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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대선 개표방송.jpg

 

미국 시간으로 2016년 11월 8일 화요일 심야. 대통령 선거 개표방송을 지켜보면서 느꼈던 충격은 아직도 생생하다. 기분이 묘했다. 그날 밤에 느꼈던 감정은 단순한 패배감, 좌절감, 상실감과는 종류가 달랐다. 내 편보다 반대편 사람이 많고 그들이 악마스럽다는 걸 깨달았을 때의 절망감에 가깝다. 결코 '시간이 약'이 되어주지 못하는 종류의 감정이었다.

 

원래 선거철만 되면 피곤하다. 1년 내내 뉴스에서 여러 이슈를 다룬다. TV 광고도 정치 구호로 가득 차게 된다. 반대편 후보나 그의 선전 구호가 나오면 당연히(?) 싫은 것이고, 내가 지지하는 후보가 나오더라도 처음 얼마 간은 반갑지만, 좋은 얘기도 한두 번이지 맨날 듣다보면  일견 지겨운 마음이 들기도 한다.

 

허나, 2016 대선은 유난히 더 피곤하고 힘들었다. 내가 지지하지 않던 후보, 트럼프의 메시지는 공허하기만 한 정치인의 구호가 아니었다. 지극히 개인적으로 사람들의 감정을 후벼 팠다. 나는 매우 지쳐 있었고, 이놈의 지겨운 선거 빨리 좀 끝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빨리 선거 끝나고, 정상적으로 돌아온 세상에서 좀 살자~ 이놈의 선거 지겹다. 지겨워”

 

물론 이렇게 생각할 수 있었던 배경으로는 저번 글에서도 언급했듯, 단 한 번도 힐러리가 질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중간중간 불안한 조짐이 있긴 했지만). 그런데, 잉?

 

럼프 당선.jpg

트럼프 대통령 당선.

 

 

당선 후에도 화합의 메시지는 없었다

 

대개 선거일 밤에 결과가 나오면, 당선자 측으로부터 화해와 화합의 메시지가 나온다. 아무리 낮은 지지율로 당선이 되어도, 

 

“나는 모든 국민 여러분의 대통령입니다. 우리 모두 마음을 추스르고 이제 한 마음, 한뜻으로 나아갑시다.”

 

하는 등의 메시지가 나오는 것이 정상이다. 트럼프는 그 말을 하기가 그렇게 어려웠을까? 그는 절대 그런 멘트를 날리지 않았다. 대신, 

 

“그동안 내 말 잘 들은 사람들은 애국자, 내 반대편에 있는 자들은 루저”

 

라는 입장을 고수했다. 선거 다음 날, 워싱턴DC에는 차분하면서도 암울한 분위기가 퍼져 있었다. DC는 수십 년간 민주당 열혈 지지 세력이 주류로 있는 곳이다. 선거에도 힐러리에게 91%의 표를 몰아주었다. 때문에 선거 다음 날, 도시 분위기가 많이 위축되었다. 

 

워싱턴 거리.jpg

 

카페나 식당에서 평소 보이던 활기는 사라졌다. 대학 안에서의 분위기는 더했다. 여학생들은 밤새 울었는지 눈이 퉁퉁 부어서 나타났다. 나는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아서 옆의 동료 교수들과 특별한 얘기도 안 하고 커피 한잔 들고 마주 앉아 그저 한숨만 같이 쉬었다. 그날 강의를 어떻게 하는 둥 마는 둥 했던 것 같고, 학생들도 집중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그런 반응이 나와 내 주변에서만 나왔던 건 아니었다. 워싱턴포스트의 칼럼니스트 Dana Milbank는 많은 이들이 선거일 밤과 그다음 날에 다음과 같은 이상 증상을 보였다고 서술했다.

