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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운(武運)'이라는 단어를 '무운(無運)'으로 잘못 안 기자가 화제다. 즉, 이준석 대표가 안철수 후보에게 “무운을 빈다.”고 한 것을 “운 없기를 바란다.”라고 했다고 주장한 것이다. 덕분에 기레기 타령으로 난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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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TN>

 

40대 후반~50대 이상이야 신문의 반이 한자이던 시대를 경험했지만, 그 아래는 아니다. 한자를 쓰는 건 언감생심이고 읽는 것도 버거워하는 이들도 있다. 

 

'지향'과 '지양'은 사장님들도 실수할 때가 많고, 그렇게 젊은 시절 들여마셔 놓고도 '최루탄'을 '최류탄'이라고 쓰는 이가 한둘이 아니며, '역할'을 '역활'로 쓰는 이들도 수두룩하다. 맨날 '하자'가 있네 없네 말을 쓰긴 하지만 한자로 '하자(瑕疵)'를 쓰거나 읽을 수 있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무협지를 교과서보다 더 본 나 같은 사람들에게야 출수(出手)를 하고 시전(示展)을 해보이고 무운(武運)을 빈다는 말이 익숙하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게 그 말은 생소한 단어일 것이다.

 

애써 그렇게 생각하며 욕 먹는 기자를 안쓰럽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해명을 보다가 픽 웃고 말았다. 그냥 “그 단어를 잘 몰랐다.”고 하면 되는데 자신은 이런 뜻으로 썼으나 다른 뜻이 있다고 들었고, 무슨 의미인지 ‘무운을 빈다’고 한 사람에게 물어보겠다니 말이다. 아래아 한글에서도 ‘무운’을 한자 변환하면 ‘武運’ 하나만 뜬다. ‘불운’이라면 모를까 ‘무운’이라는 말은 거의 사용되지 않는다. 그런데도 이걸 ‘중의적으로 썼을’ 가능성을 제기한다면 본인이 너무 초라해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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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TN>

 

비슷한 일은 아니지만 이 한자 때문에 '언젠가 넌 사회생활 글러먹은 놈'이라는 욕을 거하게 얻어자신 적이 있어서 기억을 더듬어 본다. 

 

90년대 말 구제역이 전국을 강타할 때였다. PD들 모아 놓고 유장한 설교를 하시는 것을 즐기시던 본부장님이 또 회의를 소집했다. 워낙 인문학적 지식이 풍요로운 분이어서 들을 내용은 많았지만 안 그래도 바쁜 PD들 이맛살에는 내 천(川)자가 그려지게 마련이었고, 그날따라 말씀이 길었다. 

 

주된 주제는 언론의 한자(漢字) 경시에 대해 통탄이었다. 한글 전용의 문제가 무엇이며, 한자를 알면 얼마나 유익한지를 줄줄 말씀하시던 가운데, 구제역(口蹄疫)을 예로 들었다. 

 

이 구제역을 한자로 큼직하게 쓰신 뒤 본부장님은 득의양양 물으셨다.

 

“여러분 중에 구제역 이렇게 쓰는 거 알았던 사람?”

 

당연히 없었다. 

 

“참 큰일이야. 여러분들도 구제역 관련 프로그램 할 거 아니야. 그런데 PD란 사람들이 구제역, 구제역 입에 달고 다니면서 이 뜻을 모른다? 이게 다 신문들이 문제야. 한자를 무시하니 이런 일이 발생해. 자 이 ‘제(蹄)'가 무슨 '제'인지 아는 사람? 이것만 알면 이게 풀려.” 

 

다들 조용했고 본부장님이 이 제가 무슨 제인지 친절하게 설명하셔서 무식한 PD들을 깨우치면 아침 설교가 잘 끝날 수 있었다. 그런데 여기서 내가 산통을 깨고 말았다. 굳이 대답할 마음은 없었는데 속삭이듯 그 답을 말해 버린 것이다. 

