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 기사 추천 기사 연재 기사 마빡 리스트

 

출처 클리앙 레드Zone 님.png

출처 - <클리앙 레드Zone 님>

 

1. 샤이 이재명은 있다

 

영업에 적합하지 않은 내성적인 성격 탓에, 오프라인에서 '밭갈이' 같은 활동을 좀처럼 하지 않는 편이다. 보수 일색인 주변 사람들은, 내가 이재명 지지자를 넘어 '김어준 패거리'의 일원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 아마 기절할지도 모르겠다.

 

그런 가운데 얼마 전 가까운 지인과 단둘이 속 깊은 얘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원래 이따금 정치 얘기를 하긴 했지만 주변 사람들이 대부분 문재인에 치를 떠는 정권교체 마니아들이라 다들 비슷한 부류인 줄 알고 언급을 자제했었다. 대화는 우연히 시작되었다.

 

벨테브레(이하 '벨') : 3월 9일 날 바빠?

 

지인('지') : 회사 당직이라 사전투표해야 할 것 같아.

 

: 오...나도 사전투표해야 할 거 같긴 한데, 그러면 찍을 후보는 정했어?

 

: 글쎄? 아직 고민이야

 

: 정말? 너 윤석열 찍는 거 아니었어?

 

: 음 집값도 너무 오르고 민주당 하는 것도 실망스러워서 바꿔볼까 했는데, 도무지 윤석열은 내키지 않아.

 

: 그럼 이재명은? 너 이재명 무섭다고 했잖아.

 

: 언론 보도 때문에 그런 인상이 있는 건 사실인데, 그래도 일은 잘하잖아(참고로 지인은 경기도민임).

 

: 그렇지! 맞아!

 

 : 그리고 이건 너한테만 얘기하는 건데, 사실 나는 인간적으로 이재명이 마음에 들어.

 

: 어 정말? 그건 좀 의왼데?

 

: 여러 가지 논란이나 의혹들이 있지만, 한편으로는 아무것도 없던 사람이 어떻게든 살아보려고 발버둥 치면서 여기까지 왔겠나 싶기도 하고, 그러다 보니 이런저런 구설에 시달리기도 하는 것 같고, 막상 야당이나 반대파들도 냄새만 풍기지 결정적인 한 방을 내놓진 못하잖아.

 

: 그래 맞아. 따지고 보면 윤석열 문제가 더 크잖아? 본인은 무능하고, 부인은 이상하고. 사람 잡아 가두는 거 말고는 할 줄 아는 게 없는 거 아닌가 싶기도 하고...아 계란말이는 잘하는 거 같더니만(웃음).

 

: 솔직히 아직도 누구 찍을지 결정은 못 했어. 근데 만약에 오늘 선거다 이러면 이재명 찍을 거 같아. (목소리를 낮추며) 근데 이건 비밀이다.

 

: 음 일리 있다. 네 말 듣고 나니 이재명 찍는 게 맞는 거 같아.

 

밭갈이를 한 건지 당한 건지 의아했지만, 기분은 나쁘지 않았다. 그리고 뉴스에서 떠들어대는 '샤이재명'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걸 확인한 순간이기도 했다.

 

언론 보도와 이미지 조작으로 인해 많은 사람에게 이재명은 역대 민주당 계열 후보 중 가장 나쁜 사람처럼 느껴지는 것 같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김대중도 노무현도 선거 때나 집권해서나 다 위험하고 과격한 인물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있었다. 심지어 민주당 후보 중 최강의 온화함(?)을 자랑하는 문재인마저 이런저런 음해와 네거티브로 고통받았으니 이재명 같은 비호감 후보(?)는 더 말할 것도 없다. 필자의 직장 상사들을 포함한 보수 세력들은 대놓고 '이재명 되면 나라 망한다.' '이재명 되면 회사 접을 거다' '돈 벌면 뭐하냐 이재명이 다 뺏어갈 텐데' 등등 혐오 발언을 멈추지 않고 있다. 여기에 편향적인 언론 보도까지 겹쳐 정치 무관심층은 '이재명은 과격한 것 같다' '이재명에게는 무슨 문제가 있는 것 같다'는 막연한 인상을 받게 된다.

