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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형틀 해체 일을 시작한 지 약 4개월 즈음 지났을 때, 양지 리조트 앞에 있는 CJ 대한통운 물류창고로 일하러 가게 되었다. 그때가 2018년 9월 경이다. 그때부터 약 3개월 동안 거의 그 현장으로 출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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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전까지 작은 현장만 굴렀던 바, 큰 현장에 가면 뭐 좀 다른 게 많을 것이라 생각했다. 뭐, 이 이야기는 나중에 하기로 하고, 나름 기대했던 것이 무너지는 데는 몇 분 걸리지도 않았다. 안전교육을 받기 전에 직영 형틀 목수 반장을 만나러 갔는데 전날 마신 술이 덜 깼음이 분명한 얼굴과 입 냄새로 우리에게 딱 한 마디 했다.

 

“곶감은 천천히 빼먹어야 하는 거야”

 

도대체 무슨 이야긴가 했다. 마무리되어가고 있던 현장이지만 엄청나게 컸던 곳이라 남들이 뜯다 만 거푸집 몇 개를 뜯기 위해 한 시간은 기본으로 헤매고 다녀야 했다. 빼먹기 힘든 곶감인데 이걸 왜 천천히 빼먹으라고 한 건지 도통 알 수 없었다. 

 

일 자체의 양이 많지는 않지만 현장이 워낙 커서 돌아다니는 데에 쓰는 시간이 많았던 터라 팀장은 인원을 지원받았다. 팀은 안산에서 온 다국적 한 팀, 서울에서 온 청각 장애인 중심의 한 팀이 있었다. 현장 반장은 전직 사채업자 출신이었던 자가 맡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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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돈을 빌려주는 상대가 이자를 감당할 능력이 있는가 없는가를 판단하던 눈치 빠른 전직 사채업자답게 이 자는 현장의 문제점을 며칠 만에 파악한다. 2018년 여름은 끔찍하게 더웠고, 몇 명이 열사병으로 병원에 실려 가기도 했다. 그 현장에서는 35도 이상이면 형틀 목수와 해체는 작업을 중단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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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여긴 작업 중단은 되고 있던 현장이다

 

그러다 보니 원청사, 하도급사는 물론 형틀 반장 조차도 어느 구간의 작업이 끝나고 어느 구간이 아직 끝나지 않았는지 모르고 있었다. 이런 곳이 꽤 된다는 것을 파악하자마자 사채업자 출신 현장 반장이 팀장에게 이야기했고, 팀장은 다른 현장에서 뺑뺑이 돌다가 지친 기공들을 투입해 한 두시간 일하고 종일 잠만 자다가 퇴근하게 해줬다. 그때부터 이 현장의 별명은 '양지 휴게소'가 되었다. 황당했던 건 우리가 그렇게 하고 있다는 것을 목수 반장도 알고 있었던 것이다. 오히려 그는 더 많은 이들이 들어와서 신규 교육받고 그렇게 있다가 가라고 했다. 나중엔 영업 뛰느라 바쁜 팀장도 아침에 안면인식만 하고 가서 일하다 퇴근 무렵에 안면인식하고 자기 일당을 챙겨가기 시작했다. 

 

도대체 이게 뭔 일인가 했지만 그 때는 내 코가 석 자였던 때라 신경쓸 겨를이 없었다. 일을 한 지 넉 달이 지날 때까지도 이 일을 계속해야 하나, 다른 일을 찾아야 하나를 갖고 계속 고민하던 때였다. 그 현장에 다닐 즈음엔 일을 못 하니 내보내야 한다는 것이 반장들의 중론이었다. 그때 날 좋게 봐줬던 한 분이 날 끌고 다니면서 1대1 과외를 시켜주고 있었다. 나중엔 시간당 유로폼 100장을 뜯는 속도까지 낼 수 있게 만들어주셨다. 특급 과외받느라 에너지가 항상 엥꼬 난 상태였기에 딱히 머리 쓸 상황이 아니었던 것이다.

 

3.

