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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푸틴이 증명한 전쟁경제의 허상 

 

중세에 영토는 곧 국력으로 치환되었다. 경제력이라 말하는 것은 땅에서 나오는 소출로 이루어졌기에 땅을 넓히면 넓힐수록 국가는 부강해졌다. 땅을 확보한 이후의 통치도 수월했다. 왜? 그 당시 사람들은 국가·민족에 대한 정체성이 적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이 모든 게 뒤바뀌었다. 민족주의 개념은 프랑스 대혁명 이후에 퍼져 나가게 되었다. 민족주의를 바탕으로 한 근대 국가는 국민들에게 강한 집단 정체성을 부여했다.

 

경제적으로도 과거와 다르다. 현재 전 세계는 가치사슬(value chain)로 묶여 있다. 독일을 예로 들어보자. EU를 두고 농담 삼아,

 

"독일 제4제국"

 

이라 칭한다. 독일 제3제국(나치 독일)에서 히틀러가 이뤄놓은 것보다 더 많은 것들을 21세기 독일은 전쟁 없이 이뤄낸다. 히틀러가 제2차 대전을 일으켜 수천만 명의 인명을 희생시켜 가며 얻었던 ‘신기루' 같은 몇 년 동안, 독일 경제는 오히려 나락으로 빠져들었다. 나치 독일의 최전성기에조차 점령 지역을 다스리기 위한 방위 분담금을 독일 쪽에서 7할 이상 부담해야 했다.

 

지금은 어떠한가?  2차 대전 직후 쪼그라든 독일 영토를 보면서 옛 영광을 아쉬워하지만, 어지간한 곳은 솅겐 조약에 의해 제집 드나들 듯 돌아다닌다. 화폐도 같은 걸 쓴다. 프랑스의 우유가 다음날이면 독일 밥상에 오른다. 새벽에 수확한 네덜란드 장미가 오전에 영국으로 넘어가는 게 지금 유럽이다(영국 이야기는 브렉시트 전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지금 세계 경제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보라. 우리가 왜 환율을 고민하고, 원유시장을 노려보고 있으며, 세계 곡물가를 주목하고 있을까. 인공위성으로 밀과 콩의 작황을 확인하고, 이 정보를 통해 선물시장에서 보이지 않는 전투를 벌이는 게 2022년의 모습이다.

 

세계 가치사슬 예시_출처 중기이코노미.jpg

출처 - <중기이코노미>

 

전쟁은 이 비즈니스 모델을 박살 낸다. 전쟁으로 어떤 ‘경제적 가치'를 얻는 건 (방산업체가 무기를 팔아먹는 정도를 빼고는)이제 상당히 어렵게 됐다. 21세기 전쟁은 전쟁으로 얻을 게 없음을 거듭 입증했다.

 

여기에 더해 한 나라를 점령할 수 없다는 것도 확인할 수 있다. 중세까지만 하더라도 민족적 정체성이 없다는 이유로 점령한 지역을 통치할 수가 있었다. 1871년경을 시간 배경으로 하는 알퐁스 도데의 소설 ‘마지막 수업'에서 아멜 선생은 마지막 순간 칠판에,

 

"Vive La France!"

 

라 적었다. 프랑스 만세... ‘마지막 수업'의 문제점이나 작가에 대한 이야기는 차치하겠다. 중요한 건 현대국가는 이미 국가적 정체성을 너무도 공고하게 세워놓고 시작했다는 거다. 이걸 외부 세력이 침공해서 점령한다? 이건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그렇다면 이걸 왜 해야 하는 걸까? 이를 통해서 러시아가 얻을 경제적 실익은 무엇일까? 오히려 세계적인 경제 제재로 경제적 곤란함을 겪고 있지 않은가? 만약 우크라이나를 점령한다고 하더라도 우크라이나에서 얻어낼 수 있는 경제적 이익이 뭐가 있을까? 1차 대전 때처럼 배상금을 물릴 수 있는 것도 아니고, 2차 대전 때처럼 우크라이나의 경제 시설을 뜯어 가져올 수도 있는 게 아니잖은가?

