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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06. 01. 월요일

정체불명 ezez






편집부 주


아래 글은 정체불명에서 납치되었습니다.

딴지일보는 삼진아웃 제도의 유구한 전통을 이어온 바, 

독투불패(독자투고 게시판 및 딴지스 커뮤니티)에 쓴 필자의 글이

3번 마빡에 올라가면 필진으로 자동 등록됩니다.


 









"현직에 종사하는 국내 경제학자들 사이에서 경제이론에 대해선 95% 정도 서로 의견이 일치하는데, 경제 정책을 입안하는 과정에서 5% 불일치 때문에 생기는 갭이 엄청나다."



우석훈의 말이다. 학자들의 생계형 뻘짓은 이해한다. 아니 이해되어야 한다. 한국에서 재벌개혁 같은 주장을 하면 주위에 있던 사람들이 순식간에 멀어지는 경험을 하게 될 터인데, 그 경험을 흔쾌히 감내할 학자들은 별루 없을 테니.


<100분 토론>이 멀쩡하던 시절, 방송에서 봤던 되도 않은 헛소릴 지껄이던 학자들이 의외로 책을 읽어보면, 정신이 제대로 박힌 주장을 해서, 어리둥절해지는 경험을 하게 된 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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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부동산 40년>을 읽으면 '리만 부라더스'의 막내 강만수가

재무부 재직시절엔 정신이 똑바로 박혔음을 알게 된다.


진영논리에서 자유로운 사람들에 대한 관심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1.조지프 슘페터


오스트리아 출신을 주축으로 영국과 미국에 자리 잡은 주류 경제학자들. 그들 중에 자본주의의 종말을 외친 독특한 인물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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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자베스 여왕은 16세기에 실크스타킹을 신었다. 자본주의가 추구하는 것은 여왕이 더 많은 실크스타킹을 신도록 하는 게 아니다. 공장에서 일하는 가난한 소녀들도 그걸 신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Joseph Alois Schumpeter(조지프 슘페터)



이 아자씨가 쓴 책을 읽다 보면, 적자생존, 양육강식에 환장한 신자유주의들 사이에서 이단으로 몰려 진작에 제명되었어야 할 사람으로 보인다. 그런데 2008년 금융위기를 겪은 다음부터 그는 인베스트 뱅크 금융천재, 미국 고위관료들이 핫하게 미는, 오스트리아인이면서 수학은 거의 사용하지 않는, 주류 인 듯 주류 아닌 주류 같은 경제학자로 취급받게 된다.


이 분을 접하면 한국 기독교계 마켓에서 돌풍을 몰고 온 신천지가 자연스럽게 떠오르는데, 주류 진영에서 '자본주의는 끝나고 결국 사회주의가 도래한다.'는 주장을 서슴지 않게 하기 때문이다. 얼핏 사회주의가 도래한다는 대목에서 마르크스와 뜻을 같이하는 아자씨처럼 보이지만, 그는 자본주의의 실패가 아닌 자본주의 성공으로 인해 사회주의가 도래한다고 주장하기에, 자본주의에 내재된 모순으로 인해 자본주의는 반드시 실패한다고 했던 마르크스와는 확연히 구별된다.



2.자본주의의 끝



"자본주의가 정점에 달하면 어케 될까?“



이는 "효율이 극에 달하면 어케 될까?"라는 질문과도 같다. 효율이란 같은 비용을 투입했을 때, 제품을 누가 더 많이 생각할 수 있느냐를 말한다. 기업은 이 효율을 두고 경합을 벌인다. 헌데 모든 기업들이 같은 생산방식으로 경쟁을 하게 되면 결국 생산원가가 같아지는 경향이 있다. 그 결과 기업 간 제품 품질의 차별성은 사라지게 된다. 같은 투입에 같은 결과. 이렇게 되면 남는 건 가격 경쟁 뿐이고, 가격경쟁은 이윤을 떨어뜨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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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시 명동 닭갈비 골목

맛집 골목은 가격경쟁을 하지 않는다. 담합 없이 경쟁을 하면 

모두 밑지는 장사를 하게 되고 결국 모두 망하거나 식당 하나만 남는다.


