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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형틀해체(바라시)를 약 3년 정도 했다. 형틀목수 일을 시작한 지는 아직 1년이 안 된다. 평소에 잘 모르는 일은 말하지 않는다는 소신으로 살고 있었기에 현업에 대해선 한동안 글 쓸 생각이 없었다.

 

형틀목공 기능학교를 졸업하고 아직 양성공이라 다양한 실수들을 한다. 팀 내에서 기공들 복장 터지는 역할을 맡고 있는데 뭘 안다고 이야기하겠나. 요즘 이리저리 공부할 것이 많아 뉴스도 잘 안보고 있었다. 아니, 최근 몇 달간 뉴스라곤 날씨밖엔 안 봤다.

 

그러다가 지인들이 최근의 사고에 대해 한 기사를 읽으며 이야기하는 걸 봤다. 나 또한 그 기사를 봤다. 정신이 확 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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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국민일보>(링크)

 

우리가 정치, 사회면 기사들을 볼 땐, 당연히 아는만큼 보인다. 해당 분야는 기자보다 전문성이 높은 이들이 수두룩하기에 기사의 오류나 최근 업데이트 상황과 다른 구정보, 인과관계의 허점도 쉬이 발견되어 기자들이 놀릴감이 되는데, 평소 쉬이 접할 수 없는 분야는 뭔가 어색하고 이질적인데도 그러려니 할 수밖에 없다.

 

그럼? 잘못된 정보, 잘못된 결론이 퍼진다. 특히 사건, 사고, 혹은 재난 관련해서는 정보가 더 정밀해야하는데(백신 관련한 언론의 보도에서 많은 분들이 느꼈을 터이다)이런 관점에서, 해당 기사는 양성공 11개월 차도 헉, 하는 내용이고 무엇보다 2018년에 현대산업개발이 원청사인 현장에서 골때리는 꼴을 본 경험이 있어 간만에 출격한다.

 

2. 

먼저 해당 기사의 가장 큰 문제는 현업 종사자들이 들으면 기함할 이야기는 한 문장으로 줄여놓고, 별로 중요하지 않은 이야기들을 늘어놓으면서 외국인들이 문제라고 결론낸 것이다. 정작 패야할 상대는 내비둔, 즉, 본질적인 문제는 건드리지 않고 만만한 상대만 건드는 모양새라고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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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각한 문장은 다음이다.

 

"'201동 콘크리트 타설일지'를 보면 35층부터 PIT층(설비 등 배관이 지나는 곳)까지 5개 층이 6~10일 만에 타설됐다"

 

일단 이게 1개 층을 올리는데 각각 6~10일씩 소요되었다는 것인지 5개 층을 모두 올리는데 6~10일 걸렸다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만약 5개 층을 올리는데 6~10일이 걸렸다고 한다면 그분들, 외국인이 아니다. 아마도 J.K. 롤링 여사가 창조한 세계에서 아시아에 단 하나 있다는 마법 학교 출신들이다.

 

통상 아파트 단지의 지하층은 노조 소속 2~4팀, 일반팀 한 두 팀이 거의 일 년 넘는 기간 동안 만든다. 지반 구조가 복잡한 데다 각 층의 구조도 꽤 복잡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단 1층이 완성되고 나면 속도가 달라진다.

 

철근이 들어가는 것은 똑같다. 하지만 거푸집 작업은 확실히 달라진다. 건물 외벽은 시스템 거푸집으로 만들어 타워 크레인으로 끌어올리면서 작업한다. 현장에선 보통 갱폼(Gang Form)이라고 많이 부르는데 이거, 시스템 거푸집의 한 종류다(다른 형태들도 많은데 못 주머니 찬지 1년이 살짝 안 된 나로서는 다른 형태들과 뭐가 다른 지까지는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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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 맨 위에 콘크리트를 둘러싸고 있는 녹슨 붉은색이 시스템폼이다

 

건물 안은 맞춤 제작된 알루미늄 거푸집(업계에선 알폼이라고 한다)을 쓴다. 지하층은 유로폼으로 돌린 다음 뚜껑(현장에선 슬라브라고 통칭)을 덮는 작업을 꽤 복잡하게 해야 하는데 아파트 내부는 벽은 물론 슬라브까지 알폼을 번호순으로 붙여버리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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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장 모습

 

