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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의 연봉을 알아야 하는 경우

 

지금까지는 “연봉은 까지도 말고 까려 해서도 안 된다. 설사 같은 지역, 같은 업종이라도”라는 주제로 이야기를 했다. 연봉에 드러나지 않은 많은 요인이 있어서 직접 비교하기가 매우 힘들고 가십 이상의 의미도 없다는 논조를 지켜왔다. 이제부터는 반대의 톤으로 이야기를 해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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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 보면 남의 연봉을 알아야 하는 경우도 있다. 같은 업종종사자 혹은 동료직원들이 얼마 받는지를 알아야 내 연봉에 대해서도 제대로 평가를 해볼 수 있지 않겠는가. 동료직원이 내 연봉을 물어볼 수도 있다. 이는 단순 가십거리를 만들기 위해서가 아니다. 공정성을 담보하기 위해서 논의될 수 있는 사항이다.

 

이것이 이슈가 된 것은 최근 들어 공정한 페이(equal pay)에 대한 사회적 담론이 등장하면서부터였다. 남녀 간, 인종 간 급여 차이가 수면위로 올라오게 되었다. 미국에서 여자들은 같은 일을 하고 같은 직급에 있다 하더라도 남자들이 받는 급여의 84%밖에 못 받는다고 한다(출처 링크).

 

흑인은 같은 학력, 경험을 가진 백인에 비해서 98%밖에 못 받는다고 한다. 그들의 생산성이 떨어져서 급여를 적게 받는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2편에서 말한 케이스와 달리 학력과 경험 수준이 같아도 2% 정도의 차이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적어 보이지만 유의미한 차이다-출처 링크).

 

미국에선 공정한 페이에 대한 논의를 막는 이런 사회 시스템이 잘못되었다는 많은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그리고 이런 불공정을 줄이기 위해서 많은 회사는 나름의 노력을 하고 있고 법적 제도도 정비되고 있다. 

 

예를 들어, 이전에는 고용주가 직원간의 연봉정보 공개를 금지했다. 그럼에도 연봉정보는 누설되기 마련이었고 (귓속말로 주고받는 것을 적발해 낼 수는 없을 테니) 음지 속에서, 가십성 소문을 타고 돌아다녔다. 

 

하지만 최근 법은 그런 고용주의 발목을 잡으며, 누구나 자기의 연봉 정보를 남과 교환할 권리가 있다고 인정하는 쪽으로 돌아섰다. 더 이상 가십으로 소곤소곤하지 말고 양지로 끌고 와 토론 주제로 삼아 직원들의 급여가 공정하게 결정되는지 따져보자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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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미국에서 뜨거운 감자 같은 주제이다. 내 개인적인 생각을 말해본다면, 난 내 연봉을 사내 동료들과 공개하는 것에 큰 반감이 없고 그렇게 하는 것이 공정성을 담보한다면 당연히 찬성이다. 하지만 내 연봉 정보가 우리 부서를 떠나 다른 부서로 가거나, 회사 밖의 사람 귀에 들어가는 것은 원치 않는다. 내 연봉은 이 지역, 이 업종, 이 회사, 이 부서의 내 역할에 의해 결정된 것이다. 함께 배를 탄 회사 동료들은 이해하겠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오해만 할 가능성이 크다.

 

내 연봉이 동료들에게 공개된다면 그 정보가 다른 팀이나 회사 바깥으로 나가는 것은 시간문제이다. 왜냐. 남의 연봉이란 대부분의 사람에게 관심의 대상이기 때문에. 한번 생각해보자. 만약 당신이 지인의 연봉 정보에 접근할 수 있다면, 그걸 들여다 보겠는가? 본다면 그 후 아무렇지도 않을 수 있을까? 이 대답에 쉽게 ‘나는 아무렇지도 않아’라는 답을 한다면, 아마 당신은 그런 경험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라 단언한다. 이건 아담과 이브의 선악과다. 포르노다. 한 번 맛을 보고 나면 과거로 돌아가기 힘들다)

 

 

미국도 공무원 연봉은 공개되어 있다 

 

천기누설을 하겠다. 많은 미국인들의 연봉은 이미 만천하에 공개되었다. 프라이버시가 강조되는 미국에 어찌 그런 일이? 

 

미국의 프라이버시는 나름 융통성이 있다. 절대적으로 프라이버시가 최우선인 게 아니다. 공공의 이익이 중요하다고 여겨지는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진 부분에서는 프라이버시를 적당히 뭉개 버린다. 

 

예를 들어 범죄 피의자의 신원, 얼굴, 음성이 처음부터 완전히 공개된다. 아무리 파렴치한 범죄자라도 이름 김모 씨라고만 알려주고 얼굴은 모자이크, 음성은 변조시키는 한국과 대비된다. 

