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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망했다는 표현을 좋아하지 않는다. 흔히들 서태후가 잘못해서, 이홍장이 잘못해서, 광서제가 잘못해서 청나라가 망했다고 말한다. 그들이 ‘잘’했다면 나라가 망하지 않았을까? 세상의 거대한 변화가 닥쳐오고 있었다. 변화의 일부였을 뿐이다. 나라의 역사도 개인사도 마찬가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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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BBC>

 

홍콩이 망했다는 말을 많이 한다. 홍콩의 주권이 중국으로 반환되면서, 최근 국가보안법이 발효되면서, 흔히 하는 말이다. 물론 영원한 것은 없다. 영원히 변화할 뿐이다.

 

<첨밀밀>이 홍콩인에게 와닿은 이유 

 

1997년 초 대부분의 홍콩인들은 매우 낙관적인 태도로 주권반환을 기다리고 있었다. 1997년 2월 설문조사에 의하면 60% 이상이 홍콩의 앞날을 낙관하고 있었다. 단지 6% 만이 비관적이었다. 각종 조사 결과 홍콩 정부와 중국 정부에 대한 기대는 1989년 ‘천안문 민주화 운동’ 이전 수준으로 돌아가 있었다. 

 

하지만 주권 반환 이후 개인 자유가 상실될 것에 대한 우려는 여전히 많았다. 원래 홍콩인들 대다수가 중화인민공화국 수립 이후 홍콩으로 들어온 피난민이다. 대륙에서 이미 공산당의 거짓말에 여러 번 당했던 사람들이었다. 공산당을 절대 못 믿겠다며 홍콩을 떠나는 이민 행렬이 이어졌다. 그만큼 홍콩인들은 복잡한 심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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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첨밀밀>

 

1996년에 개봉된 영화 『첨밀밀』은 대륙에서 ‘홍콩 드림’을 쫓아 건너온 남녀의 사랑을 그렸다. 홍콩이라는 살벌한 자본주의 사회에 적응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하는 남녀 주인공은 보편적인 홍콩인들의 자화상이었다. 홍콩에 적응하지 못하고 미국(뉴욕)으로 떠난 두 인생의 모습은 주권반환을 앞둔 홍콩인들에게 강렬하게 어필되었다.

 

사람은 심리적으로 비관적인 전망보다는 낙관적인 전망을 하게 되어있다. 떠나는 사람보다는 떠날 수 없어 남아야 하는 사람들이 더 많은 법이다.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언제나 경제적인 혜택을 기대하기 마련이고, 모든 새로운 권력은 당근을 손에 쥐고 다가오는 법이다. 중국은 홍콩이라는 강한 정체성을 약화시키기 위해 온갖 장밋빛 청사진을 제시하며 다가왔다. 

 

 

새로운 형태의 식민시대

 

후식민 담론이라는 것이 유행한 적이 있다. 한마디로 ‘우리’는 여전히 힘센 누군가에 의해서 조종되고 식민되고 있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는 말이다. 인도의 석학 가야트리 스피박(현 컬럼비아대학 교수)은 우리는 탈식민적인 ‘신-식민화된 세계’에 살고 있다고 했다. 보이거나 보이지 않은 식민주체가 여전히 우리를 지배하고 있다는 말이다. 

 

주인이 바뀌었을 뿐 여전히 우리는 지배를 당하고 있다는 뜻인데, 홍콩의 경우는 주인만 영국에서 중국으로 바뀌었다는 것일까?

 

1997년 전후해서 홍콩학을 연구하는 학계에서는 홍콩의 경우를 티베트, 신장, 내몽골과 비교하는 연구가 성행했다. 대부분 다수와 소수, 국가와 지역의 관계 등 탈식민의 관점이었다. 

 

비교는 이성적 판단의 기회를 제공한다. 그때와 지금, 그곳과 이곳을 병렬 비교하는 습관은 이성적 판단을 하는데에 큰 도움을 준다. 홍콩인들은 청나라와 영국의 통치를 비교하고, 영국과 일본의 통치를 비교하고, 다시 일본과 영국의 통치를 비교하고, 영국과 중국의 통치를 비교하는 중이다. 

 

대만인들이 수많은 통치를 경험한 것과 마찬가지다. 대만인들은 네덜란드와 정성공(鄭成功)의 통치를 비교하고, 정성공의 통치와 청나라의 통치를 비교한다. 청나라는 일본의 통치와 비교하고, 일본의 통치는 다시 국민당의 통치와 비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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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레미 아이언스, 공리 주연의 영화 <차이니즈 박스>

 

홍콩의 처지는 주권 반환 직후인 1997년 10월에 개봉된 영화 ‘차이니즈 박스(Chinese Box)’에서 잘 그려내고 있다. 

 

“홍콩은 정직한 창녀다. 이제 포주만 바뀐 셈”

 

이라는 영화 속 대사는 후식민 서사를 압축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이제 홍콩에 새로운 형태의 식민시대가 다가오고 있었다.  

