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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의 장기

 

45대 미국의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 그는 군 경력이나, 선출직/임명직을 막론하고 여타 공직 경력이 전무한 유일한 미국 대통령이다. 대신, 그에게는 특별한 기술이 있었다. 인간의 심리를 조종하며 자기 이익을 취하는 기술이다. 

 

처음에는 그것이 그에게 비즈니스맨으로서 성공을 가져다주었는데, 사업이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른 다음에는 쇼비즈니스 진출을 통해 단순한 사업가 이상으로 자기 인지도를 넓혀 나갔다. 미스 유니버스 대회에 대한 독점적 소유권을 확보한 사업가, 경영자이면서도 직접 TV에도 자주 얼굴을 내밀고 영화에도 몇 편 출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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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u’re fired!

 

그중 <Apprentice>는 십몇 년간 꽤 인기를 끌며 그가 정치에 발을 들여놓기 전에도 모든 미국인에게 얼굴과 이름을 알려왔다. 

 

(내 개인적으로도, 2000년대 초반, 리얼리티쇼를 처음에는 별로 좋아하지 않았는데 Apprentice에서 You’re fired!를 외치며 싸가지 없는 참여자들을 골라내어 내쫓아 버리는 그에게 매료되어 몇 주간 본방사수를 했었던 부끄러운 과거가 있다. 나도 트럼프 현상에 나름 일조를 한 꼴이다)

 

모두 짐작은 하겠지만, 그의 사업 성장과 성공 과정이 깨끗한 건 아니었다. 그에게는 도덕적인 관념이 없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 선하고 악한지 관심 없다. 그의 관심은 언제나, 내가 상대방과 붙어서 이길 수 있는지, 이긴다면 전리품이 무엇인지, 진다고 해도 내가 챙길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계산하는 것이었고, 본능적으로 그 계산을 정확하게 해냈다. 

 

좋게 말하면 승부사, 나쁘게 보면 사악한 독사였다. 그는 인간이 돈 앞에 한없이 비굴해진다는 것, 돈만 있으면 불가능이 없다는 것과 돈이 돈을 낳는 자본주의의 추악한 속성을 어릴 적부터 체득했다. 어떤 문제가 있으면 돈으로 모든 것을 해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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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면 돼?

 

돈을 끌어올 수 있으면 끌어와 해결했고, 없다 하더라도 있는 척 블러핑(bluffing)하면 대개 통했다. 어떻게 남을 쉽게 속일 수 있을지를 고민했고, 상대의 약점을 간파하고 그걸 툭툭 자극해가면서 ‘까불지 말고 지금 내 앞에 엎드리면 된다’ ‘좋은 게 좋은 거다’ 식으로 상대를 굴복시켰다. 이것이 그의 패턴이다. 

 

폭력을 쓰진 않았지만(밖으로 알려진 바가 없다는 거다), 흔히 볼 수 있는 양아치의 수법이다. 다만 그는 워낙 큰 액수를 쥐락펴락했기 때문에, 양아치가 아닌 사업가의 탈을 쓰고 사람들을 쉽게 조종했다.

 

그의 주력 산업은 부동산 개발, 호텔, 카지노 등 유흥 접객업이다. 농수산업, 제조업, 유통업 등 다른 산업과는 달리 사람을 상대하고 요리하는 업종이고, 사업상 지저분한 부분이 더 많이 있을 수 있는 업종이다. 

 

그는 법망을 적당히 피해가며 탈법과 불법의 경계에서 곡예하는 삶을 살아왔다. 위에 서술한 대로 그가 돈으로 사람을 요리했을 뿐 아니라, 법 집행이나 적용도 자기가 원하는 대로 요리했다. 비싸고 훌륭한 변호사팀은 언제나 그를 뒤치다꺼리해주며 법적으로 문제가 되지 않게 잘 봐줬다(사문서 위조나 증거 변조는 물론 그들의 일상). 필요시 적재적소에 돈뭉치를 찔러 놓는 것 역시 그들의 몫이다. 이런 자들은 보통, 설사 날 잡아가도 내가 리스트를 풀면서 쫙 다 불면 다칠 사람 많다는 자세를 보인다. 그래서 설사 감사나 실사가 나와도 중간에서 적당히(!) 해결된다. 

 

 

시원한 트럼프의 발언들?