 

두통, 과식, 어지러움, 메스꺼움, 심장 박동 이상, 목이 뻣뻣해짐, 우울감, 호흡 이상, 소화불량, 위궤양, 속쓰림, 악몽, 손떨림, 심장마비, 심지어 탈모(!) (2017/9/17 칼럼)

 

이런 증상은 트럼프가 대통령으로 집권한 이후에 더 심해졌다. 트럼프가 대통령으로 정식 취임하기 전에는 일말의 막연한 기대감이라도 있었다. 

 

“선거 기간에는 이슈 몰이를 해야 하니 다소 과장도 필요할 수 있다. 그래도 대통령으로 정식 취임한 후에는 국가 원수이고 행정부의 수반으로서 정상적으로 업무를 해주겠지. 아니, 정상적인 지도자의 모습까지 바라지도 않는다. 정상적인 인간의 모습만이라도 보여줄 수는 있지 않을까?”

 

그는 그러지 못했다. 아니, 안 했다. 미국민들은 그에 의해 집단적 정서 학대를 당했다. 미국 심리학회(American Psychological Association)에서 3,4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 집계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 2016년 설문지 응답자의 63퍼센트가 현재 정치 상황 때문에 스트레스 레벨이 매우 높다고 했다(링크). 2018년의 결과는 69퍼센트로 더 악화되었다(링크).

 

이런 자료를 여러 가지 방법으로 해석할 수 있겠지만, 단순화시켜 다음과 같이 볼 수 있다. 민주, 중도, 공화 이렇게 삼등분을 해 보면, 양쪽 삼분의 일은 지구가 망해도 자기 쪽으로 민주당, 공화당을 찍을 사람들이다. 정권이 자기 쪽으로 오면 행복해하고, 반대로 가면 스트레스를 받을 사람들이다. 

 

눈여겨 볼 것은 중도층이다. 원래 중도층은 한쪽에 크게 쏠리는 것이 없이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은 사람들이니 정치 때문에 스트레스를 크게 받을 일이 없는 사람들인데, 이들은 선거기간 내내 피곤할 정도로 양쪽 후보 모두 혐오하도록 유도되어 스트레스가 올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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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선거가 끝나면 이들의 스트레스 레벨은 내려가야 정상인데 그대로 유지되었다. 트럼프는 집권한 후에도, 계속 선거운동 하듯이 충격적이고 센세이셔널한 발언이나 행동을 유지했기 때문이다. 

 

 

계속되는 혐오, Make America White Again

 

한편 트럼프 지지층에서는 트럼프가 집권했다고 해서 자기의 삶이 별로 나아질 것이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물론 당연한 것이다. 내 지지후보가 대통령 된다고 해서 내 삶이 판타스틱하게 업그레이드 된다는 것은 환상이다). 

 

차라리 그것이 정치 무관심화 현상으로 나타났으면 좋았을 텐데, 그들은 중독자들 마냥 정치에 계속 관심을 가졌다. 혐오로 쌓아 올린 지지기반을 유지하기 위해서 트럼프는 지속적으로 혐오를 조장했다. 이것은 그의 지지 세력, 그리고 반대 세력 모두에게 정신적으로 큰 스트레스를 가져다주었다.

 

빈익빈 부익부가 심해지는 요즘 미국 사회, 인종과 관계없이 비전문직에 물려받은 자본도 없고 교육 수준도 낮은 계층의 삶의 질이 퍽퍽해지고 있는 것은 정치 성향과 관계가 없다. 그러니까 민주당이 정권을 잡아서 이들의 삶이 퍽퍽해진 것이며, 공화당(트럼프)이 정권을 잡으면 이들의 삶이 나아지는 것이 아니란 이야기다. 

