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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우리 애가 국어·영어·수학은 지지리 못하지만 음악·미술은 최고입니다! 서울대 갈 수 있겠죠?' 

 

학과에 따라 다르겠지만 과연 그 학생은 서울대를 무사히 갈 수 있을 것인가? 게다가 정보화시대를 맞아 교육과정이 개편 예정인데, 골자는 국·영·수 비중을 줄이고 소프트웨어의 이해라는 과목을 신설하고 비중을 몰아준 것이다. 그러고 모의고사를 봤더니 기존 우등생들이 국·영·수 성적도 그저 그렇고 소프트웨어의 이해라는 과목은 모조리 낙제하는 일이 벌어졌다. 그런데 전학생 테슬라는 그 과목 최고점을 받았고, 국·영·수도 기존 우등생들보다 낫다. 2021년 전기자동차 시장에서 일어난 일을 빗대면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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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자동차의 기본, 즉, 국·영·수라고 할 수 있는 건 주행거리와 성능이라고 생각한다. 주행거리와 성능을 위해서는 배터리, 모터, 인버터, 전자부품, 배선 기술 등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이건 기본이고 통합 전자제어 플랫폼+차량제어 소프트웨어가 미래 차의 핵심역량으로 떠오르고 있다.

 

최근 자동차 업계에서 국·영·수는 비중도 줄었고, 난이도 자체도 낮아졌다. 내연 기관 시대에는 자동차 업체 대부분이 포르쉐 같은 성능을 갖춘 상용차를 만들기 어려웠다. 포르쉐와 같은 무게 배분, 차량 거동은 흉내 내기 어렵다. 그게 포르쉐가 독보적인 이유였다.

 

도요타는 도요타대로 고장 없는 차를 그 가격에 만들기 어렵기에 경쟁력이 있었다. 내연기관 차의 엔진과 변속기는 기계공학의 결정체이자 예술과 같은 것이라 수십 년에 걸친 기술적 격차와 노하우를 완전히 따라잡는 건 불가능하다. 성능도 좋고 고장도 적은 차를 대량생산 하는 건 그만큼 어려운 일이다.

 

반면에 전기차는 신생 중국업체들도 기존 자동차 업체에 비해 성능이나 주행거리가 부족하지 않다. 전기차 파워트레인은 구조적으로 고장이 적을 수밖에 없기에 고장률에서 큰 격차를 만들 수 없다. 무게 배분이나 차량 거동은 배터리가 바닥에 깔리는 스케이트보드 형태의 구조 때문에 다들 비슷해진다. 즉, 전기차 파워트레인은 기업 간의 기술적 격차를 크게 줄일 수밖에 없다. 이미 상향 평준화가 시작되었다.

 

3.

물론 자동차는 스펙만으로 단순 비교할 수 없다. 차량의 주행 질감인 무게 배분과 서스펜션 세팅, 자동차 디자인, 인테리어, 차량 방음, 편리한 옵션, 브랜드가 가진 이미지 등 수없이 많은 포인트가 있다.

 

그렇다면 이것들이 과연 전기차의 핵심인 주행거리, 성능, OTA 지원, 통합 OS 완성도의 격차를 뛰어넘을 만한 강점일까? 개인에 따라 다르겠지만 시장 전체로 본다면 소비자 다수는 상품성과 가성비를 따라갈 수밖에 없다.

 

벤츠와 BMW의 럭셔리한 브랜드 이미지는 그동안 쌓은 기술력과 그에 대한 신뢰 덕분이다. 이제까지 그들의 핵심 경쟁력은 주로 파워트레인의 기술적 우수성에서 나왔다. 전기차의 파워트레인 모터와 배터리 기술에서 밀렸는데,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을까? 미래 차의 핵심은 소프트웨어에 달려있는데, FOTA 지원, 통합 OS는 아직 시작도 못 했다. 기술력 뒷받침 없는 럭셔리 이미지는 언제까지 지속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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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플랫폼을 장악하고 거기서 나온 데이터를 이용하여 서비스를 제공하는 비즈니스 모델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아마존, 구글, 마이크로소프트에서 봐 왔다. 그런데 아마존, 구글의 데이터 플랫폼 사각지대가 있었으니 바로 자동차 분야다. 

 

올해 AI DAY에서 테슬라는 구글, 엔비디아 등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테크기업임을 증명했다. 올해 테슬라는 단순히 자동차 메이커라기 보다는 데이터 비즈니스 기업·AI 기업으로서의 가능성을 다시 확인했다. 칩 설계 능력이 있으면 컴퓨팅파워나 빅데이터 같은 게 부족하거나 해서 뭔가 하나 아쉬운 게 일반적이다. 그런데 테슬라는 칩 설계부터 소프트웨어 빅데이터까지 모두 갖춘 완전체 AI 기업이다. 테슬라 외에 이게 가능한 건 전 지구상에 구글 정도밖에 없다.