 

1990년대 말, 2000년대를 거치며 TV 셀럽으로 뜬 트럼프는 대중이 언제나 자극적인 것을 원한다는 것을 간파하고 거기에 맞추어 행동해왔다. WWE 프로레슬링 시합에 나와서 당대에 유명한 선수를 메쳐버리고 열광하는 관중 앞에서 폼을 잡기도 했다. 영화나 TV에 나와서는 단발성 오락 멘트를 여기저기 날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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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WWE에 나와 깝치는 트럼프.

 

그러던 그는 사회적인 이슈나 논쟁거리가 될 수 있는 주제에 대해 어렵게 나오지 말고 그냥 마음 내키는 대로 지껄여도 된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왜? 자기와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들은 얼마든지 많고, 생각이 달라도 자기는 돈이 많아서 사람들이 언제나 따를 수밖에 없고, 자기와 반대편에 있는 사람들은 맘만 먹으면 언제나 손을 봐줄 수 있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정치판에 나오기 전부터 인종차별적 발언, 여성과 사회적 약자를 업신여기는 발언을 계속했고, 그의 정제되지 않고 때로는 무례한 행동은 오히려 셀럽으로서의 인기를 상승시켰다. 그는 SNS가 없던 시절에도 ‘팔로워’가 많았다.

 

그렇다고 해서 그가 해야 될 말은 꼭 하고 사는 사이다 같은 인물이란 얘기는 아니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이 얘기가 사람들에게 흥미를 끌 수 있는 것인지, 충격을 줄 수 있는지 그런 부분이지 사실 여부나 진실성이 아니다. 그는 현상의 배경에 대해 무시했고 어떤 주장이 사회적으로 몰고 올 파장에 대해서도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그의 이러한 행동은 대선 출마를 선언한 2015년까진 사회적 파장이 그렇게 크진 않았다. 미디어를 통해 이런저런 개소리를 많이 했지만, 당시엔 공인이 아닌 단순한 셀럽일 뿐이었다. 흥미를 유발하기 위해 자신이 뿌린 개소리(거짓말)에 대해 공적 책임을 질 필요는 없는 위치에 있었다. 

 

트럼프는 흑인들에 대한 편견을 드러내는 발언, 차별적인 발언, 심지어 혐오적인 발언을 90년대부터 서슴지 않았다. 예를 들어, “흑인들은 게으르다”, “흑인들은 열등한데 개중에 괜찮은 애들은 자기 열등감을 가리려고 특별히 더 잘난 척한다”라는 발언을 서슴지 않았다.

 

<Apprentice>에서도 최종 우승자를 가리는 종반부에 가까웠을 때, 그때까지 잘 해왔던 흑인 한 명에게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넌 흑인 치곤 너무 교육을 잘 받았어. 능력은 나쁘진 않은데 넌 기가 너무 세. 이젠 됐다, 고마해라.”

 

“You’re fir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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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Apprentice> 시즌6 피날레에서

(왼쪽부터) 도널드 트럼프 주니어, 트럼프, 이방카 트럼프.

출처-<필름매직>

 

당시 트럼프가 공인도 아니었고 TV 오락물에서 나온 발언들이었기에 크게 사회적인 파장을 몰고 오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에 의해 미국 사회가 병들어가는 과정은 이렇게 슬그머니 부지불식간에 진행되었다고 생각한다. 심해진 다음에는 '어? 언제 이렇게 되었지?' 하며 무대책으로 당했다. 

 

 

일단 던지고 보는 트럼프와 따라가는 사람들

 

2008년 최초의 흑인 대통령 ‘버락 오바마’가 당선되었고, 그는 국민을 향한 설득력, 호감도, 국정 운영 등 여러 면에서 (미국 내에서) 크게 흠잡을 데 없이 폭넓은 지지를 누렸다. 그러나 오바마의 인기 고공 행진은 일부 백인 계층 (주로 교육 수준이 낮고, 저소득층) 사이에서는 위기감이 커지는 원인이 되기도 했다. 

 

“감히 흑인들이 목소리를 크게 내고 살아? 이건 내가 생각하는 조국 미합중국의 모습이 아닌데...” 

 

이런 식으로 말이다. 이 와중에 트럼프가 오바마를 까는 속칭 ‘birther theory’를 들고나온다. 

 

“오바마는 미국 태생이 아니고 (따라서 그는 미국 대통령이 될 자격이 없고) 사실 무슬림이다. 그러니까 그를 대통령으로부터 당장 끌어내야 한다.”

