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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 새벽 2시 이후부터 이야기하는 모든 건 그저 결과론일 뿐이다. 이러저러해서 질 줄 알았다는 둥, 그러저러해서 이길 줄 알았다는 둥 하는 말들은 특히나 부질없는 소리다. 우리 무릎을 맞대고 앉아서 영양가 있는 이야기 좀 해보자.

 

부정(否定: Deni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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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KBS 

 

윤석열 당선인은 취임 일성으로 무너진 공정과 상식을 바로 세우겠다고 외쳤다. 그 말의 진위는, 윤 당선인 부인과 장모의 수사 결과를 보면 알 수 있겠다. 그리 오래 걸리지 않겠단 얘기다.

 

윤석열에게 표를 준 이들은 이구동성으로 자신 있게 외치고 있다.

 

“대한민국은 선진국이다. 그리 쉽게 국가 시스템이 무너지고 과거로 후퇴할 만큼 허술한 나라가 아니다”

 

어색하고 기괴하지 않은가. 자신의 손으로 뽑은 대통령이 당선된 지 채 하루도 지나지 않아 꿈과 희망을 떠들어대긴커녕 “망하진 않을 것”이라는 소박한 기대감(?)을 저리 자신 있게 드러내다니. 지들도 아는 거다. 문재인이 싫고 민주당이 미워서 수준 미달의 인물 바짓가랑이를 붙들었다는 걸 말이다.

 

자신의 분수에 맞지 않는 옷을 입으면 탈이 나게 마련이다. 누가 일부러 떠민 것도 아닌데 제 스스로 고꾸라지게 되어 있다. 세상사라는 게 원래 그렇다. 

 

분노(憤怒: Ang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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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에서 천불이 난다. 이럴 때일수록 누군가의 멱살을 붙들고 남 탓하고 싶어진다. 심지어 깻잎 한 장이다. 0.7%, 24만여 표차 아닌가. 심상정의 2.37%는 0.7 앞에서 더욱 야속하기만 하다. 하지만, “표 맡겨 놨냐?”라는 지극히 상식적인 한마디에 허술하게 무너질 원망인 게 맞다. 우리가 꿈꾸고 나아가고자 하는 길에 정의당은 존중받아 마땅한 파트너임이 분명하니 더욱 그렇다.

 

깨놓고 얘기해서, 총선 당시 위성정당을 만들어 정의당의 뒤통수를 친 건 이유 여하를 떠나 민주당의 오만이라 평가받아 마땅하다. 심상정과 정의당 머리채를 잡는 건 찌질함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거다.

 

“달님을 지키기 위해 윤석열을 찍었다"라는 분들은 그냥 잊자. 아픈 분들 붙잡고 겸상할 만큼 여유로운 상황이 아니다. 피하는 게 상책이다. 개인적으로 그런 분들이 민주당과 이재명을 손절한 것 자체가 이번 대선에서 그나마 민주당이 크게 건진 성과 중 하나라고 본다.

 

협상(協商: Bargaining)

 

패배의 원인은 당연하게도 여러 가지가 종합적으로 어우러진 결과겠다. 하지만 후보 이재명이 가진 여러 비호감 이미지 및 한계에도 불구하고 사실 더 큰 몫은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이 떠안는 게 맞다.

 

소속 지자체장들의 잇단 성추문과 이를 깔끔하게 사괴하긴커녕 피해호소인 운운했던 것이라든지, 이의 연장선이자 그 파국의 절정이었던 조국 사태, 그리고 현 정부의 가장 큰 실패로 평가받는 부동산 정책을 입안하는 청와대 고위직들조차 강남 다주택자였다는 사실 등등 ‘내로남불’과 ‘오만’이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을 향한 민심의 ‘혐오’를 키웠다는 건 사실을 넘어 팩트다. 그리고 지난 재보궐 선거에서 당헌당규까지 고쳐가며 후보를 냄으로써 그 피날레를 화려하게 장식했다. 어찌 보면, 이기는 게 신기하지 않은가. 패배한 쪽이 냉철하게 원인을 분석하고 반성과 성찰을 담보하지 않는 한, 내일은 내일의 패배가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할 말이야 많겠지만, 이를 악물고 인정해야 한다.

 

우울(憂鬱: Depression)

 

이제 모든 부분에서 많은 것이 달라질 것이다. 아직 인수위가 구성되지도 않았는데 중대재해특별법과 주 52시간제에 대한 전면 수정 얘기가 진지하게 오간다. 선거 기간 동안 많은 이들이 물었다. “문재인과 민주당은 5년 동안 뭘 했냐?"라고. 당선된 당일 윤석열과 굿힘당이 싹 다 뜯어고치겠다는, 바로 그걸 했지. 몰랐냐. 암 것도 한 게 없으면 고칠 것도 없잖겠냐. 아니냐.

 

이쯤 되면 헌법에서 ‘비밀투표’ 부분을 바꿔 ‘투표실명제’ 도입을 주장하고 싶어질 지경이다. 윤석열을 찍어놓고 "이제부터 두 눈 부릅뜨고 비판적으로 감시하겠다"니. “내가 지금 막 똥 한 숟갈을 떠먹을 건데, 이 똥에서 똥맛이 나면 불같이 화를 낼 테다”라니. 뭘 어쩌시게요? 페북이나 트위터에 대고 똥을 향해 욕지기라도 하시려고요? 그렇게 왜소한 지능을 스스로 공공연히 드러낼 바엔 그냥 일기장에 쓴 다음 서랍에 넣어두는 게 낫지 않겠어요? 주권자라는 미명 하에 자신의 행위에 대해 철저히 무책임한 건 아무리 생각해도 정상이 아닌 것 같다.