그러던 어느 날, 점심 먹고 잠깐 자고 있다가 꽤 스팩터클한 광경을 보게 됐다. 수백 명의 인부들이 일제히 공사장 펜스를 무너트리고 양지 리조트 방향으로 뛰는 것이었다. 그들을 뒤쫓고 있던 자들은 법무부 출입국 외국인 정책본부의 단속 반원들이었다. 현장에 체류 자격 문제가 있는 분들이 수백 명이 넘었던 것이다. 반장들이 건설 현장에서 일할 수 없는 비자를 가진 이들을 데려다 쓰고 있었고 그들의 신분 세탁을 위해 한국 사람, 혹은 공사 현장에서 일할 수 있는 체류 자격을 가진 이들이 필요했다. 우리 팀은 그들에게 일종의 '세탁용 비누'였다. 그렇게 신분 세탁하기 바쁜 판국이었기 때문에 세탁용 비누들이 노는 건 자기들이 눈감아 줘야 하는 일이었던 것이다. 출입국 외국인 정책본부 단속 반원들에게 쫓기던 이들은 대부분 알루미늄 거푸집 설치 일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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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일은 단순하지만 아주 힘들다. 그래서 외국인들이 많이 한다. 지난 4년간 내가 다니면서 봤던 현장에선 주로 태국과 베트남 동생들이었는데 그 현장은 중국인들이었다.

 

지금 내가 속한 형틀 목수팀에는 반장이 둘, 총반장이 한 분 계시고, 팀장이 한 분 있다. 이분들의 합산 경력은 100년이 넘는다. 한 세대당 40평 수준의 아파트 한 동을 올리면서도 오차는 1센티 정도에서 잡는다. 그런데 2018년에 내가 해체로 일했던 바로 그 현장은 오차가 1센티 나는 것에도 예민하게 반응하는 엘리베이터와 계단실의 오차가 5센티 이상 났었다. 그래도 그냥 통과됐다.

 

4.

단속 이후 몇 가지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앞서 이야기했지만 현장은 끔찍하게 넓었다. 제한된 인원을 투입해봐야 달리기만 죽자고 해야 한다는 것을 몇 번(!) 겪어봤던 출입국 외국인 정책본부 단속반원들은 식당을 중심으로 털기 시작한다. 그러자 단속 들어올 것이 두려운 반장들은 체류자격에 문제가 있는 이들을 현장 식당, 즉, 함바로 안 보내기 시작했다. 그 팀의 한두 명이 함바에 와 밥을 먹고 비닐 봉지에 들어 있는 밥과 반찬을 자기 팀원들에게 갖다주기 시작한다. 식당을 찾는 가장 많은 이들이 밥을 이렇게 먹기 시작하자 식당 밥의 상태가 심히 메롱해졌다. 산초를 듬뿍 넣은 정체불명의 중국식 볶음, 역시 산초가 잔뜩 들어간 무침에 밥, 그리고 정체를 알 수 없는 국이 배식 되기 시작한 것이다. 누구는 산초가 맛있었겠지만 한국인들은 한 입 넣었다가 다시 뱉어내면서 중국인들을 욕하기 시작했다.

 

갈등은 아주 원초적인 부분으로 전이된다. 바로 간이 화장실. 반복해서 말하지만 현장은 넓었다. 그런데 그 넓은 곳에 간이화장실이라곤 두 층 건너 하나씩 있었다. 화장실 찾아가는 데만 족히 40분은 걸리고, 그 앞에서 또 대기해야 하는 상황. 상황이 이렇게 되면 애먼 곳이 화장실이 되기 마련이다. 알 폼 설치하던 중국인들은 간이 소변기에 똥을 누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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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의 소변기엔 철근이 꽂히기 시작했다. 저기에 앉을 수는 없으니

 

뭐 분위기가 안 좋아지자 이젠 연장들이 없어지기 시작했다. 내가 일하던 해체팀에서 주로 없어지던 것은 이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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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MCC 350mm 커터. 현장에선 가따라고 부른다

 

