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 기사 추천 기사 연재 기사 마빡 리스트

딴지에 리뷰노예로 납치된 불가사리. 거액의 제작비로 복수하겠다 다짐했지만, 딴지가 던져준 주제는 온통 싸구려들. 편집장 죽지않는돌고래(이하 죽돌)는 ‘맛집 리뷰’를 하라고 불가사리를 설레게 했으나, 굳이 ‘돈까스’라는 주제를 제시한다. 실망한 불가사리는 제주 항공권을 달라면서 돈까스 인질극을 시작한다. 과연 불가사리는 성공적으로 딴지의 등골을 빼먹을 수 있을까?

 

불가사리의 소비 대모험, 기대하라구!

photo_2021-12-06_12-17-38.jpg

 

 

지곤조기

 

죽돌: 지식편 기사를 이렇게 끊다니, 다음 기사는 뭡니까?

불가사리: 연돈 예약하고 제주 항공권 보내줄 때까지 안알랴줌.

죽돌: 허허...

불가사리: 뚝(전화를 끊음)

 

다시는 이렇게 호구로 살지 않겠다. 불가사리는 굳게 다짐했다. 이후 죽돌에게 20번 전화가 왔으나, 불가사리는 단호히 받지 않았다. 돈까스를 시키려거든 제주도 정도는 보내줘라. 제주도 안 보내주려거든 스테이크 정도는 보내줘라. 내 마음을 배신한 값이다!

 

전화를 계속 받지 않자, 다음 날 오전 11시 30분, 죽돌에게 문자가 왔다

 

“불가사리님, 지금은 곤란하니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일단 금왕돈까스, 아니면 다른 돈까스집 어디라도 저희가 살 테니 드셔요. 일단 드셔보시고 천천히 이야기하시죠.”

 

사진1.jpg

추억의 유행어...

 

하필 11시 30분, 그리고 하필 나는 그때 미모의 여인과 함께 대학로에 있었다. 바로 근처에 있는 돈까스집의 유혹, 그 유혹에서 벗어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일단, 먹자. 죽돌은 가게 하나만 갈 것으로 생각하겠지만, 불가사리는 그럴 수 없다. 딴지의 등골을 조금이나마 빼먹는다는 마음으로, 세 군데 가게를 모두 간다. 돈최몇? 3개는 껌이지. 

 

성북동, 그리고 기사식당 돈까스

 

대학로에서 삼청동으로 넘어가는 길, 경신고등학교, 서울과학고에서 간송미술관 사이로 내려가는 길은 한국 기사식당의 성지와 같은 곳이다. ‘기사식당’이라 하면 떠오르는 대표 메뉴의 양대 산맥인 돼지불백과 왕돈까스가 이곳에서 탄생했다. 성북동은 서울 사대문과 가까운 곳에 있으면서도, 언덕 넘어 한적한 곳에 있다는 장점이 있었고, 코앞에 대학로가 있지만 땅값은 싸다는 장점이 있는 곳이었다. 이곳에서 1970년 ‘성북동돼지갈비집’이 생겨난 후, 택시 기사들이 밥을 먹기 위해 오는 동네가 되었다. 1990년대만 해도 기사식당들이 경쟁에 이기기 위한 서비스로 밥을 먹는 동안 세차를 해 주는 풍경이나, 식당 내부 화이트보드에 개인택시 매물이 쓰여 있는 모습이 자연스러운 게 성북동 기사식당길이었다. 

 

photo_2021-12-06_18-02-19.jpg

성북동 최초의 기사식당으로 알려진 성북동 돼지갈비집

 

돈까스는 1970년대까지만 해도 고급 메뉴, ‘경양식’ 식당에서 파는 미국 문화의 일종으로 여겨졌던 고가의 음식이었다. 그러나 1980년대 중후반 이후 많은 것이 바뀐다. 우선 1980년대 중산층이 형성되어, 소비자들의 구매력이 올라가고(믹스커피 지식편 참조), 중산층의 ‘외식 문화’를 위하여 외식업이 폭발적으로 발전한다. 그리고 1970년대 중반 이후 국내 식용유 공장의 설립으로 식용유 가격과 밀가루 수입 가격이 내려가고, 1970년대 이후 양돈산업이 발전하였는데 등심과 안심이 비선호 부위가 되어 해당 부위의 돼지고기 가격이 내려간다. 또한 1986년 최초로 LNG를 수입하는 등 LPG와 LNG 사용이 대중화되면서, 강한 불을 싸게 만들기가 용이해졌다. 