 

연봉 정보는 사기업이라면 프라이버시로 인정되지만, 공무원의 경우 나라의 녹을 받아서 그런지 프라이버시로 간주하지 않는다. 얼마나 쉬운지는 경우마다 다르지만(웹사이트에 정부 데이터베이스가 직접 연결되어 있어서 검색, 클릭만 하면 되는 경우도 있고, 직접 찾아가서 자료 열람을 신청하고 찾아보아야 하기도 하고), 누구라도 연방정부, 주정부나 작은 지방자치제 공무원들의 연봉을 알아내는 것이 가능하다(공립학교 교원, 교직원, 공립대학 교수 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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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 관련 업무를 하는

버지니아주 교통국(DMV)의 민원 창구의 모습.

출처-<하이유에스코리아>

 

어떻게 공개되어 있는지 궁금한 분들을 위해 맛배기로 캘리포니아주(링크)와 뉴욕주(링크) 자료가 있는 사이트를 알려드린다. 다른 주와 연방정부 정보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지인의 연봉을 알지 말라는 이유

 

이제부터 아주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겠다. 민감한 부분이 있고 오해를 살 수도 있으니 적당히 필터링해서 읽어 주기 바란다.

 

주립대학 교수의 연봉정보가 일반에 공개된다는 것은 교수 생활을 시작하면서 들었다. 그 사이트에 들어가서 내 이름을 쳐보고, “에라이, 별 크지도 않은 액수, 몇 센트까지 정확하게도 나오네”라고 확인도 했었다. 사실 교수 생활을 시작할 때, 이전의 회사에서 연구과학자로 있을 때 보다 연봉이 30% 정도 깎인 상태에서 시작했다.

 

당시 다른 이들의 연봉을 찾아보려 하지 않았다. 그것 알아서 뭐 해? 남의 연봉에 별 관심이 없었다. 예외로, 아주 가깝게 지냈던 같은 대학 이비인후과 교수가 있었는데, “수술하는 의사는 얼마나 버나 함 보자” 궁금해서 찾아본 적이 있었다. 

 

역시 내 연봉의 2배인가 3배 정도 되었다. 그런데 그 교수 말로는 거기 자료, 그다지 정확하지 않단다. 자기에게 돈이 들어오는 소스가 몇 가지 있는데, 그 사이트는 주정부에서 관리하는 것만 나온다나 뭐라나. 아무튼 워낙에 쿨한 친구인 데다가, 의사가 나보다 돈 잘 버는 건 당연한 거라는 생각에 그의 연봉 자료에 계속 마음을 두지 않았다(그 넘이 나에게 밥을 잘 샀다는 건 안비밀이다). 

 

다들 알다시피, 일반적으로 교수의 연봉은 그리 높지 않다. 돈 벌려고 마음먹은 사람은 교수의 길에 들어서면 안 된다. 그렇기에 교수를 그만두기로 결심했을 때 다른 일을 하면 교수보다는 돈을 더 잘 벌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은근한 자신감이 있었다(교수를 그만둔 건 돈 때문은 아니다). 

 

그것은 사실로 드러났다. 내가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아도 학계를 떠나니 당연스럽게 나에게 과거 교수 때보다 높은 수준의 연봉을 챙겨줬다(이 말을 “내 현재 연봉이 높다”보다는 “교수 때의 연봉이 매우 낮았다”로 이해하시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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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교수 시절이 생각나고 그리울 때가 있지만, 교수 생활의 허와 실을 다 아는 이 마당에 크게 아쉬운 건 없다. 더구나 낮은 연봉을 생각하면 아쉬운 건 1도 없어 별로 마음에 두지 않는다. 

 

몇몇 앙숙 같이 지냈던 인간들도 있었는데 ‘쳇, 안녕히들 계슈. 좁고 답답해서 난 이 바닥에선 더 이상 못 살겠수다. 내 갈 길 갑니다’라고 그들에게 말을 하진 않았지만, 무언으로 전달되었을 수도 있다. 학계 안에서는 나름 명망 있는 양반들이지만, 학계 밖의 눈으로 보면 (연봉 포함) 인간적으로 볼 것 하나 없다는 신포도스런 생각도 했다. 

 

이번 글을 쓰면서 자료 수집을 위해 여러 주립대학 교수들의 연봉 자료를 검색해보았다. 먼저 나를 그렇게 갈궜던 모 고참 교수, 현재 플로리다에 있다. 푸하하. 연봉이 그것밖에 안 돼~ 까불기는. 다음, 학계에서 내 “형” 뻘 되는 분 중 하나(같은 지도교수 밑에서 박사를 한 선배), 현재 캘리포니아대 (어바인) 교수, 옛날부터 야망을 크게 보였던 양반이고 노는 물이 달라서 연봉이 다소 높을 거라고 생각은 했지만, 아니 이건 뭥미? 30만 불(약 3억 6천만 원)에 육박하잖아(베네핏 액수를 빼고도 말이다). 더 충격은 다음이다. 

 

겉으로는 나와 꽤 가깝게 지냈지만, 내 편인지 적인지 언제나 헷갈렸던 오하이오 주립대 모 교수가 있다(살다 보면 그런 사람 있지 않나). 그동안 자기 연봉이 너무 낮다고 한탄하고는 했다. 그의 연봉을 찾아보니 낮기는 개뿔. 과거 5년 평균 연봉이 20만 불(약 2억 2천만 원)을 넘는다! 역시 사람은 모를 일이다. 본 연재 글의 앞에 말한 여러 가지 사항을 고려해봤을 때, 어바인 30만 불보다 콜럼버스 오하이오 20만 불이 낫지 않을까 생각도 든다. 