 

이런 주장인데, 물론 100% 날조된 것이다. 또한 설사 그가 무슬림이라 하더라도 그건 대통령이 될 수 있는 자격과 아무 상관이 없다. 하지만 트럼프는 무슬림 혐오 정서를 타고, 사람들로부터 ‘미국 대통령이 무슬림?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라는 반응을 끌어내는 데 성공했다(과거 한국의 빨갱이, 요즘은 친북, 친중 공격과 유사하다 할 수 있다). 트럼프는 이 거짓 선전과 혐오 유발 작전을 타고 크게 부상하게 된다. 기자들이 그 진위를 물을 때 적당히 얼버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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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유력한 정보통이 있는데 그가 조사해낸 것이다.” 

 

“이 주장의 증거를 제시할 수 있느냐?” 

 

“내가 왜 증거를 대냐? 오바마 지가 미국 태생이란 걸 증명해야지.” 

 

이런 식으로 나왔고, 실제로 오바마가 자기가 미국 태생이란 증거를 공개해도(실제 하와이주에서 출생), 못 본 척 무시하며 그 주장을 앵무새처럼 반복했다. 말하는 주제를 보면 TV 셀럽이 아니고 어느새 공인의 목소리를 흉내 내는데, 실제 내용은 셀럽 때와 전혀 다르지 않다. 자기주장에 대한 증명이나 자기가 말한 것에 대한 책임은 없이 “그냥 이렇다는 거야. 내 말만 믿어” 류의 말을 반복했다. 

 

정치계에서는 아무리 오바마와 대립각을 세우는 골수 공화당 측이라 하더라도, 이런 주장에 동조해서 오바마나 민주당을 공격해서는 승산이 없다고 보았다. 재미있는 건, 트럼프는 이 말도 안 되는 주장을 일관적으로 밀어붙였고, 객관적으로 진위 여부를 따져 생각할 줄 아는 사람들은 그걸 무시했을지언정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미국에 굉장히 많았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이후 미국을 이상한 방향으로 끌고 갔다. 

 

오바마를 싫어하는 쪽에서는 ‘이게 웬 떡이냐’ 싶었다. 그리고 이후 주류 정치계에선 인기 높은 오바마 및 민주당과 대결하기 위한 발상의 전환이 이루어졌다(거짓말도 뚝심 있게 하면 된다. 뭐 이런 거다).  

 

그 후 대선 출마 선언과 공화당 경선 과정, 그리고 힐러리 클린턴과의 대선 경쟁에 관련되어 쫄깃쫄깃한 이야깃거리가 많은데, 그건 다음 글에서 다루고, 여기서는 그의 재력과 인간성에 대해 좀 더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정직함을 비웃는 트럼프

 

선거운동 기간 중, 트럼프는 연방 재산세 납부 기록의 공개 여부를 놓고 꽤 신경전을 벌였다. 미국의 대선후보들은 재산의 투명성을 강조하기 위해 대선 출마 시 재산세 납부 기록 (수입, 자산가치, 투자이익손실 등 모든 것이 기록되어 있는)을 공개해 왔다. 

 

트럼프는 이걸 하지 않은 유일한 인물이다. 자기는 최고로 성공한 사업가이고 미국 역대 대통령 중 가장 부자이기 때문에 사심에 휩싸이지 않고 공익만을 위해 일할 수 있다고 큰소리쳤다. 문제는 그가 얼마나 부자인지 그의 기업 (Trump Organization)이 얼마나 성공한 기업인지 아무도 모른다는 것이다(참고: Trump Organization은 주식시장에 상장된 기업이 아니고 개인 회사이기 때문에 재무제표가 공개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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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시의 트럼프 타워.

 

그의 자산 규모를 알기 위해 재산세 납부 기록을 보면 될 텐데, 그는 꼭꼭 감췄다. 뉴욕타임즈가 익명 정보원을 섭외해 재산세 납부 기록의 일부가 공개된 적이 있었는데(아마 그걸 공개한 사람은 목숨 내놓고 한 것이 아닌가 한다), 10년간 연방 재산세를 한 푼도 내지 않았다는 정황이 드러났다(나중에 다시 밝혀지기로는, 한 푼도 안 낸 것은 아니고 조금은 냈다고 한다 / 링크). 

