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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글에서 연봉은 “까지도 말고 까려 해서도 안 된다”고 했다. 보충 설명이 필요한 말이다. 연봉이란 것은 많은 이들이 생각하듯 하나의 숫자로 개인의 급여와 소득수준을 대변해 주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한국과 미국은 급여체계에 많은 차이가 있다. 미국에는 호봉, 수당의 개념이 없다. 연방정부의 급여체계에는 GS(General Schedule)라고 해서 호봉과 비슷한 개념이 있기는 하지만, 세부적으로 한국의 호봉과 많이 다르고, 일반적으로 이러한 개념이 미국의 직장에서 널리 통용되지 않는다.

 

한국의 급여는 “기본급+수당+상여금(보너스)”의 구조로 되어 있는데, 여러 명목으로 추가되는 수당과 보너스가 때로는 기본급을 넘어서기도 한다. 그래서 한국에서는 급여가 얼마나 되는지 얘기할 때, 이것저것 다 더해서 대충 몇천 만원 된다고 하거나, 좀 더 피부에 와 닿는 얘기를 하기 위해서 “월 실수령액이 얼마”라 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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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미국의 연봉제는 숫자가 딱 떨어지게 드러나는 것으로 보인다. 능력과 성과에 따라 급여에 차등을 두기도 용이하다. 따라서 한국에서도 연봉제 도입이 확산되는 추세다. 이러다 보니, 한국에서는 미국에서 직장 생활하는 지인의 연봉에 대해서 궁금해하고, 때로는 주워들은 연봉 정보에 필요 이상의 의미를 부여하기도 한다. 

 

이런 마인드가 미국에서 직장 생활하는 한인들 사이에도 있다. 가십으로 내 연봉 니 연봉 비교해가며 정신건강에 해가 되는 삶을 사는 사람들 많다. 본인은 안 그렇다 하는 분들도, 누구 남편은 연봉이 얼마라더라 하면서 화목한 결혼 생활에 위협이 되는 발언이 난무하는 사례를 생각보다 멀지 않은 곳에서 찾을 수 있다.

 

앞선 글에선 지역별, 업종, 분야별 편차를 고려하지 않고 남의 연봉 숫자만 갖고 가십을 하는 위험성에 대해서 경계했다. 이에 대해 이런 생각을 하는 이들도 있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지역, 업종, 분야별 편차가 없을 때, 즉, 동일 지역, 동종 분야의 연봉 사례들만을 고려한다면 비교가 유의미하지 않을까?” 

 

여기에도 주의할 점이 있다. 

 

 

연봉이 적지만 많이 벌고, 많지만 적게 버는 이유

 

미국의 연봉제에서 급여의 액수가 분명하게 나오므로 비교하기 쉽다는 것은, 허상이다. 공제 항목이 매우 다양하고 그에 따라 실질소득에 많은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개별 공제 사항은 개인의 상황에 따라 달라지지만, 직장에서 급여 및 복지 혜택을 어떻게 처리하느냐에 따라 큰 차이가 난다. 연봉은 적지만 세후 혜택이 많은 경우(적게 버는 것 같아도 실속이 있는 경우)와 연봉 액수는 크지만, 혜택이 적은 경우(많이 버는 것 같아도 남는 게 없는 경우)가 매우 복잡하게 얽혀 있다.

 

미국 직장의 급여에 대해 이해하기 위해서는 미국의 소득세 체계와 원천징수 항목들에 대해 일단 설명할 필요가 있다.  

 

우선 FICA라고 해서, 사회보장 연금(한국의 국민연금과 비슷)과 노인 건강보험을 위한 세원 마련을 위해 모든 급여의 7.65%가 강제 징수된다. 이건 거의 예외 없다. 다 내는 거라고 보면 된다. 미국도 노년층과 극빈자 계층에게는 전 국민 의료보험 혜택을 제공하기 때문이다(퀄리티가 좋은 건 아니지만).

 

미국 직장인들끼리 실질 소득에 차이를 발생시키는 건 이제부터 말할 것들이다.

 

①개인 은퇴계좌

 

개인 은퇴계좌 불입(拂入, 돈을 내는 것)에 대해 회사에서 어떤 입장을 취하는지는 중요한 문제다. 사실 재원의 고갈로 미국의 사회보장 연금 제도가 파국으로 치닫고 있다는 건 공개된 비밀이다. 현재 강제 징수되는 금액의 본전을 찾을 수 있다는 생각은 미국인들은 아무도 하지 않는다. 따라서, 개인 은퇴계좌에 따로 저축하면서 은퇴 이후를 대비해야 한다. 