 

가만가만, 내가 지금 뭐하고 있는 거야? 남의 연봉 갖고 비교하며 가십하고 있다. 지금까지 이 글을 쓰면서 몇 번이나 하지 말라고 했던 바로 그 행동을 하고 있다. 글을 쓸 때는 쿨한 척했지만 나도 생선이 보이자 바로 부뚜막에 올라가 버리는 버릇없는 고양이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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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궁금해!

 

멈추려 했으나 금방 멈춰지지 않는다. 좀 더 알아보게 된다. 지금까지의 표본 추출이 너무 편향된 감이 있어서 조금 더 검색해보았다. ‘슈퍼스타’는 아니고 전형적인 조용한 학자 스타일 교수들 몇 명 생각나는 대로 찾아보았는데, 아... 액수가 많이 낮다. 참 안됐다. 이 양반들 그 동네에서 이 돈 갖고 어떻게 살지? 다음에 만나면 잘 해줘야겠다.

 

잠깐, 너 또 뭐하니? 연봉 높은 사람 시기하며 가십하는 것이 나쁘다면, 연봉 낮은 사람 앞에서 우쭐해 하면서 그를 불쌍히(?) 여기는 것, 역시 비슷하게 나쁘다. 나도 다 옛날에 당해보고 겪어 본 것 아닌가? 연봉 액수만 갖고 어떤 이의 생활 수준을 짐작하거나, 그를 평가하는 일체의 행위는 어떠한 각도에서 보아도 바람직하지 않다. 

 

난 초중고를 거치는 동안 돈이 없어서 다소 불편했지만 나름 씩씩하게 살았다. 박사과정, 포닥 생활을 거쳐 낮은 연봉의 교수 생활을 할 때, 학문의 즐거움, 후학 양성의 기회가 주어진 것에 대한 감사함, 그리고 이 중요한 연구를 내가 꼭 해내야 한다는 자부심에 충만해서, 돈을 잘 버는 주변인들이 크게 부럽지 않았다(최소한 교수 생활 초중반까지는 그랬다). 그런 사람들 중 내가 단지 조금 쪼들리게 산다는 이유만으로 나를 함부로 대하는 자에 대해서는(불쌍히 여기려 하는 것 포함) 나는 오히려 그들의 경박한 인생관을 불쌍히 여겼다.

 

그런데 이게 뭔가, 늦게 배운 도둑질에 밤 새는 줄 모른다고 했던가? 교수 생활의 허상을 깨닫고 밖으로 뛰쳐나온 것까지는 괜찮았는데 요즘 달콤한 돈맛을 봐서 그런지, 내가 과거에 싫어하던 자들의 행동을 그대로 내가 하고 있다. 하여간 고고하고 잘난 척 해봐야, 인간은 어차피 다 거기서 거기다.

 

선악과는 따먹는 게 아니었다. 하지만 이미 따먹은 이상 유혹에 넘어가지 않도록 노력하면서 사는 게 운명인가보다. 

 

여러분. 이 연재 글의 정확성과 객관성을 위해 연봉자료 링크를 위에 보여드렸지만, 그 링크에 들어가서 지인의 연봉 알려고 하지 마시라. 남과 연봉을 비교하며 시기하거나 동정하는 건 자신의 인격을 갉아먹는다. 또 여지껏 계속 말했듯 미국 연봉은 변수가 너무 많아 제대로 알기도 어렵다. 부디 연봉 비교라는 선악과를 따먹지 않길 바란다.

 

<끝>

 

 

 

뱀발1 : 과거 많은 글에서 내 정체에 대한 정보를 하도 많이 흘려 데서, 소리쌤의 신상을 터는 것이 크게 어렵지는 않을 겁니다. 혹시 내 이름 석 자로 내 과거 연봉을 알려는 충동이 느껴지신다면? 괜한 수고하지 마세요. 제가 2012년 이전에는 주립대에 재직했지만, 그해에 사립대로 전직해서, 그 이후 제 연봉정보는 더 이상 공공 정보가 아니랍니다. 2012년 이전의 정보가 인터넷 어딘가에 존재할 수도 있지만 (아마 다크 웹(dark web)에서?), 이미 년수가 꽤 되어서 별 재미없을 겁니다.  

 

뱀발2 : 진짜 천기누설. 미국 대기업 직장인들의 연봉정보를 알 수 있는 웹사이트가 몇 개 있습니다. 물론 익명으로 공개된 것이라 신뢰도에 문제가 있을 수도 있는데, 그중 가장 정확해 보이는 것은 levels.fyi입니다. 사이트를 알려주며 이런 말 하긴 모순적이긴 한데, 암튼 웬만하면 판도라의 상자를 열어 보지 말기를 권합니다.

 

 

소리는 어디에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