 

돈까스란 돼지고기에 밀가루를 묻혀 센 불로 온도를 올린 기름에 튀기는 외식업이다. 1980년대의 모든 조건들, ① 돼지고기(등심, 안심)가 싸지고 ② 밀가루가 싸고 ③ 고화력이 싸지고 ④ 기름이 싸지고 ⑤ 외식업이 발전하는 이 조건들은 돈까스를 싸게 만드는 것으로 기능했다. 돈까스는 여전히 경양식에서 제공하는 음식이었지만, 슬슬 가격 경쟁도 시작되었고 덜 고급한 가게에서도 돈까스를 만들어 팔기 시작하였다. 

 

여기에 1986년 아시안게임, 1988년 서울올림픽을 계기로 정부에서 택시 면허를 내주어 택시 수가 급증했고, 이들이 먹기 위한 ‘기사식당’들도 폭발적으로 발전했다. 그전까지 기사식당의 대표 메뉴는 돼지불백과 우동(가락국수)이었는데, 연탄불에 굽느라 연기도 나고 시간도 걸리는 돼지불백에 비해 돈까스는 훨씬 빠른 시간에 많은 양을 만들어 제공할 수 있었다. 게다가 사람들의 인식도 영향을 미쳤다. 불과 10년 전을 기준으로 할 때, 돈까스는 매우 고급한 음식이었기에, 비슷한 가격이라면 당연히 돈까스를 선호하는 사람들이 많았던 것이다.

 

이러한 연유로 기사식당의 원조이자 명가인 성북동 기사식당길에서는, 1980년대 후반부터 돈까스집들이 생겨났다. 성북동 기사식당길 돈까스의 원조 정도로 여겨지는 금왕돈까스가 탄생한 것이 1987년이다. 바로 근처에는 ‘오박사네왕돈까스’와 ‘서울돈까스’가 있는데, 정확한 역사를 알지 못하나 거의 비슷한 시기에 만들어지지 않았을까 추측한다. 성북동 가게들은 ‘기사식당 돈까스’의 스타일을 정립하기도 했다. 

 

사진2.jpg

가장 전형적인 기사식당 돈까스인 ‘금왕돈까스’

 

기사식당 돈까스의 특징은 몇 가지가 있다. ① 우선 빠르게 튀기기 위하여 경양식 돈까스에 비해서도 더 얇은 고기와 좀 더 굵은 빵가루를 쓰고, ② 소스는 절대 따로 내오지 않고 가득 부어서 나온다(원래 한국식 돈까스가 다 그렇지 않느냐? 라고 물을 수 있지만, 아니다). ③ 반찬으로 깍두기(또는 김치)와 풋고추, 쌈장이 나오고, ④ 돈까스 양 자체가 많으며 대개 밥과 김치 등은 계속 먹을 수 있다. ⑤ 그리고 비어홀 등을 겸하고 포도주도 파는 경우가 많았던 경양식당과 달리 술을 팔지 않거나 팔더라도 소주만 팔았다. 또한 우거지 된장국이나 선짓국 등을 주거나 파는 경우가 많았다. 이는 대부분 30대 이상 남성인 기사들이 좋아할 만한 조합이고, 돈까스의 느끼함을 극복하고 배불리 먹을 수 있는 조합이며, 무엇보다 경양식당의 엄숙함과 고급스러움과는 거리가 있는 실용적인 조합이다. 

 

이러한 기사식당식 돈까스로 유명한 지역은 몇 군데가 있다. 우선 성북동이 있고, 사대문과 가까우면서도 한적하다는 조건이 같은 남산이 있다. 현재 기사식당식 돈까스집이 가장 밀집된 곳은 아마도 남산일 것이다. 그러나 남산의 경우 이미 성북동 돈까스 집들이 성업한 후인 1992년 시작된 데다(70년대 시작이니 80년대 시작이니 하는 가게들이 많지만, 그 가게들은 원래 돈까스가 아닌 다른 음식들을 팔던 가게이다), 맛에서도 다소 애매한 평가를 받기에, 불가사리는 먼저 성북동으로 향했다(사실 그냥 죽돌이 가장 좋아하는 가게라서 가라고 한 것이다...).

