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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대선에서 공화당은 오바마 정부를 비판하기 어려웠다  

 

오바마(45대 대통령, 2009.01.20.-2017.01.20)는 막판까지 꽤 인기를 유지한 대통령이었다. 2017년 1월 퇴임을 이틀 앞둔 마지막 여론조사에서 60% 지지율을 기록하며 프랭클린 루스벨트(71%), 빌 클린턴(65%), 로널드 레이건(64%)에 이어 역대 4번째로 높은 임기 말 지지율을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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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공화당 보수진영에서는 그를 ‘폭정을 일삼는 극단적 좌파’로 자주 묘사했다. 민주당에서도 그를 ‘보수의 이익을 대변하는 실망스런 민주당 대통령’이라며 공격하는 일부 세력이 있었다. 

 

어려운 문제를 풀며 양쪽의 의견을 조율하다 보니 생기는 반응이다. 정치인들이 뭐라고 하든, 결과적으로 혜택을 받은 국민들은 그에 대해 전반적인 호감을 유지하고 있었다. 물론 그의 친화력, 설득력, 연설 능력, 순발력 넘치는 유머 감각도 높은 인기의 큰 요인이었다. 어제까지도 반대편에서 핏대를 세우며 싸웠던 공화당 지도부 의원들도, 오바마의 연설 속 유머에 박장대소하며 박수를 치는 일이 많았다. 

 

오바마 집권 2기를 보내며, 미국 사회에 표면적으로 큰 문제가 나타나지 않았다. 경제 수치도 나쁘지 않았다. 오바마는 국제 사회에서도, 외교무대에서도 전체적으로는 인기 있는 인물이었다. 

 

중동문제가 그의 약점으로 지적되었는데, 특히 알 카에다와 바톤 터치한 ISIS가 더 심한 악랄함을 보이며 골치를 썩였다. 그 외 오바마에게 평균 이하의 점수를 줄 요인이 몇 가지 있었지만, 역사의 큰 흐름 속에서 넘어갈 수 있다는 것이 일반 국민들의 정서였다. 대통령의 집권 말기가 되고 레임덕이 심해지면, 대통령 때문에 못 살겠다. 이런 말이 나오기 마련인데, 오바마의 경우는 그렇지 않았다.

 

 

변종의 등장, 바람잡이로만 생각했었다

 

이런 이유로 공화당이 흔한 정치공학적 수법을 동원해 오바마 정권의 실책이나 약점을 부각시키며 정권교체를 시도해서는 승산이 낮았다. 다른 정치 전략적 방법을 찾아야 했다. 그런데 이때 공화당의 계산으로는 정답이 아니던 방식, 즉 기존의 정치 규칙을 깨버리며 트럼프가 지지세를 넓혀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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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 국면에서 처음 그가 등장했을 때, 공화당 내부에서는 우려의 목소리가 대부분이었다. 그가 지저분한 과거를 갖고 있었다는 것은 모두 아는 사실이었다. 아무리 깨끗한 후보라도 어디선가 부끄러운 기록이 폭로되면 탈락하고 도태되는 정치판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검증이 엄격한 대선판인데, 그의 이력서는 허점 투성이였다. 

 

함량 미달일 뿐 아니라 흠이 될 만한 부분이 너무 많았다. 공화당 입장에서 그가 새로이 몰고 온 바람은 신선했고 기대되었지만, 실제 그가 대선 본선에서 힐러리 클린턴과 맞대결하면, 결과는 보나 마나일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니까 그들은, 팝콘 갖다 놓고 트럼프가 벌이는 쇼 좀 구경하다가, 적당한 때가 되어 트럼프가 물러나면, 제대로 준비된 적합한 인물을 공화당 대표로 내세워 대선전을 치러 보자고 생각했다.

 

누가 ‘제대로 준비된 적합한 인물’로 여겨졌을까? 여러 이름이 오르내렸는데, 대체로 중앙 무대에서 인지도가 높던 이들로 의견이 모아졌다.

 

①젭 부시 (43대 대통령 조지 부시의 동생이자 플로리다 주지사)

②마코 루비오 (젊은 패기의 플로리다 상원 의원) 

③린지 그래햄 (정치 경력 25년의 노련한 사우스캐롤라이나 상원의원)

④테드 크루즈 (보수 매파의 선봉인 텍사스 상원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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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1월 미국 대선 공화당 경선 토론회에서 후보들.

(왼쪽부터) 존 케이식, 젭 부시, 마코 루비오, 도널드 트럼프,

벤 카슨, 테드 크루즈, 칼리 피오리나, 랜드 폴. 

