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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겨울. 많은 사람들이 그랬듯, 나는 광화문에 있었다.

 

그때의 광화문은 나에게 특별한 의미가 있었다. 취준생이던 나는 그해 어렵게 어렵게 한 방송국 PD 공채시험 최종 면접에 올랐다가 고배를 마셨더랬다.

 

쓰렸다. 잡힐 듯 잡히지 않은 것을 겸허히 받아들이기엔 세상 짬밥이 비리비리할 때였다. 그해 합격자 중에 누구 자식이 있다더라 어쨌대더라 하는 뜬 소문을 안주 삼아 탈락 동지들과 술이나 퍼마시고 있을 즈음, 태블릿PC에서 어떤 요상한 아줌마가 쓴 대통령 연설문이 발견되었다는 뉴스가 나왔다. 이후 믿을 수 없는 기사들이 쏟아졌다. 세상은 생각보다 더 엉망진창이구나, 그렇게 여겼다.

 

사람들이 촛불을 들고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불운에 한껏 몰입되어 화풀 곳을 찾고 있던 나에겐 기가 막힌 판때기가 열린 것이다. 사람들 사이에 파묻히기도 했고 멀리 떨어져 인파를 감상하기도 했다.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대장관이었다. 다들 나처럼 이래저래 화가 많이 났나 보다, 했다.

 

그 날, 집에 돌아가 내가 참여한 집회를 다룬 뉴스를 보았다. 뉴스는 경찰 추산 몇 천명의 시시한 집회였다고 보도했다. 내 눈으로 본, 거리를 끝도 없이 가득 메운 사람들은 어디로 간 걸까. 내가 며칠 전에 떨어진 그 방송사였다. 그때부터는 뭔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했다.

 

개인적인 불행은 저 뒤로 밀려보냈다. 그 다음 토요일부터는 좀 더 단단한 마음을 가지고 거리로 나갔다. 곁에 선 사람들이 점점 더 늘어났다. 광화문 네거리에 빈틈을 찾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집회 인원을 카메라 앵글이 더 이상 눈속임할 수 없게 되었을 즈음 우리가 얻게 된 결론,

 

주문. 피청구인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

 

그땐 그런 표현이 없었지만, 정말로 가슴이 웅장해지는 순간이었다. 인류사에 이런 일이 있었던가. 민주주의가 이렇게 환상적으로 작동할 거라고 누가 감히 예상을 했던가. 에버트 인권상에 내 몫이 1/N이나 있다는 자부심은 정말로 근사했다. 그렇게 겨울을 보낸 나는 다시 절치부심 삶을 모색할 힘이 생겼고, 지금은 이렇게 딴지에 들어와 기사를 쓰고 있다. 응?

 

우쨌든지간. 그때를 살았던 사람이라면, 그 겨울에 대한 기억과 추억을 저마다 특별한 모양으로 가지고 있을 것이다. 확실한 것은 그 온도는 매우 뜨거웠었다는 것.

 

우리는 그 온도를 기억하고 있을까. 그때 광화문에서 만난 그 사람들은 다 어디에 있을까. 가깝지만 먼 이야기가 되어버린 지금, 그때의 촛불을 담은 영화가 개봉을 앞두고 있다. 영화 <나의 촛불>의 두 감독, 김의성 배우, 주진우 기자를 만나 그때의 촛불에 대하여, 간만에 뜨겁게 함 디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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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육병아리(이하 ‘근’) : 감독 데뷔작 개봉을 앞둔 소감이 어떤지?

 

김의성(이하 ‘김’) : 많이 떨린다. 한 작품을 전적으로 책임지고, 그 결과물로 관객들을 만나는 것은 이전과는 다른 압박감이 있다. 더구나 <나의 촛불>은 나와 주 기자 모두 이 영화에 투영된 생각과 마음이 있다. 결국 우리 자신을 관객들에게 내놓고 평가받는 거다. 어떻게 보면 심판받는다고 할 수도 있겠다. 그 무게감이 상당하다.

 

근 : 배우로서 참여한 작품이 개봉될 때는 관객의 반응에 쿨한 편인가?

 

김 : 나는 작품에 대할 때 큰 욕심을 부리지 않는다. 욕심을 부려야 될 사람은 따로 있으니까. 나는 그냥 제 역할을 잘했다고 평가받았으면 한다. 제작하고 투자한 사람들이 손해 보지 않았으면, 작업을 같이 한 감독이 다음 영화를 할 수 있었으면, 그 정도다. 하지만 <나의 촛불>은 그럴 수가 없더라. 주진우 기자와 내가 무한 책임을 져야 하니까.

 

주진우(이하 ‘주’) : 나는 좀 무섭다. 사실 잠이 잘 안 오고 막 환장하겠다. 개봉을 앞두고 이 영화가 잘 만들어졌다는 소문이 나자마자 주변에 많은 사람들이 도망가고 있다. 개봉관을 여는 게 쉽지 않을 것 같다. 많은 사람들이 영화를 보고 자신의 자랑스러웠던 추억, 기억을 한번 되살렸으면 하는 마음으로 <나의 촛불>을 제작했는데, 대선을 앞두고 개봉될 이 영화가 잘 만들어졌다는 이유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근 : 누가 왜 도망을 간다는 건가?

 

주 : 우리 영화를 같이 하기로 했던 사람들, 같이 무대에 서기로 약속했던 사람들이 하나둘씩 사라지고 있다. 어쩔 수 없다. 받아들여야지.

