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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현대전(Modern Warfare)은 허상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군사안보분야의 수많은 전문가들의 예상을 모두 뒤엎어 버렸다. 그것도 2번이나 말이다.

 

“전쟁까지는 가지 않을 것이다.”

 

대다수의 전문가들 예측이 빗나갔다. 전쟁이 일어나고 나서도, 

 

“키이우는 3~4일 안에 함락될 거다.”

 

라는 예상도 모두 빗나갔다. 전문가들은 러시아를 ‘세계 2위’의 군사력을 가진 나라로 보고 있다. 그렇기에 이들에게 현대전...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미국의 전쟁 방식을 예상했다. 

 

“일단 개전 당일 러시아가 제공권을 장악할 거다.”

 

다들 그렇게 예상하고 있었다. 현대전에서 제공권 장악은 곧 ‘승리’와 연결된다. 그러나 전쟁이 시작 된지 2주가 넘어가는 상황에서 러시아는 아직까지도 우크라이나의 제공권을 장악하지 못했다. 

 

바그다드 대통령궁.jpg

2003년 전쟁이 시작되고 하루 뒤인 3월 21일.

미군의 공습으로 쑥대밭이 된 이라크 바그다드의 대통령 궁.

출처-링크

 

이라크 전쟁 개전 초기에 미군은 하루 평균 2천 소티(Sortie : 단독 출격 횟수)씩 항공기를 날렸다. 그야말로 쑥대밭을 만들었다. 순항미사일은 덤이었다. 그런데, 러시아군은 하루 평균 2백 소티 채우기도 버거운 상황이다. 이러다 보니 우크라이나의 제공권을 다 장악하지 못했고, 우크라이나 공군도 하루 평균 10~20소티씩 전투기를 띄운다. 

 

우리가 매체에서 본 ‘현대전’이라 불리는 것들, 그러니까 병사가 무전기 붙잡고,  

 

“공군!”

 

을 외치면 득달같이 날아오는 폭격기, 공격기들의 모습은 미국만 보여줄 수 있는 것이었다. 현대전은 거짓말이고, 그런 전쟁을 할 수 있는 건 오로지 미국뿐이란 걸 확인할 수 있었다.

 

(러시아가 전략공군을 동원하지 않았고, 전술 공군을 투입했다는 것도 이해하기 어렵다. 푸틴과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사태를 역시나 ‘지역분쟁’ 정도로 여기고 있다는 걸까? 이건 전쟁이 끝나고 러시아 쪽 사정을 좀 들어봐야 한다)

 

 

2. 보급은 미국만이 가능했다 

 

육해공 3군 중에서 보급 문제가 가장 힘든 게 ‘육군’이다. 해군과 공군은 기지 자체가 ‘Base’ 개념이다. 공군의 PX를 BX(Base Exchange)라 부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기지 자체가 거의 고정돼 있고, 이 기지를 중심으로 작전을 펼치기에 보급이 수월하다. 해군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육군은 다르다. 이들은 수시로 움직인다. 보급부대가 쫓아갈 수밖에 없다. 

 

이 부분에서 미군이 보여줬던 모습들도 역시나 미군이니까 가능했던 거였다. 미국은 완벽한 ‘원정군’ 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이제까지 치른 전쟁을 보라. 미국 본토나 혹은 본토 근처에서 일어난 전쟁이 21세기에 있었던가? 우리가 잊고 있는데, 1개 사단, 그러니까 한 1만 명 정도의 병력이 하루에 ‘마시는’ 물의 양만 30톤 정도 된다. 이것도 필요 최소량으로 계산한 거다(1인당 3리터 정도로). 여기에 세탁이나 취사용 물을 더 한다면 그 양은 얼마나 될까? 이걸 매일 공급해야 한다. 

 

다시 말하지만, 이건 필요 최소량이다. 이 물을 가져오는 것도 문제지만(하루 평균 30톤의 물을 계속해서 구할 수 있는 게 그리 쉬운 문제가 아니다), 이걸 분배하는 건 더 큰 문제다. 여기에 식량, 탄약, 현대전의 필수품이 된 ‘내연기관용’ 기름까지 더 한다면 물자의 양은 어마어마하다. 

 

러시아 보급차량.PNG

지난 28일, 외신들은 키이우로부터

수십킬로미터에 걸쳐 이어져 있는

러시아군 보급 차량이 제대로 나아가지도 못하고

정체되어 있다고 보도했다. CNN 캡처. 

 

미군이 자신들 스스로 ‘보급 실패’라고 말한 전장 하나를 소개할까 한다. 2차 걸프전 당시 제3기계화 사단의 경우다(이게 과연 실패일까 싶지만). 당시 제3기계화 보병 사단은 2만여 명의 병력과 200여 대의 전차, 260여 대의 장갑차로 구성돼 있었다. 