 

이곳에는 성북동 돈까스 3대장, 금왕돈까스/ 서울돈까스/ 오박사네 왕돈까스가 있다.

 

사진3 JPEG.jpg

 

리뷰의 기준

 

리뷰를 시작하기 전, 간단하게 돈까스 리뷰 방법과 순서를 설명하겠다.

 

1. 수프 및 가니시(곁들여 나오는 것)

우리는 흔히 돈까스에 곁들여 먹는 수프는 ‘오뚜기 스프’일 것으로 생각하지만, 아닌 곳도 많다. 정통 경양식 수프와 ‘오뚜기 스프’의 맛은 다르다. 과거 경양식집에서 제공하던 정통 수프는 버터와 밀가루를 볶은 루(roux)에 크림, 우유, 치킨스톡 등을 넣어 맛을 낸 것이라 좀 더 느끼하고 깊은 맛이 나고, 감칠맛은 상대적으로 적다. 직접 만들기에 가게마다 맛의 편차가 꽤 있는 편이다. 반면 ‘오뚜기 스프’는 크림과 우유, 버터 루roux의 맛이 별로 없고, 전분의 끈적함이 있고 감칠맛이 많이 나는 편이다. 가니시 역시 가게마다 천차만별이다. 이 부분을 먼저 평가한다.

 

2. 고기의 두께와 맛

일식 돈까스처럼 2cm에 달하는 고기부터, 얇게 두드려 펴 0.5cm에 달하는 고기까지 고기 두께가 천차만별이다. 그런데 이것은 스타일이라, 꼭 어떤 두께가 좋고 나쁜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오히려 그 두께에 맞는 적절한 맛을 내는지, 두드린 정도는 어떠하고 부드러운 정도는 어떠한지, 그리고 튀김옷과 빵가루의 두께와 잘 어우러지는지이다.

 

3. 튀김옷과 빵가루, 기름

돈까스는 기본적으로 고기에 밀가루를 묻히고, 계란물을 묻힌 후 빵가루를 묻혀 튀기는 음식이다. 밀가루를 어떻게 발랐느냐, 얼마나 털어냈느냐에 따라 튀김옷의 두께가 변한다. 그리고 빵가루는 생각보다 많은 종류가 있다. 원조인 서유럽식 슈니첼은 빵가루가 좀 더 젖어있고 입자가 가늘지만, 일본 덴뿌라에 쓰이는 빵가루는 바싹 마른 굵은 빵가루를 사용한다.

 

유럽, 미국의 영향을 받은 한국식 돈까스는 전통적으로 가는 빵가루를 사용했지만 이후 일본식 돈까스의 영향을 받아 굵은 빵가루를 사용하기도 하였다. 굵은 빵가루를 사용하면 바삭한 맛이 늘어나지만 기름을 더 머금어 기름 맛이 많이 날 수도 있고, 고기에 비해 빵가루가 너무 굵으면 균형이 맞지 않을 수도 있다. 반면 얇은 빵가루를 사용하면 바삭한 맛은 별로 없지만 좀 더 부드럽고 깔끔하다. 튀김옷의 두께와 빵가루의 크기 등은 각기 장단점이 있고 매력이 있다. 중요한 것은 고기와의 균형이다. 기름 냄새가 많이 나는지, 남은 기름의 양은 어떠한지도 중요하다.