 

물론 윤석열에게도 만만치 않은 비호감이 존재한다. 하지만 윤석열에게는 그 엄청난 무능과 꼰대력을 덮어버릴 마법의 키워드 '정권교체'가 존재한다. '그래도 정권은 바꿔야 하지 않겠냐?'라는 한 마디로 모든 반문재인 반민주당 세력을 결집시킬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윤석열 지지자는 당당하지만, 이재명 지지자는 조심스러운 경향이 있다.

 

그러므로 현재의 여론조사 수치는 일정한 보정이 필요하다고 보이며, 흐름으로는 2016년 미국 대선에서 여론 조사상 12%P까지 뒤졌던 도널드 트럼프가 '샤이 트럼프' 지지자들의 힘으로 힐러리 클린턴을 제치고 당선되었던 상황이 재연되지 말라는 법도 없다. 다만 문제는 우리가 포기하고, 절망하고, 체념하는 것이다. 야구의 격언처럼, '끝날 때까진 끝난 게 아니다.'

 

트럼프 힐러리 빗나간 여론조사_출처 mbc.jpeg

 

2. 어느 변호사와의 대화

 

최순실 일당의 국정농단 의혹이 불거지고, 한창 촛불집회가 달아오르던 2016년 11월 무렵, 나는 판사 출신의 로펌변호사 한 명과 대화할 기회가 있었다. 출신 배경으로 예상할 수 있듯 '보수적인 기독교인'이고, 성향을 잘 알기에 정치 얘기는 될 수 있으면 피해 왔던 사이였다.

 

변호사(이하 '변') : 요즘 같아선 재명이가 대통령이 될 거 같아.

(당시 이재명 성남시장은 차기 대선 여론조사에서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에 이어 2위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벨테브레(이하 '벨') : (소스라치게 놀라며) 에이 그래도 대통령이 아무나 되나요?

(당시 나는 정권교체는커녕 탄핵도 쉽지 않다고 보고 있었다. 더구나 보수적인 변호사가 뜬금없이 이재명 얘기를 해서 깜짝 놀랐다)

 

: 왜 여론조사도 그렇고 분위기가 좋던데?

 

: 그래도 경기도지사도 아니고 무슨 성남시장이 대통령을 해요. 급이 안 맞는데~

 

: 뭐 일 잘하고 국민들이 원하면 대통령 될 수도 있는 거지. 박근혜는 대통령이 할만해서 됐나?

 

 : ???

 

 : 사실 재명이랑은 잘 알아. 연수원 동기였고, 연배도 비슷해서 친하게 지냈지. 그때도 사회문제에 관심이 많았는데, 소신 있고 일관된 친구야.

 

 : 아!

 

 : 내 친구라서가 아니라 괜찮아. 성남, 분당 사람들은 잘 알지..복마전 같던 성남이 얼마나 변했는지.

 

그는 진심으로 친구의 업적을 자랑스러워하는 듯 보였다.

 

대략 2년 반 정도 지나 경기도지사가 된 이재명이 허위사실 공표 같은 혐의로 재판을 받게 되었을 때, 그가 속한 로펌이 변론을 맡네 마네 하는 설왕설래가 있었다. 다시 만나게 된 그에게 넌지시 물어봤더니...

 

 : 이재명 지사 사건 안 맡으신 이유가 있나요? 일각에서는 질 확률이 높아서 그랬을 거라고들 하던데...

 

 : (웃으며) 아이구 그럴 리가 있나. 친구가 질 확률이 높으면 오히려 내가 맡아서 최선을 다해야지. 그런 건 아니고, 재명이가 자기는 약자들,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서 정치하는 사람인데, 대형 로펌 써서 져도 문제고 살아남으면 또 그거대로 부끄러운 일이라고 고민을 하더라구. 어차피 법리로 따지면 천하의 이재명이 질 리가 없고, 문제는 정치적인 부분 아니겠어? 그래서 네 말이 맞다, 오직 국민만 믿고 당당하게 임하라고 얘기해줬지. 다행히 우리 아니더라도 실력 있는 변호사들이 많이 도와주더라구. 그래도 재명이가 인복은 있나 봐.