 

근 : 영화가 담고 있는 어떤 것이 지금 시국에 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예상했기 때문인가?

 

김 : 때가 워낙 민감한 때라서.

 

주 : 요새 상황이 그렇지 않지 않나. 나는 춥다. 무섭다.

 

근 : 아니 근데.. 이런 추위는 좀 익숙하지 않나. 이 방면으론 엄홍길 대장급으로 알고 있는디.. 아무렴 총수랑 프랑스에 도망가 있을 때보다는..

 

주 : 이제는 말할 수 있지만, 2012년 대선 때 유시민 선배도 그랬고 검찰 국정원에 아는 분들 전부 저보고 좀 나가있는 게 좋겠다고 했었다. 그런데 지금 느끼는 한기가 그때 못지않다. 아무튼 이게 다 영화가 잘 만들어져서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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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어쩌다 천재 감독이 되었나

 

근 : <나의 촛불>의 기획의도는 무엇인가?

 

김 : 촛불의 자존심을 되찾자.

 

주 : 누구나 그때 가슴 뜨거웠던 촛불의 기억이 있지 않나. 근데 너무 촛불을 잃어버린 것 같아서, 잊어버린 것 같아서 영화를 만들기 시작했다.

 

근 : 진작 만들어졌지만 코로나 때문에 개봉이 미뤄졌다고 들었다. 오랫동안 기다리다 이제야 상영관에 거는 건데, 대선을 앞둔 시점이라, 영화에 새로운 의미가 부여되는 것 같다. 이 영화가 달갑지 않은 사람들도 많은 것 같고.

 

주 : 그 사람들은 우리를 천재로 알고 있더라고. 처음부터 대선 때 터트리려고 치밀하게 기획하고 의도된 거라고.

 

근 : 그러한 반응들이 충분히 예상됨에도 불구하고, 영화가 가장 정치적으로 해석될 수 있는 이 대선 정국 한가운데로 개봉 시점을 잡은 이유는 무엇인가?

 

김 : 소극적인 의미로 말하자면, 지금 개봉하지 않으면 개봉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사실 지금도 그렇게 좋은 시기는 아니다. 코로나도 지금 완전히 잡힌 것도 아니고. 그런데 대선 전에 개봉하지 않으면, 이 시기를 놓치면, 촛불은 이제 흘러간 얘기가 돼 버릴 수 있겠다 싶었다.

 

주 : 무엇보다 지금이 촛불이 가장 필요한 때가 아닌가 판단했다. 왜 우리가 촛불을 들었을까? 그 추운 날. 그때를 다시 생각해보자는 게 우리의 생각이었다.

 

김 : 적극적인 의미를 말해보자면, 지금이야말로 사람들이 정치적인 선택을 하는 데에 이 영화가 도움을 줄 수 있는 시기라고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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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 : 이 영화를 처음 기획했을 때는 언제를 개봉 목표로 잡았나?

 

김 : 2020년 총선이 베스트였다. 계획대로 되었으면 아마 흥행도 잘 되었을 텐데 아쉽다.

 

근 : 이후로 지금까지 개봉 시도는 없었나?

 

김 : 여러 번 있었다. 아무래도 다큐멘터리 영화는 극장을 잡기가 쉽지 않다. 극장들이 선거가 껴있는 기간에는 상업 영화를 피하는 경향이 좀 있다. 사람들이 정치에 관심을 갖느라 영화를 잘 안 보니까. 우리는 그래서 역발상으로 지선, 보궐 선거 등을 노렸다. 정치의 계절에 정치를 테마로 한 영화가 나쁘지 않을 것 같아서. 하지만 코로나 때문에 방법이 없었다.

 

근 : 지난 다스뵈이다에서 상영관 확보를 위해서 영화 홍보를 한지 일주일 되었다. 그 새 진전이 좀 있었나?

 

김 : 큰 진전은 없지만 극장 측에서 우리 영화에 대한 경계를 좀 풀고 있다고 들었다.

 

근 : 역시 내용이 좋아서?

 

김 : 극장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어느 한쪽에 편향되어서 선동하는 영화를 대선 시즌에 건다는 것은 굉장히 부담스러운 거다. 그런데 영화를 막상 보니, 이게 그런 영화가 아니구나, 차분하게 만든 영화구나, 그런 이야기들을 많이 하더라. 아직 좀 어려운 상황이긴 한데, 처음에 이 영화를 하겠다고 나설 때보다는 상황이 좀 나아진 것은 맞다.

 

주진우 브이로그와 토요미식회

 

근 : 2016년 겨울 그때, 두 분은 어디에 있었나.

 

주 : 저는 뭐 취재기자였고. 그곳은 역사의 현장이었고, 국민들의 열망이 분출되는 현장이었기 때문에 취재기자로서 맨 앞에, 맨 끝까지 계속 봤다. 나라가 망할 것 같아서 광장으로 뛰쳐나온 많은 사람들이 웃으면서 역사의 진전을 만들어냈다. 상황은 심각했지만 모두가 즐거웠다. 이게 민주주의 혁명이었고 세계사적으로도 평가받을 그런 위대한 일이었다. 나도 굉장히 즐거운 마음으로 취재를 열심히 했었다.

 

김 : 나는 구경꾼이었다. 광화문 근처를 빙빙 돌면서 너무 재밌는 구경을 많이 했다.

 

근 : 기억나는 장면이 있나?

