딴지에 리뷰노예로 납치된 불가사리. 거액의 제작비로 복수하겠다. 다짐했지만, 딴지가 던져준 주제는 온통 싸구려들. 편집장 죽지않는돌고래(이하 죽돌)는 ‘맛집 리뷰’를 하라고 불가사리를 설레게 했으나, 굳이 ‘돈까스’라는 주제를 제시한다. 불가사리는 실망했지만 남산으로 향했고, 박기태 변호사라는 자를 만나 돈까스 대결을 시작한다. 과연 불가사리는 성공적으로 딴지의 등골을 빼먹을 수 있을까?
불가사리의 소비 대모험, 기대하라구!
헤르지아(무한도전) 돈까스
이제 겨우 10시 반, 림돈까스(지난 기사 링크)에서 느낀 실망을 안고 새로운 가게를 찾아서 두리번거리다, 문이 열려 있는 가게를 발견했다. 그런데 간판을 보고 불가사리와 박기태 변호사는 말을 잇지 못했다.
박변: 이 집은 안 가는 게 어떨까요...
불가사리: ...그래도 가야죠. 배고픕니다.
가게의 이름이 무엇인지도 불분명한 이 간판. 유재석이 나와서 서빙하고 정준하가 요리를 해야 할 것 같은 이 가게. 가게 앞에 방송에 나온 경력이 많을수록 맛없는 가게라는 평소 지론을 가지고 있던 불가사리로서는, 가게 이름이 뭔지 보이지 않을 정도로 간판에 방송명을 걸어놓은 이 장소는 들어가기가 꺼려지는 곳이었다.
막상 들어가니, 가게 이름이 ‘무한도전’이 아니라 ‘헤르지아’임을 알 수 있었고, 생각보다 깔끔한 분위기다. 남산 돈까스집 중에서 가장 깔끔한 것 같다. 그리고 메뉴도 좀 독특한데, 돈까스 외에 비빔밥, 묵사발, 멍게(응?) 등을 판매하는 림돈까스까지는 아니어도 주로 비빔밥이나 해장국 등을 따로 판매하는 다른 가게들과 달리, 피자와 파스타를 팔고 있다. 상식적이나 남산의 다른 집들과는 사뭇 달랐다.
생각보다 깔끔한 분위기. 박변이 찍은 사진이라,
불가사리의 모습이 보인다.
사진에서 보이는 메뉴를 보면,
피자 파스타 돈까스 3종이 주류인 것 같다.
메뉴에서 느껴지듯, ‘헤르지아 왕돈까스’라는 이 가게는 2010년경까지만 해도 스테이크, 파스타, 피자를 팔던 레스토랑이었다. 거의 10년 정도 레스토랑으로 운영하였는데, 돈까스 인기가 많아지면서 돈까스도 함께 팔기 시작하다가, 2018년 무한도전에 나온 것을 계기로 과거의 깔끔하고 멋진 익스테리어를 모두 교체한 것으로 보인다.
헤르지아, 2009년에는 깔끔한 레스토랑이었다가
2021년에는 무한도전 왕돈까스가 되었다.
그런데도 잘 보면 건물을 거의 그대로 사용하고 있고, 메뉴 등에서 과거 레스토랑이었을 때의 흔적이 보이는 것 같다. 그렇다면 맛은 어떨까? BDM(Bulgasari Don-ggassu Method)을 이용하여 맛을 분석해 보았다.
1. 수프와 가니시(곁들여 나오는 것)
오뚜기 스프가 아니다! 버터를 볶아 루를 내어 만든 스프인 것이 거의 확실하다. 게다가 야채 육수 맛도 살짝 난다. 다만 그것에 확신이 없었는지, 오뚜기 스프를 조금은 뿌린 것 같은 맛이다. 고소하고 맛이 괜찮아서 과연 레스토랑 출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곁들여 나오는 양상추는 특별한 것은 없었지만 모양에 조금은 신경 쓴 느낌이고, 기사식당 돈까스 특유의 고추와 깍두기는 아주 좋다.
