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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기사 요약

 

1997년 주권 반환 이후, 중국 정부는 홍콩인 다시 만들기 작업을 진행했다. 홍콩 ‘시민’을 중국 ‘국민’으로 만드는 과정이다. 2020년 국가보안법 발효 이후로는 강도가 더 세졌다. 올해(2022)부터는 홍콩의 모든 초중등학교에 중화인민공화국의 국기인 오성홍기가 게양된다. 매주 1회 게양식을 하고 국가를 제창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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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권 반환 이후 홍콩 정부 내에는 국민교육센터가 들어섰고 시민, 학생, 공무원 등을 대상으로 여러 방식의 교육이 추진되었다. 그중 하나가 ‘프로파간다’다(방법1).

 

2004년 10월부터 홍콩인들은 텔레비전을 통해서 ‘조국’을 학습해야 했다. 하루 두 차례씩 뉴스를 보기 전에 중국 국가 ‘의용군행진곡’이 나오는 영상이 방송되었다. ‘마음은 조국과 하나(心繫家國)’라는 제목의 짧은 영상(45초)이었다(이후 여러 차례 업데이트되었다).

 

홍콩의 정체성이 뚜렷한 사람들은 그것을 ‘세뇌’작업이라고 했고, 중국의 정체성을 자랑하는 사람들은 그것을 두뇌가 건강해지는 ‘건뇌’공부라고 했다. 중국 정부로서는 홍콩인들의 성장환경을 바꾸어야만 했다. 조국이 실제적으로 돌아왔음을 알려주어야 했다.  

 

(자세한 내용은 지난 편에서, 링크)

 

 

홍콩인을 중국인으로 만드는 방법

 

방법 2 : 역사 교육

 

주권 반환 이전인 1995년부터 중국 정부는 홍콩의 교과서에 대한 전면적인 개정을 요구했다. 1997년 반환 직전에도 역사 교과서를 다시 써야 한다고 요구했다. 반환 직후인 1997년 9월, 학생들의 신학기가 시작되었는데, 중국 역사 교과서는 이전보다 얇아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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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역사 교과서들

 

중국 정부가 싫어할 만한 내용, 즉, 대만과 티베트의 역사, 1957년 대약진운동이 야기한 대기아 현상, 1970년대 말의 민주화운동과 1989년의 64 천안문 민주화운동 등의 내용을 삭제하거나 축소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1997년 전의 교과서에서 무역 충돌로만 묘사되던 2차례 아편전쟁과 (시진핑 주석에게도 영향을 주었던) 문화대혁명 등의 내용은 큰 폭으로 늘어났다. 이렇게 본다면 역사는 승자나 권력이 자기 마음대로 편집하는 ‘소설’ 같기도 하다.  

 

2015년에는 홍콩 교육당국이 중학교 ‘중국 역사’ 과목의 개정을 추진했다. 홍콩역사 과목을 중국 역사 과목 속에 넣는 것이다. 홍콩역사를 단지 중국 역사의 일부로 인식 시켜 홍콩독립 의식의 대두를 방지코자 하는 노력의 일환이다. 

 

교육당국의 문건에는 ‘중국 역사의 편견과 진상’이라는 제목의 표가 붙어있었다. 내용은 아래와 같다.

 

국가 근대 발전의 역정을 이해해야만 오늘날 동포와 공동 기억을 함께 누릴 수 있으며, 

함께 슬퍼하고 기뻐할 수 있어야만, 국가와 민족에 대한 감정을 배양할 수 있다.

주권 반환 이후의 국가를 인식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며, 민심이 원하는 바이다.  

 

한마디로 국가와 민족을 인식시키기 위하여, 근대사 교육을 강화하겠다는 뜻이다. 특이한 점은 감정 배양을 특별히 강조한다. 새로운 세계관, 즉, 정체성을 만들기 위한 조치라고 읽히는데 공산당이 주도하는 이데올로기 안에서 국가와 민족이라는 애국주의를 돌출시켜 피교육자의 감정을 자극하는 교육이다(중국의 교육과 같은 방식이다). 근대사 교육을 강화한다는 것은 앞에서도 여러 번 언급한 것처럼 중국공산당의 역사관을 주입하겠다는 의도다. 

 

즉, 아편전쟁 당시부터 청나라(만주족)가 무능해서 제국주의가 중국을 마음대로 유린했다는 내용을 반복, 강조한다. 당연히 신문화운동의 적통을 이어받은 중국공산당이 중화민족의 자존심을 회복시켰다는 스토리가 따라온다. 이제 세계 강대국이라는 ‘중국몽’을 위해 일치단결해서 나아가야 한다는 다짐도 빠트릴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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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1월, 홍콩 입법회의는 중고등학교에서 ‘중국 역사’를 단일 필수과목으로 지정해야 한다는 안건을 통과시켰다. 친중국계는 당시 최대 현안으로 떠오른 홍콩의 ‘분리 독립’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법안이라고 환영했고, 야당은 애국 교육이라는 미명하에 세뇌 교육이 진행될 것이라며 반대했다.  