 

김 : 헤아릴 수 없지만, 가장 마음에 남는 것은 사람들의 표정이었다. 와 어떻게 저렇게 다들 즐겁고 밝을까.

 

근 : 두 사람은 그때 광장에서도 같이 했나?

 

주 : 지나가다 보긴 했지.

 

근 : 두 분이 술도 한잔 안 하고?

 

김 : 어차피 주 기자는 술도 안 하고,, 그때는 뭐 그냥 알고 지내고 인사만 하는 사이였으니까.

 

주 : 그때 나는 하루에 약속이 15개씩 있었다. 누구랑은 간식 먹고 누구랑은 밥 먹고 누구랑은 디저트 먹고 누구랑은 차 마시고. 꼭 취재원들만 만난 게 아니고, 오래 못 본 친구들도 많이 봤다. 그때 광장에 가면 누구나 만날 수 있었으니까. 고등학교 때 친구도 몇 십 년 만에 만났다. 전일고등학교 1학년 5반 최형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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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 : 배우님은 그때 광화문에서 뭐 하셨나.

 

김 : 뭐 좋아하는 사람들하고 토요일 밤 나가서 슬슬 돌아다니다가 야 춥다! 어디 들어가자 이러면, 근처에 있는 유명한 노포들 찾아다니면서 한 잔하고. 그런 재미였지. 우리는 그걸 토요미식회라고 불렀다.

 

근 : 당시 광화문의 냄새, 분위기, 습도에 대해 어떻게 기억하고 있나?

 

주 : 당시에 동아일보사 앞에 똥탑, 나는 거기를 주로 지키고 있었다. 하루는 친한 동생인 배정남이가 모델 동생들이랑 왔다고 인사를 하는데, '아~ 이게 세상이 바뀌려는 거구나' 싶었다. 그 다음 주에는 취재원으로 알게 된 룸싸롱 사장과 마담이 아가씨들을 데리고 왔다. "아니 나라가 이렇게 망한다는데 지금 가게 하면 뭐 하냐"고 그런 사람들이 나온 거다. 그래가지고 ‘우와 이건 진짜 변하겠구나’ 확신이 들었다. 그때 광화문에서 민주당쪽 인사들 말고도 새누리당 박근혜 주변 사람들도 많이 만났다. 정말 바뀌겠구나. 촛불은 좌우, 진보, 여야로 갈라지지 않는 모두의 뜻이구나. 그 압도적인 힘에 두려움이 들 정도였다.

 

김 : 나는 뭐 간단했다. 어떻게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모였을까. 이게 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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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 : 그때야 뭐 두 분이 서로 친하지도 않았고, 의기투합해서 이런 영화를 제작하게 될지도 몰랐을 텐데.

 

김 : 그러니까. 이럴 줄 알았으면 그때 좀 찍어 놨을 텐데.

 

근 :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면, 영화에 꼭 담고 싶은 그림이 있나?

 

주 : 그때 광장에서 약속하고 만났던 많은 사람들의 모습을 남겨놨어야 했는데 아쉽다. 여러 사람들과 저녁마다 나눈 깊은 대화들이 영상으로 담아놨으면 굉장히 재밌었을 텐데.

 

근 : 유튜브 <주기자>채널을 좀 더 빨리 시작했으면 좋았을걸..

 

주 : 그르니까!! 그땐 그런 걸 몰랐지.. 그때 이외수 선생님이 해줬던 이야기, 문재인 당시 민주당 상임고문이 던진 질문들, 이재명 당시 성남시장과 이 촛불의 의미에 대해서 나눴던 대화, 이런 거 다 찍어놨으면, 우리 영화가 훨씬 풍성해졌을 텐데.

 

근 : 김 배우님은 어떤 장면을 담지 못한 게 제일 아쉬우신가?

 

김 : 영화에 쓰인 모든 그림. 인터뷰를 제외하곤 누군가 당시 찍어놓은 화면들을 쓸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내내 아쉬웠다. 내 눈이 아닌 3자의 시선으로 만들어진 영상이기에 연출의 의도를 담을 수 없는 한계가 있으니까. 돌아갈 수 있으면 같은 장면을 내 카메라로 싹 새로 찍고 싶다.

 

근 : 정말 재밌거나 희귀한 컷이지만, 전체 흐름을 위해서 눈물을 머금고 뺀 장면 같은 건 있나?

 

주 : 그런 비하인드 컷은 다스뵈이다같은 곳에서 보일 예고편에 활용하고 있고.. 많지. 많다. 그런 장면들. 김성태도 그렇고 하태경도 그렇고, 하태경 나온 분량은 사실 재밌는 것도 아니다. 더 기가막힌게 많았는데..

 

김 :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해서는 이혜훈 전 의원이 증언을 많이 했다. 거기서도 재밌는 게 많이 있었다. 사랑받다가 팽 당한 양반이라 그 양반이..

 

주 : 정치인들 간의 암투 부분도 많이 덜어냈다. 박지원 추미애 간의 갈등관계는 영화에서보다 훨씬 첨예했다. 하태경의 촛불론은 정말 주옥같아서 교과서에 싣고 싶은 정도였지만, 영화엔 좀 자제해서 담았다.

 

<1987> 그리고 <나의촛불>

 

근 : 영화 <1987>이 6·10 민주 항쟁을 전면에 다룬 첫 번째 영화라면, 영화 <나의 촛불>은 촛불 혁명을 다룬 첫 번째 작품이다. 두 대규모 시민운동은 광화문 일대라는 배경, 폭발적 에너지의 분출 등 여러모로 맞물리는 지점이 많다. 87년 그날, 두 분은 어디에 서있었나?