 

4. 소스의 맛과 어우러짐

한국식 돈까스의 특징 중 하나가 독일의 예거슈니첼처럼 돈까스 위에 소스가 뿌려져 나오는 것이다(경양식의 경우에는 안 그러는 집도 많았다). 소스를 위에 뿌리지 않고 찍어 먹는 일본 돈까스의 경우 대부분 우스터 소스 등 강한 맛의 소스를 사용하지만, 소스를 듬뿍 뿌리는 한국의 경우 ① 브라운 소스(그래비 소스나 ‘하이라이스’ 소스)를 사용하여 구수한 맛을 내거나(이 경우 종종 버섯 등이 들어간다), ② 과일 등을 넣어 새콤달콤한 맛을 내거나, ③ 시판 우스터 소스 내지 이를 묽게 한 것을 뿌리는 세 가지 경우가 많고, 집마다 맛이 천차만별이다. 어떤 의미에서는 가게 사이의 편차는 돈까스보다 소스에서 결정될 정도이다. 

 

5. 기타 및 총평

이외에도 가게의 분위기, 위생 상태, 후식을 주는지 등 다른 부분을 이야기하고 총평을 한다. 다만 배고픔의 여부 등에 따라 많이 달라질 가능성이 있어 별점은 주지 않고, 다만 전체적인 스타일의 평가를 하겠다. 

 

불가사리의 돈까스대모험 제1편 성북동 편은 금왕돈까스, 서울돈까스, 오박사네돈까스의 순으로 가기로 했다. 불가사리의 평소 경험에 따르면, 소스 맛이 약한 곳부터 강한 곳 순서이다. 

 

금왕돈까스

 

성북동 3대 돈까스집 중 어디가 가장 먼저 생긴 곳인지는 알 수 없다. 세 가게 모두 ‘Since 1987'을 붙여놓고 있기 때문. 이런 경우 어디서 일하던 주방장이 나가서 차렸다거나 친척이라거나 전여친이라던가 하는 역사가 있는 경우가 많은데 그러한 정보에 대해서 아는 바가 없다. 아시는 분(관계자 환영!)은 알려주시길. 

 

사진4.jpg

 

금왕돈까스는 오박사, 서울돈까스와 조금 떨어진 곳에 있다. 주변에 성북구립미술관, 간송미술관 등이 있는 한적한 분위기이다. 건물 자체도 상당히 고급스럽게 지어 놓았다. 교외의 패밀리 레스토랑이라고 해도 믿을 분위기이다. 다만 주차장이 없고 가게 바로 앞에 공영주차장이 있는데, 따로 할인 같은 것은 되지 않아 비싸진 않아도 주차비를 내야 한다. 발렛파킹을 무료로 해 주는 서울돈까스, 오박사돈까스에 비해서는 아쉬운 점이다.

 

사진5.jpg

 

내부는 널찍하고, 통창이 있어 상당히 밝다. 사진에는 담지 못했지만 통창으로 보이는 숲의 풍경도 꽤 아름답다. 여러모로 잘 꾸며둔 교외의 레스토랑 분위기이다. 그래서인지 손님들도 젊은 층이 많은 편이었다.

 

1. 스프와 가니시

스프는 전반적으로 오뚜기 스프에 가깝지만, 완전 오뚜기 스프는 아니고 크림을 조금 넣었거나 루를 따로 좀 넣은 것 같은 맛이다. 그리고 가니시는 양배추샐러드, 콩, 마카로니, 고추, 깍두기, 쌈장이다. 기사식당 돈까스 구성의 표준과 같은 구성이다. 

 

사진5-2.jpg

 

2. 고기의 두께와 맛

고기의 두께는 기사식당식 돈까스답게 얇다. 경양식 돈까스에 비해서도 얇은 느낌으로 1cm가 되지 않을 것 같다. 고기를 많이 두드렸는지 상당히 부드럽고, 두드린 흔적도 고기에서 보인다. 

 

사진7.jpg

 

3. 튀김옷, 빵가루, 기름

튀김옷은 얇은 고기와 조화가 잘 될 정도로 얇은데, 그 위에는 살짝 굵은 빵가루가 입혀져 있다. 고기 두께에 비해 빵가루가 좀 튀는 느낌이 있긴 한데, 소스에 젖으면 큰 문제는 없을 것 같다. 남은 기름 양은 꽤 되지만 기름 냄새는 덜 나는 편이다.

