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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1월 11일. 국민의힘 곽상도 의원 사직안이 국회 본회의에서 가결됐다. 귀가 먹먹해질 때까지 화천대유에서 열심히 일한 곽 의원 아들 곽병채씨는 눈앞에 날아가는 퇴직금 50억에 마음이 참담했겠지만, 그 못지않게 사직안 통과가 심쿵했던 이들이 있었으니, 바로 곽 의원실 보좌진들 되시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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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석의원 252명, 찬성 194명, 반대 41, 기권 17명으로 곽 의원의 사직안이 본 회의를 통과하는 동안, 국회 295개의 국회의원실(21년 11월 기준)은 모두 이 장면을 직접 보고 있었거나, 간접적으로 소식을 듣고 있었다. 정의 실현 여부를 떠나서, 국회에서 근무하는 보좌직원이라면 이 장면이 남달리 느껴졌을 것이다.

 

한 개의 국회의원실에는 9명의 보좌직원이 근무하고 있다. 그러니까 현재 대한민국 국회에는 대략 2,700명의 보좌직원이 근무하고 있다. 21대 국회에는 알 수 없는 이유(?)로 직을 던진 국민의힘 윤희숙 의원, 더불어민주당 이낙연 의원을 포함해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의원직을 상실한 더불어민주당 이규민 의원, 거기에 곽상도 의원까지 21대 국회에서만 총 4명의 의원 배지가 날아갔다. 4명의 국회의원이 직을 상실했으니 무려 36개의 보좌직원 일자리가 날아간 것이다.

 

그들은 어떻게 될까. 당연히 백수다. 내일 당장 먹고사는 것을 걱정해야 하는 처지에 놓이게 되는 것이다. 같은 업에 종사하는 보좌직원들에겐 남 일이 아니다. 곽상도 의원의 사직안 통과를 보며, 즐거워하는 보좌관도 안타까워하는 보좌관들도 어쩌면 무관심한 사람도 있었겠지만, 여야를 떠나 모두 한마음으로 가슴 한편에는 ‘우리 의원실 일이 아니라 다행이다’ 정도의 감정은 반드시 느꼈을 것이다. 보좌직원들도 당장 하루하루를 넘기며 살아가는 생활인들이기 때문이다.

 

보좌관 : 프로 밥그릇싸움러

 

국회의원이 의원직을 상실하게 되면, 사용하던 사무실은 언제까지 비워야 하는가. 사직안 본회의 통과 후 3일? 일주일? 그런 거 없다. 그 즉시 사용하던 사무실을 당장 비워야 한다. 냉정하게 느껴지지만 그렇게 해야 된다. 사무실을 당장 비우지 않으면 ‘불법 점거’가 된다. 의원직이 상실된 보좌직원들 입장에선 잘 다니던 직장이 하루아침에 ‘부도’가 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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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는 밥그릇 싸움이다. 이 관점으로 국회의 생리를 들여다보면, 많은 것이 보인다. 언론에서 흔히들 정치 혐오를 조장할 목적으로 정치인들은 항상 자기들 밥그릇 싸움한다’라는 말을 자주 쓴다. 정치 혐오를 조장해서 얻는 이익이 크기 때문에 그렇다. ‘밥그릇 싸움’이라는 표현은 어딘가 불쾌한 어감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아무리 봐도 정치판은 정말 밥그릇 싸움이다. 어디 정치판만 그런가? 나와 가족의 생존을 위해 하루를 치열하게 살아내는 곳은 다들 똑같지 않나. 정치판에서의 밥그릇 싸움이 다른 점이 있다면, 그 내용과 결과가 이 땅에 발 딛고 사는 사람들의 모든 삶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정치는, 정말 중요한 밥그릇 싸움이다.

 

국민의 선택으로 배지를 달게 된 국회의원 밑에서 하루하루 치열하게 생존하고 있는 보좌관들의 진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정치권에서 벌어지는 그들의 밥그릇 싸움이, 아이러니하게도 내 삶을 극적으로 바꿔주기도 한다. 정치가 재밌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누가 보좌관이 되는가 

 

앞서 말했듯, 한 명의 국회의원실엔 9명의 보좌진이 있다. 4급 보좌관 두 명, 5급 비서관 두 명, 6급, 7급, 8급, 9급 비서 한 명, 인턴 비서 한 명. 급수와 명칭이 다 다르다. 통칭해서 ‘보좌진’이라고 부른다.