 

김 : 6월 10일엔 군대에 있었다. 제대 다음날이 이한열 열사 노제였다. 그날 연대에서 시청까지 걸어갔던 기억이 난다. 아현동에 고가도로가 있었을 때, 거기를 넘어서.

 

근 : 군대라는 단절된 공간과 현실의 간극이 굉장히 컸겠다.

 

김 : 그랬다. 나와보니 사람들이 길에 꽉 차있었다.

 

근 : 2016년의 광화문에서 1987년의 기시감이 느껴지지는 않았나?

 

김 : 많이 달랐다.

 

근 : 무엇이 어떻게 다른가?

 

김 : 그때는 진짜 전쟁터에 있는 것 같은 느낌이 항상 있었다. 이 행진의 끝에는 굉장히 무서운 일이 기다리고 있을 거라는 걸 모두가 알고 있었다.

 

주 : 87년은 중학생 때라 겪어보지 못했지만, 대학 다닐 때만 해도 종로3가, 명동에서 야 너 일로와바 해서 가방 뒤지고 검문하고 그랬었다. 한 번은 친구들이랑 명동에 그냥 놀러 갔는데, 명동성당 앞에서 아무 이유 없이 검문에 잡혔다. “아니 나 데모하러 온 게 아니라 청바지 사러 왔다.” 아무리 말해도 소용없이 닭차에 실렸다. 데모하게 생겼다는 이유로. 저 새끼 빨갱이처럼 생겼다고. 닭차에 실려서 남양주 어딘가에 떨어뜨렸다.

 

근 : 영화<1987>에 나온 장면과 똑같다.

 

김 : 그 영화에 이부영 역으로 출연하고 나서, 나중에 극장에서 보다가 정말 깜짝 놀랐던 장면이 있다. 유해진 씨가 길에서 백골단에게 검문당하는 장면. 그 장면을 극장에서 처음 봤을 때 숨을 못 쉬겠더라. 갑자기 콱 막혀가지고. 청카바와 청바지를 입고 스크린에서 다가오는데 숨이 안 쉬어지고 등에서 막 땀이 났다. 나에게 그런 트라우마가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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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 정말 대단한 일이다. 그때 선배들은 감옥에 갈 수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광장에 나왔으니까.

 

김 : 그땐 길에 사람들이 모인다는 것 자체가 불법이던 때였으니까. 모인 사람들 사이에 긴장감이랄까 비장함은 굉장히 달랐다. 그렇다고 그때가 더 대단했다, 그렇게 볼 일은 아니다. 촛불이 87년과 정말 달랐던 것은, 승리에 대한 자신감이 있었다는 거다. 자신감.

 

배우 김의성

 

근 : 다른 영화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김 배우님은 ‘애국노’라는 별명, 맘에 드시나?

 

김 : 어우 과분하지.

 

근 : 다짜고짜 팬심을 드러내보자면, <육룡이 나르샤>에 정몽주 역으로 나와 선죽교에서 이방원을 극딜하는 장면이 가장 쩔었던 것 같다.

 

김 : <부산행>이라고 안 해줘서 다행이다.

 

근 : 현실에선 세상에 대고 매운맛 쓴소리를 주저 없이 하는 인물이, <관상>의 한명회, <미스터 선샤인>의 이완용, <더 킹>의 정치 건달 등 작품에서는 세파에 제대로 영합하는 캐릭터를 주로 선보인다. 뭐 그게 김의성이라는 배우의 매력이긴 하지만. 배우로서 본인의 필모그래피를 어떻게 생각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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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 뭐 역할이야 뭐 주어지는 대로 하는 거니까. 그리고 배우가 바라보는 인물은 관객이 바라보는 인물과 좀 다르다. 어떤 인물을 연기할 때 그 인물이 선한 사람인가 악한 사람인가는 그렇게 중요한 선택 기준이 아니다. 맡은 캐릭터를 두고 선악을 따지는 것 자체가 되게 이상한 거다. 맡은 인물들에 대해 다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고, 충분히 이해하고 있고, 나도 그 순간에 그럴 수 있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에 그 역에 임할 수 있는 거다. 그렇게까지 밀어붙이지 않으면 그 역을 연기할 수가 없다.

 

근 : 그동안 맡았던 배역 중에 가장 애착이 가는 인물이 있나?

 

김 : 맡은 역은 다 좋아하지만, 영화 <26년>에서 최계장 역을 특히 좋아한다. 전두환을 경호하는 경찰이었는데, 굉장히 복잡한 사람이었다. 그 복잡한 내면을 가진 인물이 어떤 결정을 내릴지 끝까지 드러내지 않고 잘 끌고 갔던 거 같다.

 

근 : <내부자들>에서 조국일보 편집국장 역도 최고였다. “킬해. 이번엔 검찰 쪽 빨아줘야 돼.” 진짜 조선일보 편집회의를 훔쳐보는 기분.

 

주 : 과연 연기력일까요?

 

근 : 화이또~ 다이조부요?

 

김 : 화이또. 다이조부데스~

 

손석희가 열고 유시민이 이었다

 

근 : <나의 촛불>에는 평소에는 잘 볼 수 없었던 신박한 인터뷰이가 많이 등장한다.