 

사진6.jpg

 

4. 소스의 맛과 어우러짐

금왕의 소스는 꽤 특이한 편이다. 우스터 소스 향과 맛은 거의 나지 않고, 브라운 소스의 맛과 향이 나긴 하는데 구수하거나 느끼한 맛은 또 별로 없다. 단맛은 매우 절제되어 있고 신맛이 나며 후추 향과 맛이 짙고 타임이나 월계수 잎 같은 향신료 향이 살짝 스쳐 간다. 익숙한 맛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지만 자세히 생각해보면 똑같은 소스를 먹은 기억은 나지 않는다. 

 

그런데 얼핏 맛이 약한 듯한 소스를 돈까스와 함께 먹으면 상당히 잘 어우러진다. 고기 일부에만 소스를 뿌려 나오는데, 소스에 젖지 않은 부분은 바삭하고 젖은 부분은 소스와 잘 어우러진다. 수수한 맛이지만 고기와 잘 어우러지는 소스 때문에, 어찌 보면 평범한 튀김이 잘 살아난다.

 

5. 기타 및 총평

처음 간 돈까스집인데, 한국 기사식당 돈까스의 훌륭함을 충분히 맛볼 수 있었다. 다만 고기가 얇고 부드러운 것에 비해, 빵가루가 굵어 튀김옷의 맛이 강한 느낌이 있었다. 그것은 그것대로 매력이지만 균형이 깨지는 느낌이 들어 아쉽기는 했다. 그리고 기름기가 꽤 느껴져 약간 부담스러웠는데, 생각해보면 돈까스 하나를 먹고 잘 먹었다고 생각할 만한 맛일지도 모른다. 고추, 김치 등과 먹으면 느끼함도 꽤 줄어들 것이다.

 

“개별적 요소들은 수수하지만, 모아 놓으면 훌륭한 음식. 전통의 명가라 부를 만하다”

 

사진8.jpg

나오는 길에 보니 이런 표창장이 있다...

 

 

서울왕돈까스

 

사진9.jpg

 

두 번째로 향한 집은 경신고, 서울과학고 바로 뒤에 있는 서울왕돈까스이다. 우선 대학로 등 시내에서 조금이나마 가깝고, 발렛 파킹이 되며, 2층에는 놀이방 등도 있어서 아이를 데려오기도 좋았다. 초등학생 시절 불가사리의 입에는 여기가 제일 맛있었던 것 같다. 당시 돈까스와 함께 선짓국인지 된장국을 주었다. 여름에는 오이냉국을 주었다. 참 맛있었던 그때의 기억을 안고 갔다. 대부분은 과거 그대로였다. 문 앞에 방송화면 등을 어지럽게 붙여 두었는데, 들어가고 싶기보다는 들어가기 싫게 만든다.

 

사진10.jpg

 

들어가보면 평범한 기사식당이다. 벽에는 연예인들의 사인이 가득하고, 큰 티브이에서는 뉴스가 흘러나온다. (성유리의 사인이 Jesus loves you인 줄은 여기서 처음 알았다) 

 

사진11.jpg

 

이 집이 금왕에 비해 가장 큰 차이점은, 메뉴가 많다는 것이다. 돈까스, 생선까스, 비후까스, 함박스텍, 정식 5개의 메뉴밖에 없던 금왕과 달리, 기본 4 까스(+정식)외에도 냉모밀, 우동, 육개장 등등을 판매한다. 얼마나 맛있는지는 모르지만 메뉴에 집중하지 않는 모습을 보면 왠지 맛집이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 들게 한다. 다만 이 집은 어디까지나 기사식당이었고, 기사식당이기에 다양한 메뉴를 팔아야 한다는 점에서 이해하는 편이지만, 메뉴를 좀 줄이는 것이 이미지에 더 낫지 않을까 생각한다.

 

사진12.jpg

 

1. 스프와 가니시

스프는 오뚜기스프 그대로이다. 가니시는 양배추샐러드, 마카로니, 옥수수 캔, 단무지, 깍두기, 고추, 쌈장이다. 평범한데 살짝 성의가 없는 느낌도 있다. 국물을 따로 주지 않던 금왕과 달리 우동 국물을 주는 것이 특이한데 국물 맛도 나쁘지 않다. 다만 기사식당의 스타일을 유지하려면 아예 한국식 된장국이나 오이냉국 등을 주는 것이 어땠을지, 아쉬운 부분이다.