 

트럼프는 소득이 낮은 계층의 사람들 중 특히, 백인 중하위층의 삶의 질이 점차 떨어지고 있는 것을 크게 부각시키면서, 그들이 반대편을 혐오하도록만 했지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정책은 펼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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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를 들어, 트럼프 및 공화당 반이민주의자들이 말하는 대로 미국 내 모든 불법체류자들을 추방해서 없애 버린다면, 미국인들이 일자리를 되찾고 잘살게 될까? 천만의 말씀이다. 무슬림 국가 몇몇으로부터 입국 금지를 시킨다고 해서 미국의 국익에 도움이 되고, 미국인들의 삶이 나아질까? 멕시코 국경에 담장을 설치하는데 천문학적인 돈이 들고 실효성은 없는데, 이런 식으로 혐오의 메시지를 전면에 내세운다고 해서 지지자들이 크게 행복해하는 것은 아니었다. 계속 스트레스를 받으면서, 그냥 해야 되는 구나 하며 따라왔다는 것이다.

 

트럼프는 자신의 집권을 위해서 가상의 적을 만들어내고 그에 대한 혐오를 퍼뜨리는데 대단한 성공을 거두었다. 

 

“너의 삶이 힘들어지게 된 것은, 불법 이민자들이 네 일거리를 뺏어가고, 유색인종들이 여기저기서 설쳐 대고, 여자들이 말대꾸 꼬박꼬박하면서 나대고, 무슬림들이 도시를 점령하기 때문이다.”

 

라며 세뇌시키고, 이를 막아야 한다고 선동했다. 그의 선거 구호 “Make America Great Again”을 일부 식자들은 '미국 중심주의의 회기'라고 그럴싸하게 해석하는데, 좀 배웠다는 양반들! 개소리에 미사여구 좀 처바르지 말자. 이것은 단지 '미국은 백인 중심의 사회!'라는 발악의 메시지일 뿐이다. 실제로 트럼프나 그 지지자들이 내세우는 메시지는 Make America White Again이다. (기사1 / 기사2 / 기사3 / 기사4

 

그들은 인종차별자로 낙인찍힐까 이전에는 대놓고 그런 말을 함부로 못 하다가 트럼프가 나타나서 '구원'해 주니 물을 만난 물고기 마냥 신났다. “PC문화 그런 거 꺼져라, 이젠 백인이 최고다.”라고 마음대로 소리칠 수 있다. 그것이 반 PC운동의 핵심이다. 

 

실제로 트럼프 정권이 들어선 이후, 트럼피즘에 빠진 사람들(심지어 지자체 정치인이나 후보자들도)이 “Make America White Again” 라는 구호를 들고나와서 설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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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테네시주에서 하원의원으로 출마했던 Rick Tyler의 캠페인 광고판. 

관련 기사 링크

 

트럼프의 정치는 '윈-윈' (win-win)이 아니고 '루즈-루즈' (lose-lose)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자주 한다. 그는 사회 모두가 공멸하는 길로 들어서도록 하는 암적인 존재(였)다. 미래에 대한 뚜렷한 정책 청사진은 없이 상대 진영, 혹은 가상의 적에 대해 공포, 증오, 혐오만 부각시키기 때문에 그의 지지자들은 결코 행복하다거나 미래에 소망이 있지 않다. 

 

물론 반대편에서는 트럼프와 그 무뇌스러운 지지자들 때문에 실질적으로 삶이 힘들어졌다. 사실 구박하는 시어머니보다 말리는 시누가 더 밉다고, 저기 멀리서 후까시 잡고 개소리하는 깡패 우두머리보다, 완장 차고 바로 내 앞에서 지랄하는 양아치들이 더 직접적인 위협이 된다. 

 

 

트럼피즘으로 인한 유색인종에 대한 범죄 급증

 

혹시 먼 나라 미국 이야기라고, 아직도 트럼프를 두둔하는 독자가 있을까 하는 마음에 이전 글에서 그의 무수한 악행을 말했음에도, 아직 더 있는 그의 악행을 말하겠다. 

