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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11시 즈음) “미안한데, 괜찮으면 내일 진통제 좀 사다 줄 수 있을까? 먹다보니 다 떨어졌네...”

 

“많이 안 좋구나. 물론이지!”

 

30분 즈음 후, 현관 우체통에 ‘덜컥’하는 소리가 들린다. 열어보니 진통제 두 통이 있었다. 이후 온 메시지.

 

“밤새도록 고통 겪을 생각하니 잠이 안 오네. 일단 집에 있는 거 줄게. 내일 또 사다 줄게. 잘자” 

 

영국인 이웃 

 

폐를 깊숙이 찌르는 고통이 연일 이어지고 있었다. 기침을 할 때면, 영화 에일리언에서나 볼법한 녹색빛 찐득찐득 액체가 기도를 타고 올라왔다. 폐 속이 반쯤 차있는 듯한 느낌 때문에 한시도 기침을 멈출 수 없었다. 진통제를 먹으면 그나마 견딜 만했다. 입에서 나오는 거야 뱉으면 그만이고, 근육이 아프면 누워서 쉬면 되니, 최대한 뇌를 간편하게 굴려 두통이라도 줄여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곧 하루에 몇 번씩 삼켜야했던 진통제가 동이 났다. 최대한 많이 구매해 놨다고 생각했는데 온 가족이 먹다보니 소비 속도가 빨랐다. 사실, 우리 가족이 코로나에 감염된 걸 알게 되면 혹시라도 비난을 받거나 거리를 둘 것이 염려되어 주변에 알리지 않았다. 허나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생각했던 것보다 일찍 바닥을 드러낸 진통제 덕에 근처에 살고 있는 지인에게 연락했다. 자주 왕래하고 지내지 않았고, 혹여 바이러스에 감염될까 두려웠을 법한데, 일단 너네가 살고봐야 하지 않겠냐며 문을 두드려주었다.

 

고마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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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아서” 코로나, 하지만 “다함께” 코로나

 

정치를 하는, 혹은 정책을 만드는 이들은 어떨지 모르겠다. 매번 뉴스에 나와 하는 얘기라곤 원론이 대부분이고 일상생활에 필요한 지원은 없었으니, 저 사람들이 왜 높은 연봉을 받아가며 정부에서 일하는지 이해가 어려울 때가 많았다. 특히 코로나가 시작된 이후 더욱 그랬다.

 

하지만, 평범하게 일상을 살아가는 영국인들은 달랐다. 코로나에 대한 태도와, 또 코로나에 감염된 이, 혹은 어려움에 처한 이를 대하는 자세와 의식 수준은 ‘위드 코로나’를 하기에 부족하지 않은 듯했다. 

 

영국에는 수많은 구호단체들이 있다. ‘Save the Children’, ‘Christian Aid’, 그리고 ‘Help Age’와 같은, 이름만으로 무게가 실리는. 영국에서 운영중인 굵직굵직한 단체들은 대부분 전쟁이나 기타 어려운 일을 겪는 동안 만들어졌다. 정부가 식민사업을 펼치고 타국을 침범하는 동안, 국민들은 힘을 모아 고아와 과부, 노인들을 위한 단체를 만들어 구제 사업에 힘썼던 것이다. 때문에 전 세계를 식민지 삼고, 아프리카에 거주하는 이들을 노예로 만들면서까지 번영을 누리려 했던 이기적인 ‘영국’이라는 나라에 대한 이미지와, 실제 거주하며 시민들과 피부를 맞닿아 느끼게 되는 것들과는 거리감이 있다. 

 

운전을 해봐도, 거리를 다녀봐도, 먼저 양보하고 기다려주는 시민들이 있다. 오랜기간 서로가 합의를 통해 만들어낸 규칙들을 지키고 살아가는 사람들, 그리고 어려운 처지에 놓은 이들에게 먼저 손을 내미는 문화는 아마도 ‘젠틀맨’이라는 이미지를 갖게 했던 원동력이 아니었을까 싶다(우리도 일제강점기가 없었다면 전통과 현대사회가 연속성을 갖고 어우러지는 문화의 시기를 더욱 빨리 만들어내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 대목이다). 암튼!