 

김 : 맞다.

 

근 : 일단 JTBC 손석희 사장. 섭외가 만만치 않았을 거 같은데.

 

김 : 제일 어려웠다. 섭외는 주로 주 기자가 담당했는데, 손 사장 섭외는 끝까지 쉽지 않아서 영화 촬영 거의 막바지에 인터뷰했다. 협조적인 인터뷰도 아니었고.

 

주 : 그 양반이 그래요. 쉽지가 않아.

 

김 : '인터뷰는 한다만 너희가 원하는 대답은 해주지 않을 거야' 그런 태도.

 

근 :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김 : 첫 질문이 <박근혜를 어떻게 생각하십니까>였다. “제가 뭐 어떻게 생각해야 합니까?”라고 대답이 돌아오더라. 진짜 막막했다. 와~ 이 인터뷰를 어떻게 풀어가야 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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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 : 인터뷰는 얼마나 걸렸나.

 

주 : 손 사장뿐만 아니라 대부분 인터뷰들은 한 시간에서 두 시간 정도 걸렸다.

 

김 : 촬영 때는 애먹었었는데, 찍어놓고 보니 손사장 인터뷰가 또 좋았다. 그래서 나중에 편집할 때, 이 인터뷰를 초반에 배치해서 우리의 톤 앤 매너로 잡자. 우리는 그렇게 뜨거워지지 않을 거야. 우리는 좀 서늘하고 느린 속도로 갈 거야. 그렇게 된 거고..

 

근 : 그런 의도였다면 매우 성공적인 도입부였다고 본다.

 

김 : 사실 원래 오프닝은 다른 거였다. 박정희와 박근혜가 나오는 게 원래 시작이었는데, 손 사장으로 바꿔보니 괜찮더라.

 

주 : 촬영 장소가 JTBC 사장실이었다. 그땐 뉴스룸을 진행하고 있었던 때였고. 본인의 말이 사회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항상 걱정하는 분이다. 사실 굉장히 여린 사람이다. 그래서 조금 예민한 거고. 그래도 촛불에 대한 의의를 역사의 한 페이지에 남겨놓는 영화라는 말에 어렵게 인터뷰를 승낙했다.

 

근 : 그렇게 설득을..

 

주 : 응한 거다. 손 사장님은 설득한다고 움직이는 사람이 아니다. 본인이 취지에 공감해서 결정한 거다. 유시민 선배도 그렇고.

 

근 : 그러고 보니 유시민 작가는 이 영화 전체를 이어붙이는 스토리텔러였던 거 같다.

 

김 : 그건 우리가 의도한 거다. 우리 영화가 자료 화면들로만 구성된 나레이션 없는 다큐멘터리다 보니, 지점과 지점이 넘어갈 때 잘 이어지지 않는 부분들이 있었다. 유시민 이사장님을 인터뷰할 때, 사건과 사건의 맥락을 이어주는데 쓸 수 있는 말들이 좀 나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었는데 그냥 알아서 이야기를 쫙 다 해주시더라.

 

근 : 역시 갓시민..

 

주 : 인터뷰 끝났는데도 하실 말이 많으셨는지 계속 이야기 하시더라고.

 

그때 그사람들

 

근 : 정치인 인터뷰 장면은 익숙한 듯 뭔가 낯설었다. 인터뷰 장소가 국회 본회의장 맞나?

 

김 : 맞다. 본회의장 안에 카메라가 들어간 것은 우리 영화가 처음이다. 뉴스 카메라도 2층밖에 못 들어간다.

 

근 : 보통 본회의장 장면은 부감이나 줌으로 땡겨서 찍은 것만 봐서 그런지, 회의장안에서 바스트 샷으로 당시를 증언하는 장면은 굉장한 현장감이 느껴졌다. 대체 어떻게 장소 섭외를 한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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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 그건 비밀이다. 아마 앞으로도 본회의장에 카메라가 들어갈 일은 없을 거다.

 

근 : 국회 사무처에 빽이 좋으신가..

 

주 : 그냥 제가 어디 가서 욕 안 먹고 잘 살았다고 생각해주시라.

 

김 : 그래서 이 영화는 기록으로서의 측면에서도 재미있는 자료가 될 거 같다.

 

주 : 광장에 촛불의 에너지가 쭉 모여서 국회에 딱 무겁게 얹히는 느낌을 연출하고 싶었다. 당시 국회의원들이 느꼈던 압박감을 표현하기 위해서, 본회의장이 필요했고 국회의 높은 천장이 필요했다.

 

근 : 인물 뒤쪽으로 공간을 많이 남기는 화면 배치도 같은 맥락의 연출인가?

 

김 : 첫째로는 얼굴 앞에 자막으로 그 사람을 소개하게 되는 게 좀 싫었다. 다른 이유로는, 보통 앵글로 찍으니까 증언이 좀 느긋하고 한가한 회상 같은 느낌이 들더라. 조금은 덜 안정적이고 조금 더 불안한 느낌을 주려고 카메라 앞에 바짝 다가와서 말하는 것 같은 앵글을 택했다.

 

주 : 15개 정도 앵글을 놓고 고민을 했다. 그중에 그날의 긴장감이 가장 잘 묻어나는 배치를 택한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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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 : 대통령 박근혜 탄핵소추안 가결 당시를 재연하는 연출도 인상적이었다. 의원들이 디렉션을 잘 따라주던가?