 

2015년 8월 19일, 보스턴에서 백인 형제가 히스패닉 노숙자에게 무차별 폭행을 가해 코와 갈비뼈 골절의 중상을 입힌 뒤 피해자를 밟고 그 위에서 방뇨를 했던 사건이 있었다. 경찰 체포후, 그들은 트럼프로부터 영감을 받아서 행동했다고 진술했다. 이 사건을 들은 트럼프는 폭력은 정당화될 수 없다고 하면서도, 내 말을 따른 이 사람들은 진정한 애국자이며 미국을 다시 위대한 나라로 만드는 소중한 시민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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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스패닉 노숙자를 무차별 구타한 형제.

출처-<The Boston Globe> 링크

 

'폭력은 정당화될 수 없다'는 건 단지 장식에 불과한 수사이고, 이런 발언은 실질적으로는 폭력을 조장하는 것이다. 

 

그는 아무 힘없고 죄 없는 사람에게 폭행과 비인간적인 범죄를 저지른 가해자를 심판하기는커녕, 피해자가 유색인종이라는 둥, '애국'이라는 둥, '미국을 다시 위대한 나라로 만든다'는 둥 그런 표현을 사용하면서, 유색인종을 향해 가학적인 혐오(묻지마 폭행 포함)를 하는 것이 애국이라는 그릇된 생각을 주입하며 사람들을 조종하고 선동했다. 

 

그 결과, 최근 미국에서 유색인종 혐오 범죄는 급증했다. (코로나가 아니더라도 증가했다. 코로나로 인해 증가한 거라면, 동양인에 대해서만 증가해야겠지) (출처1 / 출처2 링크)

 

다시 말하지만, 혐오 가해자들이 이렇게 행동한다고 해서, 어떤 만족감, 성취감, 행복감을 느끼는 것이 절대 아니라는 것이다. 무좀에 걸린 발꼬락이 가려워서 본능적으로 긁는 것 이상의 의미가 없다. 그런데 트럼프는 이걸 계속 부추기고 있었다. 정말 이런 인간을 계속 이대로 놔두어도 되나 싶을 정도로.

 

트럼프 혐오.jpg

더 혐오해라!!!

 

 

파괴된 민주주의

 

다행히도 트럼프의 약발은 오래 가지 못했고, 미국민들은 2020년 대선의 결과를 보고서야 비로소 한숨을 돌릴 수 있었다. 나도 2020년 대선 날 밤에는 정말 몇 년 만에 편하게 잠을 잘 수 있었다. 하지만 그가 미국 사회, 세계 사회 그리고 민주주의 질서에 끼친 악영향은 현재 진행형이다. 

 

대선 결과가 나온 후, 트럼프는 겉으로 “이건 미국 역사상 최고의 부정선거이고 선거를 도둑맞았다.”고 선전하며 지지 세력을 결집했고, 에뒤서는 주 선거관리위원장(조지아주 국무장관 Brad Raffensperger)을 직접적으로 압박하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날 찍은 표 몇만 개를 찾아내라, 그게 안 되면 바이든표의 부정을 찾아내서 무효표 처리하라고 윽박질렀다(기사 링크).

 

그것도 모자라서 국회에서 선거 개표 결과를 확증하는 절차(Certification of Electoral College)가 있었던 2021년 1월 6일, 도둑맞은 선거를 되찾아와야 한다며 극단적 지지자들을 선동해 국회를 무력 점거하게까지 했다. 제3세계 국가도 아니고, 많은 이들이 흠모하는 바로 그 미국에서 벌어진 일이다. 

 

국회점거1.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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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아직도 자기가 2024년 대선에 나오면 이길 수 있다고 호언장담하고 있다. 실제 그가 나올 가능성은 희박하지만(다른 것 다 둘째 치고 현실적으로 나이 때문에라도 불가능하다고 본다), 공화당의 다른 후보자들이 그의 메시지를 담아서 국민들을 선동하고 그것이 먹혀들어 가는 것을 볼 때 악몽이 되살아난다. 

 

2021년 1월 6일 국회 점거 사건 직후, 민주 공화 양당 지도자들이 한목소리로 트럼프의 전횡을 비난하며 민주주의 미래에 대해 걱정하는 발언을 하였으나, 이후 공화당은 슬그머니 발을 뺐다. 

