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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를 둘러싼 이야기들이 심상치 않게 흘러가고 있다. 새벽에 대뜸 우크라이나 사태와 관련된 기사 링크를 보내고, 기사를 써야 한다는 압박을 보내는 누군가 때문에 며칠을 끙끙 앓았다. 우크라이나 사태에 관한 이야기를 한다면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난감하니까.  

 

최소한 1783년 크림칸국을 합병한 예카테리나 2세 이야기까지 거슬러 올라가야할까. 흠.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감정적인 관계를 설명하자면 구소련 시절, 스탈린이 일으킨 농업 집단화와 뒤이은 홀로도모르(Holodomor : 대기근)부터 시작해야 겠다. 

 

증오의 이유, 홀로도모르

 

구소련 시절, 우크라이나는 소련이 소비하는 식량의 1/4을 생산할 정도로 비옥한 토지를 가지고 있었다(땅덩이도 넓었다. 현재 유럽에서 프랑스보다 땅덩어리가 큰 게 우크라이나다). 문제는 스탈린의 ‘잘못된 생각’이었다.

 

“소련도 공업화를 하자! 그러려면 종잣돈이 필요한데, 우린 지금 돈이 없잖아? 대신에 우크라이나는 식량이 남아돌잖아! 오케이, 그럼 우크라이나 식량을 징발해서 수출하자! 서방에 우크라이나 식량을 수출한 돈으로 설비와 자재를 구입하면... 소련도 공업화를 할 수 있어!”

 

상황이 이렇게 돌아가자, 농민들이 들고일어났다.

 

“아니, 씨바, 뼈 빠지게 농사 지어놨더니만 우리 거 뺏어간다고? 그럼 우리 농사 안 지을래!”

 

어차피 뺏길 거 가축들은 다 잡아먹고, 농사지을 말들은 굶겨 죽이거나 방치했다. 가축들을 먹일 사료가 부족해졌고(어차피 농사를 안 지었기에). 어차피 농사지어도 빼앗길 것이기에 농민들은 땅을 버리고 루마니아로 도망가기에 이르렀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스탈린이 한마디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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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탈린

사진 출처 - 핀터레스트

 

“막아!”

 

군대를 동원해 농부들이 도망가지 못하게 한 거다(실제로 철조망을 치고 막았다). 이런 상황에서 1932년 가뭄이 들었다. 그렇게 홀로도모르가 시작됐다. 소련 최대의 곡창지대였던 우크라이나에 굶어죽는 사람이 속출하게 된 거다. 당시 우크라이나 인구 3천만 명 중 6백~1천만 명이 굶어 죽었다는 통계가 나왔다.

 

(지금도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에 대한 감정이 좋지 않은 가장 큰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이 홀로도모르 때문이다. 우크라이나 사람들은 홀로도모르가 스탈린이 기획한 ‘의도적인 학살’로 의심하고 있다. 이 때문에 우크라이나는 이 홀로도모르를 ‘집단학살’로 규정하도록 UN에 계속 요구하고 있다.

 

“이건 러시아 새끼들이 의도적으로 한 짓이라니까!”

 

당연히 러시아는 이에 반발한다. 딱봐도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사이에 서로 ‘감정’이 있을 거 같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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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도모르 희생자 추모비

 

후르시초프의 실수 

 

민족적인 특징에 대해 설명하려고 해도 애매하다. 우크라이나는 10세기부터 ‘키예프 공국’으로 불렸던 동네다(나름 유럽에서 그 입지를 다진 동네다). 그러다가 징기스칸 형한테 박살이 나기도 하고(그 당시에 칸 형한테 밟힌 게 어디 한두 나라겠냐만), 나중에 좀 살만해지니까 폴란드와 러시아가 사이좋게 나눠 먹었고, 18세기가 되면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과 러시아가 다시 우크라이나 땅을 나눠 먹었다. 그러나 1차 대전이 끝나고 나서는 폴란드와 소련이 이 땅을 나눠 먹게 된다.