 

2016년 당시 포브스(Forbes)지의 추정치에 의하면 그의 재산은 약 5조 원, 그의 평소 주장에 의하면 10조 원이었다. 천문학적인 재산을 보유했지만, 그 기록에 적힌 대로 트럼프가 주장한 손실을 제하고 나니 개인 소득세가 영(0)이 되어 버렸다. 

 

둘 중 하나다. 그가 성공한 사업가라는 것은 완전 뻥으로 그의 사업체들은 사실상 모래 위에 쌓인 성이고 그는 사람들 앞에서 허세만 부리는 자이거나, 아니면 그가 엄청난 수준의 탈세를 했다는 것이다. 

 

사실 미국에서 살인은 변호사만 잘 쓰면 풀려나도, 탈세는 일단 걸리면 엄한 처벌과 추징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미국이 이렇게 돈에 환장한 나라다!). 트럼프 수준의 인물에는 이미 요주의 도장이 찍혀서 국세청에서 그동안 감사를 많이 나갔다고 하니, 그 절차가 제대로 되었다는 가정하에 트럼프가 천문학적 수준의 탈세를 하지는 않았을 것이고 나름대로 장부를 합법적으로 조작, 관리하며 절세를 했다고 볼 수는 있겠다. 

 

그가 깨끗하다는 것은 절대 아니고 최대한 안 걸리는 범위 내에서 해 먹을 건 다 해 먹었을 거라는 얘기다. 국세청에서는 심증은 있으나 확증이 없어서 아직 손을 못 대고 있으나 언젠가 기회만 되면 크게 손을 봐줄 수도 있다. 아무튼 그는 끝끝내 자신의 세금내역을 공개하지 않았지만, 위의 이러한 짐작은 사실로 드러났다. 

 

2016년 9월 대선 TV 토론회에서 힐러리 클린턴이 이 부분을 집중 공략하자, 그는 이렇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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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금을 한 푼도 안 냈을 것 아니냐는 힐러리의 말을 가로막으며) That makes me smart…. (세금을 내는 것을 지칭하며) It would be squandered" 

 

한국어로 번역하면 이 정도 되겠다. 

 

"이 모지리야. 쪼다나 세금을 다 내는 거야." 

 

딱 걸렸다. 물론 언제나 그랬듯이 1주일 뒤에, 그는 자기가 그런 소리를 한 적이 없다고 잡아뗐다. TV를 봤던 전 국민들을 가스라이팅 한 것이다. 근데 진짜 모지리는 이런 소리를 하는 걸 지도자로 떠받드는 인간들 아닌가? 

 

(참고로, 빌 게이츠는 연방 소득세를 얼마나 낼까?  2021년 기준 총자산 약 130조 원으로 추정되는 그는 공인이 아니기에 현재 얼마를 버는지 얼마의 세금을 내는지는 개인의 프라이버시이지만, 엘리자베스 워런 상원의원이 부자들의 탈세 가능성과 실태에 대해 신랄한 비판을 할 때, 본인(빌 게이츠)이 수년간 무려 10조 원에 해당하는 연방 소득세를 납부해왔다고 밝힌 바가 있다. 또한 법이 개정되어 세금부담이 늘어 20조 원 정도가 되어도 기꺼이 내겠다고도 했다)(출처 링크)

 

트럼프는 자기는 돈에 욕심이 없고 대통령이 되면 자기 연봉을 헌납하겠다고 공언했었는데, 이후 연봉을 무슨 재단에 기부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는 미국 역대 대통령 중 가장 재정 스캔들을 많이 일으킨 장본인이다. 대통령 재직 중 그의 회사는 엄청난 액수의 투자를 유치하며 고도성장을 달성했다. 

 

청렴성과 투명성을 중시하는 미국 기업과 미국 사회, 미국에서 직장생활, 특히 공무원이나 그에 준하는 일에 종사하고 있으면, conflict of interest(이해충돌)가 얼마나 중요하게 다루어지는지 다 알 것이다. ‘공과 사를 분명히 한다’, ‘공적 직위를 이용해 사적 이익을 취하지 않는다’ 등 조항에 서명도 하고 모니터링도 자주 이루어진다. 트럼프는 이것을 뻔뻔하게 비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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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딴 거 니깟 것들이나 지켜~ 난 안 지킬꼬야~~

 

그가 대통령 재직 중 앞으로 중장기간 사업상 관계가 있을 만한 사람들하고만 어울리고 만났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고, 해외 순방 시에도 자기가 투자했거나 자기 재산이 있는 곳, 그리고 앞으로 투자할 만한 곳으로 주로 다녔다는 것도 다 알려진 사실이다. 