 

사람들은 트럼프가 애초에 이들과는 경쟁상대가 되지 못할 것이고, 단지 민주당과 대선 본선 전에 어느 정도 정권 교체 바람을 띄워줄 역할 정도만 하게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예상 밖 돌풍이었던 트럼프와 전례 없는 발언들  

 

그런데 이게 웬걸. 어느 정도의 바람이 아니고, 이건 돌풍이다. 트럼프는 말초신경을 자극할 만한 전례 없는 발언들을 쏟아 냈다. 

 

2015년 6월 16일, 대선 출마 연설에서 그는 다음과 같은 발언을 하며 호언장담했다. 

 

“멕시코에서 마약 딜러나 강간범들이 몰려온다.”

 

“그들을 막기 위해서 멕시코 국경에 높고 멋있는 담장을 세워야 한다.”

 

“담장 건설 비용은 멕시코에 청구해서 받아낼 것.”

 

7월 18일, 상원의원이자 2008년 공화당 대통령 후보였으며, 베트남 전쟁 때 해군 장교로 참전했고 포로로 잡혀 고생도 한, 그래서 (미국인 입장에선) 수십 년간 존경과 신망을 받아오던 존 메케인에 대해 트럼프는 이렇게 말했다.

 

“전쟁에서 적에게 잡혔는데 영웅은 무슨 영웅, 오바마한테 졌잖아. 내가 볼 때 그냥 루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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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매케인은 뇌종양으로 투병하다 치료를 중단하고

자신의 마지막을 준비했는데,

트럼프와의 앙금은 끝내 풀리지 않아 례식에는

‘펜스 부통령’이 와줬으면 좋겠다는 뜻을 백악관에 전했다.

그는 2018년 8월 25일 사망했다.

그의 장례식날 트럼프는 보란 듯이 자신의 골프장으로 향했다. 

 

8월 7일, 여성 앵커에게 원색적인 욕을 공개적으로 시전하기도 했다. 전날 진행됐던 1차 공화당 후보 토론회(2015.08.06.)에서 인기의 폭스뉴스 앵커 메긴 켈리가 진행을 맡았는데, 그녀가 날카로운 질문을 몇 개 했다고 해서, 며칠 동안 그녀에 대해 욕을 했다. 예를 들면, 이런 욕이다.

 

“에휴, 이 여자 거참 독하데. 피 이리저리 흘리던데 말야, 얘 제정신이야?” 

(해석: 아 씨바, 왜 그러게, 한 달에 한번 생리하는 애를 데려와서 진행을 시켰어?) 

 

트럼프는 몇 달 후에도 그녀를 bimbo라 부르며 모욕했다(‘남자만 밝히는 골빈년’ 정도로 번역이 가능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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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직 변호사이자 미국의 스타 앵커 메긴 켈리(Megyn Kelly).

 

11월 21일, 앨라배마에서 BLM (Black Lives Matter) 평화 시위 도중 트럼프 지지자들이 시위대를 폭행하고 인종혐오 단어로 조롱한 사건에 대해, "맞을 짓을 한 거지." 

 

11월 21일, 수천 명의 미국 내 무슬림들이 9.11 사건 아침 당일, 환호하고 박수를 쳤다고 주장 (이 황당무계하고 혐오를 조장하는 발언은 그 후로도 몇 번 반복). 

 

11월 24일, 그에 대해 비판적인 기사를 냈던 장애인 기자가 있었는데, 유세 도중 그의 장애를 흉내 내며 조롱.

 

12월 2일, 테러와의 전쟁을 제대로 하려면 그 가족들을 찾아내어 족치면 된다고 발언.

 

12월 3일, 지구온난화는 사기라고 발언(이후에도 겨울에 조금이라도 온도가 예년보다 낮아지기만 하면 이 말을 반복했음. 왕짜증).

 

12월 7일, 미국 내 총격 사건들은 대부분 무슬림들에 의해 벌어진다고 궤변함. 이를 막기 위해서 이슬람 국가들로부터 미국 이민을 금지해야 한다고 주장.

 

12월 17일, 러시아 대통령 푸틴을 극찬하는 발언과 함께 그는 오바마보다 나은 지도자라고 주장.

 

12월 21일, 2008년 오바마와 민주당 경선에서 패한 힐러리 클린턴을 향해, “schlonged 당했다”고 발언(“남자의 성기에 맞았다”는 의미).