헤르지아의 돈까스
2. 고기의 두께와 맛
고기는 기사식당 돈까스의 평균 정도였고, 림돈까스보다는 두꺼웠다. 잘 두드렸고 아주 세게 익히지 않아 부드러웠다. 다만 너무 부드러워서 고기의 존재감이 좀 약한 것은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들었다.
3. 튀김옷과 빵가루, 기름
우선 빵가루는 일본식 빵코를 써서 큼직했고, 특이하게도 튀김옷은 굉장히 얇았다. 그래서 균형이 심각하게 떨어진다는 느낌은 아니었는데, 어쨌든 빵가루 크기가 있어서 고기의 존재감이 많이 약했다. 기름 냄새는 나지 않았고, 기름이 많이 배 있지도 않았다.
4. 소스의 맛과 어우러짐
이 가게에서 제일 특이한 것은 소스였다. 전체적으로 새콤달콤한 맛에 과일 맛과 향이 나는 스타일이었는데, 소스를 낼 때 버터를 넣었는지 부드럽고 버터 향이 확 났다. 그래서 단지 새콤달콤하기만 한 소스보다 좀 더 균형이 맞는 느낌이었다. 단맛도 설탕 맛보다는 과일 맛이 느껴져서 좋았다.
“적당히 나쁘지 않은 고기와 튀김옷, 맛있는 소스와 스프. 간판에 비해서는 맛있는 집”
이 정도면 꽤 괜찮은데, 무한도전 간판은 너무한 거 아니오...
1번지 남산돈까스
남산 돈까스에 대해 실망했던 마음을 복구했다. 그리고 림돈까스 바로 옆 가게인 ‘1번지 남산돈까스’에 갔다. 벽돌로 만들어진 건물은 근사했으나, 이른 시간에도 불구하고 앞에서 하는 호객행위가 너무 심해 조금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이 곳은 원래 ‘남산설렁탕’이라는 설렁탕집이 있던 곳이다. 30년 넘게 영업하면서 기사식당으로서 인기가 있었고, 2000년대 중후반부터는 일본인·중국인 단체 관광객을 받는 식당이 되기도 했다. 어쨌든 꽤 유명한 집이었는데, 어떤 이유에서인지 2017년부터 ‘1번지 남산돈가스’로 바뀌었다.
막상 메뉴판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헤르지아는 9,800원, 림돈까스가 12,000원이라 비싸다고 생각했는데, 여긴 13,500원이다! 게다가 가장 충격적인 것은 림돈까스와 메뉴판의 폰트·종이·코팅의 질 등이 같았다. 스프와 반찬 등이 셀프라는 점도 같았다. 림돈까스의 기억이 그닥 좋지 않았던 입장에서 불안함에 휩싸이기 시작했다.
남산돈까스와 림돈까스 메뉴판 비교
이렇게 비싼 가게에서 스프를 셀프로 한다는 것은 기본적으로 자세가 안 되어 있는 것은 아닌가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코로나 시국에 뷔페도 장갑을 끼는 등, 여러 조치가 있는 상황에서 이렇게 무방비하다니 일단 마이너스, 들어간다.
본격적으로 돈까스를 시식해본다.
1. 수프와 가니시(곁들여 나오는 것)
오뚜기 스프다. 그 이상 없다. 가니시로 나오는 양배추와 옥수수 통조림은 성의 없다는 느낌이 들고, 다만 기사식당 돈까스 특유의 고추와 깍두기는 아주 좋다.
2. 고기의 두께와 맛
고기는 남산에서 맛본 돈까스 중 가장 두꺼운 편이었다. 익힘의 정도는 나쁘지 않았고, 씹히는 맛도 꽤 느껴져서 생각보다는 괜찮았다. 다만 기사식당 돈까스 치고는 좀 두껍고 다른 스타일치고는 얇은 두께가 조금 애매한 느낌은 있었다.