 

국경선이 이리저리 쪼개지고, 갈라지고, 나라가 사라지고 만들어지는 게 다반사인 유럽에서 우크라이나 같은 경우는 일상다반사다. 굳이 이렇게 우크라이나의 ‘단편’들을 먼저 말하는 건, 지금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관계가 하루 이틀 사이에 이렇게 나빠진 게 아니란 사실을 밝히기 위해서다.

 

이렇게 갈라지고 쪼개진 건 지금 크림반도 상황과도 맞물린다. 우크라이나 민족 구성비를 보면,

 

우크라이나인 : 77.8%

 

러시아계 : 17.3%

 

타타르를 비롯한 소수민족 : 4.9%

 

이다. 민족적으로는 우크라이나인이 많아 보이는데, 문제는 지역별로 나눠진 ‘분위기’다. 우크라이나의 분위기를 나누는 건 드네프르 강이다. 드네프르 강을 중심으로 강 동쪽 지역은 러시아의 영향을 많이 받은 지역이다. 거기에 러시아에서 이주해 온 인구도 많다. 덕분에 동부지역은 전체 인구의 30% 이상이 러시아계다. 이러다 보니 당연히 러시아에 찬동하고, 러시아에 붙으려 한다. 대표적인 게 크림반도인데, 크림반도는 원래 ‘러시아’거다. 이게... 설명하면 복잡한데, 한마디로 말하면

 

“흐루시초프 개객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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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비에트 연방의 국가원수 겸

공산당 서기장이었던 흐루시초프

사진 출처 링크

 

가 맞을 거 같다. 물론 흐루시초프도 훗날 이 사달이 날지 몰랐을 거다. 원래 크림반도는 ‘예민한’ 땅이다.

 

(1954년 흐루시초프가 크림주를 우크라이나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에 양도했었다. 이건 그냥... 일종의 ‘정치쇼’였다. 그는 종종 우크라이나 출신이 아니냐는 오해를 받았는데, 정확히 따지자면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국경 사이에 있는 칼리노프카에서 태어났다. 물론, 그의 두 번째 부인이 우크라이나계이기도 하고, 그의 정치적 배경이 우크라이나였다는 것, 결정적으로 라자르 카가노비치 우크라이나 공산당 서기장의 후원에 힘입어 중앙 정계로 진출했다는 건... 뭐 그렇다는 거다.

 

나중에 소련 서기장이 되고 나서는,

 

“씨바! 우크라이나한테 크림반도 주자!”

 

라고 설레발쳤다. 당시 명분은 제정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병합 300주년을 맞이해,

 

“기분이다 너 가져!”

 

라는 거다. 그때는 이게 그리 큰 문제가 안 된 게, 이건 어디까지나 서류상의 문제였을 뿐이다. 왜? 당시에 소련과 우크라이나는 한 나라와 같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게 훗날 큰 문제가 된다. 소련이 붕괴되면서 우크라이나가 뚝 떨어져 나가게 된 거다. 우크라이나가 독립할 당시, 크림반도를 다시 돌려받아야 한다는 말이 나왔으나 그때는 유야무야 넘어갔다. 이때 단도리를 했으면 훗날 전쟁까지는 나지 않았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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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많고 탈 많은 크림반도... 

사진 출처 링크

 

 

망치를 집어든 푸틴

 

부동항에 대한 끝없는 갈망을 내비친 러시아 입장에서 크림반도는... “생존” 그 자체를 의미했다. 바다로 나가는 관문이자, 흑해와 발칸반도 쪽으로 세력을 확장할 수 있는 교두보가 되는 게 크림반도다.