 

김 : 뭐 별거 없었다. “저기까지 가서 문 여는 척하세요. 문 열고 들어오세요.” 그 정도. 뭔가 의도치 않게 약간 좀 귀엽게 나온 거 같다.

 

주 : 그때 추미애 전 대표가 건강이 안 좋아서 걱정이 많았다. 안민석 의원은 의욕이 넘쳤고..

 

김 : 박지원 원장이 제일 잘한 거 같다.

 

주 : 정세균 의장이 단상에 올라가면서 “아~ 옛날 생각이 나는구만” 그랬던 거 기억나네.

 

김 : 좀 무리한 요구였는데도 해 주시더라고.

 

검사 윤석열

 

근 : 뭐니 뭐니 해도, 이 영화의 가장 강력한 씬스틸러는 윤석열 당시 서울지검장이다. 인터뷰 현장은 어땠나?

 

김 : 너무, 제일 쉬웠다. 인터뷰하기에. 말도 잘해 줬고. 그때 윤 검사는 촛불 시민들에게 슈퍼스타였다.

 

주 : 그때는 멀쩡했지.

 

김 : 다른 정치인들도 그랬지만 윤 검사는 워낙 좋아했던 인물이었기 때문에, 뉴스에서만 보던 사람을 직접 인터뷰한다는 생각에 막 가슴이 뛰고 그랬다.

 

근 : 두어 시간 정도의 인터뷰라면, 화법이랄지 태도랄지 대중 이미지 이면의 모습을 캐치하기에 충분한 시간일 텐데. 어땠나?

 

김 : 그땐 나도 좀 흐렸다. 그저 팬심이었고, 촛불 당시의 재미있는 얘기를 끌어내는 데에 집중했으니까.

 

근 : 하긴 그때는..

 

김 : 몰랐다. 잘 몰랐다. 최근에 다시 영화를 보니까 그렇게 다리를 벌리고 앉아 있는 것도 처음 알았다. 촬영 때 그걸 의식을 못했다는 게 더 신기하더라.

 

주 : 그분은 신체 공학적으로 많이 벌어져 있다.

 

김 : 그땐 왜 저걸 이상하게 생각 안 했지?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

 

주 : 그때 윤석열은 맡은 일을 했던 전문직 검사였다. 검사 윤석열만 봤던 거다. 우리는.

 

김 : 우리가 듣고 싶었던 것은 특검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의 혐의를 밝혀내는 이야기들, 거기에 대한 관점 같은 것이었다. 굉장히 힘든 과정으로 특검을 진행했는데, 그것에 촛불이 어떤 도움을 줬는가, 촛불이 특검 팀장에게 심적으로 어떤 도움을 줬는가 이런 얘기들.

 

근 : 하긴 검사한테 검사 일을 어떻게 했냐는 질문은 그렇게 답을 듣기 어렵지 않았겠다. 대선 후보인 지금은 사람들이 잘 모르는 걸 자꾸 물어보니까.. 도리도리하게 되고.. 막 다리가 벌어지고..

 

김 : 그렇지. 윤석열 서울지검장 인터뷰는 이 영화 제작 중에 제일 부드럽고 가장 쉽게 진행했던 인터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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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는 맞고 지금은 다르다

 

근 : 영화 제작 이후, 윤석열 검사가 국민의힘 대통령 후보가 되는 과정을 어떤 마음으로 지켜보았나?

 

김 : 아우.. 그건 뭐 다 비슷할 거라고 본다. 처음에는 안타깝고 이유를 모르겠다가 나중에는 점점 분노하게 되고 그런 과정들.

 

주 : 고통스러웠다. 매우.

 

근 : 영화를 총괄하고 책임지는 입장에서, 영화가 개봉되기 전에 촬영분과 전혀 다른 인물이 되어버린 부분에 대해서 고민이 좀 있었을 것 같은데.

 

김 : 걱정 많았다. 국정농단 특검 검사가 촛불 시민을 어떻게 기억하는지 물어놨었는데, 이걸 어떻게 해야 하나. 대선 후보가 되어 있는 이 시점에서 이걸 다룬다는 거, 이거 괜찮나? 이대로 내보내도 되나? 그런 생각도 하고. 현실적인 유불리도 따져보고.

 

근 : 개봉이 미뤄진 영화의 제작자 입장에서도 윤석열의 드라마틱한 행보에 복잡했을 것 같다.

 

김 : 윤석열을 떨어뜨리려고 지금까지 장전하고 기다렸다가 개봉하는 것 아니냐 이렇게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있다. 심지어 어떤 사람들은 우리 영화가 윤석열 후보에게 면죄부를 주기 위해 개봉하는 거 아니냐고 비난하기도 하고. 미칠 노릇이다.

 

근 : 중앙일보에서 나꼼수 멤버들이 합심해서 <나의 촛불>을 띄우고 있다고 기사 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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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링크

 

김 : 영화를 보면 금방 알 수 있다. 우리 영화에서 윤석열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는 걸. 지금 이 시기에 그 사람의 이름값이 재밌는 거지. 영화 안에서 그는 그렇게 뭐 대단한 일을 하고 있는 게 아니다.

 

근 : 당시의 소감 정도 듣는 거였으니까.

 

주 : 맞다. 그런 오해는 영화를 보신다면 금방 풀릴 거다.

 

김 : 그런데 어쩌면 윤석열 씨는 좀 쫄려 하고 있을 수도 있다. 몇 년 전 인터뷰 때 도대체 자기가 무슨 말 했는지 기억을 못 할 수도 있으니까.