3. 튀김옷과 빵가루, 기름
이 집은 고기가 두꺼운 만큼 튀김옷도 가장 두꺼웠다. 빵가루도 컸고, 기름 냄새와 맛도 많이 났다. 이 점은 림돈까스와 비슷했지만, 다른 점은 림돈까스처럼 튀김옷과 고기가 따로 놀지는 않았고, 고기도 림돈까스보다 두껍다 보니 균형이 그렇게 떨어지는 느낌은 아니었다. 즉, 림돈까스보다는 나았지만, 대단히 맛있다고 할 수는 없었다. 13,500원이라는 가격을 생각하면 더더욱.
4. 소스의 맛과 어우러짐
모든 것이 평범한 느낌인 이 가게에서 조금 특이한 것은 소스였다. 신맛과 단맛이 거의 없는 브라운 소스 같은 느낌이었는데, 특이하게 가쓰오부시 같은 향이 났다. 다만 아주 잘 어울리는 느낌은 아니었고, 신맛과 단맛이 적다 보니 기름 냄새·맛과 어우러져 느끼한 느낌이 많이 들었다.
“이게 13,500원이라고?”
나오는데 호객을 하던 주차요원과 눈이 마주쳤는데, 주차요원이 웃으며 ‘아이 가실 거면 미리 말하시지. 제가 커피 한 잔, 음료 한 잔 서비스는 드리라고 해놨을 텐데’라고 한다. 4,000원에 팔고 있는 커피 한 잔이 포함된 가격이라고 생각하니 납득이 된다만, 솔직히 케이블카 타러 온 손님들에게 호객행위로 비싼 돈까스를 파는 느낌이 들어 기분이 산뜻하지 않았다.
촛불1978
이게 남산 돈까스의 전부인가? 헤르지아는 그나마 조금 괜찮았던 집에 불과한 것인가? 남산 돈까스집에는 기대할 것이 없는 것인가? 솔직히 불가사리는 좌절했고, 사실 더는 돈까스를 먹고 싶은 욕망이 모두 사라졌다. 그리고..
불가사리: 아무래도 남산 돈까스에 기대할 필요가 없는 것 같아요. 그만 하면 어떨까요.
박변: (못 들은 척) 다음은 어디입니까? 배고픕니다.
아니 돈까스 두 개를 안남기고 다 먹었는데 또 배고프다고..
그래서 향한 곳은, 지난 기사에서 말했듯 이 동네에서 돈까스를 가장 먼저 판 집으로 보이는 곳, 오랫동안 경양식집이 있던 곳, 바로 ‘촛불1978’ 이었다.
2000년대 중반의 모습
현재의 모습
가게가 열려 있기에 들어갔다. 그런데 뭔가 분위기가 썰렁하다. 이제 11시가 넘었는데 아직도 영업하지 않는 것인가? 1층은 심지어 아예 영업하지 않는 듯 들어갈 수 없게 되어 있다. 두 장정이 두리번거리고 있는데 누군가 온다.
사장님: 어떻게 오셨어요?
불가사리: 아.. 여기 돈까스 파나요?
사장님: 돈까스요? 미안해서 어쩌나..
불가사리: 코로나 때문에 영업을 안 하시는 건가요?
사장님: 코로나도 있지만, 우리 돈까스 안 판지는 한참 되었어요. 1층은 카페로만 운영하고, 2층은 예약받아서 프러포즈 레스토랑으로만 해요.
박변: 알겠습니다(뒤돌아선다).
사장님: (황급히) 아니 근데 아시잖아요? 여기랑 산채집이 같은 집이에요. 옆에 산채집에서 돈까스 드시면 저희집 돈까스니까 꼭 거기서 드시고 가세요.
불가사리: 산채집이... 같은 집이라구요?
사장님: 그럼요, 호호호. 저기 남산에 있는 ‘목멱산방’도 같은 집, 정확히는 우리 가족들이 하는 가게에요.
