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뽕 중에 뽕, 선거뽕

 

'국회 보좌진들은 잘 늙지 않는다’라는 말이 있다. 모시는 국회의원 임기 동안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일상을 보내는 보좌진들에게 4년은 늙는 줄도 모르고 지나간다는 의미다. 대신에 ‘선거 때가 돌아오면 4년을 한방에 늙는다’라는 말도 있다.

 

선거는 민주주의 국가에서 가장 중요한 이벤트라는 건 두말하면 입 아프다. 시민들에게 선거는 소중한 주권을 행사하는 신성한 행사지만, 출마한 후보와 캠프 구성원들에겐 치열한 밥그릇 투쟁의 전쟁터이기도 하다. 뿐인가. 정치권에 기웃거리는 정치 자영업자들에게 선거는 한몫 두둑이 챙기는 대목 장날과도 같다.

 

투표일이 가까워지면 선거 캠프의 구성원들은 하루 3, 4시간만 자도 피곤한 줄 모른다. 영하의 날씨에도 새벽같이 일어나 지나가는 유권자들에게 90도로 허리를 숙인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고생하는 나의 모습을 보고 동정표 한 표를 주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추운지도 모른다.

 

선거일이 다가올수록 선거 캠프 구성원들은 서서히 선거에 과몰입 하게 된다. 머릿속엔 온통 선거 생각으로 가득 찬다. 과몰입이 절정에 달하면 후보가 내가 되고 내가 후보가 되는 '후아일체' 경지에 이르게 된다. 후보 이름이 커다랗게 적힌 잠바를 입고 하얀 장갑을 끼고 길거리 한복판에서 후보 이름을 외치며 춤을 춘다. 먹고살려고 하는 짓이 아니다. 그것은 몰입된 춤사위다.

 

사람들 앞에서 유치한 음악에 맞춰 춤추는 일은, 웬만한 관종이 아니고서는 맨정신에 하기 힘든 일이다. 하지만 어느 순간 혼신의 힘을 다해 춤을 추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나란 존재는 지워지고 후보의 분신이 된다.

 

선거기간 내내, 후보는 두말할 것도 없고 캠프 내 모든 구성원이 그 무아지경의 세계로 빨려 들어간다. 일명 ‘선거뽕’이다. 선거가 끝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정말 짜게 식는다. 가끔 지난 유세 중에 찍힌 내 사진을 보면 경악을 금치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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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영화 검사외전> 

 

욕망의 나선형

 

무엇이 그들을 미치게 만드는가. 선거에서 이기면 얻게 되는 확실한 보상이 있다. 우리 선거는 승자독식이다. 1표 차이든, 2표 차이든, 패자는 패자일 뿐 누구도 기억하지 않는다. 무조건 이기고 봐야 된다. 대한민국 선거에서 '졌잘싸'만큼 무의미한 단어도 없다.

 

당선자가 된 후보는 엄청난 권한을 갖게 된다. 당장 자신의 지역구에서 벌어지는 각종 이권 사업에 감놔라 배놔라 할 수 있다. 일반인이 접근하기 힘든 특별한 정보에 가장 먼저 접근하기도 한다. 정부에서 하는 모든 사업을 들여다볼 수 있다. 대한민국의 법과 예산을 바꿀 수 있다. 후보가 당선인이 되는 순간 획득하게 되는 권한과 권력은, 증말로 상상을 초월한다.

 

그 드라마틱한 권한 부여의 충격파는 주변으로 큰 파장을 일으킨다. 자신이 지지한 후보가 당선됐을 때 얻게 되는 확실하고 명백한 보상. 그리고 어떤 보상이 자신에게 올지도 모른다는 기대. 그 두 가지가 후보를 둘러싼 사람들을 선거에 미치게 만든다.

 

그 보상과 기대의 종류와 크기는 캠프에 참여한 사람들마다 각자 다르다. 어떤 사람들은 상대 후보가 너무 싫어서, 그를 반드시 떨어뜨리기 위해 나서기도 한다. 혹은 내가 원하는 선하고 정의로운 가치를 반드시 실현해 줄 정치인을 당선시키기 위해 후보를 돕는 사람도 있다. 예를 들면, 적폐청산, 검찰개혁, 재벌개혁, 노동환경 개선, 기후환경 위기 극복, 차별금지법 도입, 종부세 감면, 일자리 문제, 경제, 기타 여러 가지 다양한 사회문제 등등. 각자가 진일보하기 원하는 세상에 대한 희망과 열망을 후보에게 투영한다.