 

12월 30일 심각해진 시리아 내전에 대해 오바마 행정부 대응을 문제 삼으며, 

 

“이건 '무능(incompetent)'하다고 표현해서는 안 되고, '병신(stupid)'같다고 해야 한다. 나 아이비리그 대학 나온 사람인데, 내가 쓰는 표현은 정확한 거다.”

 

2016년 1월 23일, 

 

"아무도 날 못 건드려. 내가 뉴욕 5번가에서 총으로 사람을 쏴 죽여도 내 표는 전~혀 안 깎인다." 

 

2월 16일, 유세 도중 자기를 싫어하는 사람이 와서 토마토를 던질 거라는 첩보가 있었다 밝히고, 만약 누가 옆에서 그럴 거 같은 기미가 보이면 “그 새끼 잣나게 패주라(knock the crap out of them)”고 발언. 이런 류의 발언은 이후에도 업그레이드되어 반복.

 

2월 23일, 유세장에서 반트럼프 플래카드를 꺼내 올린 사람들이 행사 안전요원들에 의해 제지되고 쫓겨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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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햐아, 세상 좋아졌다. 옛날 같았음 나 같으면 비 오는 날 먼지나게 패 버렸을 거고, 저런 건 들것에 실려 나가야 하는 건데 말야.” 

 

이후에도, 

 

“반트럼프나 진보 시위대를 보면 가만히 있지 말고 애국적인 행동을 취해라.” 

 

“폭력 쓰는 것 겁내지 마라. 시위하는 것들은 매밖에 답이 없다. 경찰에 잡혀가면 내가 변호사 비용을 대주겠다.” 등 

 

폭력을 사주하는 발언을 여러 번 유세에서 함. 실제로 나중에 누가 그 말을 듣고 평화적 시위를 하던 흑인을 폭행하다가 체포되었는데, 변호사 비용을 대주지 않았다고 한다. 치사한 ㅅㄲ... 근데 그 말을 그대로 믿은 게 더 똥멍청이 아냐?

 

2월 28일, KKK 리더 데이비드 듀크가 트럼프를 공개적으로 지지하겠다고 선언하자, CNN은 트럼프와 인터뷰에서 데이비드 듀크나 여타 극단적 인종 차별주의 조직의 리더들에 대해 배격하는 발언을 요청했고, 트럼프는 끝내 거부. 

 

3월 30일, 임신중절 수술을 받는 여성들을 범죄자로 취급하고 처벌해야 한다고 발언(이게 얼마나 미국을 퇴보시키는 역사적인 발언인지, 이것이 씨가 되어 이후 미국 사회에 어떤 악영향을 끼치게 되었는지, 기회가 되면 자세히 다루어 보고 싶다).

 

6월 3일, 트럼프 대학 사기 소송 진행 중, 해당 소송 연방정부 판사인 곤잘레스 큐리엘을 향해 그는 멕시코인이기 때문에 정당한 판결을 기대할 수 없다며 판사 교체를 요구. 물론 전혀 사실무근, 단지 라틴계 판사라는 이유로 이런 망발을 했음.

 

6월 12일, 플로리다 올랜도의 나이트클럽 총격 사건으로 49명이 사망한 사건, 범인이 범행 직전 이슬람 혐오 발언을 했던 것이 밝혀지자, 

 

"극단적 이슬람교도들에 대한 단죄의 노력에 찬사를 보냅니다.“

 

라고 트윗질. 이 사건은 미국에서 발생한 단일 총격 사건으로는 최대의 사망자를 낸 것이라, 사회적 파장이 커지자 얼마 뒤 트윗은 삭제됐지만, 그가 얼마나 위험한 사회의 암적 존재인지 보여주는 사례임.

 

헥헥, 하루가 멀다 하고 1일 1망언을 했었는데, 최대한 골라서 이 정도만 소개한다.

 

 

보여줄 정책이 없던 그의 전략, 음모와 무논리

 

이런 트럼프가 이후 어떻게 되었을까? 각 주의 공화당원들이 처음부터 트럼프에게 열광적인 지지를 보여준 것은 아니었다. 

 

예를 들어, 2016년 2월 1일 최초 경선주인 아이오와에서는 크루즈가 1위, 트럼프와 루비오가 그 뒤를 따랐다. 그런데 2월 9일, 뉴햄프셔, 2월 20일 사우스캐롤라이나, 2월 23일 네바다에서 트럼프가 1위로 올랐고, 그 기세를 모아 슈퍼 화요일이라 불린 3월 1일, 11개 주에서 경선이 벌어졌는데 그는 7개 주에서 1위에 오르는 성적을 낸다. (공화당 후보 간 지지율 추이 그래프 : 링크에 접속 후 나온 그래픽에 마우스를 대면 주별로 집계된 여론조사 자료가 나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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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훗!

