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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경제적으로 자유로워지고 싶다는 생각을 해왔다. 그런데 내가 왜 경제적 자유를 원했더라? 회사에서 더러운 꼴 안 보려고? 가족들 좀 더 편안히 먹여 살리고 싶어서? 곰곰이 생각해보니, 경제적 자유 그 자체를 원한 게 아니었다. 돈이 없어 불편한 게 싫었을 뿐이다. 가족들 먹여 살리는 게 어려울까 봐 불안했을 뿐이다. 그저 남들의 평가와 내 마음속 나 자신에 대한 평가가 낮아지는 게 싫고 두려웠을 뿐이다. 진짜로 원한 건 경제적으로 자유로운 삶이라기보다는 불안과 두려움으로부터 자유로운 삶이었다. 

 

행복해지는 방향으로 나아가려 애쓰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실상은 불안과 두려움이라는 고통에서 도망가고 있는 것에 가까웠다. 불교식으로 얘기하자면 탐심(貪心, 어떤 것을 원하는 마음)보다는 진심(嗔心, 어떤 것을 싫어하는 마음)이 주동력이었던 셈이다.

 

2.

평범한 사람이 욕심을 가지고 살아가는 건 당연한 일이다. 왜 더 좋은 집과 더 비싼 자동차를 원하는지는 한번 생각해 봐야 한다. 탐심(貪心)이라고 생각한 많은 것들이 실제로는 진심(嗔心)에 가까운 경우가 있다. 어쩌면 돈을 잔뜩 벌고 싶은 욕구는 토니 스타크가 아이언맨 수트를 잔뜩 만들어두는 심리와 비슷하다. 아이언맨 수트가 너무 좋아서라기보다는 미래가 불안하니까 수트를 잔뜩 만들고 보자는 식이다. 금속 껍데기가 아니라 자기 자신이 아이언맨임을 믿게 되었을 때 토니 스타크는 불안감을 덜 수 있었고, 수트에 대한 집착을 버릴 수 있게 되었다.

 

부자들은 오히려 더 욕심이 크다. 왜 돈에 대한 욕구는 돈이 많을수록 커지는 걸까. 왜 부자일수록 욕심쟁이가 많을까. 어쩌면 돈을 잃음으로써 얻는 고통과 불안이 더 커지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세상 부러울 게 없는 재벌들도 정신이 불안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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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내 경우 부담되는 일거리가 생기면 이상하게 딴지 게시판이 당기는 증상이 있다. 평소에는 출입 안 하는데 조금 부담되는 일이 생기면 일단 클릭부터 하고 본다. 부담감 즉 불안과 두려움이 느껴지면 조그만 일탈을 하는 습관이 나도 모르게 생겼다.

 

잠깐만 딴짓하려고 딴/게 들어갔는데, 나도 모르게 빠져들어서 시간을 보내고 나면 일을 처리할 시간이 줄었기 때문에 더욱 불안해지게 된다. 불안감이 더 커졌기 때문에 더욱 적극적으로 딴짓을 하게 되는 악순환에 빠지기도 한다.

 

부담되는 일을 앞두고 딴짓하고 싶어지는 심리는 누구나 경험해 봤을 것이다. 불안과 두려움을 피하고자 감정을 마비시키고 회피하고자 하는 마음이니까, 이를 진심(嗔心)이라고 봐도 될 것이다.

 

이렇게 내 마음은 탐심과 진심 사이를 종일 오간다. 이와 비슷하게 마음은 미래와 과거 사이를 오가고 있다. 하루를 가만히 살펴보면 현재/여기의 일에 진정으로 집중하는 시간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미래에 대한 걱정이나 기대, 과거에 대한 후회나 회상이 채우는 시간이 많다. 문제는 불안과 두려움이 커질수록 현재에 집중하기가 어려워진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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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불안과 두려움이 커질수록 현재에 집중하기가 어려워진다. 혹시 현재에 집중하는 트릭이나 마인드 셋이 불안과 두려움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될까? 내 경험으로는 그렇다.

 

걸웨이 선생이란 분이(적어도 잠시 동안은) 이 목소리의 볼륨을 줄일 수 있는 트릭을 만들었다. 이게 꽤 효과적이다. 마음속에는 일해라/절해라, 잘했다/못했다 1초도 쉬지 않고 간섭하는 목소리가 있다. 테니스 이너게임에서는 이를 'SELF1'이라고 부른다. 이너게임에 대한 보다 자세한 설명은 지난번 글 참고 바란다(관련 글).