 

이 계좌에는 몇 가지 종류가 있는데, 일반적인 직장인들에게 제공되는 것은 401K 계좌라고 불린다. 

 

여기에 저축하는 금액은 연방소득세, 주 소득세가 면세된다(이 혜택, 엄청 쏠쏠하다). 그뿐 아니라, 많은 고용주는 내가 저축하는 금액만큼 내 계좌에 넣어준다(matching이라고 한다). 즉, 두 배로 저축되는 것이다. 더 나아가서 일부 ‘착한’ 고용주는 내가 저축을 하건 안 하건, 내 기본급의 몇 퍼센트를 계좌에 넣어 주기도 한다.

 

은퇴 계좌 혜택 하나만 봐도 고용주마다 많은 차이가 있다. 401K 혜택을 제공해 주지 않는 고용주부터(401K 자체를 제공해 주는데도 돈이 드니깐), 401K 계좌는 제공해주는데 matching을 안 해주는 고용주, 소정의 퍼센트를 자동 저축해주는 경우, matching 해주더라도 연봉의 몇 퍼센트까지는 100%, 그 초과 시 50% 혜택 등 제 각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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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유튜브<MoneyCoach>

 

고용주로부터 401K 혜택을 받지 못하는 경우, IRA(Individual Retirement Account)라고 해서 내가 따로 은퇴계좌를 개설하고 저축을 하고 위에서 언급한 세금 혜택을 받을 수는 있으나 401K와 액수에 많은 차이가 있다.

 

그러니까 명목상 똑같은 십만 불 연봉이라 하더라도, 나쁜 케이스(401K 없이 IRA만)와 좋은 케이스(고용주의 401K 자동저축이나 matching이 후한 경우)의 차이가 꽤 크다. 

 

전자의 경우 $6,000까지 저축하고 세금공제, 그게 끝이다. 후자의 경우 $10,000을 저축하고 그만큼 세금공제, 그리고 고용주가 추가로 $10,000을 불입해주어서, 계좌의 잔액은 $20,000가 된다. 자금에 여유가 있다면 401K에 추가로 IRA에 저축하고 더 큰 폭으로 절세할 수도 있다. 후자는 탄탄하게 은퇴 저축을 하고 있는데, 국세청의 계산으로는 전자보다 저소득자이어서 세금도 전자보다 덜 내게 된다. 

 

②건강보험과 복지

 

다음으로는, 건강 보험료. 잘 알려져 있듯 미국의 의료비는 비싸고, 건강보험료 역시 비싸다. 1년 보험료가 만 불(가족의 경우), 3-4천 불(독신자의 경우)을 넘어가는 경우도 많다. 많은 고용주들은 보험료의 상당 부분을 부담해준다(70-80%). 100% 부담해주는 회사도 많이 있다. 

 

물론 적게 부담해주거나, 아예 건강보험을 지원해주지 않는 경우도 있다. 그 경우 건강보험 플랜을 healthcare.gov에서 따로 찾아서 가입해야 하는데(흔히 “오바마케어에 가입한다”고 얘기한다), 회사에서 제공해주는 보험 플랜에 비해 대부분 가성비가 떨어지고, 세금 혜택을 받기에 어려움이 있다. 회사 플랜으로 하면 자동으로 100% 세금 혜택이 처리됨에 비해, 이 경우 따로 계산해서 보고해야 하고 100% 세금 혜택을 받지도 못한다

 

건강보험을 지원해주지 않는 회사라면 지원해주는 회사에 비해 연봉을 만에서 만오천 불(부양가족이 있는 경우), 오천에서 팔천 불 정도(혼자인 경우) 더 높게 받아야 비슷한 삶의 질이 보장된다(현재 환율로, 15,000불 : 약 1,790만 원 / 8,000불 : 약 954만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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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외에도 연봉 숫자만 갖고는 전혀 알 수 없는 기타 고용 계약 사항이 있다. 

 

보너스는 언제 어떻게 계산되어 지급되는지, 특허를 낸다고 하면 특별 수당 얼마를 주는지, 또는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회사의 사원 복지 종류는 어떤 게 있고 얼마나 있는지 하는 것들도 중요하다. 

 

점심 제공(또는 할인), 운동센터 멤버십 지원, 자기 계발 기회 보장 및 비용 지원 등. 휴가 제도도 회사마다 많이 다르다. 아기 출산 후 유급휴가가 얼마나 보장되는지도 중요할 수 있다.