 

급수는 공무원 급수를 뜻한다. 그러니까 보좌진 중 가장 높은 사람은 무려 4급 공무원이다. 4급 공무원에는 경찰서장, 소방서장, 세무서장, 교장선생님 등이 있다.

 

보좌진의 신분은 ‘별정직 공무원’이다. 경력직 공무원과는 다른 절차와 방법에 의해 임용된다. 일반직 공무원 1급~9급에 상당하는 보수를 받는 공무원으로 승진, 휴직, 정년, 명예퇴직, 강임 등이 없다. 그러니까 언제든지 해고돼도 이상하지 않고, 자신의 능력만 있다면 정년 없이 보좌진 생활을 이어갈 수도 있다. 그래서 60이 넘은 어르신들도 보좌관으로 생활하는 경우도 있다. 보좌진들이 하는 업무는 통상 나누어져 있다고 하지만, 누구에게 어떤 역할을 주며 의원실을 어떻게 운영할 것인지는 의원의 마음에 달렸다.

 

보좌관들이 채용되는 경로는 크게 두 가지다. 국회의원과 정치적 동지로 픽업이 되는 경우, 국회 공채로 선발되는 경우. 당연히 첫 번째 경우에 재밌는 이야기가 많다.

 

국회의원들은 자신의 지역구에서 지역주민들의 선택을 받아 국회의원이 되기 때문에 자신의 지역구를 관리하며 함께 성장해온 정치적 동지가 있기 마련이다. 이들은 그 지역구의 세세한 내막을 잘 알고, 국회의원의 과거와 현재를 가장 잘 이해하는 사람이다. 지역에서 생사고락을 함께 하던 동지와 정치적 ‘깐부’가 되는 것이다.

 

이런 사람들은 후보자가 국회의원으로 당선이 되면 함께 보좌관이 되어 국회에 입성한다. 별다른 채용 절차가 없다. 국회의원으로 당선될 때까지 자신의 옆에 있어준 동지에게 자리를 나눠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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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보좌관>

 

보좌관의 덕목 : 보좌진을 시험으로 뽑을 수 없는 이유

 

그 외에도 당선된 이후 자신의 지역구를 잘 관리해 줄 지역 전문가 혹은 경력이 경륜이 오래된 보좌관들을 의원이 직접 픽업 해오는 경우가 많다. 바로 여기서 불공정 채용이 많이 발생한다. 특별한 채용 절차가 없으니 9개의 보좌직원 자리에 의원이 마음대로 채용할 수 있다. 심지어 예전에는 국회의원의 친인척을 채용해도 별문제가 없었다.

 

2017년 3월 국회의원 친인척 보좌진 채용 금지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고 이러한 사례는 거의 사라졌다. 하지만, 충격적이게도 여전히 어디서 굴러먹던 사람인지 모를 사람들이 국회의원을 통해서 보좌진으로 합류하는 경우는 비일비재하다. 근데, 그 사람들에게 불공정 채용이라고 따져봐야 실질적으로 얻을 수 있는 게 없다. 왜냐하면 보좌진 채용의 절차와 결정권은 국회의원 마음이고 국회의원이 “나의 의정 활동을 보좌하는 데 적절한 인재를 채용했다"라고 말하면 그만이다.(그렇게 나오면 반박불가임) 그의 능력을 검증할 방법이 없다.

 

국회 보좌진에게 요구되는 능력은 너무나 다양하다. 그래서 지난번 박성민 청와대 청년비서관 임명을 국민의힘 보좌진협의회가 공개 비판 한 것에 대해 “보좌진들도 시험 치고 들어온 게 아니지 않느냐"라고 비판했던 이철희 청와대 정무수석의 발언은 사실 틀린 말이 아니다.