 

핵심은 SELF1이 활성화되는 것 자체를 막는 것이다. 마음을 억지로 통제하려 하면 실패한다. 순간순간 문득 떠오르는 감정과 생각은 어떻게 할 수가 없다. 남 얘기하듯이, 흥미롭다는 듯이 판정을 하지 말고 관찰하는 연습이 필요하다.

 

5.

일체의 판정이나 판단을 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긍정적인 판정도 예외는 아니다. 칭찬은 확실히 고래도 춤추게 하는 힘이 있다. 하지만, 그 힘이 항상 옳은 건 아니다. 자기비판이 도움이 되지는 않는다는 건 보통은 알고 있다. 그런데 자기 칭찬도 항상 도움이 되지는 않는다.

 

소소한 칭찬, 위로, 응원은 인간에게 꼭 필요하다. 하지만 어떤 조건을 만족해야 칭찬하겠다는 조건이 붙는 건 문제가 될 수 있다. 이러저러하다니 참 잘했어 스스로 얘기해 주는 게 도대체 왜 문제라는 말인가? 잘하니까 칭찬한다는 말은 뒤집으면 못하면 칭찬 할 수 없다는 말이 된다. 즉 못하면 벌 받는다는 말(최소한 칭찬 못 받음)이 된다. 그러니 칭찬마저도 긴장과 불안을 불러올 수 있다. 즉 자기비판뿐 아니라 칭찬도 잠시 멈추어야 한다. 일단 모든 판단과 판정을 멈추어야 그다음부터 관찰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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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정적인 자세의 예

 

6.

지하철을 타고 금정역을 지날 때마다 금정역처럼 긍정적으로 살기를 다짐하던 시절이 있었다. 많은 자기개발서들이 자기를 칭찬하고 긍정 경험에 집중하라는 충고를 하고 있다. '긍정'경험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과연 도움이 될까?

 

소소한 위로와 칭찬은 인간에게 꼭 필요하다. 문제는 일부 긍정심리학을 바탕으로 한 자기개발서이다(심리학에 실재하는 세부분과인 긍정심리학의 실상을 모른 채 어설프게 오용한 것들이다). '더 돈을 벌 수 있다', '더 일을 잘할 수 있다', '더 행복해질 수 있다', '더 건강해질 수 있다'고 끊임없이 부추긴다. 더 돈을 벌어야 하고, 더 일을 잘해야 하고, 더 행복해져야 한다는 전제가 깔린 셈이다. 어찌 생각하면 당신은 가난하고, 일도 못 하고, 불행하다고 자기도 모르게 세뇌하고 있다. 가진 것보다 가지지 못한 것("긍정적 경험")에 자연스레 신경이 쓰이기 때문이다.

 

7. 

내 경우 억지로 나는 최고라고 외치는 건 효과가 영 있지 않았다. 용기를 내기 위해 스스로 다짐하는 건 얼핏 문제가 없어 보인다. 매일 자책하는 것보다는 낫겠지만 몇 가지 부작용이 있었다. 내가 최고라고 다짐하는 건 최고가 되어야 한다는 은근한 부담을 준다. 부담 가는 일은 꺼리게 되는 게 인간의 본능이다. 그래서 잘하고 싶다면 차라리 나는 최고가 아니어도 괜찮다고 되뇐다.

 

거기다가 '나는 최고'라는 자기최면에는 '나는 남들과 다른 특별한 존재여야 한다'는 전제가 깔린다. 최고가 되고 싶은데, 그렇지 못할 때가 생길 수 밖에 없다. 그 경우에는 남을 깎아내려서 자기 위치를 높게 만들려는 유혹에 빠진다. 어쩐지 험담이 유난히 당기는 날이 있다. 그럴 때 내 마음을 가만히 보면 십중팔구는 자기비하에 빠진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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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세줄 요약

1. 현재에 머물러야 불안과 두려움이 잦아든다.

2. 그러기 위해서 판단을 멈추고 관찰하라.

3. 긍정적인 판단도 예외는 아니다.

 

판단을 멈추는 게 말처럼 쉽지는 않다. 일상생활 속에서는 거의 불가능하게 느껴질 수 있다. 그때마다 개인적으로 도움이 되는 격언은 "Be curious, not judgmental(먼저 판단하지 말고, 호기심을 가져라)"이다. 아래 사진은 <테드 라소>라는 미드의 한 장면이다. 애플 티브이 가입자들은 무조건 봐야 하는 첫 번째 쇼로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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