 

공화당 하원의원 140명은 선거 결과에 승복할 수 없다는 쪽으로 표를 던졌다. 부정표 점검과 근본적인 조사가 더 필요하다는 표면적 이유를 내세웠지만, 이들의 목적은 평화적 정권 이양을 최대한 방해, 지연시키고 바이든 정권의 정당성을 부정하는 데에 있었다. 

 

부정표 점검은 선거 직후, 각 주의 선거관리위원회에서 2중 3중으로 이미 이루어졌고 일부 주에서는 막대한 예산을 들여 재검표까지 했었다. 재검표를 하게 되면, 한쪽에서는 조금 더 나오고 다른 쪽에서는 덜 나올 수도 있지만 대부분 전체 결과는 대동소이할 뿐이다. 하지만 트럼프 측에서는 자기 표가 덜 나왔다가 더 나온 사례만을 부각시키며, 

 

“거봐 여기 문제 있다고, 한 번 더 해봐, 더 더, 계속!” 

 

이런 식이었다. ‘이미 충분히 했다’고 하는 선거위원회를 향해, 

 

트럼프 화.jpg

 

“그만한다고? 거봐 너희들 지금 뭔가 숨기고 있지?” 

 

라며 소리 지르며, 지지자들을 향해서는 “국민 여러분, 어떻게 이따위 선거 결과를 인정합니까?”라고 외쳤다. 그 말 들은 똘아이들은 중립적인 선거위원회 인물들에게 살해위협을 했다(기사 링크)

 

민주주의의 근간을 뒤흔드는 트럼프, 그를 정말 어떻게 해야 할까? 아직도 상당히 많은 미국인들은 바이든의 당선이 부정하게 이루어졌고, 현재 진정한 미국 대통령은 트럼프라고 믿고 있다고 한다. 

 

조사기관마다 차이가 있는데, Axios-Momentive에서는 40%, 로이터(Reuter)에서는 25%로 집계했다. 대충 중간값을 잡아서 삼분의 일의 미국인들(그리고 아마 다수의 공화당원)은 트럼프가 아직도 미국의 대통령이어야 한다고 하니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참. 

 

 

선거를 앞둔 이들에게

 

한국의 민주주의는 매우 발달해 있고 모범적인 시민의식은 서방 선진국서도 이젠 벤치마킹을 할 정도라는 외신을 가끔 보기는 하는데, 여러분, 그런 국뽕에 취하면 너무 안 된다. 이런 것은 대부분 접대용 멘트다. 

 

별로 멀지 않은 과거에, 대한민국 국민들이 어떤 인물을 대통령으로 뽑았는지, 현재에도 여차하면 어떤 인물이 대통령으로 뽑힐지 보라. 미국과 한국의 정치판이 크게 다르지 않고, 트럼프의 더러운 책략은 여러분 모르는 사이에 벌써 한국의 정치판에서도 벤치마킹이 되어 있는지도 모른다. 정신 차려야 한다.  

 

2016년 11월 대선 직전에 힐러리가 당연히 될 텐데 꼭 투표해야 하나 망설이는 사람들에게, 꼭 해줬던 말이 있다.

 

“힐러리가 될 것은 당연한 것이지만, 이건 그냥 이겨서는 안 되는 선거다. 엄청난 득표율과 선거인단 확보로 트럼프를 완전히 묵사발 만들어야만 하는 선거다. 그렇지 않으면 저 미친 것들은 좀비처럼 계속 안 죽고 계속 우리를 뜯어먹을 것이다.”

 

물론 한 치 앞을 내다 보지 못한 발언이긴 하지만(이렇게 질 줄 알았나), 지금 생각해봐도 그게 그렇게 틀린 말은 아니다. 만약에 근소한 차이로 힐러리가 선거인단 확보에서 앞서서 승리했다고 해도, 트럼프는 절대 물러서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기에 때로는 선거에서 이기는 것만이 목적이 아니다. 확실히 이겨야 한다. 