 

선고 공판에 참석하는 이재명 지사_출처 오마이뉴스.jpg

선고 공판에 참석하는 이재명 지사

출처 - <오마이뉴스>

 

그의 말대로 이재명은 대법원 전원합의체까지 가는 우여곡절 끝에 무죄 확정판결을 받아 살아날 수 있었다. 그 과정에 막대한 변호사비를 어떻게 냈는지 의심스럽다느니, 김영란법 위반일 수 있다느니, 또는 대법관과 화천대유를 통해 거래했다느니 별의별 풍문들이 다 돌았다. 비교적 가까운 거리에서 얘기를 들었던 나로서는 그 풍문들이 신빙성 높게 느껴지지 않았다.

 

3. 나는 GH에 산다

 

최근 경기주택도시공사(GH)가 이재명 지사가 거주하던 아파트 옆집을 전세 얻어 직원 합숙소로 사용했다는 뉴스가 나왔다. 야당에서는 '이재명 지사 부인 김혜경 여사의 과잉의전 논란과 엮어 혹시 옆집에 대선 캠프를 차린 게 아니냐, 그래서 법인카드로 초밥도 시켜 먹은 거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LH(한국토지주택공사)가 전국 단위의 주택사업을 총괄한다면, GH나 SH(서울주택도시공사)는 지역별 주택사업을 추진하는 지방공기업이다. 이름 때문에 현직 서울시장(SH)이나 탄핵당한 전직 대통령(GH)이 떠오를 수도 있겠지만, SH는 몰라도 GH는 절대 아니다. 대장동 사업을 주관했던 성남도시개발공사와 달리, 광역지자체 급의 주택공사들은 직접 신도시를 개발하고 아파트를 분양하기도 한다. '자연앤' 브랜드가 붙은 아파트가, 바로 GH가 시행한 단지이다.

 

필자는 누구와 달리 집이 없는데도 청약통장을 만드는 데 성공했지만, 군필자 가점 5점이 없어서 수도권 아파트를 분양받을 형편은 되지 못했고, 임대아파트로 눈을 돌린 끝에 얼마 전 완공된 GH 아파트에 입주할 수 있었다.

 

전용면적 36㎡, 거실 하나 방 하나로 단출한 크기지만 신축인 데다 유명브랜드 아파트를 지은 대기업들이 시공사로 참여해서 그런지 생각보다 훨씬 쾌적하다. 놀랍게도 보증금은 600만 원대에 임대료도 월 25만 원 선에 불과하다. 열효율이 높은 지역난방 방식을 채택하여 겨울철 관리비조차 10만 원 전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물론 복도식인 데다 대중교통이나 주변 편의시설이 덜 갖춰져 있어서 아쉬운 점도 있지만, 이 정도 비용으로 서울 근처 신축아파트에서 지낸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해당 아파트 단지에 대한 임대모집공고를 보고 정보를 찾아보던 중 개그맨 노정렬 씨와 GH 관계자 한 사람이 나와서 해당 단지에 대해 대화를 주고받는 유튜브를 보게 되었다. 적당한 입담을 곁들여 단지의 입지나 편의시설에 대해 빠삭하게 설명하는 관계자를 보고 해당 단지 사업을 총괄하는 본부장이나 팀장 정도로 생각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당시 GH공사 사장이었던 이헌욱 변호사였다. 그가 이재명 당시 경기지사의 오른팔 또는 복심으로 불릴 정도의 핵심 측근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경기도 기본주택 오세훈처럼 하면 망해.jpg

 

그렇다면 이재명이 GH를 통해 지은 많은 아파트들은 사실 '이재명이 대통령 되려고 이 갈고 만든 것'(같은 아파트에 사는 이웃 주민의 표현)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드는데...

