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지를 단 검사들
국회는 민의를 반영하는 곳이다. 다양한 연령, 성별, 직업, 출신 지역, 장애 유무, 종교, 정치적 신념 등등을 대표할 만한 인물들이 국회의원이 돼야 한다. 그런데 유독 국회로 많이 진출하는 직업이 있다. 예지력이 상승하나? 맞다. 바로 검사.
21대 국회만 두고 보자. 민주당 국민의힘 모두 포함해서 무려 “15명(현재 14명. 곽상도 의원의 뱃지가 날아가면서 한 명 줄었다)”이나 검사 출신이다. 극도로 다원화된 사회에서 검사라는 단일 직업군이 15명의 국회의원을 배출했다는 사실 자체가 이미 극히 비정상이다. 대한민국 전체 검사 수는 다 합쳐도 2000명 남짓. 직업군만 놓고 본다면 소상공인 출신 국회의원이 훨씬 더 많아야 맞다. 국회 의석의 5%를 2000명의 직업 집단에서 쓸어가고 있다. 민의가 제대로 반영될 리가.
국회에는 이런 말이 있다.
“현역 국회의원 3명이 함께 뜻을 모으면 못할 일이 없다”
맞는 말이다. 그만큼 국회의원이 갖는 힘은 막강하다. 그렇다면, 15명의 검사 출신 국회의원 중 3명만 뜻을 모으면 어떤일이 일어날까? 검찰과 동료 후배 검사들을 위해 못해줄 것이 없다.
금태섭 의원, 조응천 의원 등 검사 출신 민주당 국회의원들이 번번이 검찰개혁에 반대하다가 끝끝내 공수처 법안에 기권했던 사실을 떠올려보자. 자신의 현재 위치가 어디건, 검사 출신들에게 ‘검사 동일체 원칙’은 유효하다. 내재된 DNA 같은 것이다.
검사 출신이라고 해서 의정 활동에 특별한 스타일이 있는 것 같진 않지만, 보좌진들은 검사 출신 국회의원들이 검찰 내부의 주요 정보를 볼 수 있지 않을까라는 시선으로 바라보긴 한다. 하지만 실제로 뭔가 진귀한 정보가 돌고 그러진 않는다. 아마도 검찰 출신 국회의원이 검찰 내부 빨대를 통해 받은 민감한 정보까지 보좌진들과 공유할 리가 없기 때문일 것이다.
사이다 발언으로 꽤나 인기를 끌었지만, 적이 많아 고소 고발이 끊이지 않았던 어느 국회의원이 이런 말을 한적 있다.
“교도소 담벼락 위를 아슬아슬하게 걷고 있는 거 같다”
현역 국회의원 입에서 왜 이런 말이 나왔겠는가. 어느 검사가 호시탐탐 그의 멱살을 노리고 있다는 말이다.
검사 출신 국회의원들은 고소 고발로 인한 스트레스를 상대적으로 확실히 덜 받는다. 이런 차이는 의정 활동의 자신감으로 나타난다. 그것은 시간이 지날수록 큰 차이를 만든다. 아무리 용감 무쌍한 정의의 사도라도, 고소 고발의 위협 속에서 의정 활동은 위축되기 마련. 검찰의 뒷배가 있는 의원에 비해 그렇지 않은 의원에겐 일종의 재갈 효과가 분명히 작용한다.
검사는 파견이라는 이름으로 정부 부처 곳곳에 자리 잡고 있다. 법무부에도, 청와대에도, 국회에도 있다. 현직 검사들이 정부 주요 요직 곳곳에 포진해 있다. 이들이 정확하게 어떤 업무를 하는지는 국회 짬밥이 꽤 된 나도, 잘 모른다. 확실한 건, 어디서 무얼 하건 그 일은 검사동일체의 시스템 안에서 돌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검사들의 청와대
바야흐로 검사 전성시대다. 법무부장관의 수사지휘권을 폐지하겠다는 둥, 검찰총장에게 독자적 예산편성권을 주겠다는 둥 대놓고 검찰 권력 확대를 천명하고 있는 자가 현재 유력한 대통령 후보다. 조만간 청와대도 검사동일체의 원칙에 접수될지 모를 일이다. 이에 관련해서, 윤석열 후보가 문재인 정부에게 날리는 기세등등한 발언이 있었다. 귀를 의심케하는 충격적인 내용이다.
“대통령 임기 5년이 뭐가 대단하다고, 너무 겁이 없어요, 하는 거 보면...”