 

이걸로 한국 대선을 위한 트럼프 체험기는 끝마친다.

 

 

에필로그, 혐오가 판치는 세상에게

 

지금까지 먼 나라 미국 이야기를 했다. 일부 독자들은 트럼프 현상이 한국에 과연 영향을 얼마나 주었을까 의아하게 생각할 수도 있겠다. 미국에는 워낙 또라이들이 많으니까 트럼프 현상이 있어 왔지만, 문맹률 제로인 한국에는 그 정도로 또라이들이 많지 않고, 있다 하더라도 그 정도로 심각하게 설치지 않는다고 생각하실 수도 있지만, 글쎄다. 판단은 여러분들에게 맡긴다.

 

물론 직접적으로 트럼프가 한국에 와서 트럼프 현상을 설파하지는 않았지만, 알게 모르게 트럼프 현상이 스며들었다. 즉, 증오와 혐오의 정서가 퍼지고 있다는 말이다. 나는 이 증오와 혐오가 만연한 현상을 ‘트럼프 현상’이라 칭한다. 한국판 트럼프 현상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우선, SNS나 기타 통신망을 타고 가짜뉴스를 살포하며 여론의 흐름을 조작하는 것. 이것은 최근 들어 팬더믹 이후 더 심해진 듯하다. 정부의 방역 대책에 대한 무조건적인 비판과 백신에 대한 불신감 조장, 그리고 그러한 여론의 살포다. 

 

조선일보.PNG

예를 들면, 이런 허무맹랑한 이야기를 막 살포한다.

출처-<조선일보>

 

그리고 트럼프의 반 PC운동을 한국으로 교묘하게 수입해서 “PC문화는 저리 가라. 미국도 그렇고 세계적으로 이제는 반PC의 시점이다”라고 주장하며,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갖다 붙인다.  

 

PC에 빠지지 말고 지금 내가 하는 얘기(백신위험론, 세계 온난화 사기설 비롯, 기타 음모론)에 귀 기울이라고 한다. PC가 무엇인지, 반PC가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아무 근거 없는 주장을 하면서 갖다 붙이는 도구로 사용한다.

 

보수층에서 특히, 좀 배웠다는 부류에서는 트럼프 현상을 나름 쿨~하게 설명하면서, 그가 민심을 제대로 읽고 대중이 원하는 부분을 긁어주었다고 하며 문재인 대통령은 그러지 못하고 있다고 하는 이들도 있다. 물론 트럼프 현상을 제목만 보았을 뿐, 깊은 이해 없이 지껄이는 허언에 불과하다.

 

그런데 이런 것들은 지엽적인 부분이고, 나는 근본적으로 트럼프 현상이란 희망, 개선, 발전, 조화 같은 가치에 PC라는 이름을 붙여서 매도하며 무시하고, 대신 ‘증오'와 '혐오'에 바탕을 두고 이루어지는 모든 정치적 현상을 포함한다고 생각한다. 

 

이 말은 우리가 상대방에 대해 증오심이나 혐오감을 갖고 있는 이상, 어느새 우리도 트럼프 현상의 일부가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증오심이나 혐오감을 갖고 있으면, 이겨도 이긴 것이 아니다. 진정한 승자가 될 수 없다. 

 

정치란 대화, 설득, 타협, 양보의 과정 속에서 조화롭게 공존하는 것이지, 혐오하는 상대를 깔아뭉개는 것이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이 부분에서 여러분들이 무슨 생각을 하실지 잘 안다. 이 얘기, 말은 좋은데 너무 이상적이라고. 현실과의 간극이 너무 크다고. 상대방이 혐오의 화살을 계속 날리는데, 그것을 피하려고 해도 계속 따라오는데, 나만 점잖게 나오라는 말이냐? 