 

권력욕이나 권력의지는 가치 중립적인 것이라 그 자체로는 옳고 그름을 논할 수 없을 것이다. 문제는 그렇게 잡은 권력을 어떻게 쓰느냐일 텐데, 성남시장 또는 경기도지사로서 이재명과 그의 팀이 시민들에게 최고의 만족을 주기 위해 노력했던 것만은 부인할 수 없을 것 같다. 그 과정에서 대장동을 둘러싼 논란이나 GH와 관련된 의혹들이 제기되기도 했지만, 현재까지 밝혀진 사실만으로는 '그럴 것이다'라는 의심 말고 결정적인 팩트가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오히려 개인적인 경험으로는 '이재명 대통령'이 앞으로 보여줄 정책이나 리더십에 대한 기대가 더 크게 느껴진다. 지금 대한민국엔 아주 유능한 대통령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4. 검찰 제국을 막기 위하여

 

'뼛속까지 검사' 윤석열 후보가 검찰과 관련 황당한 공약을 냈다. 법무부 장관의 검찰총장에 대한 수사지휘권을 폐지하고, 검찰에 독자적인 예산편성 권한을 부여하겠다고 공언했다. 아예 검찰을 입법 사법 행정에 맞먹는 독립된 헌법기관으로 만들 기세다.

 

뉴스공장에 출연한 검사 출신 오선희 변호사는 세계 어느 나라에도 이런 권력기관은 없다고 단언했지만, 내 생각은 좀 다르다. 과문한 탓에 적절한 예시를 들긴 어렵지만, 잘 찾아보면 분명히 있을 것이다. 아마 심하게 후진적이고 독재적이라, 정규 뉴스보다는 해외 토픽 같은 데서 찾아야 할 테지만.

 

그렇다면 왜 검사가 수사하겠다는데, 해당 사건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는 법무부 장관이 수사를 지휘하네 마네 하는 논란이 있는 걸까? 검사는 사람의 신체를 구속할 수 있는 막강한 권력기관이다. 이러한 권력은 반드시 일정한 절차에 따라, 적절한 통제하에 행사되어야 한다. 특히 검찰이나 군처럼 위계질서가 강하고 폐쇄적인 권력기관은 반드시 문민 통제(RULED BY CIVIL)의 원칙에 따라야 한다. 민주적 정당성이 없는 권력은 민주적 절차로 선출된 권력에 의해 통제받지 않으면 무슨 사고를 쳐도 책임지지 않는, '브레이크 없는 폭주 기관차'가 될 우려마저 있기 때문이다. 

 

검찰총장의 독자적 예산편성권...이건 정말 수사 잘하는 거랑 무슨 상관이 있는지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알 수가 없다. 그저 특수활동비며 업무추진비를 펑펑 쓰고 싶다는 얘기로 들릴 뿐인데, 이런 걸 공약이라고 내세웠으니 한심할 따름이다. 심지어 지금도 검찰 예산편성권을 가진 법무부·검찰국·검찰과는 검사들로 가득한 검사들 세상인데 말이다.

 

민주공화국 YES 검찰제국 NO.png

 

지금도 어디선가 누군가에 무슨 일이 생기면 검찰이 나타나 수사권을 발동하고 압수수색 → 소환조사 → 구속영장 청구 3단 콤보를 먹인다. 이렇게 '나쁜 놈'을 찾아 응징하는 방식은, 대중들에게 통쾌함을 안겨줄지 모르나 사회문제의 근본적인 원인을 찾아 해결하는 걸 방해할 뿐이다. 아울러 일을 하는 사람보다, 그 일에 관한 평가의 칼자루를 쥔 검찰과 사법부에 지나친 권력이 몰리게 된다. 27년간 검사 일만 해온 윤석열이 대통령이 된다면, 그래서 공약대로 법무부 장관의 수사지휘권을 폐지하고 검찰에게 독자적인 예산편성권을 부여한다면, 검찰권에 대한 통제는 물거품이 되고 우리는 검찰 제국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감히 예측하자면, 막강한 IT기술에 힘입어 검찰 권력은 여러분의 사생활을 자유롭게 넘나들고, 검찰에 반대하는 자는 기소되어 처벌받거나 무죄가 난다 해도 만신창이가 될 것이다. 나아가 검찰의 문제와 검사의 비리는 솜방망이 처벌로 넘어가거나 어영부영 물타기 된다. 검찰의 권력은 오랜 기간 흔들리지 않고 승승장구할 것이다. 

 

이제 2주 남은 대통령선거, 우리의 한 표가 대한민국의 운명을 가를 분수령이 되는 까닭이다. 과연 우리는 어떤 나라를 선택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