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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주권을 행사한 국민들

 

사전투표가 있던 3월 첫 주말 딴지 자유게시판에서 글 하나를 우연히 봤습니다. 저시력 중증 시각장애인인데 지난 서울시장 재보궐선거 때 사전투표 중에 봉투와 관련된 실수를 했다는 사람의 글이었습니다. 그는 이번에 같은 실수나 또 다른 실수를 하지 않으려고 A4용지에 이재명 이름을 70여 개 적은 표를 작성해서 인쇄하여 홀로 볼펜의 잉크 심을 감싸는 기다란 관으로 도장 찍는 연습을 하였습니다. 글과 함께 그가 올린 사진에는 표의 네모 칸 이쪽저쪽으로 찍힌 동그라미가 70여 개 박혀있었습니다.

 

이분을 포함하여 이재명을 지지한 1,614만7,738명 모두 수고하셨습니다. 10시간 차를 타고, 또는 비행기를 타고 먼 길을 이동하여 주권을 행사한 해외 교민들, 선거 막판 온라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목소리를 높인 젊은 여성층, 주변의 가족·친구·지인들에게 끝까지 투표를 독려하는 연락을 한 사람들, 자신이 획득한 주권을 행사한 귀화 국민, 자식이 직장을 잃을까 봐 선택을 했다는 부모님, 이재명을 찍은 김동연 지지자들 그리고 뜻을 함께 한 모든 분들, 참으로 수고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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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딴지 자유게시판 링크>

 

그리고 윤석열 후보를 지지한 48.56%의 국민들을 그리 탓하지 않길 권해봅니다. 이미 결과는 나왔고 탓하거나 분노를 표해봐야 달라지는 것도 없습니다. 그들 중에도 마냥 윤석열 당선자가 좋아서 선택한 사람들이 다수는 아닐 것입니다. 그들 중에는 5년 전 정권교체를 함께 한 이들도 있습니다. 180석을 만들어준 이들, 지난 지방선거 완승도 함께 했던 이들도 있습니다. 윤석열을 택한 이들을 그래도 말로라도 존중할 때 그들도 진 쪽을 존중할 것입니다. 이재명을 지지한 사람들이 적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지요.

 

쇼트트랙에서는 오심과 반칙이 아닌 한, 날 들이밀기로 한 승리도 승리입니다. 0.7%P 차이도 기꺼이 승복해야 합니다. 국민 분열을 조장한 선거전략 등에 관해 시시비비는 있겠으나 양 진영 모두 최선을 다했습니다. 수사(修辭) 같으나 더불어민주당은 선거 결과 빼고는 잘한 게 많고 국민의힘은 선거 결과 외에는 실패한 게 많아서 나온 0.7%P 차이입니다. 원하는 결과표를 받은 건 국민의힘이되 국민의힘은 윤석열 검찰총장과 대선 과정을 준비하며 지녔던 리더로서 갖춰야 하는 자격에 관한 우려를 선거에서 털어내지 못했고 앞으로 짊어지고 갈 과제로 남긴 대선 표심입니다. 원희룡 정책본부장이 유시민 작가와의 <100분 토론>에서 고백한 우려인 만큼 국민의힘 당 내부에서도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상대편의 거친 언사·기울어진 언론과 포털 환경·불리한 여론 조사 결과 등의 제반 조건으로 인해 이런 것들에 영향을 받을 사람들에 관한 우려가 있었던 선거였습니다. 막상 결과를 보니, 졌지만 절대 만만하지 않은 지지를 확인했습니다. 아쉬움을 부정할 수는 없으나 주저앉을 결과도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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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더불어민주당 카카오톡 채널>

 

2. 청년 여성

 

덧붙여 대선 내내 소외되어 있던 청년 여성들이 선거 막판 온라인과 선거를 통해 보여준 마음에 박수를 보내고 싶습니다. 이는 그들이 민주당을 지지해서만은 아닙니다. 선거 기간 내내 관심에서 소외되었던 2030 여성들이 자신들의 목소리를 뚜렷하게 낸 게 전해졌기 때문입니다. 무시당하였다고 느껴도 무리지 않은 국민의힘의 태도와 언론의 보도 속에서 그들은 존재를 드러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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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유튜브 닷페이스 채널 출연 장면

출처 - <닷페이스 유튜브 채널>

 

결과를 보자면 20대 여성들이 몰아준 지지 때문에 전체 20대 득표율에서 민주당이 이겼습니다. 이는 갈라치기로 국민 간의 갈등을 선거 도구로 이용한 이들의 예상과 다른 결과였겠지요. 작용에는 반작용이 따르는 법입니다. 조롱의 언어는 공학적으로도 하수의 언어이며 세상 이치를 생각해도 단명할 언어입니다. 도덕적인 것은 말할 것도 없겠지요.