 

내 관점은 죄송하지만 다소 절망적이다. 이미 트럼프 현상은 우리에게 (미국뿐 아니고 한국에서도) 되돌릴 수 없는 피해와 상처를 주었다. 쉬운 해결책이 당장 있을 것 같지 않다. 하지만 이런 글을 통해서라도, 전에 우리가 생각하지 못한 부분이 있었다면 다시 한번 생각해보고 고민하는 것으로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제 저쪽 얘기 잠깐 멈추고, 이쪽 얘기를 좀 해보자. 분명히 말해둔다. 저쪽을 두둔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끼리 저쪽 욕 아무리 해봐야 이제는 우리 입만 아픈 것 같으니 그건 됐고, 우리 내부에 대한 성찰을 해보자는 이야기이다. 그걸 통해 우리가 성장을 할 수 있으니.

 

요즘에는 뉴스를 보거나 주변 사람들과 사회에 대해서 정치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다 보면, 참 열 받는 이야기가 많다. 이 중에는 마땅히 열을 받고 대책 마련에 고민해야 할 내용이 있는가 하면 어떤 것은 우리가 꼭 그럴 필요가 없고 그냥 넘기면 되는데, 괜히 열을 받고 스스로 씩씩거리기도 한다. 혐오정치 세태에 살다 보니 어느새 우리는 싸울 태세만 하고 있고, 주위 자극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경향이 있다.

 

이것은 우리만 손해다. 이것은 꼭 진보, 보수로 양쪽으로 딱 나누어지는 주제가 아니다. 많은 부분에서 헤쳐 모여가 이루어진다. 

 

술집 싸움.jpg

너 뭐라고 했어? 쉐끼야! 한 판 붙어, 띠발!!!

 

여러분이 만약 진정 어떤 이슈에 대해 오랜 기간 고민했고, 여러분 삶에 직접적인 영향이 있어서 어느 한쪽으로 주장해야 한다면, 당연히 주장하면 된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그런 것 없이, 누가 주장하는 것에 대해서 단순히 감정적으로 나오며 단지 '싸가지 없다' '재수 없다'는 이유로 그 주장에 대해서 같이 고민해보자는 요청조차도 거부한다. 이것이 바로 증오, 혐오 문화의 산물이다. 내가 굳이 딱 집어 말하지 않아도 요즘 한국에서 굉장히 대립되는 이슈 사안이 무엇인지는 머릿 속에 그려질 것이다.

 

요즘 사회엔 각자의 입장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이슈가 넘쳐난다. 그리고 많은 경우, 우리가 각자 잘 모르는 분야이다. 그럼 누가 어떤 방향으로 주장을 하면, 먼저 그가 왜 그런 주장을 하는가 같이 생각, 고민해보는 과정이 필요할 것이다. 

 

전혀 정보가 없는 상태에서 무조건 까거나 아니면 어디서든 그 분야에 대해 일부 이야기한 내용만을 듣고(즉, 충분히 그 분야를 알아보지 않고), 잘 몰라서 하는 소리라며 매도하고, 그 주장을 하는 그 사람을 혐오하고 증오한다. 

 

최근 올림픽 메달리스트 진종오와 이원희 등의 체육인들이 문재인 정권의 체육정책을 비판하며 윤석열 지지선언을 했다.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나의 생각은 이들과 다르다. 나는 이재명을 지지한다.

 

그러나 나는 체육계에 대해서 자세히 알지 못하며, 이들이 그 전에 비해 문재인 정권의 체육 정책에서 어떤 불편을 느꼈는지 잘 모른다. 그러므로 이들을 함부로 비난, 혐오하지 않으려 한다. 인터넷상에서 이들이 윤석열 지지선언을 한 뒤로 무조건적인 비난을 하는 경우를 꽤 봤다. 이들의 삶은 체육계와 아주 밀접하게 관련 있고 이들의 삶 그 자체일 수 있다. 그렇다면 이들에게 체육 정책은 중요한 판단 기준이 될 수 있다고 본다.    