경쟁에 참여한 기업들이 서로 이윤율을 낮추는 방향으로 진입하면 이윤율(수익)은 정체되면서 모종의 담합효과가 나타나는데, 이 대목에서 신자유주의자들이 칭송해 마지않는 '경쟁은 좋은거여'라는 주장이 설득력을 잃는다. 이를 극복하려면 기업들이 담합을 깰 수 있어야 한다. 담합이 없는 세계는 경쟁이 멈추지 않는 세계를 의미한다. 하지만 현실의 경쟁은 끝이 있으며, 그 끝은 승자독식, 즉 독점이다. 무한 경쟁이 성립하려면 독점이 있어서는 아니 되고 담합이 있어서도 아니 된다. 그야말로 진퇴양난이다.


이 대목에서 슘페터는 주류경제학자들과 다른 견해를 피력한다.


남들이 하던 대로 매년 똑같은 경제행위가 반복되는 정태적 상태에서는 경제발전이 일어나지 않고 이윤도 발생하지 않는다. 하지만 남들과 다르게 내 맘대로 생산방법의 혁신을 기하고, 신상품개발, 새로운 원료 획득, 새로운 판로개척 그리고 새로운 경영조직이 생겨나면, 순환적 흐름을 깨고 창의적 기업가에 의한 기술혁신(innovation)에 의해 창조적 파괴가 발생한다.


그렇게 되면 기업이윤이 발생하고 경제는 다시 발전국면(동태적 상태)으로 접어든다. 이 시기에는 기술혁신을 통해 독과점 체제가 생기고 이러한 독점이윤이 또다시 기술혁신을 위한 자금이 되므로 독과점체제가 기술혁신에 유리해진다.


일본이 엔저정책에 의존하는 것은 일본 수출주력상품들이 가격경쟁에 접어들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일본기업들의 이윤율 하락을 막아보겠다는 발악이나 다름없다. 한국은 이명박 시절에 이미 한국 수출주력상품들이 가격경쟁에서 우위를 점하도록 원화가치를 떨어뜨렸지만 일시적 효과에 머물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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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 중앙일보 조인스닷컴


일례로 작년에 컴퓨터 모니터 시장에서 주목할 만한 사건이 있었다. DELL이 27인치 5K모니터를 2014년 말에 출시하겠다고 선언을 하고 심지어 가격까지 공개를 했는데, 그해 10월 APPLE이 아이패드 에어2 출시발표 자리에서 전혀 예상치 못했던 아이맥을 소개한다. DELL이 팔기로 했던 상품과 같은 크기, 같은 해상도, 같은 가격에 APPLE은 컴퓨터를 내놓은 것이다. '모니터를 사면 컴퓨터를 준다'는 우스갯소리가 널리 퍼졌고, DELL은 멘붕에 빠졌다.(APPLE의 이러한 행태는 덤핑인가? 혁신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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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패드 에어2'에 이목이 집중되던 분위기에서 신제품 발표가 끝날 무렵 아이맥을 깜짝 공개한 APPLE은

"판매는 언제부터?"하는지 묻는 기자들에게 "오늘부터"라고 답했다.


DELL 뿐만 아니라 삼성도 마찬가지다. 삼성 스마트폰은 작년부터 이윤율이 떨어지기 시작했고 시장 점유율마저 하락했다. "환율 땜에 안 팔린다"는 말은 "품질경쟁을 더 이상 못 하겠다"는 말과도 같다. 혁신경쟁이 아닌 가격경쟁에 내몰리는 경우, 기업들은 처음엔 원가절감을 인건비, 재료비, 생산방식에서 찾다가 결국엔 이윤을 포기하게 되고, 결국엔 팔면 팔수록 손해를 보는 지경에 이르게 된다. 남들이 하던 대로 따라하는 기업가는 '기업가 정신'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다. 혁신을 꾀하지 않는 기업은 기업이 아니다.


슘페터는 통상적인 경제행위가 계속되는 '순환적 흐름의 상태'를 창조적으로 파괴하고 기술혁신에 의해서 경제가 발전하는 과정을 수학적 도구를 거의 사용하지 않고 분석했다. 비록 살아생전에는 주목받지 못했지만 실증연구를 바탕으로 내놓은 가설이었기에 최근 들어 다시 주목을 받게 되었다.


그럼 혁신은 끝없이 계속될 수 있는가?



3.경기 순환


가격경쟁에서 밀리고 혁신에 실패한 기업들이 공장 문을 닫고 직원들이 일자리를 잃게 되면 경기는 침체국면으로 접어든다. 물론 경기가 순환하는 원인은 어마어마하게 많기에 이것만으로 모든 불황을 설명할 순 없다.


