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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05. 26. 화요일

무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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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이 있었다. 잘 나가던 강소기업 사장이 아버지였다.


업계 내에서 호평이 자자했던 경영능력과 마침 광풍처럼 분 웰빙 바람 타고, 강소기업은 중견기업을 넘어 재벌 문턱까지 가 닿았다. 나무가 커지니 바람 잘 날이 없었다. 오너가 아닌 전문경영인인 아버지에게 여러 대주주들의 압력이 시작됐고, 설상가상 갑자기 커진 사세와 함께 적들도 기하급수적으로 늘었다. 기호지세(騎虎之勢)라, 이미 올라탄 호랑이가 날 뛰고 있으니 꽉 잡고 끝까지 가던가 아니면 떨어져 호랑이에게 먹히는 수밖에 없었다.


경쟁사들의 견제와 사내의 권력다툼으로 실적은 바닥을 기었고, 임기 초의 기대와 달리 숱한 혹평 속에 퇴임식을 치뤄야 했다. 따따블 상한가와 갖은 스톡옵션을 약속하며 뒤를 이은 후임은 부패했고, 시장 상황마저 나빠져 어닝쇼크는 연례행사가 되어버렸다. 누군가는 과녁이 되어야 했다. 내부자간에 공모한 거액의 이권으로 대주주들의 입을 막고, 전임의 비리내역을 공개함으로 사원들의 불만을 무마했다.


사내에선 직급도 없던 삼촌이 아버지 이름을 팔아 하청업체에 '삥'을 뜯었고, 어머니와 동생이 생활비 명목으로 거래처가 주는 돈을 받은 게 밝혀졌다. 아버지는 회사 법무팀 앞에 끌려나와 집안 단속을 못했다는 이유로 조리돌림 당해야 했고, 충복들과 가족까지 여론의 교수대 위에 매달겠다는 협박에 피우지 못한 담배를 두고 어느 새벽 홀로 바위 위에 섰다.


추모의 물길은 야속하게 온 땅을 덮었다. 조문객들이 표출하는 슬픔의 깊이와 넓이만큼 가족들은 죄책감에 몸을 떨어야 했다. 문상객들이 부르는 호칭은 유족이었으나, 그 시선 속에 칼날같이 녹아있는 질책은 ‘아비와 남편을 죽인 자들’이었다. 죽을 죄를 진 대역죄인처럼 남 보는 데선 컥컥거리며 울 수도, 하늘을 보고 삿대질을 할 수도 없었다. 그렇게 6년이 흘렀다.


엊그제(23일), 그 아들이 제 아비의 기일에 한 말이 주말 내내 여론을 들끓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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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노(親盧)에도 원조가 있다.



추도식을 찾은 김무성에게 ‘권력으로 전직 대통령을 죽음으로 몰아넣고는 반성도 안한다’고 일침한 것이 설화로 번진 것이다.


극우진영의 히스테리적 노무현 알러지야 예상한 일이나, 뜻밖인 것은 진보진영에서 존경받는 자칭 보수논객의 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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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후, 이 트윗은, 노건호의 돌출발언에 대한 비판이 아니라, 그에 열광하는 무니(문재인 지지자)들에게 한 것이라고 부연됐지만, 의문은 남는다. 선친의 비극적인 죽음 앞에 6년 여를 입막고 살아야 했던 가족들 대신, 김무성의 광폭행보와 비단길만 우려하며 질타하는 진보는 또한 진짜 진보인가. 진보의 소양은 ‘공감과 연대’가 아닌가.


냉큼 받아서, 각 포탈을 뒤덮는, ’부적절한 자리의 부적절한 발언’과 ‘부적절한 자리의 적절한 발언’ 은 청나라군에게 포위된 채 남한산성에 처박혀 척화와 주화 논쟁을 벌이는 망조든 나라의 군신(君臣)들을 떠올리게 한다.


누구나 갈 수 있는 음식점에도, 범죄의 목적으로 들어갔다면 주거침입이라는 게 법원의 판례다. 추도식의 참배객에게 한 발언의 ‘부적절함’을 따지기 전에 그 참배객이 추도객인지 불청객인지를 먼저 살펴야 하지 않을까. 생전에 고인의 죽음에 일조하고, 사후에 고인을 모욕하고 있는 자를 참배객이라는 이유로 ‘허례허식’ 속에 모셔야 한다면 이는 무언가 잘못된 일이다.


루쉰魯迅(노신)은 악정을 행한 중국 군벌과 그에 부역한 어용지식인들에게 관용을 베풀자는 린위탕의 ‘페어플레이를 하자’는 글에 격분하며 다음과 같은 열변을 토한 바 있다. 

 


 “...물에 빠진 개를 때리는 것은 그리 간단하지 않다. 그 개가 어떤 개인지, 어떻게 물에 빠졌는지를 보아야 한다. 물에 빠진 원인에는 대략 세 가지가 있을 것이다. 첫째, 개 스스로가 발을 헛디뎌 빠진 경우. 둘째, 남이 빠뜨린 경우. 셋째, 내가 때려서 빠뜨린 경우. 만일 앞의 두 종류의 개를 만나 남들과 부화뇌동해서 때린다면 이는 너무 심심한 일이거나 비겁에 가까운 일일 게다. 그러나 개와 싸우다가 자신이 직접 빠뜨렸다면, 몽둥이로 마구 때리더라도 결코 심할 것이 없다. 이 경우를 앞의 두 경우와 함께 논해서는 안 된다.