 

다른 불필요한 것들 다 빼고 이 기계화 보병 사단을 움직이기 위한 기름과 싸울 수 있는 탄약만 보급한다고 해도 하루 평균 200만 리터의 기름과 2,300톤의 탄약이 필요했다. 이건 단 하루 동안 필요 보급량이다.  

 

(200만 리터가 언뜻 와 닿지 않을 거 같은데, 우리가 흔히 보는 200리터 드럼통 있지 않은가? 그게 1만 개가 필요하다는 거다. 그게 딱 하루 치 필요량이란 거다. 게다가 이건 탱크와 장갑차 등 전투용 지상 장비에 한정한 거다. 헬기 등등은 따로 계산해야 한다는 거다)

 

2차 걸프전 당시 미군은 1차 때와 달리 사우디를 끌어들이지 못해서, 쿠웨이트로부터 이라크로 진격해 들어가야 했다. 진격로도 제한됐고, 보급로도 제한됐다. 이 덕분에 제3기계화사단은 쿠웨이트 보급기지부터 이라크까지 계속 왕복하며 보급을 받아야 했다. 

 

쿠웨이트이라크.jpg

이라크와 쿠웨이트 지도

 

이 당시 미군은 유류 보급의 한계로 진격이 제한되기도 했고, 병사들은 하루에 1끼만 먹어야 했을 정도로 보급이 제한됐다. 그래도 미국이었기에 이 보급을 어찌어찌 해냈다. 물론, 하루에 한 끼 먹을 정도로 최악의(?!) 상황을 겪기도 했지만, 그래도 탱크는 기름 때문에 멈추지 않았고, 총알 걱정 없이 잘 싸웠으며 사막에서 물이 떨어져 말라 비틀어지지도 않았다. 

 

우리는 단순히 TV에서 

 

“미군이 이라크 수도 바그다드를 향해 쾌속 진격 중입니다!”

 

라고 말하고 있어서 그리 대단한 게 아닌 것처럼 보이는데, 미국은 이 당시 지구 반대편인 미국 본토로부터 보급물자를 실어 날아와서(날아온 것보다 훨씬 많은 보급품은 쿠웨이트의 슈아이바 항구에 배로 실어 나른 뒤에) 이걸 하역하자마자 보급품 종류별로 신속히 분류해서 필요한 부대로 보급했다는 거다. 이 당시 미군은 각종 군용트럭과 수송헬기, 수송기 등 자신들이 가용할 수 있는 모든 수송수단을 아주 ‘정밀하게’ 편성해서 전방의 부대에 보급이 끊기지 않도록 노력했다. 

 

우리는 이게 당연한 건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이걸 해낼 수 있는 나라는 미국밖에 없었다. 러시아는 육지로 바로 옆과 위에 붙어 있고, 지상으로 연결돼 있음에도 보급에 문제가 생겼다. 아니, 러시아가 문제가 아닌 거다. 미국이 대단한 거다. 

 

“러시아도 미국만큼 할 수 있는 거 아냐?”

 

아니었다. 원정군 체제에 특화된 미군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오죽하면 ‘수송사령부’를 따로 뒀을까. 

 

물량도 중요하지만, 이 물량을 실어 나르는 것, 그리고 이걸 분류해서 필요한 부대에 적절히 보급할 수 있는 것. 그 능력에서 러시아는 미국을 쫓아가지 못하고 있다.

 

생각해 보면, 이런 식의 대단위 전투 경험이 러시아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처음이다. 러시아가 헤매는 게 어쩌면 당연한 것처럼 느껴진다. 

 

 

3. 목표

 

러시아군의 ‘군사적’ 목표는, 지도만 봐도 대번에 알 수 있다. 전쟁 발발 직전의 지도를 보면, 어떤 기시감이 들었다. 1939년 8월.

 

“폴란드 회랑”

 

폴란드에게 바다를 주기 위해 베르사유조약에 의해 독일이 폴란드에 할양한 길이 400km, 너비 128km의 좁고 긴 지역을 폴란드 회랑이라고 한다. 폴란드는 이 회랑 덕분에 발트해의 항구도시인 단치히(Danzig : 현재의 그단스크)로 진출할 수 있게 됐다. 

 

캡처.PNG

1차대전 이후 독일 영토를 분단하는 형태로

획정되었던 폴란드 회랑. 

회랑 동서로 'Germany' 표기가 보인다.

 

(참고로 2차 대전을 더듬다 보면 나오는 유명한 도시다. 히틀러가 이 회랑을 통과하는 도로와 철도의 지배권을 요구했었다)

 

루간스크, 도네츠크 그리고 마리우폴, 베르단스크, 크림반도. 