알고 보니 ‘촛불’은 1978년 고급 경양식집으로 출발했고, 코미디언 이주일의 ‘초원의 집’ 상무였던 현일성 씨, 3대 김성덕 씨를 거쳐 1993년 장경순 대표가 인수한 가게였다. 그리고 옆 건물을 사들여 가게를 넓혔다. 7년 뒤인 2000년에는 옆 건물을 사서 ‘산채집’이라고 산채비빔밥·부추전·막걸리를 판매했다고 한다. 그러다 2010년, 남산에 ‘목멱산방’을 열면서 남산의 랜드마크 중 하나가 된다.
사장님: 1993년부터 열심히 돈까스 튀겨 팔았어요. 그러다 산채집 열어서 거기서는 돈까스 안 팔려고 했는데, 사람들이 막걸리 마시면서 돈까스 없냐고 자꾸 찾는 거야. 그래서 촛불에서 튀겨서 열심히 산채집으로 날랐지요.
사장님에게 요즘 핫한 남산 돈까스 원조 논쟁에 대해 물었다.
사장님: 사실은 여기가 원조에요. 원조는 놔두고 자기들끼리 싸우고 있는 거지.. 그래도 저는 굳이 원조라고 내세우진 않아요. 내가 인수하는 시점에는 다른 집들도 돈까스 막 시작할 때였거든. 그 무렵에 다들 돈까스 팔기 시작했어요.
박변: 네. 저기 설렁탕집도 있었고, 저기는 순두부집이었고... (잘난 척)
사장님: 잘 아시네요. 나중에 시작한 집들도 있어요. 그래도 비슷한 시기에 돈까스 시작한 집들도 많아서, 서로 다 아는 사이인데 싸우기도 뭐하고 하니 누가 원조고 이런 말 안 하는 거죠. 그리고 돈까스가 여기서 개발된 것도 아니고, 누가 원조인 게 무슨 의미가 있어요?
불가사리: 그러면 산채집 돈까스가 예전 ‘촛불’ 돈까스와 제일 비슷한 건가요?
사장님: 그렇기는 한데 뭐가 맛있는지 연구도 하고, 잘하는 데 참고도 하고 그래요. 처음에는 밀가루를 버터에 볶아서 루를 만들어 소스를 만들었는데, 우리가 들어오고 과일 야채를 여러 가지로 쓰는 소스를 만들기도 했어요.
불가사리: 저기 케이블카 근처 가게 두 군데를 다녀왔는데, 좀 실망했습니다.
사장님: 거기는 뭐... 뭐라고 말하긴 뭐한데, 그렇게 추천하지는 않아요.
박변: (눈치 없이) 헤르지아? 거긴 괜찮던데요.
사장님: 네. 거기는 레스토랑을 오래 해서 괜찮을 거에요. 근데 한 가지는 말해줄 수 있어요. 여기 가게들 거의 다 한 곳에서 고기 받아서 파는데, 다른 데보다 우리 돈까스 고기가 20g 더 많아요. 산채집에서 드시고 가세요.
불가사리: 원조인 촛불도 아니고 굳이...
사장님: (갑자기 호객조로 팔을 끌며) 에이 무슨 소리, 잘해드릴게~
이렇게, 진정한 원조라 보아도 좋을 ‘촛불1978’에서는 돈까스 시식은 하지 못하고 사장님에게 남산 돈까스 역사에 대한 증언만을 듣고 나서야 했다. 그리고 사장님의 강권에 가까운 권유로, 같은 집이라는 ‘산채집’으로 들어갔다.
산채집
어쨌든 이렇게 산채집으로 향했다. 산채집은 1990년 당시에는 산채비빔밥과 막걸리 전문점이었는데, 사장님 말대로 돈까스를 찾는 손님들이 늘어나자 2000년대 중반부터는 아예 돈까스와 비빔밥 투 트랙을 탔다고 한다. 그럴 때도 사실 ‘촛불’에서 튀겨서 가져다주는 시스템이었다고 하는데, ‘촛불’ 건물을 허물고 새로 지은 시점부터는 산채집으로 튀김기 등을 가져가서 거기서 직접 튀겨 판다고 한다.