 

이철희 본인도 김한길 전 국회의원 보좌관 출신이라 보좌진들의 생리를 가장 잘 알고 있다. 그의 말에 뜨끔했던 보좌진도 많았을 것이다. 그의 발언에 양당의 보좌진 협의회는 공개적으로 이철희 수석의 발언에 유감을 표명했다. 하지만, 실제로 내부적으로는 이런 자조 섞인 반응이 다수였다.

 

 “솔직히 맞는 말 했네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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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보좌진 채용을 위한 시험을 쳐야 한다는 의견이 가끔씩 등장하기도 한다. 글쎄, 가능한 건지 모르겠다. 국회의원들은 자신의 의정 활동 컨셉에 따라 보건복지, 국방, 기획 재정, 교육, 문화 체육, 법률, 과학기술, 행정 안전, 농림축산, 산업 통상, 국토교통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를 채용하기를 원한다. 홍보 전문가, 메시지 전문가, 이미지 브랜딩 전문가, 지역 전문가, SNS 전문가 등 의원의 요구에 따라 필요로 하는 역량이 너무 다양하다. 일괄적으로 어떤 시험 문제를 통해 선발할 수 있는지 의문일 뿐만 아니라 시험으로 선발한다고 해서 양질의 보좌진이 선발된다는 보장이 없다. 하지만 최소한의 기본 소양이나 덕목을 가리는 시험 정도는 있어도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있지만, 현직 보좌진들이 자격시험에 찬성하고 도입할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좀 다른 이야기지만, 같은 맥락에서 국민의힘 이준석 당 대표의 공직후보자 ‘자격시험’도 개소리에 가깝다. 정치인을 어떤 시험으로 어떻게 뽑겠다는 말인지?

 

정치인은 시대정신에 따라 요구되는 덕목이 계속해서 바뀌기 마련이다. 어찌 보면 유권자들이 그 시대에 맞는 인물을 선택하는 절차가 시험 보다 더 공정한 것이다. 최소한 정치인과 그 보좌직원들을 시험으로 선발하기에는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다. 이준석 대표의 발언은 극도로 다원화된 사회에 대한 이해가 떨어져 있는 의견이다. 일괄적인 자격시험을 통해 선발된 인재가 정치를 잘 할 것이라는 엘리트주의 환상에 빠져있는 것이다. 어떻게 하면 더 다양한 분야를 대표할 수 있는 국민의 대표를 뽑아야 할지에 대한 고민이 없는 철학의 빈곤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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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결론은, 다양한 분야를 대표할 수 있는 전문가를 국회로 계속 보내야 한다. 국회의원들의 역량 부족을 늘 감시해야 한다. 그들이 이상한(?) 의정 활동을 한다면 국회의원 옆에 있는 보좌직원들도 함께 비판해야 한다.

 

자유계약 시장, 여의도

 

보좌직원들의 세계는 쉽게 말해 프로스포츠 선수들의 FA시장과 가장 유사하다. 실력이 부족하면 하루아침에 면직되기도 하고, 전문성을 인정받으면 다른 의원실로 스카웃이 된다. 의원이 떨어져도 실력 있는 보좌진은 국회에서 계속 살아남는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국회는 계속해서 자정작용을 하고 있다.

 

내가 아는 한 많은 보좌진들은 자신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서 끊임없이 공부한다. 물론 아닌 사람도 있다. 그러니 어찌 보면 하루하루 시험을 치르고 있는 셈이다. 불공정하게 채용된 사람들이 부족한 실력으로 영원히 국회에서 빌붙기는, 내가 아는 한 쉽지 않다. 그리고 자기 관리도 철저히 해야 한다.

 

다시 곽상도 ‘전’ 의원실 사정으로 돌아가 보자. 배지가 날아간 의원실에서 직장을 잃은 보좌직원들은 백수가 되겠지만, 그중에 실력이 있는 인재는 다시 국회에서 재임용되어 새로운 의원실의 보좌직원으로 활동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보좌진들의 이러한 고용 불안정성은 보좌직원들을 자기계발로 밀어붙이는 동력이 된다.