 

당연히 세속적인 보상이 후보 곁을 지키는 가장 큰 이유인 사람들도 있다. 후보의 지역구 지방의회 의원으로 출마할 때 공천 가산점을 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을 품고 있는 사람도 있는가 하면, 보좌진으로 채용되어 국회를 누비고 다니는 꿈을 꾸는 이도 있다. 지역 무슨 무슨 임명직 감투를 바라고 있는 사람들도 많다.

 

좀 더 내밀한 욕망들도 있다. 캠프 구성원 중에는 국회의원의 힘을 빌려야 처리할 수 있는 민원을 숨기고 있는 자도 있다. 후보와 가깝게 지내면 당선 이후, 지역 개발 정보를 얻게 되지 않을까 군침 흘리는 자들도 있다. 사업을 하는 누군가는 당선된 후보가 자신의 사업에 걸림돌이 되는 규제 법안을 없애 줄 거라 믿고 있을 수도 있으며 현수막 업체 사장님은 향후 4년간 정치 현수막을 독점하게 되지 않을까 행복 회로를 돌리며 밤잠을 설치기도 한다. 말하자면, 끝이 없다. 다들 각자 다양한 이유로 후보를 돕는다. 캠프에는 선거 한 철 장사하는 잡상인들도 우글우글 몰려든다. 선거 필승법이 담긴 비단 주머니를 팔러 온, 방구석 제갈량들도 캠프를 제집처럼 드나든다.

 

선거 캠프에 바글거리는 사람들은 저마다 자신이 추구하는 것들을 위해 모인 사람들이다. 품고 온 것이 우리 사회 모두를 위한 가치일 수도 있고, 나 혼자만을 위한 욕심 일 수도 있다. 뭐가 됐든 간에, 캠프 내 모든 구성원의 크고 작은 욕망들이 후보 한 명에게 투영된다. 그래서 선거 캠프는 욕망의 용광로다. 후보와 지근거리에 있을수록 보상에 대한 기대는 커진다. 후보를 중심으로 개개인의 욕망이 나선형으로 빙글빙글 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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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영화 특별시민> 

 

선거캠프 : 리더십 예비고사

 

선거철에 술집, 밥집에서 귀를 잘 열고 있으면 이런 말을 심심치 않게 들을 수 있다.

 

“내가 마! 느그 후보랑 밥도 묵고 사우나도 가고 다 했어 마!”

 

크고 작은 선거 때마다 후보 주변에서 흔히 벌어지는 진풍경이다. 선거 기간에 후보와의 거리는 곧 예비된 권력을 의미한다. 선거가 막바지로 치달을수록 그것을 과시하는 데에 열중하는 사람들이 많아진다. 사기 치고 다니는 인간들도 많이 있다(a.k.a 가짜 수산업자). 내 경험상 자기 입으로 떠벌리고 다니는 사람치고 후보가 이름 석자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 별로 못 봤다. 밖에서 누군가 "내가 마!" 하며 웅장해진 가슴을 떵떵 치고 있다면, 대충 믿고 걸러도 된다. 듣보잡일 가능성이 높다.

 

후보도 이런 상황들을 잘 알고 있다. 구성원들도 서로의 욕망을 대충 짐작하고 있다. 그러니 캠프 내에 참모들은 후보와 더욱 가까이 가기 위해 치열하게 경쟁한다. 시기 질투도 다반사. 그 과정에서 생기는 갈등과 잡음을 잘 관리하고 통솔하는 건 온전히 후보의 역량이다. 어떤 후보가 캠프를 어떻게 운영하는가는, 그 후보의 리더십을 알아볼 수 있는 매우 중요한 시험대이기도 한 것이다.

