁 비용만으로 ‘1000조’를 넘게 썼다. ‘천조국’이란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보통의 나라였으면, 망해도 골백번은 더 망할 금액이다. 그런데, 미국은 괜찮다.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의 전쟁 당시 미국의 전비는 미국 GDP의 1%도 안 되는 수준이었다. 물론, 미국 전체 국방비를 따지면 대략 GDP의 4% 수준이었다. 이 수준이 많아 보이겠지만, 미국이 본격적으로 칼을 뽑아들었을 때의 상황을 생각해 봐야 한다. 한국전쟁 당시 미국의 국방비는 GDP의 12% 정도였고, 그 유명한 제2차 세계대전 때에는(전 미국이 달라붙었음에도) 1/3 수준인 35%였다.

 

2021년 8월의 마지막 날 바이든 대통령은 아프가니스탄에서 미군의 완전 철군을 단행한다. 이때 아들 부시와 트럼프 대통령이 온갖 쌍욕을 다 하는 걸 보면서,

 

“야, 아무리 그래도 이건 아니지 않냐?”

 

란 말이 나왔다. 언제부터 부시가 아프가니스탄의 여성인권을 생각했고, 트럼프가 미국의 자존심을 생각했던가? 철군 계획은 오바마 때부터 시작해서 트럼프 때까지 다 계획하고 준비했던 거였다. 문제는 시기였다. 그걸 바이든이 받아든 거였다. 바이든의 실수라면, 아프가니스탄 정부가 이렇게 빨리 무너질지, 이렇게 부패했는지 몰랐다는 거다.

 

한국에 날아올 계산서

 

어차피 미군의 철수는 계획된 거였다.

 

2021년 8월 31일 미군이 아프가니스탄을 떠났다.

2021년 9월 6일 아프리카 기니에서 쿠데타가 일어났다.

2021년 9월 15일 미국, 영국, 호주가 나란히 손을 잡고 오커스(AUKUS)를 만들었다.

 

미국 GDP의 1%가 아프가니스탄에서 빠져나와 어디로 향하는 걸까? 그리고 우리가 간과하고 있는 한 가지가 있다. 미국이 호주와 손잡고 오커스를 만들었다고 선언하던 9월 15일 한국은 세계 7번째로 SLBM(잠수함 발사 탄도 미사일)과 초음속 순항 미사일, 그리고 지난 7월에 시험했던 고체 추진기관 연소 시험과 KF-21에 장착할 장거리 공대지 미사일(타우러스 비슷한) 발사 시험 영상도 공개했다. 이날의 정치적 의미도 생각해 봐야 하는 게 9월 15일 오전에 문재인 대통령은 청와대 본관 접견실에서 중국의 왕이 외교부장과 접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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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네 2022년에 뭐 할 거야?"

 

“응? 그건 왜?"

 

“왜긴, 베이징 올림픽 몰라?”

 

“그거 2008년 때 하지 않았냐?”

 

“에이, 그건 하계고... 이번에 동계 또 하거든... 너네 평창 할 때 우리도 갔잖아. 휭하니 한 번 놀러 와라. 알았지?”

 

이러고 있다가 오후에 충남 태안으로 날아가 SLBM을 발사한 거다.

 

혹자들은 왕이가 이걸 몰랐다가 뒤통수 제대로 맞았다, 문재인이 작정하고 중국 엿을 먹였다고 하는데, 이런 해상 발사 시험을 할 때는 주변국에 다 통보를 한다. ‘몇 월 몇 일에 그 해상에서 뭔가 할 거니까 가급적 피해 있어라.’ 식으로 흘리는 거다. 괜히 그 근처 얼쩡거리다가 서로 곤란한 상황 만들지 않기 위해 다 통보를 한다. 그러면 주변국들도 대충 눈치를 깐다. 북한이 9월 15일 날 열차에서 열리는 탄도미사일을 발사한 게 아니다. 북한도 이 정보를 확인했고,

 

“남한 놈들이 뭐 쏜다. 우리도 가만있어선 안 된다. 뭐 쏴야 한다!”

 

이렇게 된 거다. 왕이도 우리나라가 SLBM이든 뭐든 발사할 거 다 알고 왔다. 그리고 그게 자기들에게 결코 기쁜 소식이 아니란 거도 잘 알고 있다.

 

자, 그럼 우리는 왜 갑자기 이걸 한꺼번에 푼 걸까?

 

“매도 한꺼번에 몰아 맞는다고, SLBM 발사할 때 이것저것 막 붙여서 한 번에 끝내자!”

 

라고 보는 게 맞다. SLBM이란 굵직한 이슈 하나 터트린 다음에 그 나머지는 소소하게 붙여서 한 번에 퉁 치자는 거다.

 

이건 아주 정석적인 플레이다. 파키스탄 같은 경우에도,

 

“기왕 핵 터트리는 거 한 번에 왕창 터트리자. 어차피 먹을 욕인데, 띄엄띄엄 먹느니 한 번에 몰아치는 게 나아.”