 

대선에서 드러난 20대 성별 간 표심 차이와 대선 결과로 인해 젠더 간의 갈등이 온라인에서 새로 생성되지 않을까 하는 걱정도 듭니다. 익명을 도구로 서로를 조롱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대화는 필요합니다. 조롱과 혐오의 언어가 없는 토론과 논쟁이 생산되길 바랍니다. 저 또한 청년 남성의 한 사람으로서 동성뿐만 아니라 여성의 입장도 더 숙고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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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유튜브 채널 KBS News>

 

3. 이재명

 

이번 대선을 통해 이재명을 새로 알게 되었습니다. 사상가로 평가되는 김대중, 뜨겁게 하는 사람 노무현, 우리 사회 성숙한 어른 문재인 등 이들 만한 사람이 또 나오기가 참 힘들다는 생각을 종종 합니다. 강대국이라고 하는 곳들의 리더들을 보면 그런 생각이 쉽사리 떠오르게 하는 작금이지요. 그런데 이재명을 보며 다행히도 세 사람 못지않게 이 나라의 대표를 맡길 수 있는 사람이 또 나왔다고 안심하고 확신하였습니다.

 

개발도상인이란 말처럼 그는 2010년 성남시장으로 시작하여 자력으로 12년 만에 여기까지 왔습니다. 정치적 이득을 생각하지 않고 모든 국민들을 고려하는 언행을 하였습니다. 물론 실수도 있었고 그로 인해 비판도 받았습니다. 그러나 강물이 굽이굽이 흘러 바다로 나아간다는 노무현 대통령의 말처럼 그는 옳은 길이라면 궂은 길이라도 물러서지 않고 여기까지 왔습니다. 젠더 이슈들로 민주당이 지난해 보궐선거에서 완패를 당했고, 이번 선거 과정에서 페미니즘 유튜브 채널에 출연하여 일부 지지층에게 비판을 받기도 했지만, 결국 이번 대선에서 여성들의 마음이 이재명과 민주당에 조금이나마 풀려 용서와 믿음을 보여준 것이 그 증거겠지요. 물론 우리가 잘했다는 게 아닙니다. 우리는 최소한을 보여줬다면 그들(특히 20대 여성)은 최대한을 보여줬다니 감사하고 또 감사한 일입니다. 반드시 정책으로 갚아야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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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세계일보>

 

이재명은 앞으로도 발전하리라 생각합니다. ‘기대’란 단어로 지쳐있을 그에게 부담 지우고 싶지 않기에 ‘생각’이라 칭하겠습니다. 대통령 자리에서 그가 가진 발군의 학습력과 행정 능력을 보길 바라는 마음 반, 우려하는 마음 반으로 개표를 지켜봤습니다. 항상 다 뜻대로 되는 것은 아니기에 영민하고 믿음직한 공직자 이재명의 모습은 이후 기회가 주어질 때 봐야겠지요.

 

4. 우상호·송영길·유시민

 

우상호·송영길 두 분도 수고하셨습니다. 두 분은 대학 시절부터 오랜 친구로 압니다. 우상호 의원은 지난해 부동산 관련한 설화도 있었고 그로 인해 송영길 당대표와 오묘한 분위기로 느껴지던 시기도 있었지만 꿋꿋하게 진실을 밝히고 당에 남아 선거대책본부장을 역임했습니다. 선거기간 내내 여의도 당사에서 잠을 청하며 총력을 다했습니다. 서울시장 보궐선거 후보 경선 때 이미 차기 총선 불출마를 선언하고 헌신해 온 우 의원이기도 하지요.

 

송영길 당대표 또한 선거운동 중에 다음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습니다. 한 시민에게 둔기로 피습을 당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는 가운데서도 자신이 할 일을 다했고 방송 3사 출구조사가 0.6%P 차 경합으로 나오자 주먹을 불끈 쥐기도, 눈물을 보이기도 하였습니다. 그의 노고가 제 마음에 전해지는 장면이었습니다. 선거 과정 내내 이어진 여론과 선거 결과의 책임이 민주당에 없지 않겠지만 불리한 구도와 언론 환경 속에서 시작한 선거 캠페인 동안 그들을 포함한 민주당원들 모두 저력을 보여주며 막판까지 접전으로 이끌었습니다.