 

만인에 대한 만인의 캠프

 

바야흐로 정치의 계절. 대선이 절정에 돌입했다. 민주당 이재명 캠프와 국민의힘 윤석열 캠프에는 얼마나 많은 인원이 운집해 있을까. 정말 어이없는 사실인데, 아무도 그 숫자를 모른다. 캠프에 몇 명이나 있는지 정확히 아는 사람이 없다. 심지어 누가 누군지 모르는 경우, 허다하다. 캠프에 많은 조직이, 이런저런 끈으로 얽히고설켜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이왕 이렇게 딴지 독자들에게 썰을 푸는 김에, 여기저기서 정보를 모아 대충 추산해 보았다(하라는 일은 안 하고). 규모가 비슷한 이재명 캠프 윤석열 캠프의 경우, 각각 상근 비상근을 포함 2,000명 이상 근무하고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다른 어떤 선거 캠프와도 비교할 수 없는 매머드급 스케일이다.

 

그러니 캠프 어디에 무슨 법사, 머리 기른 스님, 무속인이 들어와 앉아 방울을 딸랑딸랑 대고 있어도 구성원들은 서로 모를 수밖에 없다. 어디서 어떤 경로로 캠프 일원이 되었는지 확인하기 어렵고 확인할 여유도 없다. 선거캠프는 놀라울 만큼 주먹구구식으로 돌아간다. 선거가 끝나면 바로 해산되는 임시조직인 캠프는 지휘체계가 명확하게 구분되어 있지 않은 경우가 많다.

 

그러다 보니 캠프 내에서 목소리 큰놈 뜻대로 되는 경우가 많다. 후보의 메시지가 하루아침에 바뀐다거나 전략이 바뀐다거나 하는 일은 그래서 발생한다. 후보의 행보와 언변에 뭔가 스텝이 꼬인 것 같다면, 캠프 내에서 각자 돋보이고 싶은 욕망들이 치열한 각축전을 벌인 결과물이라고 보면 된다.

 

캠프가 얼마나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고 있는지는 중요한 평가 요소다. 후보의 메시지가 이리저리 바뀐다거나 후보가 말한 것을 다음날 캠프에서 수습하는 일이 많다거나 하는 것은, 후보와 캠프 간의 유기적인 협력이 되고 있지 않다는 시그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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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집력의 차이

 

남의 집안 사정까진 잘 모르겠고, 내 솥단지가 걸려있는 이재명 캠프의 지난 레이스를 뒤돌아보자. 다들 놓치고 있던 사실 하나가 있다. “민주당의 이재명이 아닌, 이재명의 민주당을 만들겠다”라는 선대위 전면 쇄신을 선언한 이후, 후보 본인 스스로 만든 말실수 혹은 논란거리가 단 하나도 없었다는 점이다.

 

입만 열면 사고를 쳐서 캠프가 수습하기 바쁜 상대 후보와의 비교와는 다른 차원의 대단함이다. 모든 선거는, 상대 후보의 약점을 잡아내는 데에 가지고 있는 모든 역량을 쏟아붓는다. 하물며 대선이다. 그 총공세의 쓰나미 앞에, 제아무리 공자 할아버지라도 버텨내기가 여간 쉬운 일이 아니다. 한 발짝만 잘못 디뎌도 회복할 수 없는 수렁으로 빠지는 게 대선 판이다. 이재명 후보는 그 살얼음판을 단 한 번의 실수도 없이 한 걸음 한 걸음 엄청난 집중력으로 걸어가고 있다. 이재명이라는 사람의 치밀함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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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것은 성실하게 쌓아온 이재명 캠프의 응집력을 증명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동안은 후보와 캠프가 소통과 조화를 반복하면서 욕망의 용광로를 강력한 유기체로 만든 과정이었던 것이다.

 

토론을 대하는 두 캠프의 태도에서 그 응집력의 차이를 당장 알 수 있다. 이재명 후보가 토론에 임하는 적극적인 자세는 이재명 캠프가 가진 자신감의 발로다. 윤석열 캠프는 투표일까지 어떻게든 토론을 피해 가려는 전략을 세웠다. 이는 비단 후보의 토론 실력 때문만은 아니다. 윤캠프의 토론 전략은 하나의 통로로 하나의 메시지를 내는 것이 불가능한 '조직의 불안'으로부터 수립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