 

평소, 어느 정도 거리를 유지하며 지내왔던 주변 지인들과 이웃들이었다. 그런 그들이 코로나에 걸리고 난 후, 서슴없이 한 발짝 더 다가와 주었다. 직접 약을 사다주는 이웃이 있는가 하면, 밖을 다닐 수 없으니 직접 쇼핑도 대신 해주었고, 몸이 불편하고 식사를 제때 하지 못할까 염려해 간식을 만들어 주기도 했다. 매일같이 전화와 메시지로 건강을 체크하고 함께 기도해주는 공동체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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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처신했길래 코로나에 걸렀느냐'

 

'남한테 피해주는 행동하지 말아라'

 

이러한 시선과 차별, 무시는 전혀 느낄 수 없었다. 오히려, 이웃들은 한 발짝 더 가까이에 와 주었다. 어디서 어떻게 감염이 될지 모르는 상황이다. 문고리를 만지거나 집 주변에 있다보면 감염이 될 수도 있어 조심할 법도 한데 아무도 그러지 않았다.

 

“난 괜찮아. 아픈 너네가 왜 멀쩡한 나를 걱정하니?”

 

라고 말했던 이웃의 말은, 오징어 게임의 오영수 배우가 얘기했던 아름다운 사람, 아름다운 세상에 대한 좋은 예가 아닐까 한다. 

 

3주간, 코로나 감염의 끝자락

 

코로나에 걸린 후 살이 빠졌다. 평소 어떻게든 빼 보려고 그렇게 노력했건만, 도대체 빠지지 않던 살이 하루에 약 1kg씩 빠져나가기 시작, 열흘이 지났을 즈음, 8kg가 빠져 있었다. 덕분에 그렇게 하고 싶던 다이어트에는 성공했지만, 간간이 모아두었던 근육도 한꺼번에 사라졌다. 숨을 쉴 때마다 허파에서는 쇳소리가 들리고, 조금만 뛰어도 숨이 차올라 걸음을 멈춘다. 이렇게 계속 가는 건가 싶은 두려움이 앞서기도 한다. 그나마 위안을 얻는 것은, 그래도 한창 피치를 올려 고통이 밀려오던 때와 비교하면 나은 편이다. 어느 정도 일상생활이 가능해졌고, 밀렸던 빨래도 한다. 

 

가장 다행인 것은, 2주가 넘는 기간 동안 대부분의 시간을 혼자 보냈던 아들과 함께 놀 수 있어 기뻤다. 그동안 엄마 아빠가 모두 코로나에 걸려 골골대 밥도 제때 못 챙겨줬고 놀아주는 건 더더욱 불가능했기에 아쉬웠던 나날들이었다. 하루종일 혼자 앉아 레고만 만지작 거리는 뒷 모습은 지금도 미안한 마음을 갖게 하는 장면이다.

 

그래도 많이 나았다. 몸에는 항체가 생겨 당분간 코로나에 걸릴 위험이 현저히 낮아졌다. 코로나 바이러스를 이길 수 있는 뭔가가 몸에 생긴 것이다. 기뻤다. 조심해야겠지만 그래도, 당분간은 위험부담이 줄었으니 안도한다. 

 

그나마 나은 한 가지

 

실질적으로 아무것도 해 주는 것이 없는 영국 정부의 코로나 대응 방식이 마음에 안 들지만, 한 가지, 도움되는 게 있었다면 항체검사다. 코로나에 걸린 후, 정부 홈페이지나 앱을 통해 코로나에 감염되었다고 알리면, PCR 테스트를 진행함과 동시에 몇 가지 절차를 거친다.