 

김영삼을 뽑아놓고는 “이럴 줄은 몰랐다”더니, 이명박을 뽑아놓고는 “이럴 줄은 몰랐다”더니, 박근혜를 뽑아놓고는 ”이럴 줄은 몰랐다“더니 이번엔 윤석열을 뽑았네? 이 정도면 이제 그만 본인 스스로 아, 나는 대가리 속에 들어찬 게 뎀뿌라라서 아는 게 없나 보다, 인정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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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MediaVOP

 

일터에서 사람 죽어나가는 것 좀 줄이자고 만든 법이 그나마 누더기일망정 어렵사리 통과되니 원청들이 이제 막 눈치라도 보기 시작했는데, 그걸 ‘억울한 기업’이 없도록 손보겠단다. 그러한 변화는 당장 눈에 띄진 않겠지만 사회 언저리, 가장 약한 고리부터 영향을 받을 테다.

 

가장 낮은 곳, 사회적 약자부터 갈려나갈 텐데 한갓지게 똥을 뽑아놓고 똥이 똥맛을 내면 화를 내겠다는, 웃기지도 않은 주권자 ‘놀이’를 하고 자빠진 “유권자”님들 때문에 왜 엄청난 사회적 비용과 고난의 대가를 함께 짊어져야 하냔 말이다.

 

그냥, 우울할 뿐이다.

 

수용(受容: Acceptance)

 

하지만 어쩌겠는가. 절차적 민주주의는 거스를 수도 없고 거슬러서도 안된다. 1표 차라도 진 건 진 거다. 앞서 얘기했듯 냉철한 분석과 겸허한 반성, 진지한 성찰만이 답이다.

 

20대 대선 승리자

 

-윤석열

-김건희

-김건희 엄마

-윤핵관

-한동훈

-박지현씨를 포함한 2030 여성들(정말 고맙습니다. 위 이름들과 같이 적어서 죄송하지만)

 

20대 대선 패배자

 

-이재명

-민주당

-문재인

-이준석

-안철수

-신지예

-나(젠장!뎀뿌라!) 

 

난 이렇게 본다. 하지만 아주 큰 걸 얻은 과정인 것도 분명하다. 무엇보다 큰 성과는, 이번 치열한 대선을 통해 이재명을 재발견했다는 점이라 평가한다. 그의 낙선 소감과 선대위 해단식에서의 연설은, 과연 그동안 내가 알던 이재명이 맞나 고개를 갸웃하게 만드는 눈부신 ‘성장’이 있었다. 그는 늘 그랬듯 이번 대선 레이스를 통해 행정가에서 정치인으로 더욱 성장했다고 본다.

 

윤석열 대통령각하폐하께서 다른 건 몰라도 대장동 하나만큼은 낱낱이, 아주 탈탈 털어주길 간절히 바란다. 이재명이 죄를 지었으면 응당 벌을 받아야겠지. 헌데 만약 이재명이 무고하다면? 물론, “오해해서 미안하다"라고 빈말이라도 사과 한마디 할 인간들이야 1도 없겠지만, 국민들에겐, 유권자들에겐 마음의 큰 빚으로 남을 게다. 대장동이란 족쇄를 벗어던진 이재명에게 또 어떤 한계가 있을까. 잘 모르겠다.

 

박지현이라는 걸출한 대형 신인 정치인을 얻은 것도 큰 성과다. 세상만사는 다 때가 있는 법이다. 어떤 일은 죽어라고 들이박아도 꿈쩍조차 안 하다가 하찮은 알갱이 하나에 집채만한 바위가 구르기도 한다. 저쪽의 젠더 갈라치기라는 인풋에 2030 여성표 집결이라는 아웃풋이 나왔다. 그리고 그 코어에 박지현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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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자연스레 ‘정치개혁’ 어젠더로 연결된다. 말로만 세대교체니 젊은 피 수혈이니 같은 소리 하지 말고 그런 개혁이 부응하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단일화는 늘상 이쪽 동앗줄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내게 날아드는 비수일 수도 있다는 걸 이번 기회에 절절히 느껴야 하지 않겠나. 우리에게 결선투표제가 있었다면, 단언컨대 20대 대통령 당선인은 이재명이었다. 결선투표제 도입과 함께, 다당제 토대를 구축할 선거구제 개혁 등등 이재명이 주창한 ‘정치개혁’을 민주당은 좌고우면하지 말고 어떻게든 강하게 밀어붙여 관철시켜야 한다.

 

그렇다면 왜! 뭐 하러! 무엇 때문에! 우리는 이겨야 하는가. 유시민이 더할 나위 없이 잘 정리했지 않은가.

 

“우리의 비전과 철학과 생각과 소망이 진짜 올바른 것이라면 유권자들이 다시 알아줄 날이 머지않아 올 것이다.”

 

그렇다. 사회 공동체의 비전, 민주주의에 대한 철학, 합리적이고 상식적인 생각과 함께 잘 살고 더불어 살아갔으면 좋겠다는 소망. 저들에겐 없는 우리의 비전과, 철학과, 생각과, 소망을, 이 땅에 실현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놓고 보니, 이제 좀 뭔가 보이지 않는가. 역대급 빌런이 나타났다. 이명박의 사악함과 박근혜의 아둔함이 결합했다. 가히 끝판왕이다. 전투력이 마구 용솟음치지 않는가. 어떻게 해야 할까. 우리가 목말라야 할 지점은 첫째도 개혁, 둘째도 개혁, 자나 깨나 개혁이다. 30년 집권정당의 길. 오늘의 패배가 내일의 승리에 찰진 밑거름이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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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은 심는 거다.”- 이순신(李舜臣: 1545~1598_난중일기 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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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가오면 찌른다-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