가게 앞에는 ‘수요미식회 방영’이라고 쓰여 있고, ‘블루리본 서베이’의 스티커들이 붙어 있다. 방송에 나온 것을 크게 홍보하는 가게들은 전반적으로 다 별로라는 생각이 있긴 하지만, 그래도 ‘수요미식회’는 다른 곳, 특히 아침방송들보다는 좀 더 실패할 확률이 적다는 인식이 있다. 그리고 ‘블루 리본 서베이’는 ‘미슐랭 리스트’만큼은 아니지만 전반적으로 믿을 만하다는 생각이 있기에, 다른 집들보다는 더 기대되었다.
‘산채집’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메인은 무려 비빔밥이고, 비빔밥 종류가 6개나 된다. 돈까스 종류도 5개, 거기다 수육·보쌈·부추전에 막걸리도 십여 종을 판매해서, 메뉴가 너무 많고 잡다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다만 돈까스를 빼고 비빔밥·전·막걸리를 파는 집이라고 생각하면 그닥 이상한 조합은 아니긴 했다. 어쨌든, 돈까스를 시켰고, 이제 좀 질리는 느낌이 있어서 돈까스 하나를 나눠 먹기로 하고 부추전을 하나 시켰다. 산채집의 진정한 하이라이트는 돈까스가 아니라 부추전이라는 이야기를 종종 들어왔기 때문이다. 어쨌든 돈까스 가격은 헤르지아와 같은 9800원, 괜찮은 편이다.
1. 수프와 가니시(곁들여 나오는 것)
말하면 입 아픈 오뚜기 스프다. 가니시는 양배추와 옥수수 통조림으로 성의가 있는 편은 아니지만 모양은 상대적으로 깔끔했다. 다른 집들과 비슷하게 고추가 나오는 점은 역시 좋았는데, 쌈장이 일반적인 쌈장이 아니라 직접 만든 듯 맛이 풍부한 점이 특이하고 좋았다. 다른 집들에서 나오는 김치 또는 깍두기가 아니라 열무김치가 나왔는데 상당히 맛있는 편이었다. 열무김치만으로 플러스 1을 줄 수 있을 정도.
2. 고기의 두께와 맛
고기는 1번지보다는 좀 얇았지만 다른 집들보다는 꽤 두꺼웠다. 익힌 정도는 적절했고, 적당히 부드러우면서 씹히는 맛도 있는, 나쁘지 않은 고기였다.
3. 튀김옷과 빵가루, 기름
이 집에서 가장 높이 평가할 수 있는 부분은 튀김 상태였다. 튀김옷은 두껍지 않게 고기를 감싸고 있고, 빵가루는 꽤 입자감이 있었는데, 사진에서 보아도 알 수 있듯 상당히 바싹 튀겨낸 느낌으로 바삭거렸다. 아마 센 불에 빠르게 튀긴 것인지, 고기 안쪽이 오버 쿠킹 된 느낌은 없으면서도 겉은 바삭했다. 일식돈까스만큼은 아니어도 어느 정도 ‘겉바속촉’이라는 느낌이 났다. 굵은 빵가루를 선호하지 않는 불가사리도 꽤 인상적이라 생각했다.
기름 냄새는 ‘헤르지아’보다는 많이 났는데 다른 집들보다는 훨씬 적게 낫다. 이 점에 대해서는 언젠가 다시 설명할 기회가 있겠지만, 기름 냄새가 전혀 안 나는 것이 꼭 좋은 것은 아니다. 신사동 ‘한성돈까스’처럼 기름 냄새가 전혀 나지 않고 기름조차 느껴지지 않는 가게는 깔끔하고 좋은 느낌이지만, 사실 돈까스를 먹었을 때 드는 ‘나는! 돈까스를! 먹었다!’는 느낌은 거의 들지 않는데 그 점도 아쉬울 수 있다. 그런 관점에서 헤르지아와 산채집의 기름 냄새는 아주 적절하다고 평가할 수 있겠다.