 

 

용감한 권술가는 넘어진 상대는 절대 때리지 않는다고 한다. 이는 우리들이 모범으로 삼을 만 하다. 그러나 나는 여기에 한 가지를 덧붙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즉 적도 용감한 투사여야 한다는 전제다. 패배한 뒤, 부끄러워하고 뉘우치면서 다시 덤벼들지 않거나, 아니면 정정당당하게 복수를 하려는 자여야 한다는 점이다. 이 둘은 당연히 괜찮다.

 

 

그러나 개에게는 이러한 예를 적용하여 같이 취급할 수 없다. 개가 아무리 짖어대더라도 '도의'같은 걸 알고 있을 턱이 없다. 더구나 개는 헤엄을 칠 줄 안다. 언젠가는 분명 둑에 기어 올라올 것이며, 주의하지 않으면 몸을 털어 사람 얼굴이나 몸에 물을 튀기고는, 꼬리를 사리며 달아날 것이다. 그러나 그런 뒤에도 성품은 여전하다. 순진한 사람은 개가 물에 빠진 것을 세례 받은 것이라 여기면서, 그가 분명 참회했을 테고 다시는 사람을 물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것은 착각이며, 그것도 엄청난 착각이다.

 

요컨대, 나는 사람을 무는 개라면, 땅에 있건 물 속에 있건 모조리 때려야 할 부류에 속한다고 생각한다”

 

 

<루쉰, ‘아침 꽃을 저녁에 줍다’(朝花夕拾) 중에서>


 

즉, 참배객도 진정한 참배객이어야 한다는 전제다. 고종석의 말마따나 ‘대권 야망으로 광폭행보를 벌이는’ 자의 비열한 속내에도 장단 맞춰 예를 차려야 한다면 이야말로 적폐(積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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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아비를 죽음으로 내 몬 자들에게 고개 숙이는 자식의 심정은 어땠을까?

(이미지 출처 : NEWSIS)



“정치보복은 하지 않겠다”던 후임은 제 스스로 제 얼굴에 금칠한 자서전에 흡족해하며 세태의 아둔함을 비웃는다. 그는 현재, 자서전 집필을 위해 사저에 대통령 기록물 열람 장치를 설치하고, 기록물을 불법 열람했다는 이유로 시민단체로부터 ‘대통령기록물관리법 위반과 공무상 비밀누설’ 혐의로 고발을 당한 상태다. 하지만 늘 그렇듯 세상엔 더 뻔뻔하고 더 못된 자들만이 살아남아 ‘대접’받을 것이다.


노무현의 재림이라고 과장되는 노건호의 일침에 환호하는 이들은 속칭 ‘무니’들만이 아니다. 부당을 부당이라 지적하는 그 모습에,


“그럼 내 아내를 버리란 말입니까?”


라고 반문하는 노무현을 떠올리는 많은 시민들이 있기 때문이다.


“야 이놈아. 모난 돌이 정 맞는다. 계란으로 바위치기다. 바람부는 대로 물결치는 대로 눈치보며 살아라. 이 비겁한 교훈을 가르쳐야 했던 600년의 역사, 이 역사를 청산해야 합니다!”


라며 열변을 토하는 그 모습 말이다. 노빠만도 아니고, 깨시민만도 아니며, 무니만은 더욱 더 아니다. 그들을 넘어서는 많은 이들이 환호하는 지점은


'이래서는 안 된다' 는 바로 그것이다.


생때같은 아이들이 산 채로 물에 잠기는데 쳐다보던 어른들을 그냥 둬서는 안 되며, 제 자식을 가슴에 묻는 부모들을 향해 돌팔매를 던져서는 안 되며, 사람이 제 목을 달아가며 토로한 억울함이 코 푼 휴지마냥 내팽개쳐져서도 안된다는 것이다. 아비의 기일을 찾은 원수에게 자식이 허리 굽혀 고개 숙이는 일이 있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비겁한 600년이 더 이상 계속 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전직 대통령의 추도식에서 정치인이 한 발언과 아비의 기일에 아들이 한 말은 구별되어야 한다. 사인(私人)에게 정치인의 문법과 화법을 강요하는 것은 가혹하다. 피해자가 가해자보다 더 질책받아야 하는 사회는 과연 합당한가. 이제 노무현을 놓아주라며 점잖게 훈수두는 이들이야말로 천장에 달아 맨 굴비마냥 '모든 것은 다 노무현으로 통한다'는 정치적 관성에 빠져있는 것은 아닌가. 


노건호는 더 크게 울고, 더 크게 외쳐도 된다.



'아버지를 팔아 이권을 쟁취하고 유지하는 기회주의자들아! 급살을 맞아라.'


모든 비판에 격식 맞춘 대안을 준비할 수는 없다. 어떤 대안은 비판함으로써 시작된다. 불끈 쥔 주먹으로 ‘아니다!’라고 외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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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수를 원수로 부른 죄로 그 아들은, 주말 내내 뭇매를 맞으며, 배후를 추궁 받다 급기야 정치 포기 선언까지 강요당하고 있다. 


우리나라 만세다. 


 

 

 

 

 

 

 

 


 무천

편집: 딴지일보 너클볼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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