 

이때 정치계 내부에서뿐 아니고, 일반인들도, 

 

"어! 이거 이러다가 트럼프가 공화당 후보로 되겠는데?“

 

라며 호기심 반, 짜증 반이 섞인 반응을 시작하게 된다. 희대의 별종이 나왔으니 정치 뉴스 보는 게 지루하지 않아서 신선하다는 사람들은 호기심 있게 지켜보았고, 그가 망언을 연이을 때마다 "이건 좀 심한데"라고 느끼는 사람들은 서서히 그에 대한 짜증과 "앞으로 나라가 어떻게 될라고 이러나"라며 위기의식을 보이기도 했다. 

 

사실, 트럼프의 선거 전략은 매우 단순했다. 정치 경험이나 공직 경험이 전무했으므로 정책에 대해 유권자들에게 보여줄 것이 없었다. 대신 그는 하루가 멀다 하고 문제가 될 만한 발언들을 골라 하면서 (어떨 때는 이 자가 일부러 그러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뉴스거리를 만들었는데, 일부 사람들은 그럴 때마다 열광했다. 기본적으로 그런 작전의 연속이었다. 

 

상대 후보 비방하기는 그의 전문이었는데, 그의 상대 후보에 대한 공격은 흔히 볼 수 있는 다른 정치인의 이전투구와는 격이 다른 것이었다. 전혀 근거 없는 음모론, 날조된 주장, 혹은 황당무계한 논리로 상대를 헐뜯으며 상대를 음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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쟤요! 여러분, 쟤가 아~주 나쁜 놈이에요!!

 

예를 들어, 벤 카슨이 다크호스로 여론조사에서 잠시 1위로 떠오르자 아무 근거도 없이 그를 아동학대자로 비유하면서, 그런 병적인(pathological) 머저리는 못 고친다고 하거나 (2015/11/11), 테드 크루즈의 부인 하이디 크루즈가 특별히 못 생기게 나온 사진을 클로즈업해서 트윗에 공개하기도 했고 (2016/3/23), 테드 크루즈의 아버지가 JFK 암살 사건에 연루되어 있다는 아무 근거 없는 주장도 펼쳤다(2016/5/3). 

 

입에 담기 민망한 욕을 할 때 민망함을 느끼는 것은 오로지 주변인들의 몫이다. 예를 들어, 테드 크루즈를 pussy로 불렀는데 (2016/2/8), 이는 여성의 성기를 일컫는 말이다. 남자에게 쓸 때에는 상대의 약을 올리거나 기선을 제압하려는 의도로 쓰이기도 한다. 

 

한국말에서도, 싸울 때 상대편 놈에게 ‘개썅년’이라는 찰진 욕을 사용하기도 하니, 욕의 세계에는 상통하는 면이 있다(이런 설명을 하며 상당한 자괴감이 든다... 내가 이러려고 이 글을 쓰고 있나... 암튼, 트럼프 개객끼). 

 

경선 초기에 칼리 피오리나라는 여성 후보가 있었는데, 약간 참가에 의의를 두었던 그런 후보였다. 트럼프는 토론 도중 그녀를 향해 이렇게 발언했다.

 

"에휴, 저런 얼굴로 대통령을 하겠다고?" 

 

다음 주에 기자가 그 발언에 대해 캐묻자, 

 

"나 그런 말 한 적 없어. 걔 얼굴 예쁜데 뭐." 

 

대통령 후보 경선에 나가서도 여성 후보에 대해서는 단지 얼굴 말고는 얘기할 게 없다, 그게 당연한 거라는 태도를 고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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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리 피오리나.

 

이렇게 경쟁자들을 수단 방법 가리지 않고 치졸하게 물어뜯고 괴롭혔다. 전혀 사실이 아닌 것을 사실로 조작하고 우기는데, 상대방이 흥분해서 반응하면 ‘저 봐라. 진실이 밝혀지니까 쪽팔려서 저런다’라고 하고, 냉정하고 차분하게 반응하면 ‘저 봐라. 잘못 인정하는 거 봐라, 근데 뻔뻔스럽게 버티고 있다’ 이렇게 나온다. 