4. 소스의 맛과 어우러짐
소스는 새콤달콤한 맛이 많이 났고, 브라운 소스의 맛도 났다. 다만 ‘오박사’ 정도로 아주 시고 단 느낌은 아니었고, 과일의 자연스러운 맛이 나는 편이었다. 헤르지아처럼 루를 볶아 만드는 느낌은 아니었고, 브라운 소스에 과일을 더해 만든 것 같았다. 그리고 과거 경양식 돈까스 스타일에서는 기본이었으나 기사식당 돈까스에는 잘 없는, 버섯 등이 조금 들어 있는 점이 좋았다. 전반적으로 ‘새콤달콤 소스’류에서는 꽤 괜찮은 편이었다.
“5툴 플레이어. 최고의 돈까스집인지는 모르겠지만, ‘돈까스를 파는 밥집’ 중에서는 한국에서 최고급이 아닐까.”
전반적으로 균형이 아주 잘 맞는다. 잘 먹었다는 생각이 든다. 객관적으로 보았을 때 성북동 세 가게의 돈까스보다 더 낫다고 하기는 어려우나, 대신 열무김치와 된장 등이 좋고, 같이 시킨 부추전은 전이라기보다 야채튀김에 가까운 맛이었지만 바삭거림이 압도적이어서 상당히 맛있었다(그런데 부추전에서는 기름 냄새가 좀 더 났고 기름도 더 많이 남아있었는데 돈까스와 사뭇 다른 느낌이라 좀 이상하긴 했다). 무엇보다 소주·맥주·막걸리 여러 종류를 파는 것은 술을 먹고 사는 동물인 불가사리로서는 높게 평가할 수밖에 없다. 아니 근데 기사식당에서 왜 술을 이리 많이... 돈까스를 파는 비빔밥집 중에서는 국내 최고가 아닐까 싶다.
만족스럽게 산채집을 나왔다. 이제는 정말로 원조를 다투는 3개의 집들을 리뷰할 시간이다. 누가 원조인지를 다투고 있는 가게들, 유튜버들의 취재와 언론의 기사로도 많이 나왔던 화제의 가게들. 이미 원조가 큰 의미가 없다는 결론을 낸 불가사리지만, 그래도 원조를 다투는 3개 집의 맛을 궁금해하지 않을 수는 없었다.
그래서 재빨리 다른 가게로 떠나려 했는데...
갑자기 박변이 쓰러졌다. 그는 기름 냄새가 많이 나는 거품을 내뿜으면서 쓰러진 것이다.
박변: 불가사리님, 저 이제 도저히 못 먹겠습니다.
불가사리: 아까 8개는 가뿐하시다면서요.
박기태 변호사, 전사하다
이미 돈까스 4개를 먹은 상태에서 불가사리는 더 먹을 수 있는 상황이었지만, 정확한 리뷰가 힘들다는 생각에 도달했다.
어쩔 수 없다. 일단 작전상 후퇴다.
죽돌: 아니, 그러면 그 집들은 안 다녀오신 건가요.
불가사리: 이제야 전화를 하시는군요.
죽돌: 다른 집들도 다녀오겠다고 돈은 받아 가 놓고서? 영수증 처리도 다 해줬는데? 그거 허위 영수증입니까? 박변은 법조인이라는 양반이... 후우...
불가사리: 물론, 바로 다음 날 다녀왔습니다.
죽돌: 그러면 기사는 어디에?
불가사리: 아시면서, 제주도는 못 가도 다른 호텔이라도 보내 주고, 연돈 볼카츠라도 사주기 전에는 안알랴줌.
죽돌: (이번에도 작게 욕하는 소리가 들린다. 이 사람은 작게 욕하면 안 들린다고 생각하는 걸까)
과연 불가사리의 돈까스 인질극은 성공할 것인가?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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