 

러시아의 목표 중 군사 전략적으로 가장 중요한 건, 

 

“크림반도를 육지로 연결한다!”

 

라는 거다. 지금 크림반도와 러시아를 연결하는 건 케르치 해협에 걸려있는 다리 하나가 다다. 러시아 입장에서는 무슨 수를 써서든지 아조프해에서 내려오는 육상통로를 연결하고 싶어 한다. 회랑이다. 

 

여기에 덤으로 헤르손을 먹었다. 이건 정말 ‘크다’

 

침공상황.PNG

출처-<연합뉴스>

 

헤르손은 드네프르 강 하류 지역을 관장한다. 즉, 운하를 하류에서 막을 수 있고, 덤으로 오데사와 미콜라이우로 진출 할 수 있는 길목에 있다. 여길 잡는다는 건 드네프르강을 통제할 수 있고, 우크라이나 최대의 항구도시(우크라이나 해상 물동량의 70%를 소화한다)이자 요새인 오데사를 노려볼 수 있게 된다. 

 

오데사-헤르손-마리우폴을 먹으면, 우크라이나는 말라죽을 수밖에 없다. 당장 해상 물동량을 틀어쥘 수 있다

 

(물론, 오데사를 먹기는 쉽지 않을 거다. 그리고 마리우폴도 아직까지 버티고 있지 않은가. 역시나 아조프 연대는... 푸틴이 말한 ‘나치’에 가장 근접한 게 아조프 연대인데, 역시나 푸틴을 제대로 엿 먹이고 있다. 뭐 어쨌든 이들도 전쟁이 끝나면 버림받을 확률이 높겠지만 말이다)

 

오데사와 마리우폴 두 항구도시의 해상물동량이 우크라이나 전체 물동량의 거의 100%를 차지한다고 봐도 된다. 여기에 내륙으로 들어가는 수운을 틀어막을 수 있는 헤르손까지 먹으면, 우크라이나로 들어가는 물자를 다 틀어막는다는 소리다. 우크라이나가 순식간에 ‘육지 국가’가 되는 거다.  

 

이렇게 남부를 다 정리하고 눌러 앉아 있으면, 우크라이나는 그야말로 말라 비틀어 질 수 밖에 없고, 더 나아가 ‘다음 수’도 생각할 수 있다.

 

“드네프르 강 동쪽은 우리 땅.”

 

드네프르 강이란 지형을 경계로 우크라이나를 동서로 나눌 수 있다는 거다. 화점을 찍었다고 해야 할까? 

 

군사적으로는 충분히 납득이 가는 대목이고, 전략적으로도 예측 가능한 상황이다. 이러다 보니, 

 

“러시아군의 주공은 남쪽이다.”

 

란 말이 전쟁 초기부터 심심찮게 들려오고 있다. 키이우야 정치적, 전략적인 목적에 의해 치고 들어간다고 하지만 러시아에게 실질적으로 필요한 군사적 목표는 남쪽에 있다. 

 

키이우와 하르키우는 우크라이나군을 붙잡는 조공인 걸까? 동원된 병력의 수나 피해 보고를 보면 그것도 아닌 것 같다. 여기서 드는 의문이,

 

“도대체 러시아군의 주공은 어디인가?”

 

라는 의문이다. 그 주공이 뭔지 알아야 러시아의 전략적 목표를 파악할 수 있는 거다. 상식적으론 남쪽 전선이 주공이어야 하는데, 돌아가는 판세를 보면 또 그것도 아니다. 

 

정말 푸틴의 ‘정신세계’에 뭔가 문제가 있는 걸까? 상식이란 게 여지없이 깨지고 있는 상황이다. 

 

 

 

추신 

 

다음 기사에 ‘체급’에 관한 걸 쓰려고 하는데,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체급이 다르다. 이미 젤린스키가 언론을 통해서 계속 양보 입장을 흘리고 있다. 러시아는 ‘잘하는 걸’ 하고 있고, 이 잘하는 걸 계속하다 보면 우크라이나는 폐허가 될 거기 때문이다. 

 

국민일보.PNG

출처-<국민일보> 링크

 

헤르손이 러시아군 손에 들어갔을 때 죽지않는돌고래 편집장에게 연락해,

 

“곧 전쟁이 끝날 거 같다.”

 

라고 했던 기억이 난다. 본 연재 기사에서 이번 전쟁의 배경과 분석 등에 대해 내놓고 있지만, 어찌 됐든 전쟁은 끔찍한 것이다. 아무쪼록 빨리 끝나길 기원한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