허나 분명한 사실은 경쟁에서 승자는 하나이기에 완전경쟁시장을 내버려두면 독점이 생길 수밖에 없으며 이는 반드시 불황을 초래한다는 것이다. 마지막에 살아남은 기업이 독점적 지위를 얻게 되면 폭리를 취하는 것은 당연지사. 또한 독점적 지위를 획득한 기업은 경쟁자가 시장에 진입하는 것을 덤핑으로 얼마든지 저지할 수 있다.


누구든 독점적 지위를 갖게 되면 관료화되기 마련이다. 신자유주의자들이 정부를 무능하다고 비판했던 이유가 고스란히 민간 기업에게도 똑같이 적용되는 것이다. 시장은 이러한 현상을 절대 스스로 조절하지 못한다. 혹자들은 말한다. 내버려두면 저절로 해결되는데 정부가 쓸데없이 개입한다고.


물론 내버려두면 언젠가는 불황을 견딜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불황이 오래동안 계속되어 갓 태어난 자식을 잃은 산모가 죽기 직전에 놓인 노인에게 젖을 물려야 하는 비극적인 상황에 까지 처하게 된다면 그 누구라도 시장이 자기조절능력을 갖고 있다고 말하기 쉽지 않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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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 가디언 The Grapes of Wrath by John Steinbeck (1939)



"In the long run, we are all dead" 오랫동안 내버려두면 우리 모두 죽는다 


John Maynard Keynes(존 메이너드 케인즈)



풍요를 약속했던 자본주의체제에서 인류는 여러번 불황을 경험했고, 불황을 일으킨 원인보다 불황을 방치하는 정부를 비난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주류 경제학자들은 경제 분야는 어려운 수학공식을 이해하는 소수만이 다룰 수 있다며 맞불을 놓았다. 그들은 불황이 시작되면 잠시 뒤에 숨어 있다가 좀 살만해지면 어김없이 기어 나와 탐욕스러움을 내세워 설교를 퍼붓고는 또 다시 불황이 닥치면 살며시 어디론가 기어 들가기를 반복한다.


효율이 극대화 되고 대형 기업이 가격경쟁력을 갖추게 되면 경쟁에서 밀려난 소상공인들은 선거를 통해 정부를 압박해서 어떻게든 살아남으려 한다. 슘페터는 이러한 현상에 착안, 결국 자본주의가 절정에 달하면 민주주의로 인해 사회 민주주의가 꽃을 피운다고 믿었다. 민주주의는 다수의 안정과 번영을 목표로 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일부 국가(북유럽)의 경우 그의 예측이 맞았다. 하지만 빨갱이 사냥이 한창이고 빚에 손발이 묶여 불구가 되어버린 국민들이 넘쳐나는 나라에선 그의 예측은 빗나갔다.



4.우리에게 창조적 파괴란 없다


창조적 파괴는 기업가의 혁신 행위가 궁극에 달해 불균형을 초래할 때 일어난다. 불균형을 견디는 사회는 없기에 사회안전망에 대한 요구는 늘어만 간다. 사회안전망은 사람들을 보다 도전적으로 만든다. 노키아가 사라진 핀란드는 지금 어케 되었나? 검색해보시라. 걔네는 지금도 멀쩡하고 안녕하다. 오히려 '앵그리 버드' 같은 대박 게임을 만들며 게임 산업에서 승승장구하고 있다.


살기 위해 경쟁하는 자와 놀기 위해 경쟁하는 자가 맞붙으면 누가 더 창조적이고 게임의 룰을 잘 지키려할까?


신자유주의 신봉자들은 복지가 망국병이고 복지가 부폐를 양산한다고 믿지만, 믿는 구석이 있는 사람들은 임금 보단 정신적 만족을 쫓기 마련이다. 창조란 여유에서 비롯되는 것이지 빚에 허덕이며 사는 궁핍한 삶에서는 발휘되지 않는다. 궁핍한 삶에서는 오히려 살아남기 위해 무슨 짓이든 가리지 않기 때문에 범죄가 일어나기 쉽다.