 

(역으로 말하면, 서방 세계가 여길 틀어막으면 러시아의 진출을 막을 수 있다는 소리가 된다. 영국과의 그레이트 게임 중 영국과 러시아가 맞붙은 크림전쟁이 그렇게 시작된 거다)

 

전략적으로 정말 중요한 위치이기에 소련이 붕괴됐을 당시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와 협상을 벌였다.

 

“씨발... 그래 각자 살림 차려서 나가는 건 좋은데... 세바스토폴을 내놔.”

 

“야... 그런 게 어딨어? 주면 다 주는 거...”

 

“이 색희가... 좋게 좋게 말로 풀려고 하니까 누굴 호구로 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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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바스토플 해군기지의 위치는

위 자료 사진을 참고하시라.

사진 출처 - 연합뉴스

 

결국 2042년까지 세바스토폴 해군기지에 러시아 흑해함대를 주둔시키겠다는 협정을 맺게 된다(이거 한 차례 연장된 거다. 뭐, 나중에 크림 반도 자체를 먹어버리니). 러시아로서도 크림반도를 포기할 수는 없었던 거다.

 

(크림반도는 미국의 괌과 비교해 볼 만 하다. 괌의 앤더슨 공군기지는 중국, 한반도, 일본, 동남아시아 각국을 커버할 수 있는... 정말 절묘한 위치에 박혀 있다. 이 때문에 미국은 괌에 대한 방어에 열을 올리고 있다. 우리나라에 뭔 일 터지면, 괌에서 폭격기가 날아오는 게 바로 그런 이유다. 같은 의미로 크림반도에 위치한 카차(kacha), 심페로폴(simferopol) 같은 곳에도 공군기지가 있다. 이 공군기지는 유럽 전 지역을 커버할 수 있다. 전략적으로 정말 중요한 위치란 소리다)

 

이야기가 길어졌는데, 어쨌든 이 크림반도의 경우 인구 200만 명 중 러시아인의 비율이 56%를 넘어갔다(우크라이나계는 24% 밖에 안 된다).

 

역사적으로도 러시아에 가깝고, 인구도 많고, 전략적으로 중요한 이 땅을, 러시아가 가만 내버려둔다면 그게 더 이상한 거다. 러시아가 크림반도를 병합했던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까놓고 말해 러시아가 지금 이러는 건, 어느 정도는 이해가 간다. 내가 푸틴이었다면

 

“아니 씨바, 우리가 아무리 호구로 보여도 이건 너무한 거 아냐?”

 

라고 말했을 거 같다. 지금 러시아가 하는 ‘일’을 보자면 이런 생각이 든다.

 

하나, 러시아가 빡칠만 했다.

 

둘, 푸틴이 정말 머리를 잘 쓰고 있다.

 

셋, 근데 러시아가 정말 쓸 카드가 별로 없다.

 

뭐, 위에서 너무 우크라이나 입장에서 서술한 거 아니냐 반문할 수 있는데, 사태의 원인은 러시아의 ‘불안감’에서 시작된 거다. 그러니까 러시아에서 그 원인을 찾아야 한다(연재물에서 계속 이어나가겠다).

 

다 떠나서 국제사회는 ‘힘’의 논리대로 움직인다. 지금 핵심은 무너진 패권국인 러시아가 자기에게 칼날이 다가오는 걸 보고는 인상을 찌푸리며 망치를 집어든 상황이 된 거다. 그 망치를 내려칠지, 아니면 단순히 흔들면서 위협을 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소련 시절에 비해 러시아가 내놓을 카드의 숫자가 그리 많아 보이지 않다는 거다. 러시아가 지금 상황에서 내놓을 수 있는 최대의 카드가 ‘전쟁’이다. 그거 말고 가스관도 있고, 가스관도 있고, 가스관도 있지만...

 

후아. 어쨌든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사이에서는 정말로 많은 일들이 있었다. 그걸 알아야 지금의 일들이 이해되는데 한 편에 당장 다 풀어내는 건 어려울 거 같고, 키워드 별로 하나씩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관계를 정리해 보겠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