벽이랑 천장 모두 순서에 맞춰 조립하면 된다. 물론 알루미늄 서포트도 세워줘야 한다. 아파트 층고에 맞는 일반 서포트라면 개당 1.6~1.7톤을 감당할 수 있으니 300톤 정도 되는 규모라면 3층 합쳐서 최소 188개 정도는 들어가야 한다. 층당 63개 이상은 있었어야 한다는 이야기. 그런데 그것도 없었다고 하데?(관련 기사)

 

이 작업은 봄부터 가을까지는 빠르면 이틀에서 통상 나흘 정도 걸린다. 거기에 콘크리트를 붓는데 하루. 그러니 한 층 만들어 올리는데 3일에서 5일 정도 걸린다는 이야기다. 3일씩 올리는 현장의 목수와 철근공들은 죽어난다. 아침에 일찍 나오는 조출과 연장근무를 하지 않으면 불가능한 속도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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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천막 같은 걸 두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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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생겨먹은 기계에 등유를 계속 넣어줘서

따뜻하게 해줘야 층을 올릴 수 있다.

이것도 보통 이틀 이상 걸린다

 

겨울에는 콘크리트가 잘 마르지 않는다. 그러니 안을 막고 열풍기를 겁나게 돌려줘야 한다. 게다가 조출과 연장근무를 거의 하지 못한다. 아니 뭐가 보여야 일을 하지. 타워 크레인에서 조명을 켠다고 해도 워낙 사각이 많아서 사고 난다. 30층에서 파이프가 하나 떨어진다고 생각해 보시라. 

 

그러니 맨정신인 사람들이 공사를 진행한다면 한 층을 올리는데 아무리 빨라도 7일 이상은 걸릴 수밖에 없다. 애당초 겨울이라는 계절 자체가 눈이  와서, 혹은 바람이 많이 불어 크레인 작업이 불가능한 날씨가 꽤 있기 때문에 실제로는 공사기한을 정한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 

 

그런데도 5개 층을 올리는데 6~10일이 걸렸다고? 그럼 그분들은 물리와 화학의 세계를 넘어서는 마법사들일 수밖에 없다. 아니 6일에서 10일 사이에 한 층씩 올렸다는 것도 말이 안 되는 속도인 걸.

 

3. 

콘크리트 타설

 

여기서 또 한 가지. 바로 위의 동영상에서 왼쪽의 두 분이 들고 있는 게 바이브레이터다. 저걸로 휘저어 주지 않으면 콘크리트가 제대로 퍼지지 않는다. 문제는 쟤를 돌리면 압력이 상당히 커진다. 거푸집 설치를 제대로 하고 그걸 가로 세로로, 파이프로 막고 지지대를 받쳐줘야 타설 중에 콘크리트가 안 터진다. 거푸집 사이에 간격재가 빠져도 마찬가지다. 

 

자, 그런데 저 속도로 올렸다면 이 과정은 제대로 했을까. 여기서 질문을 더 해보자. 이런 속도를 '자발적으로 낸다'는 것이 말이 될까. 노동자들이 자발적으로 내지 않았다면 누군가가 지시했다는 이야기가 되지 않을까. 그럼 그 지시는 어디에서 떨어졌을까. 

 

참고로 한 여름이라 4일에 한 층씩 올라가던 현장에서 알폼 조립을 하던 베트남 동생들은 화장실 갈 시간도 없어서 볼일을 갱폼에서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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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폼 남은 쪼가리를 발판으로 하고 마대 자루를 변기통 삼았던 거다

 

알폼팀은 야리끼리(그날 할당량을 채워야 퇴근하는 근무 형태)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정말 정신없이 일한다. 20층 안쪽의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도 공사 현장 엘리베이터라고 할 수 있는 호이스트 타고 화장실 갔다 오면 30분은 족히 지나기 때문에 볼일을 갱폼에서 보는 거다. 그럼 39층 현장에선 어땠을지 쉬이 상상이 갈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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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이스트란 이런 것. 명칭을 따지면 

리프트라고 불러야 하고 호이스트는 따로 있으나

현장에선 걍 호이스트라 한다. 

 

4. 

다들 각자의 부분에서 그러하듯, 나 또한 기자가 이야기하지 않은 부분이 보일 수밖에 없는 현업 종사자로서 중요하지 않은 부분을 길게 설명하고, 중요한 부분은 대충 넘어가는 기사를 보면 화난다. 사람의 생명이 달린 부분이라면 특히 그렇다.

 

다음 부분이 그렇다. 