 

“발굽 제.”

 

정말 속삭임이었는데 어떻게 본부장이 그걸 들었다. 

 

“굼벵이도 구르는 재주가 있네. 사학과를 나와서 그런가? 한자 공부 좀 했나? 그래 '발굽 제'야. 구강 점막이나 발톱 사이의 피부에 증상이 나온다고 해서 구제역이라고. 이 한마디로 다 설명되잖아. 어떻게 알았어?”

 

여기서도 그냥 대답할 것이 없다. 그냥 쑥스럽게 머리를 긁으면서 선배들의 '워~~'하는 소리 좀 들어주고 '왕년에 천자문 좀 봤습니다' 그러면 매우 온화하고 부드럽게 넘어갈 수 있다. 본부장에게 나름 한자도 아는 엉뚱하게 총명한 구석도 눈도장받고. 그런데 이 겸손 빼면 시체인 등촌현빈이 사실도 아닌 나 스스로의 유식함을 포장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 문제였다. 

 

아닙니다! 별달리 한자 공부한 건 아니굽쇼! 이런 마음에서 고백한 진실은 그만 그 자리를 고요의 바다로 만들어 놓았다.

 

“신문에서 봤는데요.”

 

한자의 유용성과 교육의 필요성을 논하는데 10분을 쓰시고 이를 무책임하게 방기하는 언론의 게으름과 안일함과 무개념을 성토하는데 20분을 쓰신 본부장님 앞에서 신통하게 한자를 읊은 조연출 녀석이, 기껏 칭찬해 주려고 내민 멘트에 “신문에서 봤는데요.”라고 답해버린 것이다. 

 

나도 아주 바보는 아니어서 말하자마자 무슨 일을 했는지를 깨달았다. 그래서 그 말 나온 직후의 얼굴들을 선명히 기억한다. 입을 벌리는 사람, 눈을 부라리는 사람, 이마를 짚는 사람,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 사람. 그리고 가장 중요한 본부장님의 한 대 맞으신 듯한 얼굴. 본부장님은 즉시로 그날의 설교를 끝내셨다. “자, 다들 일 봐.” 그리고 가장 먼저 나가셨다. 

 

그 후 선배들한테 얻어먹은 욕으로 말하면 내 수명이 강산이 두어 번 바뀐 만큼 늘어나도 모자랐을 것이다. “넌 사회생활 포기했냐.”, “너 때문에 분위기...”, “너는 대관절 생각이란 걸 하고 사는 놈이냐.”

 

그런데 어쩔 것인가. 당시 신문마다 구제역 해설이 안나온 신문은 없었고 나는 발굽 제를 신문에서 봐서 알고 있었다. 그 사실을 에둘러 표현하지 못한 것은 나의 미숙함이라 해도 사실이 그랬다. 본부장님의 언론 성토는 사실과 달랐던 것이다. 분위기 깬 건 죄송하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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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1997년 05월 08일 자

 

누구나 한계는 있다. 아는 만큼 얘기하고 본 만큼 자기 세상이 된다. 하지만 그만큼 모르는 게 많고 못 본 세상은 항상 눈에 담은 세상보다 크다. 그럴 때 필요한 것은 역시 스스로를 낮추는 습관일 것 같다. 내가 모르는 게 많고, 내가 잘못 알고 있을 수 있으며, 내 생각이 틀리면 빨리 수정하는 자세를 갖추는 것. 서두의 기자로 따지자면 ‘무운(武運)을 몰랐던 게 문제가 아니라 나는 ‘무운(無運)으로 들었다고 우기는 게 틀렸다는 뜻이겠다. 

 

 

 

 

 

추신: 나도 유투브란 것에 도전하고 있다...! 혼자 다 하려니 좀 허접하지만 뭐 이러면서 경험을 쌓아가는 거 아니겠나. 심심한 분들, 놀러오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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