한마디로,
대통령 '따위'가 건방지게 감히 검찰에게?
라는 의미.
그동안 검찰이 선출된 권력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었는가, 그 인식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확실한 건, 윤 후보는 검찰보다 더 높은 권력은 없다고 생각하고 있다. 도대체 법공부를 어떻게 했길래 이런 말을 할 수 있는가. 놀랍게도 이 경천동지할 충격 발언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지난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당선이 되면 “문재인 정부 적폐 청산 수사를 하겠다”라는 발언에도 윤 후보의 검사 DNA가 드러난다. 무엇이 적폐고 어떤 게 법적으로 죄가 되는지를 말하기 전에 ‘수사’라는 단어를 먼저 꺼낸 것이다. 자신이 마음만 먹으면 누구든지 수사할 수 있고 얼마든지 죄를 만들 수 있다는 ‘유죄추정의 원칙’. 이재명 후보에게 어떠한 물증도 없는 상태에서 ‘확정적 중범죄자’라는 표현을 사용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한동훈 검사장에 대해서는 “(외압에도 정권에 대한 수사를) 독립운동처럼 해온 사람”이라는 발언도 의미심장하다. 대선후보가 현직 검사와 러닝메이트를 맺은 사상 최초의 사례. 검찰의 정치적 중립도 시원하게 걷어차는 발언이었다.
정치권에서는 ‘대검찰청이 사실상 윤석열 캠프’라는 말이 떠돌고 있다. 헌법과 민주주의의 근간을 뒤흔드는 망언을 쏟아내고 있지만 대선 기간 내내 이상하리만치 크게 화제가 되지 않는다. 언론들은 이미 검사 공화국에 항복한 것인가. 여러모로 암담하다.
검사들에게 접수된 국민의힘
여기서 잠깐 0선 이준석 대표의 잠적 사건 때로 시계를 돌려보자.
이런 글을 페북에 남기고 돌연 잠적했다. 김종인, 김병준, 이수정 등 캠프 내부 인사 관련한 갈등, 당 대표 패싱, 윤핵관들의 공작질 등으로 화가 나서 잠적했다는 게 알려진 사실이다.
이준석 당대표는 국민의힘 대선 후보로 윤석열 후보가 결정된 이후 줄곧 윤후보를 포함한 윤핵관들과의 힘겨루기를 했다. 국민의힘 내부에서도 0선의 30대 당대표 리더십에 대한 의문이 계속 있었던 상황이었다. 그후로 울산에서 어깨동무하면서 끝나는 듯싶었지만 내홍은 계속됐다.
12월엔 조수진 최고위원과 공개적으로 충돌하는 등 당내 갈등이 계속되자 김종인 총괄선대위원장이 나섰다.
“윤석열의 모든 메시지•연설문 전부 다 직접 관리할 것”
그리고 다음날, 이준석 대표와 선대위 해체를 위해 논의 중이라는 이야기를 했다. 김종인 선대위원장과 이준석 대표는 선대위 해체라는 말로 선대위 내부 갈등을 강하게 제압하려 했었다. 결과는? 김종인 총괄선대위원장이 정리됐고 윤석열 선대위에 윤핵관들은 그대로 있다. 이준석 대표는 별안간 윤석열 후보와 뜨거운 포옹을 나누며 다음 일정에 친히 대리기사로 나섰다.
김종인을 쫓아나고 이준석 대표를 완전히 제압할 수 있었던 카드. 가로세로연구소의 이준석 대표 성접대 의혹이었다. 가로세로연구소는 공개한 수사자료를 누구한테 받았을까?
뉴스와 자료 몇 개를 조합해보자.
일단, 이 기사.
<기사전문>
이 대표 탄핵운동에 돌입한 가세연은 이날 입장문을 통해 "2013년 7월 11일 목요일과 8월 15일 목요일에 대전 유성 룸살롱 쥬피터 갔는지 안갔는지만 대답하라"고 요구했다.
여기서 추출할 수 있는 키워드 3개.
2013년, 대전, 쥬피터.
2013년 7월 경 대전지역의 사건 자료를 쥐고 있는 곳. 대전지방검찰청.
사건 당시 그곳의 수장은 바로 이 사람.
이건주 검사.
여기에 경제지 뉴스를 겹쳐보자. 아주 재밌는 결과가 도출된다.
<기사전문>
승일 주가가 상승세다.