 

그와 그의 가족들이 백악관에서 벌이는 구린내 나는 사업들에 대해 감사가 자주 있었고, 심각한 규정 위반사항이 지적된 적도 여러 번 있었으나, 분명한 후속 조치가 따라오지 않았다. 그는 법과 규정 위에 군림하려 했다. 민주 국가의 대통령이 아닌 전제 국가의 왕으로서 말이다. 이에 대한 관련 자료나 기사를 나열하자면 끝이 없다. 궁금하신 분들은 첨부 기사들을 보시기 바란다. (기사1 / 기사2 / 기사3 / 기사4 / 기사5 / 기사6 / 기사7)

 

 

두 번의 탄핵 시도와 불발

 

그는 선거 운동 기간과 대통령 재직 중에 수십 건의 범죄를 저지르며 법을 비웃었는데, 그중 도저히 묵과할 수 없었던 것은 대선 과정에서 경쟁자인 힐러리를 공격하고 이기기 위해 적성 국가(아무리 좋게 말해도 경쟁 국가)인 러시아와 내통하면서 국가적 기밀을 넘기고 사익을 취하려 한 것이다. 

 

계속 막 나가던 트럼프는 2020년 대선 경쟁자인 바이든의 비리 의혹을 수사하라고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에게 압력을 가한 것이 내부 고발로 밝혀지며 2019년 12월 미 하원에서 탄핵이 통과되었다. 물론 아시다시피 이미 트럼프에게 영혼을 쭉쭉 빨려버린 공화당 의원들의 반대로, 미 상원에서 2020년 1월 탄핵은 무산되었다. 

 

1년 후, 그는 다시 탄핵에 이를 수 있는 범죄를 저지른다. 선거 결과에 승복하지 않고 지지자들을 선동해서 국회를 장악하라는 메시지를 던졌고, 정권을 불법으로 연장하려는 계획과 의지를 보였다. 그래서 내란 음모 선동, 국가 전복의 혐의로 다시 탄핵 심판에 서게 되었는데, 이미 임기가 며칠 남지 않았는데 지금 탄핵해서 뭐하냐며 막아서는 공화당 의원들에 의해 다시 불발되었다. 

 

그는 뻔뻔한 얼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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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감히 최고의 인기를 누리는 나를 건드려, 탄핵에 찬성한 공화당 국회의원들 절대 가만두지 않을 거다.”

 

라며 비웃었다. 나는 그들에게 묻고 싶다. 이렇게 민주주의를 부정하는 움직임에 동참하는 자신의 행보에 대해 스스로 떳떳하게 바라볼 수 있을지 말이다. 

 

트럼프는 시종일관 분명히 했다. 뭐든지 자기가 이길 때는 정당한 것이고, 졌다면 그건 부정 때문에 진 거니까 절대 받아들이지 말라고. 

 

이쯤되면 얼마나 위험한 인물인지 제법 와닿을 듯하다. 일일이 열거하면 끝이 없으니 잠시 트럼프에 대한 재밌는 이야기들을 한 번 훑고 지나가자. 

 

트럼프에 관한 사실들: 대리시험, 폐륜 드립, 미담 없음... 

 

도널드 트럼프는 전형적인 금수저로 유복한 가정에 태어났다. 그의 할아버지는 알래스카 금광 개발에 뛰어들어 꽤 돈을 벌었는데, 1918년 스페인독감이 세계를 휩쓸었을 때 폐렴으로 사망한다. 

 

아버지 프레드 트럼프는 1920년 15세의 나이로, 어머니(도널드의 할머니)와 함께 건설회사를 세우고 이후 큰 성공을 거둔다. 뉴욕시에 그가 평생 지은 아파트가 27,000채나 된다고 알려져 있는데, 한때 ‘자동차는 헨리 포드, 주택 건설은 프레드 트럼프’라는 말이 돌 정도로 성공을 거두었다.

 

트럼프는 두 번이나 탄핵이 발의되고 소추된 유일한 대통령이다. 물론 상원에서 두 번이나 탄핵이 기각된 유일한 대통령이기도 하다. 하원에서 탄핵소추 되었지만 상원에서 기각된 사례는 그 이전에 두 차례 있었다(17대 앤드류 존슨; 42대 빌 클린턴). 37대 리차드 닉슨은 하원에서 탄핵소추가 확실시되자 사임했다.  