 

첫 번째는 뻔한 내용. 10일간 밖을 나가지 말고 타인과 접촉하지 말아라, 손을 잘 씻고 가족들과도 최대한 거리를 두며, 옷이나 수건들을 함께 사용하지 말라 등. 이미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지만 망각의 동물인 인간이 일상을 살다 잊어버리는 그런 것들이다. 그리고 마지막 단계에는 항체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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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CR 검사를 마친 뒤, 코로나 양성반응이 나온 경우, 검사 세트를 집으로 배송해 준다. 직접 채혈해, 혈액 샘플을 해당 기구에 보내면, 코로나 항체가 생겼는지 알려준다. 전통적(?) 민간요법으로 음식을 먹고 체했을 때 손을 따는 방식과 동일하게 손끝을 따고 흐르는 혈액을 담아내야 한다. 누가 해주면 눈 딱 감고 참겠지만, 찌르고 담고 하는 걸 스스로 ‘알아서’해야 한다니 생소했다. 그렇게 노란색 뚜껑이 있는 통에 피를 담아 보내면 혈액 검사를 하는 기관에서 코로나 항체가 생겼는지 문자로 통보해 알려준다. 

 

참고로, 이 혈액을 검사하는 기관은 ‘유로핀’(Eurofins)이라는 곳에서 시행한다. 한국에 지사가 있는 이 유로핀은, 룩셈부르크에 본사를 두고 있는 국제적 바이오 그룹으로 의료, 생화학, 식품, 환경 등 다양한 분야를 아우르는 분석 서비스 제공 기관이다. 영국정부는 국가의료제도인 NHS(National Health Service)로부터 유로핀과 협약을 맺도록 하여 코로나 항체 형성 유/무 판별과 관련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NHS가 환자를 돌보는 일에 전념해야 하니 다른 기타 업무는 외주를 준 셈이다.

 

“Antibodies were found in your blood sample.”

 

1주일 뒤, NHS에서 문자가 왔다. 당신의 혈액에서 항체가 발견되었다고. 그러면서 향후 6개월간 천하무적이나, 그래도 안심하지 말고 항시 조심하라는 메시지도 잊지 않았다. 그나마 다행이다. 한시름 놓게 됐다. 이렇게 마음 편할 수가 없다. 코로나를 겪으며 가장 마음에 안정을 가지게 되었던 순간이 아니었나 싶다.

 

그렇다. 그나마 마음에 들었던 한 가지인 항체검사가 가져다 준 건, 마음에 들었다기보단 마음이 편해졌기 때문이 아니었나 싶다. 그래서일까. 이젠 많이 좋아졌다. 

 

우리도, 위드 코로나

 

어쩌면 ‘위드 코로나’(With Corona)는, 가족이라는 작은 공동체서부터 시작해 동네, 마을 구성원 모두가 조금씩 희생하고 양보하며 이겨내야할 과제가 아닌가 싶었다. 국가가 통제하고 진두지휘하는 위드 코로나는 불가능하다. 본디 인간이란 끊임없이 자유를 갈망하고 꿈을 꾸는 존재일 터인데 언제까지 락다운이니 규제니 하며 테두리 안에서 생활할 수 있겠는가. 

 

어쩌면 코로나는 우리를, 또 우리 사회를 다시금 되돌아 볼 수 있는 기회가 되지 않을까 싶다. 코로나는 서로가 서로를 보듬고, 도와주고 이해해주며, 기다려주면서 신뢰를 쌓아갈 때 극복될 수 있다. 확진자 수가 몇 명인가에 목숨을 걸고 숫자가 올라가면 정부를 욕하고, 코로나에 걸려 어쩔 수 없이 자가격리를 하게 된 상황이 못마땅해 이리저리 험담을 하기보다는, 몸이 불편한 이에게 한 발짝 더 다가가 손 내밀어주고 안아주는 아름다운 사회가 뒷받침 됐을 때, 비로소 이 역경을 이겨낼 수 있으리라 믿는다. 

 

이렇게 한 걸음 내디디며 위드 코로나 시대를 알린다. 다 함께, 서로를 위로하며 이 어려움을 극복해 나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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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신: 딴지 독자분들은 웬만하면 걸리지 마시길. 죽다 살아났습니다... 아이가 아픈 걸 보는 게 제일 힘들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