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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가 숭늉을 대체할 수 있었던 이유. 바로 ‘자판기 커피’와 ‘믹스커피’의 등장 때문이다. 믹스 커피는 카페인과 설탕이 주는 강력한 자극, 이를 요구했던 시대. 그 시대적 요청을 제대로 구현할 수 있는 도구이기도 했다.

 

커피는 인간의 역사에 엄청난 영향을 미쳤다. 카페인이라는 가공할 흥분제의 효과가 너무 센 나머지, 커피가 지나간 자리에는 문명이 변했다. 지난 회에서 이야기한 프랑스 대혁명뿐이 아니다. 르네상스와 계몽사상, 산업혁명과 근대의 탄생은 커피가 없었다면 불가능했을지 모른다. 중세에 중국 문명의 생산력과 문화적 수준이 다른 문명을 압도했던 이유를 '차'와 무관하게 설명할 수 없듯, 중세 말기 아랍 문명과 근대 서구 문명이 중국 문명을 추월했던 이유를 '커피'와 무관하게 설명할 수 없다.

 

인간이란 본디 해가 뜨면 일어나 일을 하고, 해가 지면 자도록 설계되어 있는 동물이다. 물론 밤에 일어나야 할 때 불을 쓰곤 했지만 늘상, 일반적으로 하는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커피가 개발되고 일반적으로 보급되면서 사람들은 오랫동안 깨어 있게 되었고, 그것은 조명의 개발로 이어졌다. 가스등 등 조명이 밝혀준 시간에 오래 깨어 있기 위해 사람들은 더 많은 커피를 마셨다.

 

오래 깨어있는 사람들은 더 많은 일을 했다. 이를 토대로 하루 16시간씩 노동하는 이들에 의한 산업혁명이 가능해졌을 뿐만 아니라 고도로 수학적인 철학과 과학의 발전이 이루어졌다(2017. 8. 6. 중앙선데이, <커피, 차, 코코아 소비 확산이 근면혁명을 이끌어>)*. 물론 ‘홍차’도 같은 기능을 했지만, 진정제인 테아닌이 함께 들어 있는 차에 비해 커피는 좀 더 강력한 흥분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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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한국인들이 숭늉을 마신 이유는 단순히 숭늉이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물건이었고, 그 맛을 즐길 수 있기 때문이었다. 농자천하지대본의 사회에서 굳이 밤늦게 깨어 있을 필요도 없었고, '차'는 매우 비싸서 대중화될 수 없었다.

 

 

그러나 일제 강점기 말미의 전시 동원 체제, 그 후 한국전쟁, 그리고 산업화와 도시화를 겪으며, 한국인들은 오래 깨어 있어야 했고 생존을 위해 오래 노동해야 했다. 이럴 때 카페인은 많은 도움이 되었다. ‘박카스’등의 ‘자양강장제’도 대부분 카페인의 공급처였고, ‘뇌신’, ‘사리돈’, 이후의 '펜잘', '게보린'등의 두통약에는 꽤 많은 카페인이 들어 있어서 ‘고통을 이겨내고 곧 다시 일하러 가는’것에 도움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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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하게는 ‘타이밍’등의 정제 카페인 알약을 먹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약물들은 카페인의 각성 효과는 줄지언정, 숭늉과 같이 식사를 마무리하고 마음을 편하게 하지는 못했다.

 

사람들은 카페인만큼이나 강력한 각성제를 커피에 넣어 먹기 시작했다. 그것이 설탕이다. 단 맛에 익숙해진 우리가 어렴풋이 생각하는 것과 달리, 숭늉은 단 맛이 나는 음료에 가깝다. 쌀 자체가 단 맛이 나고, 쌀이 캐러멜라이징 되어 단 맛이 증가했기 때문이다. 최소한 아무것도 넣지 않은 커피보다는 훨씬 단 맛이 많이 나는 음료다. 이에 처음에는 숭늉의 맛과 비슷한 맛을 내기 위해 비싼 설탕을 조금만 넣었으나, 일제가 대만을 점령하여 사탕수수를 공급하고 1921년 평양에 설탕공장이 설립된 후 1930년대부터는 설탕 가격이 싸졌다. 이후 사람들은 귀하고 비쌌던 설탕을 커피에 듬뿍 넣어 마시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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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사탕수급, 1927. 8. 20. 동아일보>