 

라면서 핵실험을 몰아서 했다(6번을 연달아 터트렸다). 한국도 비슷한 개념으로 접근한 거다. 여기서 생각해 봐야 하는 게 우리에게 날아올 『계산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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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뽕을 한가득 입에 머금은 유튜버들이 너 나 할 거 없이 SLBM 발사 성공을 자축하고, 우리의 탄도 미사일, 초음속 순항미사일을 자랑하며, 미사일 지침 해제되자마자 우리나라가 두 달 만에 이걸 만들어 냈다며,

 

“우리가 미리미리 개발해 놨는데, 미국 눈치 보고 공개 안한 거다. 이번에 지침 해제되자마자 막 쏟아내고 있다.”

 

“역시 화력의 민족, 포방부의 나라!”

 

“우리 이미 핵무기 가지고 있는 거 아냐?”

 

... 와 같은 말들이 계속 쏟아져 나오고 있다. 그런데, 이렇게 국뽕에 취하는 거보다 한국이 왜 이렇게 몰아서 보여줬는지, 이후에 날아올 미국의 계산서가 뭔지를 고민하는 게 훨씬 더 현실적이다. 까놓고 물어보자.

 

“미국이 우리가 이렇게 개발하는 걸 몰랐을까?”

 

알고 있지만, 눈감아 준 거다. 그런데 어느 순간 미국이 미사일 지침을 해제했고, 한국이 미친 듯이 미사일 쏘고, 신무기 실험하는 걸 보면서,

 

“어이구 잘하네.”

 

이러면서 지켜보는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는가. 지난 4월, 중국은 한국을 몇 번이나 찔러봤다.

 

“야, 한국아.”

 

“응 왜?”

 

“너 쿼드 가입할 거야?”

 

“...아니 왜 그런 걸 물어봐?”

 

“그럼 가입하는 거야?”

 

“아니, 내가 언제 쿼드 가입한다고...”

 

“그럼 가입 안 하는 거야?”

 

“......”

 

정산 중인 미국 

 

올봄에 중국과 미국이 한국에게 가장 많이 언급했을 단어가 바로 ‘쿼드(Quad)’였을 거다. 중국은 이미 복수의 채널을 통해 한국 정부를 찔러 봤다는 보도가 나온 상황이고, 미국은 안 봐도 눈에 훤하다.

 

4월에 쿼드 4개국과 프랑스가 합동훈련을 했다.

 

“우리 모두 힘 합쳐서 중국을 뚜까 패자!”

 

이런 상황에서 한국을 바라보는 중국과 미국의 심정은 어떠할까?

 

“야, 한국아 너 6.25 때 중공군 애들이 인해전술로 밀고 들어올 때 우리가 너네들 위해서 피 흘리고 싸워준 거 까먹었냐?”

 

“에이, 우리가 그걸 어떻게 잊어? 너네 덕분에 우리가 이렇게 사는 거 아냐.”

 

“그래? 그럼 어여 쿼드 들어와.”

 

“...아니, 그게 우리가...”

 

한국 정부는 전략적 모호성을 최대한 유지하면서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는 와중이었다. 헌데 지난 4월은...

 

“잔인한 4월”

 

이었을 거다(개인적으로 기밀이 해제돼 문재인 정부의 청와대 기록이 공개된다면, 2021년 4월의 기록을 열람해 보고 싶다. 분명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엄청난 압박을 받았을 거다).

 

그런데, 우리는 2021년 10월이 될 때까지 쿼드에 참여하지 않고 있다. 그리고 10월 12일 쿼드 4개국이 인도양 북부 뱅골만에 모여서 2차 합동훈련에 돌입하게 된다.

 

그런데 의외로 한국에 대한 미국의 반응이 뜨뜻미지근하다. SLBM을 발사하고 온갖 무기들을 다 쏘아 올리는데도 미국은 별 반응이 없다. 해리스 前 주한 미 대사만이,

 

“한국은 더 강력하고 역량 있는 미국의 동맹 상대국이 될 것이다.”

 

라면서 립 서비스를 했다. 너무나 당연하게도 미국 국방부는 이에 대해서 논평할 게 없다는 반응이다. 미국은 이미 한국에 대한 판단이 끝난 것 같다. 또한 그들만의 계획이 있고, 그 계획에 발맞춰,

 

“너 하고 싶은 거 다 해봐라.”

 

라고 내버려 두는 듯한 뉘앙스다. 국제 정치에서 이런 미국의 행동은 이미 대체로 계산이 끝났다는 뜻이며 한국도 어느 정도 수를 읽고 한 번에 우리가 가진 모든 걸 보여주는 베팅을 했다는 뜻이다. 

 

미국은 분명 상당히 ‘긴’ 계산서를 준비하고 있다. 그 물밑에서 일어난 판단이 무엇인지, 현재로서는 나도, 어떤 전문가도 정확히 알 수 없다. 다만 한국이 ‘전략적 모호성’이라는 망토를 뺏길 날이 생각보다 앞으로 다가왔으며, 그 판단에 따라 한국의 앞날이 지금과는 첨예하게 다른 방향으로 바뀔 거라는 것만큼은 확실하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