23일 오전 9시 28분 기준, 승일은 전일대비 29.69%(3800원) 상승한 1만6600원에 거래되고 있다.
승일은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관련주 중 하나다.
현창수 대표이사가 윤석열 부친 윤기중 교수와 연세대 대학원 동문이기도 하고, 이건주 사외이사가 윤 전 총장과 1999년 서울검찰청과 2002년 부산검찰청에서 같이 근무한 이력이 있어 투자자들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참고로 승일이라는 회사는, 지난 2월 18일에도 장중 상한가를 기록했다.
그리고 또, 주목해야 할 사람. 직전 대전지방겁찰청장.
검사 이두봉.
<기사전문>
모든 상황을 종합해보자. 가는 길이 달랐던 윤 검사와 국민의힘의 내홍은 어찌 보면 예상된 거부반응이었다. 제아무리 인기가 하늘을 찔러도 3선, 4선 의원들이 즐비한 여우와 능구렁이 소굴에서 뉴페이스가 살아남는 건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상대가 누구냐에 따라 다를 수도 있다. 김종인 축출과 이준석 제압은 윤석열과 검사들이 엄청난 속도로 당 전체를 장악한 결과라고 봐야 한다. 검찰이 이렇게 무섭다. 세계관 최강자다.
검사당과의 전쟁
윤석열 캠프 법조인 출신 명단이다.
▶검사 윤석열 대통령후보
▶판사 주호영 조직총괄본부장
▶판사 김기현 원내대표
▶검사 권선동
▶검사 권영세 총괄특보단장
▶검사 원희룡 정책총괄본부장
▶검사 김재원 선거전략본부장
▶검사 정점식 네거티브검증단장
▶검사 박형수 네거티브부단장
▶검사 유상범 법률지원단장
▶검사 김경진 대외협력특보
▶검사 김용남 공보특보
▶검사 김도읍 공동선대위원장
▶검사 김진태 비리검증단장
▶검사 주광덕 23기 동기,법률지원
▶검사 석동현 특보단장
▶검사 박민식 기획실장
▶검사 주진우 법률지원참모
▶검사 이원모 법률팀장
▶검사 손경식 법률대리인
▶검사 이완규 법률대리인
▶검사 정미경 최고위원,선대부위원장
▶검사 김홍일 정치공작특별위원장
▶검사 안대희 자문
▶검사 정상명 자문
▶검사 김종빈 자문
▶검사 박주선 자문
▶검사 홍준표 고문
▶검사 황교안 고문
대한민국에서 검찰은 사실상 ‘정당’이다. 대부분의 검사 출신 국회의원들은 소속 정당의 외피를 쓰고 있을 뿐. 실제로는 검사로서 검찰을 위해 일하고 있다. 검찰개혁이라는 말이 구호일 뿐 요원한 이유다.
지금도 검사들은 정치적 사건에 대해 자신들의 유불리를 적극적으로 판단하고 자신들이 가진 권한을 이용해서 사건을 쥐락펴락하고 있었다. 여야를 불문하고 정치권 곳곳에 퍼져있는 검사 선후배들과 정보도 공유하면서 말이다. 검찰 '통'으로 검찰 '밥'을 먹은 기자들은 그들의 2중대와 다름없다.
돌아보면, 검찰이 정치인들의 목숨줄을 쥐고 흔든 건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여야가 공방을 주고받다가 고소 고발로 이어질 때 향하는 곳이 어딘가. 검찰이다. 가만히 있어도 정치인들의 생사여탈권이 자신들의 골대에 알아서 골인된다. 검찰은 그 사건을 쥐고 만지작거리며 만면의 미소를 짓는다. 꽃놀이패도 이런 꽃놀이패가 없다. 우상호 의원이 '정치권에서 생긴 일은 정치권에서 해결해야지 자꾸만 검찰에게 판단해달라고 넘기는 건 검찰에게 권력을 쥐여주는 꼴'이라고 말한 이유가 바로 이거다.
노무현 대통령이 임기 내내 검찰과 싸우며 터를 닦았다. 문재인 정부에서 공수처 출범과 검경수사권 일부 조정 등 이제 겨우 반 발짝 정도 내디뎠다. 윤석열 후보는 보수진영의 욕망이 투영된 꼭두각시다. 그 욕망의 중심엔 검찰이 있다.
이번 선거는 보수와 진보의 선거 구도가 아니다. 검찰과 민주 진영의 총력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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