 

③우리사주 혜택

 

연봉 숫자만 갖고 비교할 수 없는 또 하나의 결정적인 이유가 있다. 바로 우리사주 혜택이다.

 

상장회사에 다니는 경우라면 RSU(Restricted Stock Units)를 받는데, 이것은 회사 주식을 정해진 스케줄로 무상으로 증여받는 것이다. 상세 내용은 회사마다 다르지만, 연봉의 1.5에서 5배에 해당하는 금액에 해당하는 주식을 받도록 고용계약서에 명시되어 있다(정확한 배수는 대개 직급에 비례한다). 

 

한 번에 받는 것은 아니고, 입사 후 4-6년 정도의 약정기간(vesting이라고 한다)동안 일정 비율로 받는다. 1.5에서 5배라는 것은 입사 시 주식값 기준이고 회사 다니는 동안 주식이 많이 오른다면 연봉의 몇 배에서 10배 혹은 그 이상되는 금액을 증여받게 되는 셈이 된다. 이렇게 회사가 성장하고 자신의 주식 자산이 커지는 것을 보게 되면, 다소 적은 연봉으로 입사한 사람도 크게 불만이 없다. 

 

예를 들어, 누가 아마존에 2015년에 입사했다고 하자(2000년대에 입사한 경우는 말할 것도 없고). 계산이 쉽도록 연봉이 십만 불이라 치자(참고로 아마존 같은 규모의 회사에 대도시에서 엔지니어로 근무하는 경우, 대졸 신입 연봉은 십만 불은 쉽게 넘는다). 십오만 불의 주식을 RSU으로 받았는데 6년 vesting이 끝나는 2021년 지금, 그 가치가 거의 10배가 되었다(현재 가치 1.5백만 불!). 

 

중간에 그만두면 몇 퍼센트까지만 챙길 수 있고 나머지는 포기해야 하는데, 그런 결정을 하기 쉽지 않다. 그래서 이직을 하더라도 vesting 될 때까지는 채우고 떠나는 경우가 종종 있다. vesting 기간이 끝난다고 더 이상 혜택이 없는 것이 아니고, 새로운 vesting이 시작되면서 계속 근무하는 동안 RSU를 지속적으로 받는 것이 일반적이다(즉, 코를 꿰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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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한국증권금융>

 

RSU가 제공되지 않더라도 (또는 RSU와 별도로), 연봉의 몇 퍼센트 한도 내에서 정기적으로 우리 사주 할인 매입 기회가 제공되기도 한다. 현 시가보다 10%에서 30%까지 싸게 살 수 있게 해주는 제도를 활용하여, 장기근속 하면서 회사 주식으로 재산을 모을 수 있다. 위에서 언급한 401k 계좌보다 회사의 주식 계좌가 더 튼실해져 은퇴 걱정을 안 하는 경우도 많다. 물론 성장하는 회사의 이야기이다. 

 

스타트업 회사의 경우, 스톡옵션을 받게 되는데 이것은 나중에 회사가 성장해서 나스닥에 상장하고 주식 가치가 고공 행진을 하는 경우, 그야말로 대박이다(최근에는 이런 사례가 나오기 힘들어졌지만). 위에 언급한 RSU나 우리 사주 할인 매입으로 주식자산을 늘리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이제 왜 연봉 숫자 두 개만 가져와서, 이게 높으니 저게 낮으니 왈가왈부하는 것이 얼마나 의미 없는지 충분한 설명이 되었길 바란다. 만약 미국 직장인 중 배우자가 남의 배우자 연봉을 들먹이면서 바가지가 시작될 것 같으면, 이렇게 답하면 된다(우리사주 혜택이 있었다면 이런 바가지가 발생할 가능성이 애초에 낮았을 테니 그건 아니라는 가정하에).

 

“아니 그 회사 401k 혜택 없다는데(아니면, “matching 안 해준다는데” 식으로 응용해도 좋다). 그래서 연봉이 좀 높은 건데, 거 아무 실속이 없는 거야”

 

혹은 건강 보험이나 기타 복지 혜택을 나열하면서 연봉 이외에 지금 우리 회사에서 좋은 대우를 받는 거라고 확인시켜주면 된다. 만약 공격할 것도 방어할 것도 없다면?

 

그럼 배우자님 말이 맞다. 다른 자리를 알아볼 시점이 되겠다.

 

<계속>

 
 
소리는 어디에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