 

정파적인 보좌관이 신뢰받는 이유

 

보좌진들이 정당을 옮겨 다니는 경우, 있다. 하지만, 흔히 있는 일은 아니다. 지난 4.15 총선에서 민주당 대승으로 지금 국민의힘 쪽 보좌진들이 대거 실직하는 사태가 있었다. 당장 일자리를 잃은 당시 미래통합당 보좌진들이 민주당 의원실에 이력서를 넣기도 했다. 여기에 민주당 윤호중 사무총장은 전체에 공문을 내려보냈다.

 

‘타당 출신 보좌진 임용 시 정밀 검증해야 한다’

 

즉, 반대 정당에 이력서를 넣을 수는 있지만 채용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2019년 4월 패스트트랙 안건으로 나경원 전 원내대표가 빠루를 들고 등장 했던 것을 기억하는가. 국회에는 항상 예민한 법안과 예산으로 심각한 물리적 충돌이 생기기도 하는 곳이다. 평시에도 보좌진들 간에 철학과 가치의 차이로 서로의 감정이 좋을 리가 없다. 언제 그랬냐는 듯 정당을 넘나들며 이력서를 넣는 보좌진을 좋게 볼 리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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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연합>

 

보좌진은 업무 특성상 필연적으로 정파적인 사람이 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정파적인 사고방식을 하는 보좌진이 일을 잘한다. 정당을 옮겨 다니며 일자리를 찾아다니는 보좌진은 자신이 속한 정당의 논리를 개발하고 따르기 때문에 자신이 만든 논리와 썼던 글을 스스로 부정하는 자기모순에 빠지기 십상이다. 영혼이 있는 보좌진이라면 그런 부분을 고통스럽게 느끼고 우울감에 빠질 수도 있다. 애초에 정당을 옮겨 다니는 보좌진에게 그런 순수성을 기대하긴 힘든일이다.

 

공채 보좌관

 

국회에 보좌진으로 입성하게 되는 다른 하나의 경로. 나를 포함한 대다수의 보좌진에게 해당되는 사례인 국회 공채 선발이다. 공채 공고는 지금도 국회 홈페이지에 수시로 올라오고 있다. 각 의원실 별로 채용 공고가 올라와 있다. 대다수가 이런 공고를 통해서 선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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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크)

 

다양한 공고를 살펴보면 알겠지만, 의원들의 성향과 스타일에 따라 어떤 인재를 선호하는지 어떤 능력을 요구하는지 천차만별이라 채용공고의 세부내용을 일반화 하긴 힘들다. 300개의 의원실이 제각각 자신들이 원하는 인재를 찾고 있다고 이해하면 된다. 대개 국회에는 300개의 중소기업이 돌아가고 있으며, 회사마다 원하는 인재상이 다 다르다고 표현한다.

 

의원실 채용공고는 평균 한 명씩 선발하기 때문에 해당 자리에 20명이 지원해도 경쟁률은 20:1이 된다. 솔직히 보좌진을 꿈꾸는 이들에게 만만치 않은 것은 사실이지만, 본인이 보좌진으로서 입법 과정에 참여해보고 싶다면, 도전해보길 추천한다.

 

지원자는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의원실로 보내고 면접을 통해 최종 선발된다. 유수의 대기업 취업 과정보다 훨씬 간략하다. 하지만, 실제로 의원실에 지원을 해본 사람들이 있다면, 이력서를 아무리 넣어도 면접을 보러 오라는 연락이 생각보다 오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 이유는 각 의원실의 보좌진들이 자신들의 네트워크로 서로서로 아는 사람들을 추천하기 때문이다.

 

‘어떤 의원실의 누가 추천한 사람이다’

 

라는 말은 굉장한 힘을 갖는다. 국회 보좌진처럼 인사이동이 많은 곳에서 누군가의 보증을 받은 사람이라는 건 의미가 크다. 그래서 누구의 추천으로 면접까지 가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그러니 공채 보좌진으로 선발되는 일은 매우 힘들고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추천이 절대적인 작용을 하는 경우도 있고 아닌 경우도 있어 단정 짓기는 어렵다. 다만, 사람을 구하는 의원실의 니즈에 부합되는 인물이 최종적으로 선발된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