 

주 : 아닌 게 아니라 그 주변 사람들이 굉장히 걱정하고 있다고 알고 있다.

 

근 : 영화에는 윤석열 후보뿐만 아니라 하태경, 이혜훈, 김성태 같은 인사들이 촛불의 의미에 대해서 가슴 뜨겁게 말한 인터뷰들이 많이 포진 되어있다. 지금 이 시점이라면 하기 어려웠을 말들을 했고..

 

김 : 안 하지. 지금은 인터뷰 절대 안 하겠지.

 

근 : 하지만 당시엔 촛불의 잔열이 아직 남아 있을 때니까.

 

김 : 그게 좀 재밌는 부분이다.

 

근 : 이 영화가 흥미로운 지점이 거기 같다. 어떤 영화의 개봉 시점이 미뤄짐에 따라 블랙코미디 요소가 추가될 수 있다는 게. 영화의 늦은 개봉을 앞두고, 촬영분의 수정이나 삭제 요구를 했던 사람이 있나?

 

김 : 아마 기억을 못 할 거다. 자기들이 무슨 말을 했는지를.

 

주 : 뭐 한 두 사람이 자기가 영화에 어떻게 나오냐고 연락은 해 온 적은 있으나, 내용을 고쳐달라거나 빼달라고 말하는 사람은 없었다.

 

김 : 뭐라도 좀 태클이 들어오면, 우리야 뭐 좋지. 뭐라도.

 

주 : (영화 상영금지) 가처분에 대해서 국민의힘에서 굉장히 고민하고 회의를 했다는 얘기까지는 들었다.

 

김 : 충분히 그럴 만한 상황이다. 상황이 예민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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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 : 섭외가 불발되거나 정말 꼭 섭외하고 싶었는데 못한 인터뷰이가 있나?

 

주 : 홍준표, 김무성, 나경원 여러 사람들 인터뷰 요청했지만 성사되지 않았다. 그중에 나는 이정현, 김진태 같은 박근혜 대통령 주변에서 최후까지 옹위하던 그런 사람들. 소위 친박, 진박 그 사람들 인터뷰를 꼭 하고 싶었지만 응하지 않더라. 어떤 사람은 인터뷰를 잡았는데 그냥 직전까지 왔다가 가버리고.

 

김 : 홍준표.

 

주 : 너무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뭣보다 인터뷰하지 못해 아쉬운 인물은 박근혜 전 대통령하고 최순실 씨다. 근데 당시에 두 분이 감옥에 있어서 쉽지 않았다. 최순실 씨 인터뷰를 위해서 굉장히 많은 노력을 했었다. 손석희 선배한테 했던 노력의 한 열 배, 스무 배쯤. 쉽지 않았다. 그 부분이 좀 아쉽다.

 

근 : 정유라나 장시호는?

 

주 : 정유라, 장시호가 어디에 살고 뭐하고 누구랑 만나고 어디에서 술 먹고 그런 걸 전부 취재해서 그 자리에 다 갔었다. 가서 앉아서 올 때까지 기다리고 그랬는데 인터뷰가 안 되더라. 마지막에 될 듯 될 듯 했는데 결국 안됐다.

 

촛불은 어디로 가고 있는가

 

근 : 이 영화는 한국 정치의 역동성을 간접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 같다. 몇 년 후에 법무부 장관과 검찰총장이 된 야당 대표와 특별검사는 헌정 사상 최초의 하극상 쌩쑈를 벌였고, 야당 대표와 각을 세우던 다른 당 원내대표는 지금 국정원장이 되었으며, 다시 또 그 특별검사는 지금 야당의 대통령 후보다. 무엇보다, 궤멸 직전까지 갔던 국민의힘이 지난 서울 부산 보궐선거에서 승리했다. 광화문의 촛불이 온 세상을 다 뒤덮을 것만 같았던 때로부터 불과 4~5년 동안 일어난 일이다. 영화를 제작하는 동안 빠르게 변하는 세상을 보면서 어떤 감정이 들었나?

 

김 : 어떻게 이해해야 될까 고민했다. 어떻게 이해를 할까. 그 결과를 어떤 식으로든 제대로 이해하지 않으면 더 큰일을 당할 수도 있겠다 하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계속 고민을 많이 했다. 아직도 명확한 결론이 내려지지는 않았지만 생각은 좀 많이 바뀐 거 같다.

 

근 : 어떤 식으로?

 

김 : 촛불을 들었던 때와는 또 다른 세대들이 나타나 정치에 참여하고 있다. 한국 정치사에 나타난 적이 없었던, 전혀 새로운 집단들인 것이다. 한편으로는 이 정치 소비자들을 이해하고, 한편으로는 절대 훼손돼서는 안 되는 가치는 또 가치대로 끌고 가야 하는 게 진짜 어려운 숙제가 되겠구나, 한국에서 소위 진보 혹은 중도에서 정치를 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는. 그런 생각을 했다.

 

근 : 일단 현상을 받아들이는 게 급선무였나 보다.

 

김 : 어떻게든 받아들여야 했다. 왜냐하면 현실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아무것도 시작할 수 없으니까. 그렇다고 해서 그 현실을 무작정 수용할 수도 없고.

 

주 : 욕할 수도 없는 거지.