 

사진13.jpg

 

2. 고기의 두께와 맛

고기의 두께는 금왕에 비해 거의 두 배 정도 두껍다. 그리고 두드린 정도도 적은지, 씹는 맛이 더 많이 느껴진다. 하지만 여전히 일식 돈까스와 같은 두꺼운 느낌은 아니고, 오히려 일반적으로 동네 돈까스 집에서 먹을 수 있을 것 같은 두께감이다. 그래서인지 3개 집 중에 돈까스 크기가 제일 작지만, 두께감 덕에 막상 가장 배부른 느낌이다.

 

3. 튀김옷, 빵가루, 기름

튀김옷은 금왕만큼이나 얇지만 살짝 두껍고, 빵가루는 거의 일식 돈까스만큼이나 꽤 굵직하다. 그래서 소스를 뿌려도 아래쪽 빵가루의 바삭함이 살아 있다. 고기가 좀 더 두꺼운 만큼 빵가루가 굵어진 느낌인데, 여전히 고기의 맛에 비해 튀김옷과 빵가루의 맛이 좀 과하다는 느낌도 난다. 기름 냄새는 전혀 나지 않고, 튀김의 상태는 깔끔하다.

 

4. 소스의 맛과 어우러짐

서울왕돈까스의 소스는 상대적으로 평범하다. 역시나 동네 돈까스집에서 먹어봤음 직한 브라운 소스의 맛이다. 다만 버섯 등을 넣어 거의 비프스튜처럼 느껴지는 그런 소스는 아니고, 브라운 소스 기반에 단맛이 좀 더 가해지고 좀 더 가벼운, 신맛이 약하게 나고 구수한 맛이다. 이러다 보니 굵은 튀김옷과 어우러져 좀 더 ‘고기 맛’을 많이 돋보이게 했다. 

 

5. 기타 및 총평

고기나 튀김, 소스나 스프 가니시 등이 모두 동네 돈까스집에서 평범하게 맛볼 수 있는 스타일의 맛이다. 뒤집어 생각해보면 성북동 기사식당 3개의 가게 스타일 중 이 집의 스타일이 대중적으로 퍼졌다고도 볼 수 있겠다. 잘 튀겼고, 잘 만들어 스타일 자체는 흔하지만 완성도는 높은 느낌이었다. 젊은이들이 많이 보였던 금왕과 달리 대다수 손님은 현역 택시 기사 또는 운전사로 보였는데, 그만큼 ‘기사식당’에 충실한 맛을 내는 것 같기도 하다.

 

“현대 한국 돈까스의 표준. 기본에 충실하게 잘 만들었지만 새로운 느낌은 없다”

 

 

오박사네 왕돈까스

 

사진14.jpg

 

서울돈까스 바로 옆에는 오박사네 왕돈까스가 있다. 문 앞의 분위기도 거의 비슷한데, 방송 이야기는 더 많이 등장하여 좀 더 정신이 없다. 좀 더 사람들이 많이 오가는 것처럼 보이는 느낌이 있다. 다만 오박사가 누구신지는 잘 모르겠다. 포켓몬에 나오시는 그 분은 아는데... 

 

사진15.jpg

 

내부는 근래에 수리했는지 깔끔한 분위기다. 원래 양옥집을 개조한 것이라 크지 않은 홀이 1층에 2개, 2층에 2개가 있었다. 다만 인테리어 자체의 깔끔함을 돈까스 사진들과 방송 출연 사진들이 좀 어지럽게 흐리는 느낌이다. 이 가게의 특징은 돈까스 사진을 많이 붙여놓았다는 점인데, 어르신이 많이 보이는 특성과 연관이 있는지도 모른다.

 

사진16.jpg

 

1. 스프와 가니시

스프는 루와 버터를 볶은 맛이 나고 크림 맛도 제대로 난다. 감칠맛도 꽤 나는 것으로 보아 그 위에 시판 스프나 치킨스톡을 쓴 것 같지만, 최소한 오뚜기스프 맛과는 상당히 차이가 났고 경양식 스프 맛과 비슷했다(알고 보면 이런 맛을 내는 시판 스프가 따로 있을수도 있다). 스프는 3개 집 중 가장 압도적으로 맛있었다. 가니시는 서울돈까스와 같은 양배추샐러드, 마카로니, 옥수수 캔, 단무지, 깍두기, 고추, 쌈장이다. 특이점은 미역국을 준다는 것이다. 돈까스 2개를 이미 먹고 온 상태여서 그런지 굉장히 반가웠다.