 

한국과 달리 미국의 탄핵은 하원에서 탄핵안이 소추되어 과반수 통과되면 상원에서 심리하고 유무죄를 표결로 평결하는 시스템이다. 상원에서는 3분의 2 이상 유죄를 받아야 하기 때문에 유죄 평결이 나오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

 

결혼/이혼 경력 : 트럼프는 두 번의 이혼과 세 번의 결혼을 한 유일한 미국 대통령이다. 맺고 끊음이 확실한 게 아니고, 꽤 지저분했다. 타이밍을 볼 때 현 부인이 나가기 전에 다음 부인을 들여놓은 정황이 있다(그의 여성 편력과 관련된 이야기는 가히 ‘선데이 서울’ 뺨을 칠 수준이니 따로 날 잡아서 이야기해야 한다). 

 

이 부문 (격차가 매우 큰) 2등은 로널드 레이건(40대 대통령). 한번 이혼을 한 적이 있지만 영화배우 시절이었고, 정계 진출 후부터는 낸시 레이건에게만 지조를 지켰기에, 1등과는 비교가 안 된다. 

 

참고로 존 타일러(10대), 우드로 윌슨(28대)은 대통령 임기 중 배우자와 사별 후 재혼한 경력이 있다. 제임스 뷰캐넌(15대)는 평생 독신으로 지냈는데, 많은 역사가들이 게이였다고 본다. 

 

여성 편력과 여성을 업신여기는 발언은 당대에 그에 대항할 자가 없어 보이는데, 자세히 얘기하면 딴지의 지면이 터질 것 같으니, 단적인 예만 보여 드리겠다. 그는 가정주부들이 많이 시청하는 아침 방송  <The View>에 출연해서 이런 말을 하기도 했다. 

 

장녀 이방카 트럼프를 지칭하면서,

 

“쭉쭉 빵빵, 끝내주죠? 씨발, 내 딸만 아니었으면, 걍 어떻게 해보는 건데(If Ivanka weren’t my daughter, perhaps I’d be dating her, you know)”

 

이 말을 들은 여성 진행자들은 내가 뭘 들은 거지? 같은 표정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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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에피소드는 단발적 사례가 아니다. 이방카가 1997년 16세의 나이로 Miss Teen USA 대회 진행자를 했는데(물론 Miss Teen USA의 주최권자였던 아빠 찬스로), 그때부터 자기 딸에 대해 "hot"이니 어쩌니 공개적으로 떠들다가, 2000년대를 지나면서 여러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voluptuous(육감적인)", "piece of ass(이성적 의미로서 굉장히 매력적인 여자라는 은어)"라고 표현 수위를 올렸다. (기사 링크)

 

사실 이렇게 순화된 표현들만 널리 공개되어 회자된 것이고, 알려지지 않다가 나중에 폭로된 발언을 보면 진국이 보인다(역겨움 주의). 세 번째 부인 멜라니아 트럼프가 아들 출산 후 얼마 안 되었을 때, 포르노 배우 Stormy Daniels와 한동안 바람을 피운 적이 있는데 그녀와의 전희 중 "넌 내 딸 같애. 예쁘고 똑똑하고, 난 지금 너무 행복해."라고 한 적도 있다. (기사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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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ormy Daniels.

 

트럼프는 아이비리그 명문대 중 하나인 UPenn(University of Pennsylvania) 비즈니스 스쿨(와튼스쿨로 잘 알려져 있음)을 1968년에 졸업했는데, 입학 허가, 과목 이수, 졸업 등 자세한 내용은 베일에 싸여 있다.  

 

허풍 떨기 좋아하는 그는 본인이 수석으로 졸업했다고 자랑하고 다녔고, 사람들은 처음에 그냥 그러려니 했던 것 같다. 그러다 몇몇 언론에 (뉴욕타임즈 포함) 트럼프의 동급생들이 “그의 말은 구라”라며 딴지를 거는 내용이 소개되었는데, 트럼프의 법무팀에서 UPenn대학 당국, 출신 고교, 동급생들, 그리고 College Board(SAT 시험의 주관기관)에게 기록을 공개하면 소송을 걸겠다고 협박하기도 했다(2019년 팽당한 그의 개인 변호사 Michael Cohen에 의해 폭로된 내용이다 / 기사 링크

 

몇 년 후, 누군가 빛바랜 와튼 스쿨 68년 졸업 기록을 찾아서 공개했는데, 트럼프는 수석은 물론이고 우등 학생 명단에도 올라 있지 않았다(기사 링크). 트럼프의 아버지와 와튼 스쿨의 교수들과 친했다고 하는데, 친하지 않았더라도 금수저가 아이비리그 대학에 들어가는 것 자체가 놀라운 것은 아니다. 