'미꾸라지 양식이 잘되려면 메기가 필요하다'는 말은 더 이상 경쟁의 아름다움을 의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빚이 있어야 노동자들이 대들지 못한다'는 말로 해석될 정도로 지금 한국은 빚에 의존하여 생존하고 있고, 자본가는 빚의 공포을 이용해 노동자들을 통제하려 한다. 지금 한국의 재벌들은 굶주린 처자식의 팔을 비틀고는 혼자 배불리 처먹는 비정한 아빠의 모습을 하고 있다.



5.또 다른 성장의 끝


서구 산업자본가와 다국적기업의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자들이 이탈리아 로마에 모였고, 내가 태어나기 1년 전에 <인류 위기에 관한 프로젝트 보고서>를 낸다. 이 보고서는 훗날 <성장의 한계, The Limits to Growth>라는 제목의 책으로 발간된다. 발간 당시 이 책은 좌우를 가리지 않고 비난을 받았는데 고도성장을 달리던 사회분위기 속에서 우파진영은 '황금알을 낳는 암컷거위를 수컷거위들이 집단 강간해서 황금알을 많이 낳게 해서는 아니된다'는 주장이 맘에 안 들었고, 좌파 진영에서는 황금알을 1%가 대부분 독차지하는 것은 외면하고 '99% 숫자가 자꾸 불어나는 것이 위기의 원인'이라는 지적이 언짢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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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2년 출간 당시 표지

이 보고서를 제작한 로마클럽(The Club of Rome)은 저명 학자와 기업가, 전ㆍ현직 유력 정치인 등 52개국 100여 명의 세계지도자들이 참여해 인류와 지구의 미래에 대해 연구하는 세계적인 비영리 비정부 연구기관이다.


미래예측모델이 완벽할 순 없지만, <성장의 한계>의 올바른 지적을 하였다는 것이 실증적으로 밝혀지면서 다시 주목받고 있다. 보고서의 핵심 내용에 대한 글을 인용해보겠다. 


<성장의 한계>에서 ‘월드 3’이 제시한 12가지 가상시나리오는 인구증가와 천연자원의 사용이 다양한 한계들과 어떻게 상호작용하는지를 잘 보여준다. 이들은 기본적으로 고갈 가능한 천연자원이나 산업과 농업에서 방출되는 배기가스를 흡수할 수 있는 지구의 한정된 수용력과 같은 지구의 물질적 한계에 맞추어 분석했다. 그 결과 ‘월드 3’은 21세기의 어느 시점에 이르면 지구의 물질적 성장이 종말을 맞이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가르쳐 준다.


산업혁명이 가져온 현대사회의 문명은 인구가 증가하고 물질 자본이 확대되면서 여러 가지 제약요소들이 상호작용으로 일어나는 문제들에 봉착한다. 이에 대처하기 위해 인류는 점점 더 많은 자본을 쓸 수밖에 없다.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전용되는 자본은 점점 늘어나게 되고, 마침내 세계는 더 이상 산업 성장을 지속시킬 수 없게 된다.


그리고 산업이 쇠퇴하기 시작하면 식량이나 서비스, 여러 소비 분야와 같은 경제영역에서도 더 이상 성장을 유지할 수 없다. 이러한 영역들이 성장을 멈추게 되면 인구성장 역시 멈추고 만다는 것이다. 즉, ‘성장이 종말’을 맞는 것이다. 이러한 종말은 인구가 감소하고 행복이 쇠퇴하며 전 세계 시스템의 통제 불가능한 와해 현상을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이 <성장의 한계>의 요점이다.


박경훈 제주민예총 이사장



'황금알 낳는 거위'는 세상에 없다. 다만 알을 낳는다는 점에서 '황금알 낳는 거위'와 '실제 거위'는 같다. 둘 다 한번에 하나의 알 밖에 낳지 못한다. 생물의 한계다.


지구는 생명체인가? 아닌가? 물론 누구도 알 수 없다. 하지만 우리는 자원이 고갈되고 종이 멸하는 걸 눈앞에서 목격하고 있다.


혁신이 끝없는 미래를 보장할거라고 믿기에는 지금 지구는 아프다. 마이 아프다. 그리고 사람들도 아프다(몇몇 사람들은 졸라 행복하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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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o're you praying to?"


" Anyone that's listening."


영화 <MAD MAX: FURY ROAD>



황금알을 독점하던 1%의 몇몇 사람들이 이제는 99%의 마음을 알아야 한다. 어떤 신이든 자신의 기도를 들어주기를 바라는 간절한 99%의 마음을 말이다.

 









정체불명 ezez


편집 : 딴지일보 coco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