 

주권 반환 이후, 중국 정부는 홍콩의 역사 관련 교과서를 다시 만들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했다. 2020년 6월 말 홍콩에서 『국가보안법』이 발효된 직후에도 중국의 인민일보는 지금의 교과서도 “독(毒)이 든 교과서”라 하며, 이 교과서 때문에 홍콩 학생들이 망가지고 “싹수가 노랗다”고 했다. 

 

이러한 중국의 움직임에 대한 반발로 민간에서는 2020년부터 ‘홍콩역사’ 열풍이 불고 있다. 

 

「간략한 홍콩 역사」, 「공백의 1백년-교과서가 가르쳐주지 않는 홍콩역사」 등 ‘교과서가 가르쳐주지 않는’ 이라는 제목의 책들이 속속 출판되고 있다. 2021년 9월 (홍콩 본토의식을 강조하는) 전문서점인 ‘서언서실’의 판매순위 1-2위는 각각 「시대의 행동자 – 송환법 반대 운동의 군상」과 「간략한 홍콩 역사」였다.  

 

교과서는 계속 업데이트되어 최근에도 새로운 교과서 초안이 나왔다. 교과서는 ‘영국의 홍콩 통치는 국제법 위반’이라는 사실을 강조하면서, 홍콩인도 다름 아닌 중국인이라는 점을 강화했다. 

 

또 홍콩 교육국은 지난 11월, 초중등학교에 중일전쟁 당시 ‘난징대학살(1937년 12월 13일)'을 추모하는 활동과 강좌를 실시하라고 요구했다. 정부가 제공하는 자료에는 일본군이 시민을 처형하는 장면과 영유아들의 시신이 나열된 장면이 수록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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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리 람 홍콩 행정장관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행정장관은 역사를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면서, 역사를 알지 못하면 ‘일국양제’의 중요성과 독특함을 알 수 없다고 했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일본의 죄상을 특별히 부각하는 것은 중국공산당의 근현대사 서술 방식에 있어 매우 중요한 원칙이다. 이제 언설로만 본다면 홍콩의 지도자와 중국의 지도자는 차이가 없어 보인다. 

 

 

방법 3 : 박물관 재편

 

주권반환 직후인 1998년 홍콩역사박물관은 현 위치로 확장 오픈했다. 첫 전시는 중국문화를 선양한다는 목표 아래 열린 ‘중국 고대 과학기술전’이었다. 알다시피 박물관은 학교와 마찬가지로 정부의 공식적인 교육기관으로 간주되는 공간이다. 

 

구소련은 1921년-1936년 사이에 542개의 박물관을 만들었다. 독일도 1-2차 세계대전 사이에 2천 개 이상의 박물관을 건립했다. 국가에 대한 자부심을 회복시킨다는 것이 목적이었다. 대한민국역사박물관도 당초 ‘국민의 자긍심을 고양한다’는 목표로 추진되었다.

 

‘박물관은 가족, 학교, 저널리즘 등과 같은 국민통합을 위한 이데올로기’라는 니시카와 나가오의 경고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원래 그렇게 한가한 공간이 아니다. 박물관 고유의 권위 때문에 그 ‘가르침’이 관람객들에게 ‘절대 진리’로 수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 이 시간에도 세계 곳곳에서 박물관의 ‘가르침’은 어린아이부터 노인들에게까지 무차별적으로 던져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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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역사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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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역사박물관 내부 사진

 

중국으로 주권이 반환되는 즈음에 다시 오픈한 홍콩역사박물관 역시 남다른 목표를 가지고 있었다. 자신만의 지역적 정체성이 뚜렷해서 ‘엇나가는’ 홍콩인들을 가르쳐야 했다. 저 ‘비참한’ 영국 식민지로부터 ‘행복한’ 조국의 품속으로 데리고 오고자 했다. 

 

중국인이나 홍콩인이나 모두가 같은 민족임을, 대륙이나 홍콩이나 같은 지질대임을, 홍콩지역이 오래전부터 중국의 행정구역에 속했음을 강조하는 공간이어야 했다. 구석기 시대부터 역사적으로 면면히 이어져 오는 유대성을 강조해야 했다. 풍속과 음식이 같다고 해야 했다. 

 

홍콩섬과 구룡반도가 절대 내버려진 공간이 아니었고, 중국이 아끼고 아끼던 땅임을 강조해야 했다. 그 중요한 땅을 빼앗아 간 제국주의를 부각하고, ‘천인공노할’ 아편을 대량으로 밀수출한 영국의 파렴치함을 대대적으로 선전해야만 했다. 무엇보다도 ‘난징조약’이라는 ‘불평등조약’으로 홍콩이 강탈당했음을 누누이 강조하는 것이 중요했다. 