 

예나 지금이나 금수저로서 아이비리그 대학에 들어가는 게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지만, 그나마도 부정 없이는 들어가기 어려웠나보다. SAT 시험에 자신이 없었는지 그는 대리시험으로 점수를 취득했다(2020년 누나 메리언 트럼프가 조카 메리 트럼프에게 밝히면서 세상에 드러났다. 누나와 조카에 대해서는 뒤에 다시 나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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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와 그의 누나 메리언 트럼프.

 

60년대 말, 베트남전이 한창일 때, 미국의 많은 젊은이들은 징집되어 전장으로 나갔다. 트럼프도 영장을 받았는데 네 번이나 건강상의 이유로 연기 혹은 이의 신청을 했고, 그 와중에 징집 광풍은 끝났다. 2015년에 그와 관련된 질문을 받았는데, 그때 건강상의 사유가 무엇이었는지 기억이 안 난다고 했다.

 

그는 여러 매체에서 자기는 아버지로부터 백만 달러를 빌려서 사업을 시작했고 다른 도움을 전혀 받지 않았다고 주장했지만, 그는 이미 수십 개에 이르는 trust fund(총액은 4억 달러로 추산)를 아기 때부터 이미 상속받은 상태였다. 자기는 유능한 사업가이며 자수성가했다고 뻐기고 다녔지만, 글쎄 4억 달러 정도 은행에 있으면 나도 자수성가하겠다, 퉷.

 

그가 성공한 사업가라는 것은 진실과는 거리가 멀다. 그는 꽤 많은 사업체들을 파산시켰다. Trump’s Castle Hotel & Casino는 1985년 개장, 1991년 파산. Trump Plaza Hotel and Casino는 1984년 개장, 1992년 파산. Trump Hotels & Casino Resorts는 1995년 개장, 2004년 파산. 

 

자잘한 것 빼고 굵직굵직한 것만 봐도 이 정도다. 확실한 건 그가 파산에 대해서는 전문가였다는 거다. 언젠가 이런 말도 했다 “파산법이란 거, 아주 갖고 놀기 좋아요~. 회사 부채? 그냥 끊어버리면 돼요.”

 

트럼프는 70년대부터 2016년까지 비즈니스 파트너, 투자자, 직원들, 연방, 주, 시 정부 등으로부터 약 3500번 넘게 소송을 피고로 당하거나, 원고로 걸었다(기사 링크)

 

예를 들어, 트럼프의 회사가 파산해 평생을 모은 내 투자금이 날아갔는데, 파산시킨 장본인은 계속 사치스러운 삶을 살고 허풍치고 거들먹거리며 다른 사업을 벌인다. 피가 끓는다. 그래서 여러 명 힘을 모아 소송을 건다. 그런데 그는 게임을 할 줄 안다. 

 

대부분 맞고소를 걸거나, 버티고 버텨서 상대를 말려 죽인다. 이것은 그가 2015년 공화당 경선 과정 중 다른 후보들에게 훈수 비슷하게 했던 발언에 또렷이 나와 있다. 그는 이렇게 발언했다. “고소당하는 걸 왜 겁내냐? 맞고소하거나 버티면 되는데” 물론 그럴 수 있는 자원과 여력이 있으니 가능한 이야기다.

 

도널드 트럼프는 3남 1녀 중 세 번째로 태어났다. 8년 위 누나인 메리앤 트럼프 배리는, 민주 공화 양쪽 모두 신망을 받고 오랜 기간 연방 법원에서 법관으로 근무한 이력이 있다. 한때 종신 대법관 지명 가능성도(가능성이 크지는 않았지만) 언급된 적이 있을 정도의 자격을 갖춘 인물이다. 

 

대개 법관들이 그렇듯 그녀는 신문 방송에 노출되지 않는 삶을 살았는데, 매리 트럼프(도널드 트럼프의 형 프레드 주니어 트럼프의 딸)가 2020년 목숨 걸고 자기 가족의 치부에 대해 발간한 책 『Too Much and Never Enough: How My Family Created the World's Most Dangerous Man(이건 정말 해도 너무해: 어떻게 우리 집안에서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인간이 나오게 되었나)』 관련 녹취 기록을 보면 도널드 트럼프를 누구보다도 싫어했다는 것이 생생하게 기록되어 있다. 