 

유시민 작가도 인상 깊었습니다. 그는 여의도를 떠났고 민주당원도 아닙니다. 지난 총선으로 불편한 기억도 있을 터이지요. 과거 지방선거 때 이재명이 도지사에 당선된 직후 방송 인터뷰에서 그가 보여줬던 태도에 관해 <썰전>에 나와 쓴소리도 마다하지 않았던 유시민 입니다. 그런 그가 다시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이재명을 도우려 나섰습니다. 지지자들은 그가 나온 방송을 통해 안심하며 자신감을 얻었습니다. <100분 토론>과 <정치합시다>에서 2, 30대 청년들에게 틈이 있을 때 진솔한 격려를 표하기도 하였습니다. 그 스스로 의도하지 않았겠지만 정치 성향을 떠나 성숙한 지성인의 일례를 보여준 그의 지지 활동이었습니다.

 

아마 다음 대선에서는 전혀 다른 구도가 되겠지요? 소위 86세대는 이제 한 명 한 명 뒤로 물러가는 때가 왔습니다. 과거 민주화를 위하여, 이번 대선을 위하여 애써주신 많은 분들께 수고하셨다는 말씀을 전합니다.

 

더불어민주당 선대위 해단식에서 이재명 우상호 송영길 이낙연_출처 뉴시스.jpg

더불어민주당 선대위 해단식에서

이재명 우상호 송영길 이낙연
출처 - <세계일보(공동취재사진)>

 

5. 마무리하며

 

유시민 작가가 여러 차례 공개석상에서 말한 게 있습니다. 속력의 차이는 있겠지만 대한민국은 꾸준히 좋은 방향으로 걸어왔다는 그의 말. 출생률 저하를 포함한 인구절벽을 예로 들며 이러한 문제들을 국민들이 잘 해결하리라는 믿음에 관한 말도 덧붙였습니다. 동의합니다. 박근혜 정부 시절에 후퇴한 측면들도 많았지만 다양한 면들 중에서는 발전한 면들도 있을 것입니다. 대통령의 권한이 막강한 것은 사실이나 혼자 국정을 수행하지 않습니다. 정부에는 뜻있고 유능한 인재들도 많습니다. 지금의 코로나19 사태를 잘 대비할 수 있었던 것은 총체적 난국이던 박근혜 정부 시스템 안에서 밤을 새워 고군분투하던 인재들이 그때 교훈과 경험을 얻고 방역에 관하여 연구하고 기록해두었기 때문입니다. 대한민국 국민들은 지금까지의 경험을 낭비하지 않고 발전된 길로 여기까지 왔습니다

 

스톡데일 패러독스(Stockdale Paradox)라는 말이 있습니다. 베트남 전쟁 당시 8년간 포로 생활을 한 미국의 해군 장교 제임스 본드 스톡데일이 감옥에서 겪었던 경험으로 인해 만들어진 말인데, 그가 감옥에 있을 때 마냥 상황을 낙관한 포로 동료들이 있었다고 합니다.

 

"불필요하게 상황을 낙관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크리스마스 전에는 나갈 수 있을 거라고 믿다가 크리스마스가 지나면 부활절이 되기 전에는 석방될 거라고 믿음을 이어 나가고 부활절이 지나면 추수감사절 이전엔 나가게 될 거라고 또 믿지만 그렇게 다시 크리스마스를 맞고 반복되는 상실감에 결국 죽게 됩니다. 이건 아주 중요한 교훈인데요. 당신이 절대 잃을 수 없는 마침내 이기겠다는 믿음과 그것들이 무엇이든지 지금 현실의 가장 가혹한 사실들을 직시하는 훈련을 당신이 절대로 혼동하면 안 됩니다."

 

말인즉슨, 마냥 상황을 긍정하는 건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선거가 끝나고 이재명 지지자의 갑갑한 마음에 마냥 긍정하자고 이 글을 적고 있지 않습니다. 상황은 상황대로 정확히 직시하되 그 안에서 믿음과 희망을 버리지 않는 태도가 중요합니다. 현 상황에서 마냥 긍정하는 사람이 많지 않으리라 보지만 마냥 절망도 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정확한 상황을 직시하되 믿음을 지속하기를, 이재명 지지자 한 사람으로서 청해봅니다. 이것 또한 지나갑니다. 정치는 이번 선거로 끝나지 않겠지요.

 

수많은 지지자들도 힘들겠지만 지금 가장 쓰라린 사람은 이재명입니다. 성남 상대원시장에서 어려운 시절을 보내며 여기까지 온 그가 다시 한번 극복하기를 바랍니다. 이재명이 다시 고개 들길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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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경향신문(국회사진기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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