 

사실 홍콩의 변화는 주권 반환이 되기 한참 전부터 이미 시작되고 있었다. 중국에서 취재하던 홍콩, 싱가포르 등의 기자들이 체포되고 조사받는다는 뉴스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1995년은 내가 막바지 논문 작업에 매진하고 있던 시기인데, 그때 내 귀에도 언론계와 학계에서 중국의 ‘보이지 않는 손’이 작동하고 있다는 말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그러다 주권 반환이 되기 직전인 1997년 4월, 두 개의 새로운 법률이 공포되었다.

 

①앞으로 시위를 하기 전에 경찰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②홍콩의 단체는 외국 조직과 연계할 때 비준을 받아야 한다.

 

 

현재의 홍콩은

 

주권 반환이 되기 이전부터 중국계 회사들은 중국에 비판적인 신문에 광고를 주지 않았고, 영향력 있는 언론인들은 해고되기 시작했다. 이에 더해 중국 자본들은 아예 홍콩의 언론사들을 사들이기 시작했다. 

 

그 결과 현재 중립지 『명보』는 말레이시아 화교 자본이, 대표적인 영자지 『사우스 차이나 모닝포스트』는 중국의 알리바바 그룹이, 가장 큰 방송사인 티브이비(TVB)는 중국 자본이 소유하게 되었다.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 홈페이지 메인 화면.png

2015년 12월 12일

사우스 차이나 모닝포스트 홈페이지 메인 화면.

알리바바가 홍콩의 유력 일간지 '사우스 차이나 모닝 포스트(SCMP)'를 인수했다는 내용의 기사가 1면을 장식했다.

 

세계에서 가장 우수하다고 평가받고 있던 공무원 대열도 흔들리기 시작했다. 원래 사회가 공정하고 공평하게 돌아가고 있다는 믿음은 홍콩 사회의 동력이었다. 모든 과정이 법률과 규정이 정한 대로 투명하고 타당하게 집행되고 있다는 믿음이 사회 전반에 깔려있었다. 공무원에 대한 공정한 평가 덕분이었는데, 이제 그 평가 기준이 국가에 대한 충성도로 바뀌고 있었다. 

 

2014년부터는 언론인에 대한 직접적인 유무형의 테러들이 시작되었다. 중립지 『명보』의 편집국장이 백주 대낮에 습격을 받아 중상을 입은 것이 그 시작이었다. 그 이후부터 중국에 비판적인 기자와 교수들은 자기검열에 들어간다.  

 

올해에는 중국관방기업으로 보이는 회사가 홍콩 최대의 위성방송인 펑황(鳳凰)TV의 지배구조를 장악했다. 또 홍콩의 대표적인 ‘반중국’ 신문 『빈과일보』가 마침내 폐간되었다. 몇 년 전부터 이미 기업광고는 끊기고 있었고 회사 자산 동결, 편집인 체포 등, 탄압을 견디지 못한 게다. 

 

사주는 2020년 6월 『보안법』 발효 이후, 두 달 만에 외세결탁 혐의로 체포되었다. 빈과일보 폐간 이후 홍콩의 언론계가 급속하게 얼어붙었다. 빈과일보의 기자들은 영국이나 대만으로 이민을 고려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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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6월 24일, 몇 시간을 기다려

폐간하는 홍콩 신문 빈과일보의 마지막 호를

사고 있는 홍콩 시민들. 

출처-<AP 연합뉴스>

 

홍콩기자협회는 성명을 발표하여 백색공포가 언론계를 뒤덮고 있다고 항의했다. 또 당국이 생각하는 언론 자유의 경계(界線)를 밝혀 달라고 요구했다. 국경없는기자회(RSF)가 발표한 2021년 세계 언론자유지수에서 홍콩은 80위로, 2013년(58위)보다 20계단 이상 하락했다.

 

원래 홍콩에는 좌도 우도 아닌 사람들이 많았다. 너도 옳고 나도 옳고 그 사람도 옳았다. 적어도 그때는 그랬다. 사회 내에서 이도 저도 아닌 ‘제3지대’는 매우 중요한 완충지대인데, 이 넓이가 사회의 자유도를 나타낸다. 이 지대가 이제 거의 사라지고 있는 셈이다. 

 

언제부터인가 홍콩의 영화배우나 가수 등 유명인사에게 너는 누구 편이냐를 묻는다. 너는 시위대 편이냐 경찰 편이냐, 너는 중국 편이냐 홍콩 편이냐를 밝히라고 요구한다. 이쪽이 아니면 저쪽을 선택하라고 강요한다. 자기가 원하는 쪽이 아니면, (내 편이 아니면) 비난하고 협박하고 퇴출 운동을 전개한다. 이제 홍콩에서 자기 생각을 밝히면 생명까지 위협받을 수 있다. 그렇다면 이건 역사의 후퇴로 보인다.

 

류영하(백석대학교 중국어학과 교수)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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