 

(안다. 알아. 이런 말을 하는 나 자신도 제대로 못 하고 있다는 것을. 나도 트럼프와 그 지지자들이 개지랄할 때 평정심을 유지하기 힘들고 나도 맞증오, 맞혐오로 대응한다. 내 말의 포인트는, 그런 내 자세가 우선적으로 내 삶의 질을 떨어뜨린다는 것이다. 힘들지만, 이 악의 사슬에서 벗어나야 한다)

 

PC주의적 차원에서 혐오하지 말라는 교과서적인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다. 여러분의 감정 갖고 내가 이래저래 할 의도는 없다. 다만, 그것이 우리에게 이득이 되냐, 그걸 따져보자는 것이다.

 

미국의 정치 상황에까지 도가 지나칠 정도로 열을 내는 경우도 보인다. 물론 한국에 직간접으로 영향이 있는 경우라면 촉각을 곤두세우는 걸 이해하겠으나, 그렇지 않은 경우, 여러분과 아무 상관이 없는 데도, 스스로 응원할 후보나 주제를 정하고 뉴스를 따라간다(마치 MLB, NBA, NFL 특정 팀을 응원하며 소식에 빠삭한 것과 비슷).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사실상 남의 일, 그저 남의 일로 바라봐 주면 좋을 텐데, 모든 일에 마음에 안 드는 게 있으면 증오, 혐오의 안경을 끼고 상대방을 깐다.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  

 

증오, 혐오는 논리적이지도 이성적이지도 않다. 일단 바닥에 혐오 정서가 있으면 스스로 확증 편향에 들어가서, 가짜뉴스라도 내가 보고 싶은 내용이 있으면 바로 차용해버리고, 진실로 받아들인다. 

 

특히, 미국 민주당이나 민주당 인사들에 대해 트럼프 개인 기관지로 전락한 폭스뉴스발 가짜뉴스나 SNS 찌라시에서 도는 헛소리 나온 걸 퍼뜨리고 다니면서 혐오성 발언을 날리고 공격을 하는 것을 일베가 아닌 딴지 게시판에서 볼 때 많이 안타까웠다. 가짜뉴스 전달과 혐오의 확대 재생산이 소위 진보 성향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도 발생되었다는 얘기다(실제 타 진보 성향 커뮤니티에서도 많이 보인다). 

 

그런 것들은 인터넷 쓰레기인 악플과 다르지 않다. 악플로 증오를 표출하고, 혐오를 키우고, 상대를 파괴시키는 행위, 이것은 진보, 보수의 문제가 아니다. 

 

반복해서 말하지만, 이런 행동은 상대를 해하면서 자기 역시 갉아 먹는다. 공멸하는 행위다. 오바마에게 껌둥이 어쩌고 하며 인종차별적인 발언을 하는 것이나, 바이든이 치매니, 소아성애자니 어쩌니 하는 가짜뉴스 퍼 나르는 것. 이 경우, 한국의 모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이런 말이 나왔다고 해서 오바마나 바이든에게 직접 영향이 갈 것은 없을 것으로 보이나, 사실은 결국에는 그런 말을 하는 본인만 손해이고 (어떻게 그런 입으로 감히 이문덕을 논할 수 있을까, 재인이 형이 그 얘기 들으면 어떻게 생각할지 생각해 보았냐고 묻고 싶다), 그 인터넷 커뮤니티에도 간접적으로 부정적 영향이 있을 수도 있다. 그런 행위를 한 이들은 어느새 어느새 트럼프 현상의 한 부분이 되고 있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다. 

 

우리, 싸울 것은 확실히 싸우고, 넘어갈 것은 좀 넘어가자. 가능하다면 하나라도 증오, 혐오의 대상을 줄이자. 이게 트럼프 현상을 극복하는 한 방법이다.

 

 

소리는 어디에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