 

다만 1980년대까지만 해도, ‘숭늉을 대체할’ 경쟁자가 없지 않았다. 보리차 등의 음료에 설탕이나 사카린을 넣은 냉차나, 설탕을 듬뿍 넣은 미숫가루를 파는 행상이 어디에나 있던 시절이었고, 집에서는 보리차나 결명자차를 우린 후 ‘델몬트’병에 담아 마시는 것이 일반적인 시절이었다. 커피가 이러한 ‘경쟁자’들을 완전히 물리친 것은, 1980년대 자판기 커피와 믹스커피가 일반화된 후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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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허청에서 선정한 ‘우리나라를 빛낸 발명품 10선’에서 믹스커피가 5위로 꼽혔다. 대한민국에서 발명된 물건 중에서는 1위다. 커피믹스는 ‘동서식품’에서 1976년 개발한 것이지만, 대중화된 것은 1980년대 중반 이후이고, 커피믹스가 인스턴트 커피의 왕좌에 오른 것은 1990년대 후반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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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전에 커피믹스와 비슷한 역할을 하였던 건 자판기 커피였다. 이 또한 한국에 소개된 것은 1977년이나 대중화된 것은 1980년 이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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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전 사람들은 커피, 프림, 설탕 통을 따로 구비하여 기호에 맞게 타 마셨다.여러 취향을 고려할 수 있었지만 편의성이 떨어졌다. 자판기 커피와 커피믹스가 등장하면서, 사무직 노동자 뿐 아니라 현장 노동자와 운전기사 등의 직종을 가진 사람들도 이제 ‘박카스’가 아닌 커피를 마실 수 있게 되었다.

 

이러한 이유로 편리해지기까지 한 커피는 완벽히 한국인들이 수백년 이상 마셔 왔던 ‘숭늉’을 대체하게 되었다. 그리고 역설적으로 숭늉을 대체하게 되면서, 한국인들이 선호하는 커피의 맛은 ‘숭늉과 비슷한 맛’이 되었다. 만약 커피가 가끔 마시는 특별한 음료였다면, 외려 다른 맛을 유지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점이 역설적이다.

 

70년대 끓여 먹는 용도의 가루커피, 80년대 인스턴트 커피, 90년대 믹스커피 모두 구수하고 시지 않은 맛이 인기를 끌었다. 90년대 중반 ‘원두커피’의 유행이 시작되었을 때 인기를 끌었던 것은 구수한 향이 강조되었던 ‘헤이즐넛 커피’였다는 점, 2000년대 이후 우후죽순 등장한 커피전문점의 최종 승자는 극단적인 강배전으로 신 맛을 거의 없앤 스타벅스였다는 점 또한 동일한 맥락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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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부터 다시 정리해보자.

 

한국인은 ‘신 맛 커피’에 대한 경험이 부족해서, 아직 덜 계몽되어서 커피의 신 맛을 선호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생야채와 김치를 먹는 한국인 식문화의 특성, 온돌에서 비롯된 ‘숭늉’을 오랫동안 먹어 왔던 역사적 경험에 따른 선호, 각성효과가 필요했던 시대에 커피가 ‘숭늉’을 대체한 사건 등으로 인하여 일어난 일이다.

 

그러나 앞으로도 그러할지는 알 수 없다. 육류 소비량과 와인 소비량이 늘어나는 등 식문화가 바뀌어가고 있고, 숭늉의 맛을 알지도 못하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다. 앞으로 한국인들이 커피의 산미를 좋아하게 될 가능성은 충분하다.

 

다만 어떤 방식으로 선호가 존재하건, 그리고 이후 어떻게 바뀌건, 사람들의 선호를 계몽되지 않은 것이거나 품격이 떨어지는 것으로 보거나, 반대로 과거의 미풍양속을 잃어 가는 것으로 치부하는 건 좀 따분한 관점이다. 어떤 이유와 맥락에서 왜 그러한 선호가 생겼고 변모되어 욌는지 생각해보는 것이, 취향이 다른 서로를 이해하기 위해 좀 더 나은 일이고, 무엇보다 좀 더 재미있는 접근이지 않을까.

 

<끝>

 

편집자 주 

 

본 글은 저자와의 긴밀하고 내밀한 협의 하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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