이게 주로 타깃이 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있다. 얘가 좀 비싸다. 4만 원에서 4만5천 원 내외. 해체팀은 목수들이 거푸집 터지지 말라고 칭칭 감아놓은 수많은 굵은 철사(현장에선 반생이라고 부른다)를 잘라야 하므로 좀 좋은 놈을 써야 한다. 만원 좀 넘는 국산 쓰면 며칠 쓰지도 않아서 나사가 풀리기 시작한다. 처음엔 나 같이 일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이들이 타깃이 되었다. 나중엔 해체공의 필수품, 빠루까지 없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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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수 빠루랑은 차이가 꽤 크다. 이거 아니면 한 시간 동안 거푸집 100장씩 뜯기 어렵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우리 팀은 안산에서 지원 온 다국적 팀과 서울에서 지원 온 청각 장애인 팀이었다. 안산팀은 나이지리아 출신으로 키 190에 몸무게 100킬로를 족히 넘는 이들이 있었던 반면, 청각 장애인들은 키가 160 정도였다. 만만한 청각 장애자들의 연장들이 집중적으로 없어지기 시작한다. 알 폼 팀 소속이 자기 연장 갖고 가는 것을 확인한 한 분이 우리 반장(사채업자 출신)을 불렀다. 반장은 연장 돌려달라고 찾아갔다가 시비가 붙었다. 그러다가 약간 언성이 높아지자 알 폼 반장은 현장에 흩어져 있던 자기 팀원들을 소집했다. 수십 명이 연장 들고 오는 것을 보고 우리 반장은 그들이 훔쳐 간 것들만 돌려받아 왔다. 

 

그리곤 사채업자 출신 반장은 나보고 불법 체류자들을 단속하는 정부 기관이 어디냐고 물었다. 난 출입국 외국인 정책본부 민원실 전화번호를 알려줬다. 그날부터 반장은 시간만 나면 신고했다. 불법 이주노동자들이 이 현장의 어느 구간에서 일하고 있다고.

 

출입국 외국인 정책본부 민원실 담당자는 전화가 몇 주간 오자 결국 우리가 일하던 현장은 이미 네 번 단속 떴던 곳이라 다시 단속 나가기 어렵다고 했다. 그런 현장이 한 두 곳이 아닌데 계속 단속 나가면 형평성 갖고 민원 들어온다고. 건설 현장에서 일할 수 없는 비자를 가지고 일하는 이들이 압도적 다수인 대규모 현장이 거기 하나만 있는 게 아니라는 말이다.

 

5.

사실 당시 내가 속해 있던 해체팀도 전체 팀원의 70%는 러시아와 몽골에서 온 이들이었다. 즉, 건설 현장에서 일할 수 없는 비자로 온 이들. 딱히 불법체류자들에 대해 감정이 없었지만 그 현장에서 가따만 두 개 도둑맞은 터라 불법 이주노동자들에 대해 좋은 감정을 가질 수 없었다. 어느 날 반장과 함께 그 현장에서 일하던 불법 이주노동자들을 씹고 있을 때 우리 팀 기공 한 명이 조용히 이런 이야길 해줬다.

 

"형, 쟤네 야리끼리야(그날 할당량을 마치면 퇴근하는 것). 근데 우리처럼 일이 애매해서 일찍 끝내고 가라고 야리끼리 주는 게 아니라 아침 7시부터 저녁 7시까지 참시간도 없이 일해야 간신히 끝날 분량이야. 그리고 그거 해야 하루 11만원 받아. 거기서 반장이나 팀장들은 숙식비를 또 뗀다고. 쟤들이 우리 연장 훔치는 건 반장이나 팀장 놈들이 자기 돈 들여서 연장 사줄 생각은 안 하고 잠깐 자리 비운 걸 보고 무전을 쳐주기 때문이야."

 

그 이야기를 듣고 나서야 아차 싶었다. 어쩌다 나도 '좋은 중국인은 죽은 중국인'이라고 악플 다는 인간과 비슷한 생각을 했다는 걸 깨달았으니 말이다. 

 

그다지 자랑스럽지도 않은 일을 이리 길게 쓴 이유는 다른 게 아니다. 기자들이 광주 화정 아이파크 참사를 보도할 때 무엇을 봐야할지 조금이라도 현장을 알았으면 하는 마음 때문이다.  진상규명을 제대로 해야 이런 일이 또 발생하지 않으니. 헌데 어째 돌아가는 판이 영 마땅치 않다. 참사의 원인이 자꾸 아래로 향한다. 

 

건설 현장에서 일할 수 없는 비자를 가진 이들이 진짜 문제일까? 말도 안 되는 임금 주면서 일 시킨 이들과 인허가에 책임 있는 이들, 관리·감독해야 할 이들은 문제가 아니고? 부조리한 건설 현장에서 가장 밑바닥에 있는 가장 약한 이들이 왜 모든 문제의 근원처럼 지목되어야 하는지, 현장에 있으면 무수한 생각을 하게 된다. 

 

이들이 누구처럼 2년 일하고 50억 챙겨가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형틀 목수 11개월 차 양성공 Samuel Seo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