 

내막을 잘 모르고 겉으로만 보면 트럼프 말이 맞는 것처럼 보인다. 살다 보면 이런 사람 주위에 꼭 한둘 있지 않는가? 거짓말하고 억지 부리고 버티고, 우기며 자기 말만 맞고 어떻게 반응하든 결론은 정해져 있고... 이런 비슷한 황당한 경험 말이다.

 

 

언론은 의도치 않게 그를 도왔다

 

여기서 중요한 것이 언론의 역할인데, 트럼프는 방송 시간이나 신문 기사 수에서 경쟁자보다 훨씬 많은 비중을 끌어갔다. 언론이 의도적으로 트럼프 편이었다는 얘기가 아니다. 언론은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발언이나 행동을 이어간 후보로—그것이 아무리 황당, 불쾌한 내용이라 하더라도—모여지는 경향이 있다. 

 

예를 들어, 앞으로 테러와의 전쟁을 어떻게 할 것이냐는 질문에 대해 다른 후보들은 괜히 어려운 말이나 결국에는 별 얘기 아닌 것을 빙빙 돌려 말하는데, 트럼프는 이렇게 말한다.

 

”아 그거 어렵지 않아. 테러범 가족들을 잡아다가 족치면 돼. 부모 형제 배우자, 자식들을 인질로 잡거나, 대신 고문하거나, 그러면 그 새끼들이 테러 벌이겠어?“ 

 

이토록 직설적으로 말해버리니, 사람들은 다른 후보들은 다 잊어버려도 트럼프가 한 말은 기억하게 된다. 아무리 그 말이 황당하고 잘못되었다 하더라도 말이다. 오히려 방송에서 트럼프의 이런 발언이 왜 잘못된 것이고 위험한 것이고 그런 걸 따지는 와중에 트럼프는 방송 시간을 더 타게 된다. 

 

방송 시간을 더 타며 친숙해지면, 사람들은 알아서 그를 이해하게 된다. 예를 들어 테러리스트 가족을 잡아다가 고문하겠다는 위의 발언에 대해서도, '에이, 정말로 그렇게 하겠어? 근데 속 시원해 좋다. 확실한 의지가 있어 보이는군' 이렇게 아무리 개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받아들이는 시스템이 구축된다. 

 

 

설마가 사람 잡았다

 

물론 테러리스트 가족 고문 의지는 실제 현실로 연결되지 않았지만, 그의 다른 발언 중엔 ‘정말 그렇게 하겠어?’라고 생각했던 것이 진행되어서 모든 사람들의 허를 찌른 사례가 몇 가지 있다.

 

예를 들어, 멕시코 국경에 담장 세우기, 이슬람국가로부터 입국 금지 조치, 임신 중절 수술을 법적으로 금하고 범죄시하기(이건 복잡한 사안이라 대통령 혼자의 힘으로 할 수 없는 것이지만, 그가 엄청난 영향을 끼쳐서 미국의 보수적인 주들이 그런 방향으로 현재 나아가고 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이런 것부터, 꼴통 백인 지지자들을 향해 폭력을 쓰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선동하는 발언들도, 처음에는 ‘에이, 설마’ 했다가 그런 폭력 사례들이 퍼지는 것을 보며 그의 발언이 단순한 허언이 아니었음을 보게 되었는데, 이때 정상적인 시민이라면 진정 국가나 사회를 위해 걱정하고 그런 위험성에 대해 경계하는 행동과 캠페인을 벌여야 한다. 애석하게도 많은 꼴통 미국인들은 거기에 재미를 느끼고 열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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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 기본 정신에 의하면 모든 사람은 평등하고 행복을 추구할 권리가 있고 어쩌고... 다 좋은데, 과연 꼴통들에게도 그런 권리를 평등하게 주어도 될까? 트럼프 사태를 겪었고 아직도 겪고 있으며 그에 대한 회의감이 드는 게 사실이다.

 

그들에게 행복이란, 백인우월주의에 여성 혐오, 소수자 혐오, 이슬람 혐오이고, 그들이 폭력을 불사하면서 그들만의 행복을 추구하며, 사회를 병들게 하고 있으니 말이다. 트럼프는 우리에게 민주주의의 근본정신을 정면으로 도전하는 주제를 안겨준다. 어떻게 하면 그 또라이들도 민주시민의 한 구성원으로 인정하면서 그들과 함께 갈 수 있을까? 아니, 사실 그게 과연 가능하기나 할까?

 

이게 먼 나라 미국만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 여러분도 잘 아실 것이다.

 

<계속>

 

 

소리는 어디에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