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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이 죽었다. 늙어서 죽었다. 변소에서 자빠져 죽었다는데 그런 세세한 것까지 알 필요는 없다. 천수를 누리다가 죽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전두환 영안실 안내 사진_출처 연합뉴스.jpg

출처 <연합뉴스>

 

혹자는 누군가의 ‘죽음’ 자체를 조롱하거나 비하하는 것이 불편하다고 말한다. 그래선 안 된다고 주장한다. 너는 그렇게 살아라. 그렇게 한 점 티끌 없이 순수하게 살다가 천국 가서 행복해라. 말리지 않겠다. 허나 나는 그 죽음에 기필코 욕을 하고, 침을 뱉고, 모욕해야겠다.

 

전두환을 처벌할 수 없었던 이유 

전두환은 헌법을 유린하고 군사 반란, 즉 내란을 저질렀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광주시민을 학살했다. 사형을 선고받았고 대법에서 무기징역이 확정되었다. 그리고 97년 당시 대통령 당선인 신분이었던 김대중의 건의를 받아들인 김영삼 대통령에 의해 신군부 세력은 사면되었다.

 

노태우 전두환 전 대통령_출처 연합뉴스.jpg

출처 <연합뉴스>

 

많은 이들이 의아하게 생각한다. 왜 우리는 자국민을 학살한 독재자를 처벌하지 못 했느냐고. 정확히 표현하자면 처벌했지만 풀어줬다. 이유는 아주 단순하다. 이 나라는 전두환의 나라이기 때문이다. 거슬러 이승만, 박정희의 나라이기도 하다.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의 대척점에 서 있는 세력은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소수이기 때문이다. 

 

말이 좋아서 ‘국민 대화합’이고 ‘대통합’이지, 학살 주범을 처벌한다고 해서 국민의 화합이 깨지고 통합이 안 된다는 건 언어도단이다. 하지만 전두환을 ‘각하’라고 떠받드는 경상도를 포함한 유권자 다수가 “그만하면 됐지, 진짜 죽이려 드느냐”고 혀를 끌끌 차면 정부를 이끌어야 할 선출직으로선 사면 말고는 답이 없는 거다. 아니냐.

 

국회 의석수 거의 3분지 2에 가까운 170석에 수많은 지자체장도 모자라 정권까지 장악하고 있는데 무슨 얼어 죽을 ‘소수’냐고 되물을 것이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래 그런 기간이 다 합쳐 얼마나 알량한지는 둘째치고, 어느 사회든 사회구성원들의 합의에 의해 이심전심으로 통용되는 ‘일반상식’이라는 게 있다. 

 

시내버스 안에서 담배를 피우는 게 거리낌이 없는 사회는 버스 안에서 담배를 피워도 되는 사회다. 광화문 네거리 군중들 사이에서 바지를 내려 똥을 싸도 사람들이 별 거부감 없이 받아들인다면, 광화문 앞에서 똥을 싸는 사회인 것이다. 

 

똑같은 이치로, 그 사회의 일반상식에 비춰볼 때, “전두환이 쿠데타 일으키고 시민들을 향해 총질을 한 건 맞지만, 그래도 통치는 잘했지”라고 한다면, 그 사회는 전두환을 인정하는 사회인 것이다. “이유야 어떻든 간에 이토 히로부미를 암살한 안중근은 테러리스트”라는 주장이 별 이질감 없이 용납된다면, 안중근은 그냥 테러리스트인 것이다.

 

따라서, 전두환을 처벌할 수 없었던 이유는, 이 나라가 전두환의 나라이기 때문이다. 

 

이 나라는 누구의 나라인가 

얼마 전, 노태우가 죽었다. 전두환과 마찬가지로 노태우 또한 사면되었을지언정 복권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정부는 나서서 ‘국가장’을 치르고 정부가 상주 노릇을 했다. 중도층(?)이 “노태우는 전두환과는 다르지 않으냐”는 판단을 내렸기 때문이다. 눈치를 본 거다. 여기에 원칙이고 나발이고는 없다. 그러니 복권되지도 않았는데 정부를 포함해 공영방송조차 전직 예우가 박탈된 노태우에게 ‘前 대통령’이란 호칭을 거리낌 없이 썼다.

 

이번엔 전두환의 경우를 보자. 

 

 각 언론사별 전두환에 대한 호칭.jpg

(여기에 극히 이례적으로 대구 MBC : 전두환)

 

 

매일경제 노원명이라는 자칭 ‘우파 지식인’이 백주 대낮에 신문 지면에 대고 전두환에 대한 역사적 평가를 “편향”이라고 지껄여도 그 자신과 신문사가 무탈하고 안녕한 사회는 전두환의 역사적 평가가 편향된 사회다. 얼마든지 뒤집고 ‘재평가’하여 전두환을 복권시킬 수 있는 사회다.

 

독일에서 어느 신문사 기자 나부랭이가 “히틀러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편향되었다”라고 한 줄 써젖히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상상하는 것은 봉준호나 스티븐 스필버그스러운 상상력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반면에 일본은 “일본이 뭘 그리 잘못했냐?”라고 공공연히 떠드는 게 용납되는 사회라는 것을 우린 알기에 해방된 지 76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들에게 제대로 된 사죄와 반성을 요구하는 것이다.   

 

맨날 맞담배 피우고 술잔을 부딪치는 지인들이 어줍짢게 ‘상식’을 주어삼키니 세상이 온통 상식적으로 돌아가는 줄 아는 모양인데, 아서라. 착각이다. 그냥 니가 끼리끼리 어울리기 때문이다. 

 

조금만 고개를 돌려 울타리 너머를 본다면 너는 절대적으로 ‘소수’이다. 종부세를 다루는 언론의 포지션을 살펴 보라. 기름값 100원 인상에도 손이 떨리는 처지인 너와는 아무 상관도 없는 대한민국 1.5%의 궁핍한 처지에 오매불망, 불철주야 애가 닳는 언론의 목소리를 말이다. 

 

전두환에 경례하는 사람들_출처 뉴시스.jpg

출처 <뉴시스>

 

그 마음 씀씀이의 반의 반절만이라도 1년에 2천여 명이 죽어나가는 노동자들의 처지를 헤아리고 애닳아 했다면 뭐라도 좀 바뀌지 않았을까 싶다만, 이 나라는, 이 나라의 주류는, 이 나라의 주인은, 1.5%이기에 번짓수를 잘못 찾은 것이다. 

 

전두환이 죽었다. 천수를 누리다가 늙어 죽었다. 그의 죽음을 다루는 대한민국의 태도를 살펴보라. 트위터니 페북이니 손바닥만한 찻잔 속만 들여다 보지 말고 대한민국 전체를 아울러 보라. 그렇다면 이 나라가 누구의 나라인지 보일 것이다. 

 

이 나라가 누구의 나라인지, 그것부터 합의해놓고 이야기를 시작해야 한다. 그 전까지 나는 아직 우리 각하를 떠나보내지 못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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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가오면 찌른다-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