 

사진18.jpg

 

2. 고기의 두께와 맛

고기의 두께는 금왕보다도 더 얇은 느낌이었다(대신 크기는 제일 크다). 그런데 씹는 맛 자체는 금왕보다 더 났다. ‘고기가 이렇게 얇은데 뭐하러 두드려?’라는 느낌으로 많이 두드리지 않은 느낌이었다. 얇음에도 불구하고 존재감이 있는데, 뒤집어 말하면 두껍게 하면 질길 고기라고도 평할 수 있다. 

 

사진17.jpg

 

3. 튀김옷, 빵가루, 기름

튀김옷은 금왕, 서울과 비슷한 정도로 얇았고, 두 가게보다 입자가 작은 빵가루를 사용했다. 역시 고기가 얇은 만큼 입자가 작은 빵가루가 나온 것일지 모르겠다. 그래서 고기와 튀김옷의 균형은 세 집 모두 비슷했다. 

 

4. 소스의 맛과 어우러짐

오박사네 돈까스의 소스는 두 집과 상당히 달랐다. 우스터 소스의 향은 거의 나지 않았고 브라운 소스의 구수한 맛도 거의 없었다. 신맛과 단맛이 강했고, 과일 냄새가 났다. 후르츠 칵테일 깡통 등을 사용한 것으로 추측한다. 이런 새콤달콤한 소스를 돈까스 전체 위에 듬뿍 뿌려서, 돈까스의 맛 모두가 시고 단 맛이 강하게 느껴졌다. 좋게 말해 상큼하고 나쁘게 말하면 불량식품 같은 유치한 맛이다. 

 

5. 기타 및 총평

이 가게는 손님이 가장 많아 보이는 가게였다(다만 방문 시간의 영향이 있을 수 있다). 그리고 젊은이들이 많이 보인 금왕, 택시 기사들이 많이 보인 서울과 달리 장년층 이상, 노년층의 손님이 많이 보였다. 60이 넘어 보이는 아들이 어머니를 부축하고 들어가는 모습 등을 흔하게 볼 수 있었다. 시고 단 맛이 강해서 미식가에게는 마이너스 요소인지는 모르지만, 예전 추억을 되살리며 ‘돈까스 한 그릇’에서 만족감과 포만감을 느끼려는 사람에게는 좋은 선택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새콤달콤 자극적인 맛. 고급은 아니어도 맛은 있다”

 

 

맺는말

 

한 번에 돈까스집 세 집을 돌았다. 동행한 미모의 여인이 돈까스를 많이 먹지 않다 보니 그 몫까지 빼앗아 먹곤 해서 배가 터질 것 같았다. 죽돌의 말대로 금왕돈까스는 맛있었지만, 이건 어떤 의미에서 또다른 고문에 해당한다. 이 때 죽돌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죽돌: 불가사리님, 금왕돈까스는 잘 다녀오셨어요?

불가사리: 간 김에 서울돈까스, 오박사네돈까스도 다녀왔습니다.

죽돌:  ... ... 3개를 드셨다구요?

불가사리: 그럴 리가요. 동행 것도 좀 빼앗아 먹었으니 아마 4개는 될 겁니다.

죽돌: (잠시 침묵 후) 그러면 이제 지식편 2편, 쓰실 거죠?

불가사리: 기사식당 돈까스는 좀 더 먹어보고 쓸래요.

죽돌: ...?!? 어디를? 얼마나 더?

불가사리: 남산에, 다녀와야겠지요.

죽돌: (소근대는 말투로)이러면 완전 나가린데... 

불가사리: 뚝(전화를 끊음)

 

과연 불가사리의 남산 돈까스 대모험은 어떻게 될 것인가?

 

불가사리의 돈까스 대모험... 아니 소비 대모험, 다음 편도 기대하라구!

 

<계속>

Profi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