 

김 : 맞다. 욕할 수도 없고 끌려갈 수도 없는 일이니까. 우리 세대가 정치를 가치 지향적으로 받아들였다면 지금의 새로운 세대는 이익 지향적으로 정치를 받아들이는 것 같다.

 

근 : 새로운 정치 소비층을 그렇게 이해하고 있는 건가?

 

김 : 그것이 한편으로는 좀 부럽기도 하다. 왜냐하면 가치 지향적으로 움직이는 사람들은 무거워서 절대 변하지 않으니까. 가치가 바뀌지 않는 한 그냥 그대로 가니까. 어떻게 보면은 진영의 노예가 돼서 평생을 살고 있을 수도 있으니까. 알면서도. 우리는.

 

근 : 지금 대선의 양상에서도 그런 세태가 반영되어 있다. <나를 위해 이재명>이라는 캐치프레이즈도 그렇고, <석열씨의 심쿵약속>이라는 공약 시리즈도 그렇고.

 

김 : 한편으로는 부정적이지만 한편으로는 또 긍정적으로 생각한다. 대선 후보들이 선거에서 거대 담론만 내놓는 게 아니라 ‘제발 저를 좀 봐주세요. 이렇게 이렇게 좋은 걸 해볼게요’라고 작은 얘기들 하는 거는 일단 일보 진전한 면이 있다. 그런데 아마 그런 흐름도 언젠가는 또 분명히 반동으로 보이는 때가 올 거다.

 

근 : 동의하는 바다.

 

김 : 그래서 그러니까 현실에 눈을 돌리지 않으면서도 그 가치에 대한 지향을 잃지 않는 것. 그 어려운 일을 해야 하는 거다. 우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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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 : 주 기자님은 서울 부산 재보궐선거 결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

 

주 : 참담했다. 촛불을 든 사람들의 기대치란 뜨겁고 무서운 것이었기 때문에 더 잘했어야 했다. 쟤네들이 몰라, 쟤네들이 뭘 알아 이렇게 생각하면 그건 잘못된 거다. 아까 현실을 보자고 했는데, 그래서 참담했다. 우리가 영화를 만들면서 변하는 현실과 연결 지어 생각하지는 않았다. 관객들이 그때 뜨거웠던 나의 촛불을 꺼내봤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나는 어떤 촛불이었지? 나는 촛불을 보면 어떤 생각이 났지? 나는 그때 어디에 있었지? 사람들이 그 생각을 한번 상기해 볼 수 있다면. 우리의 프로젝트는 충분히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다.

 

근 : 이 영화는 아주 현실적인 문제에 봉착해 있다. 대선 기간 동안 상영관을 잡기가 쉽지 않고, 무엇보다 이 콘텐츠를 정치 편향으로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는 자들이 많다. 영화 내용과 관계없이.

 

주 : 자기 손해라고 본다. 그때 전 국민의 80%가 이 광장에 나왔다. 촛불에 좌와 우는 없었다. 그 이야기를 편가르기로 받아들인다면 결국 자기 발목을 잡는 거다. 촛불 때, 누구나 다 뜨거웠지 않았나. <나의 촛불>은 우리가 세상을 바꾼 아름다운 승리의 역사에 대한 이야기다. 정치에 관한 얘기가 아니다.

 

김 : 그래서 박근혜 전 대통령이 사면된 다음에 이 영화가 나오게 되어 오히려 좀 마음이 편안해졌다. 이 일을 뭔가 첨예하고 급박한 것으로 바라보지 않고 그저 하나의 역사적 사건으로 조금 더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그런 토대가 마련된 것 같아서.

 

래아에게

 

근 : 영화에 촛불 시위가 세상으로의 첫 번째 외출이었던 아이가 나온다.

 

김 : 래아. 당시 한 살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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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 : 그 아이가 좀 더 커서 사리를 분별하고 세상에 관심을 갖기 시작할 때에, 나무위키 같은 곳에 ‘촛불 혁명’같은 것을 검색해본다면, 아마 <나의 촛불>은 그것의 관련 창작물 첫 번째 링크로 걸려있을 거다. 6·10 민주 항쟁에 대해 알고 싶은 MZ세대들이 영화 <1987>로 그때의 냄새와 소리를 간접 체험할 수 있었던 것처럼.

 

김 : 우리 영화가 그렇게 위대해?

 

주 : 나무위키가 위대한 거지.

 

근 : 암튼, 그 아이가 조금만 더 관심이 있다면, 관련 링크로 걸린 이 인터뷰도 찾아보게 될 거다. 나무위키 유저들은 대부분 집요하니 먼 훗날의 또 새로운 세대들이 이 영화와 두 분의 인터뷰를 찾아볼 날이 있을 거다. 마지막으로, 미래의 그들에게 메시지 하나씩 남겨주시라.

 

주 : 아이들아. 너희의 엄마 아빠는 촛불을 들었고 이렇게 아름다운 위대한 역사를 쓰셨다.

 

김 : 나도 비슷한데.. 너희 부모가 그 자리에 있었다.

 

근 : 마무리로 이건 좀 심심한데.. 10년 후 사람들에게 타임캡슐 갬성으로 좀 뭐 남길 말 없나?

 

김 : 야! 죽을 것 같지??

 

주 : 지금 그 사람을 거기서 만나지 않기를 빌어요.

 

근 : 그 사람이 누군가?

 

주 : 안알려 줄래.

 

근 : 특정해줘야 이 인터뷰가 끝난다.

 

주 : (도리-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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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끄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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