 

해서 아편전쟁만을 크게 부각하는 전시실을 따로 만들었다. 무기 수준으로 볼 때, 처음부터 상대가 안 되는 어른과 어린아이의 전쟁이었음을 거듭 말하고 있다. 늘 그렇듯 열악한 조건에서도 민족의 자존심을 세우기 위해 끝까지 싸운 주인공이 필요했다. 제국주의를 노려보는 듯한 이미지의 임칙서 동상이 지금도 전시실 중앙을 차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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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역사박물관의 임칙서 동상

출처-<김동하 작가의 두피디아 여행기 시리즈>

 

당연히 통일된 중국의 모습을 부각해야지, 지역으로서 홍콩의 정체성이 중시되는 전시가 되어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식민지 155년 동안 홍콩이 자신만의 정체성을 만들어 왔다거나, 그 정체성이 소중하다거나, 그 정체성을 지켜주자는 내용은 절대 등장해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중국공산당의 치부인 ‘67폭동(홍콩에서의 문화대혁명)’이나 ‘64 민주화운동(천안문)’에 대한 언급은 하지 말아야 한다. 하지만 너무나 중요한 역사적 사건이기에 그냥 지나가면 박물관 전체의 권위를 의심받게 되니까, 그저 한두 줄로 끝낸다.  

 

중국으로서는, 중국공산당으로서는, 주권 반환이라는 위대한 업적은 아무리 자랑하더라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제국주의의 횡포에 의해 99년간 빌려준 땅을 돌려받는 것만 해도 대단한데, 영구적으로 주어버린 홍콩섬과 구룡반도를 한꺼번에 돌려받았다. 당연히 ‘회귀’라는 이름을 단 중국 전통 가옥 형태의 특별한 방을 만들어 홍보하고 있다. 주권을 반환받는 장면을 동영상으로 보여주고 있고, 그 사실을 1면 톱으로 보도하고 있는 세계 신문들로 벽을 도배했다.

 

여덟 개의 전시실 중엔 일본 점령시기도 따로 두고 있다. 3년 8개월이라는 시간으로 보면 짧지만 중국공산당식의 역사관에서는 절대 약하게 취급할 수 없는 사안이다. 홍콩역사박물관의 홍콩스토리에는 일본의 통치에 대해 단 한마디의 긍정적인 서술도 나타나지 않는다. 영국 점령 시기 전체를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는 것과 비교해서 그렇다. 

 

(최근 동아시아에서 일본의 통치에 대한 비교 연구가 활발하다. 대만을 통치했던 일본과 국민당은 자주 비교되는 케이스 중 하나다. 대만인들은 국민당의 통치 방식을 일본의 그것과 사사건건 비교했다. 그래서 국민당을 더 미워하는 사람이 많다) 

 

중국공산당은 숙청과 복권의 정치를 반복한다. 복권을 중국어로 ‘평반(平反)’이라고 한다. 틀린 것을 바로 잡는다는 뜻이다. 홍콩의 주권이 중국으로 반환되었으니, 당연히 홍콩의 역사에 대한 재평가가 뒤따라야 할 것이었다. 제국주의 영국의 치하에서 ‘옳게’ 평가받지 못한 경우를 복권해야 하는 것이다. 어디 중국뿐이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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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폭동은 반영 폭동으로 홍콩판 문화대혁명이다.

영국의 통치행태에 불만이 폭발하며 시위가 터졌다.

첫 시작은 비폭력이었으나 중국의 문화대혁명 영향으로

폭력 시위로 발전했다. 

 

홍콩(중국) 정부는 우선 홍콩인들의 가장 큰 집단기억이라고 할 수 있는 ‘67폭동’에 대한 기억을 재편하기로 했다. ‘67폭동’과 관련된 좌파 인사들을 재평가하고 찬양했다. 홍콩인들이나 홍콩 정부로부터 수십 년 동안 비판받아온 인사들과 활동에 대해 ‘홍콩 사회에 탁월한 공헌’을 했다며 ‘평반’했다. 1967년 ‘폭동’ 당시 친중국계 노동조합 지도자들(투쟁위원회 위원)에게 훈장을 수여했으며, 1950-60년대에 급진좌파에 내려진 수배령을 해제하기도 했다(67 폭동 관련 기사 ‘중국보다 영국에 기운 결정적 사건, 문화대혁명’ 링크).

 

홍콩(중국) 정부는 또 일본 식민지 시기, 홍콩 일대에서 활동했던 중국공산당의 항일유격대인 동강종대(東江縱隊, 광동 인민 항일 유격대 동강종대)를 선양하는 작업도 병행했다. 동강종대는 중국공산당이 지휘했던 유격 부대인데, 5백 명 정도로 6개 중대 조직이었다. 임무는 홍콩에 거주하는 문화계 인사와 외국인 포로를 구조하고, 일본군의 정보를 수집하며, 일본군의 교통시설을 파괴하고, 일본의 앞잡이를 처단하는 것이었다. 『문회보文匯報』와 『대공보大公報』 등 친중국계 신문들은 기념행사와 함께 동강종대의 활동과 관련 인물들을 꾸준하게 발굴해오고 있다.  

 

류영하(백석대학교 중국어학과 교수)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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