 

"통상 지하층은 내부 구조가 복잡해 20∼30년 경력을 가진 국내 기술공이 투입된다. 반면 지상 1층부터는 속도가 중요시되면서 일당 3만~4만 원이 더 저렴한 외국인 노동자를 주로 고용한다. 이마저도 작업자가 자주 교체됐다면 공정의 정확도는 더 떨어졌을 가능성도 있다."

 

대충 뉘앙스는 이들을 불러다 쓴 하청 업체들이 문제라는 분위기다. '저렴한 외국인 노동자'가 틀린 이야기는 아닌데 기사에서 말하는 것과 현장의 데이타가 너무 괴리가 커 역시 설명하고 넘어가자.

 

반복하지만 알폼 조립하는 외국인 노동자들은 기본 아침 7시에 시작해서 저녁 7시까지 일하고 그날의 할당량을 채우지 못하면 연장근무까지 해야 한다. 그 할당량을 채워야 2018년 기준으로 11만 원 받았다. 알폼을 하는 한국인 목수들? 아니, 합법적인 체류자격을 가진 형틀 목수들이라면 기공 기준 35만 원 받는다.

 

노조는 사용자 단체와의 단체협상으로 임금을 정한다. 그렇게 결정된 2022년 형틀 목수 일당은 세전 23만5천 원이다(그래서 알폼 하는 노조팀은 거의 없다). 일반팀으로 가면 여기서 만 원 정도 빠진다. 그런데 건설 현장에서 일할 수 없는 체류자격이라면? 많이 받아야 14만 원 언저리다. 도대체 어디서 3~4만 원 차이라는 계산이 나왔는지 모르겠다. 최소 두 배에서 최대 세 배의 차이다. 한 동에 한 팀씩 약 20명 정도가 들어가고, 그 팀이 한 달 20일씩 1년을 일했다고 치고 곱셈을 좀 해보시라. 이게 얼마의 차이인지.

 

무엇보다 하청업체는 혼자서 체류자격이 안되는 이주노동자들을 고용하기도 어렵다. 작년부터 법이 바뀌어 건설 현장에서 일정 이상 규모의 건설 현장에서 일하는 이들은 건설근로자공제회 카드로 출퇴근을 인증하거나 생체인식기로 출퇴근을 인증해야 한다. 건설 현장에서 합법적으로 일할 수 있는 사람들만 출퇴근 관리가 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원청사가 관리하는 시스템으로.

 

그런데 체류자격이 안되는 분들이 일했다면 이게 처리 안 된다. 무엇보다 작년 여름부터 건설노동자들도 1주일 이상 일하면 무조건 4대 보험 가입을 해야 하는 거로 법이 바뀌었다. 체류자격이 안되는 분들이 4대 보험 가입이 될 것 같은가? 예전이었다면 명의도용을 하든 명의를 사든 한국인이나 합법적으로 건설 현장에서 일할 수 있는 외국인들이 일했다고 가라로 서류 처리가 가능했지만 이젠 그게 안 된다는 이야기다. 그럼 어느 단위에서 서류 장난을 쳤을 것 같으신가. 아니 좀 더 노골적으로 물어보자.

 

이른바 '불법 이주노동자' 고용에 대해 현대산업개발은 책임이 없을까. '불법 이주 노동자'가 가장 큰 문제라면 이걸 감독 관리해야 할 이들은 모두 어디로 사라졌는가. 언론은 이런 걸 깊숙이 파줘야 하는 거 아닌가. 아니면 현장에 있는 우리같은 사람을 상대로 물어볼 수도 있고 말이다. 

 

만만하고 약한 상대, 그러니까 외국인 혐오로 몰고가는 게 제일 쉬운 일이긴 하다. 허나, 이런 사고를 보도할 때는 사람들의 편견에 기대어, 그리 게으르게 써서는 곤란하다. 주 원인을 공유하고 문제인식을 제대로 하지 않으면 우리 사회에서 반복될 게 뻔한 일이니 말이다.  

 

이런 사고에서야말로, 일반 국민보다 접근성이 강한 언론이 제 역할을 해주어야 한다. 그래. 언론인도 직장인인데 평소에 좀 게으를 수도 있다. 허나 사람의 목숨이 달린 일에서만큼은 좀 부지런히 하자. 적어도 나같은 초짜 목수가 봐도 내용이 어설프지 않을만큼은 말이다. 

 

 

 

형틀 목수 11개월 차 양성공 Samuel Seo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