 

기존 자동차 메이커들이 이런 거 잘할 거라 기대하는 사람은 없다. 단순히 자금이나 경험 문제가 아니고 기업의 체질과 문화가 너무나 다르기 때문이다. 현대자동차가 이커머스에 갑자기 뛰어들어서 네이버 수준으로 할 수 있을 거라 기대하기 어려운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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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소프트웨어의 이해 과목에서 낙제했기 때문에 기존의 우등생들이 점수를 조금이라도 따라잡을 방법은 국·영·수 점수를 조금이라도 더 높이는 것뿐이다. 그런데 2021년 모의고사 결과를 보면 전학생 테슬라가 국·영·수에서도 앞서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5년 전만 해도 기존 자동차 메이커들이 마음만 먹으면 테슬라쯤은 금방 따라잡을 수 있을 거라 장담했다. 5년이 흐른 지금, 최근에 나온 BMW iX 를 살펴보자. 1회 충전 주행거리는 313km에 1억 2260만 원이다. 가격이나 사이즈로나 모델 X 롱레인지가 경쟁모델이 된다. 모델 X는 1회 충전 주행거리는 438km이다. 제로백도 3.9초인데 비해 BMW iX는 6.1초로 비교가 안 된다.

 

이건 하나의 예에 불과하고 메이저 업체 전기차 대부분 주행가능 거리가 테슬라의 70-80%대에 불과하다. 제로백에서 테슬라와 감히 비벼볼 만한 건 아직도 포르쉐 타이칸 정도 밖에 없다. 국·영·수에서 크게 앞서도 경쟁이 될까 말까 한데, 국·영·수에서마저 뒤처져 있다. 하드웨어가 테슬라를 월등히 능가해도 그때야 테슬라와 경쟁이 될까 말까 한데, 하드웨어에서도 크게 뒤져있다는 성적표를 다시 한 번 확인했다.

 

6.

"테슬라는 요리법만 가진 가짜 식당"이란 게 도요타 회장의 생각이었다. 올해 테슬라는 100만 대 가까이 생산 예정이다. 테슬라의 대량 생산능력은 충분히 입증되었다. 공장 올리는 속도를 생각하면 매년 50% 성장이 거의 확실하다. 도요타만큼 큰 집은 아니지만, 더 이상 레시피만 있는 집이라고 부를 수는 없다.

 

기존의 자동차 메이커들은 음식을 팔고 음식값을 받는다는 식의 전통적 비즈니스 모델에 충실하다. 반면 테슬라의 데이터 비즈니스가 자리 잡는다면 테슬라는 더 이상 식당이 아니게 된다. 여전히 음식도 팔겠지만, 그 집에 입장해야 비즈니스 기회가 생기기에 입장료를 받아도 되고 광고를 해도 되고 중개수수료를 받아도 된다. 테슬라가 플랫폼이다.

 

기존 자동차 메이커들 전기자동차 시장에서 성능과 전비로 테슬라를 따라잡기는 지금 당장 어렵다. 테슬라와 견줄만한 성능으로 나오려면 폭스바겐 MEB, 현대 E-GMP 플랫폼으로는 힘들다. 다음 플랫폼이 나와야 현재 테슬라와 겨우 비벼볼 수 있을 텐데 연구개발 주기를 생각하면 최소 2~3년 후에야 가능하다. 2~3년 뒤에야 지금의 테슬라와 대등한 수준의 물건을 내놓을 가능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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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현대자동차 공식 홈페이지>

 

7.

다시 말해, 최소 몇 년간 전기차 시장에서 아무도 테슬라를 막을 수 없다. 2~3년간 무적상태를 켰다고 봐도 된다.

 

제조 기술과 생산능력이 압도적이기에 마음만 먹으면 금방 따라잡는다는 얘기는 이제 그만 놓아줘도 된다. 10년 전부터 하던 얘기이고 10번쯤 틀렸으면 이제 그런 미신은 놔줘야 한다. 전기차는 곧 배터리이기에 공장이 아무리 많아도 배터리가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기존 업계의 모든 계획이 차질 없이 진행되어도, 배터리 공급 문제 때문에 제약이 걸린 채로 시작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기존 업체들의 수십 년 축적된 제조 기술도 전기차로 와서는 큰 소용이 없다. 전기차 기술과 내연기관 기술은 전혀 다르다. 내연차 기술의 주전공이 기계공학이라면 전기차 기술의 주전공은 전자공학이다. 

 

씨바 아무도 나를 막을 순 없으셈 ㅋㅋ.jpg

 

2022년은 미국 전기차 시장에서 매우 중요한 해이다. 바이든 행정부의 보조금 지급이 확대되고, 전기차 충전 네트워크 투자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때문이다. 전기차에 소극적이었던 세계 최대 시장이 태도를 바꾸는 원년이 될 예정이다.

 

경쟁자들도 슬슬 본격적으로 참여하기 시작했다. 전기차 시장 자체가 급히 팽창하고 있기 때문에 전기차가 쏟아지더라도 당분간은 동반 성장하리라고 생각한다.

 

2022년, 전기차 대전환의 원년에도 테슬라의 매출과 마진은 당연히 좋을 것으로 생각한다. 2021년 압도적인 기술격차를 확인시켜 줬고, 양산까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테슬라의 기술우위와 매출 증가는 당분간 상수로 보고 있어도 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