 

트럼프 조카.jpg

 

내용 중 일부로는, 

 

“도널드는 자기 지지자들 똥꼬만 빤다. 행동에 원칙이 없다. 갓댐 트윗질, 얘기를 맨날 앞뒤 바꾸기만 하고, 일하는 데 준비도 안 하고, 입만 열면 개구라. 에휴 시팔”

 

이런 내용이 있었다. (기사1 / 기사2 링크)

 

점잖은 미국 연방 법관이 자기 동생한테 하는

찰진 욕을 듣고 싶으시면 이 영상을 참조.

아쉽지만 찐~한 부분은 삐~ 처리되어있다.

 

세상에 아무리 개 썩은 인간들도 자기편이 있다. 학살자 전두환도 부하 군인들은 그를 의리를 아는 훌륭한 지휘관이자 선배로 칭송한다. 히틀러도 심복이 있었는데 전두환이라고 자기 사람이 없었을까. 그런 면에서 도널드 트럼프는 비슷한 사례를 찾기 힘든 별종이다. 

 

그와 비즈니스나 사적으로 가까운 관계를 가졌던 사람들 중 누구도 그의 인간성에 대해서 좋게 얘기하지 않는다. 아무 말도 안 하면 다행이고, 대부분 욕을 하거나 소송을 걸기 때문에, 결국엔 얼굴을 붉히는 사이가 된다.  

 

예를 들어, 

 

“음... 그 양반 말을 막 해서 비판은 좀 받지만, 천성은 착한 사람이예요. 상대를 존중해주고 다른 사람들을 잘 케어해 줘요” 

 

이런 식의 발언은 그와 비슷한 사기꾼 같은 인간이 옆에서 알랑방귀 뀌면서 말하는 것을 제외하면, 어느 누구도 한 적이 없다. 또한 아무 사심과 이해관계는 없지만 지근거리에서 지켜보아 잘 아는 사람들(예를 들면, 백악관 청소직원이라든가) 중 그의 숨겨진 미담에 대해 이야기하는 사람도 없다. 불쌍한 인간이다.

 

 

중간 결론 : 그래서 트럼프가 위험한 이유

 

전술했듯 트럼프의 자산을 정확히 파악하기는 매우 어렵지만, 그가 미국 역대 대통령 중 가장 부자인 것은 분명하다. 부자라는 것 자체로 흠결이 될 수 없다. 부잣집에 태어난 것은 죄가 되지 않는다. 어떤 재주나 능력으로 재화나 부가가치를 생산하고 그로 인해 사회 구성원들에게 이익이 돌아오는 선순환이 이어진다면, 그가 부자인 것은 모두에게 득이 된다. 

 

트럼프의 문제는 그가 독고다이 식으로 자신의 능력만으로 돈을 번 것도 아니고, 다른 사람들을 이용하고 다른 이들이 피땀을 흘린 결과로 돈을 벌었으면서도, 그는 평생 너무도 철저하게 자신의 이익과 욕구 충족만을 위해서 살아온 것이다. 

 

많은 이들이 의외라고 생각하지만, 그는 돈 자체에는 큰 욕심이 없는 것 같다. 4억 달러 통장을 입에 물고 태어나고 현재 재산이 1조에서 10조 원에 이르는 사람의 인생과 돈에 대한 그의 가치관을 과연 우리가 이해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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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그는 돈을 벌기보다는, 게임하는 것을 체질적으로 좋아했기 때문에 사업을 해왔고 정치에도 뛰어들었던 것이라고 본다. 여기서 말하는 게임이란 사람의 몸과 마음을 갖고 게임하는 것을 말한다. 마치 오징어 게임에서 오일남 영감처럼 말이다. 

 

사람은 고치기 힘들다고 하니 트럼프가 갑자기 정신 차려서 성인군자가 될 것 같지는 않고, 그는 이 게임을 오일남처럼 죽는 순간까지 계속 할 것이다. 이보다 더 큰 문제는 트럼프 주위로 몰려드는 이들과 그들로 인해 파괴되는 사회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이 트럼프의 한갓 노리개에 불과한 것을 아직 깨닫지 못한 듯하다.

 

<계속>

 

 

소리는 어디에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