 

경제적으로 봤을 때 전쟁으로 이익을 보기 어려운 구조로 변했다. 순 경제적인 측면에서 보자면, 러시아는 하루 평균 200~250억 달러의 전쟁 비용을 지출하고 있다. 이틀이면 우리나라 1년 국방예산(약 55조 2277억 원)을 사용하는 거다. 이 짓을 2주 넘게 하고 있다. 명분 없는 전쟁을 논외로 하더라도 21세기에서 전쟁은 하면 할수록 손해라는 걸 푸틴이 증명하고 있다.

 

2. 푸틴의 속셈

 

20여 년 간 러시아를 통치한 푸틴에 대한 각국 정보기관의 ‘평가'와 ‘데이터'는 쌓이고 쌓여 있다. 그에 대한 평가는 대부분이 일치했다.

 

"그는 냉정하고, 치밀하며, 세상을... 냉소적으로 바라본다."

 

그렇기에 그는 언제나 치밀하게 계산해서 움직이며, 상대를 압박하기 위한 모든 수단을 다 동원했다. 정상회담에 늘 늦게 가는 건 기본이며, 자기와 ‘급'이 맞다고 생각하는 인물들만 방문을 한다(중국이나 미국 정도 돼야 상대방에게 다가간다). 메르켈 앞에 개를 끌고 나타난 것만 봐도 알 수 있지 않은가?

 

그런 그가 전쟁을 선택했기에 다들 당혹했다. 언제나 그렇지만, 칼은 칼집에 있을 때 더 큰 위력을 발휘한다. 왜? 바로 선택지 때문이다. 전쟁을 하기 전에는,

 

"전쟁을 할 수 있는 가능성도 있어."

 

라는 선택지가 있다. 그러나 전쟁을 시작한 다음은 선택 가능한 게 별로 없다. 전쟁 전이야 여러 선택지를 가지고 외교적으로 압박할 수 있지만, 전쟁 다음은 방법이 없다. 그런데 푸틴은 왜 전쟁을 선택했을까?

 

웨일스 그래픽 디자이너 패트릭 뮐더가 만든 타임지 표지를 들고 시위하는 사람들_출처 패트릭 뮐더 트위터 캡.png

웨일스 그래픽 디자이너 패트릭 뮐더가 만든

타임지 표지를 들고 시위하는 사람들.

실제 타임지 표지는 아니다

출처 - <패트릭 뮐더 SNS 캡처>

 

가장 신빙성이 있는 가설은,

 

"침공하면 우크라이나 사람들이 반겨 줄 거다. 아니, 최소한 저항은 하지 않을 거다."

 

라는 착각일 거다. 동원된 병력이나 진격로 등을 살펴보면 푸틴은 우크라이나를 너무 쉽게 본 듯하다. 정황만 놓고 보면 우크라이나 사람들이 서방 세계에 조종당하고 있었는데 러시아가 들어와 이 모든 걸 정리해 주면 러시아 편을 들 거로 생각했을 개연성이 있다.

 

"우리는 원래 민족적 동질성도 비슷하고, 응? 같이 한 지붕 아래에서 오래 살았잖아!"

 

라고 생각했을 가능성 말이다(지난 1천여 년 간의 기록을 보면, 모스크바 공국 시절부터...늘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의 뒤통수를 치고, 학살을 했는데 이런 생각을 할 수 있다는 게 놀랍지만 말이다. 새롭지 않은 점도 있긴 하다).

 

아니라면 이건 설명이 안 된다. 이렇게 싸울 이유가 없지 않은가? 푸틴이 왜 전쟁을 일으켰는지 솔직히 이해하기 힘들다. 아마 이건 전쟁이 끝나고 러시아 측 자료가 나온 뒤에야 알 수 있을 거다.

 

3. 전교 2등과 22등의 격투

 

우크라이나가 아무리 선전을 하더라도 전쟁이 계속 이어지면 결국 이기는 건 러시아다. 러시아가 개전 초와 달리 전략을 바꿨다는 건 이미 명백해졌다. 마리우풀과 체르니후를 보면 알 수 있다. 러시아는 도시를 포위한 후 미친 듯이 포격해서 ‘평탄화' 작업을 하고 있다.

 

러시아군은 자신들이 잘하는 걸 하고 있다. 이미 세계는 러시아에 등을 돌렸고, 러시아는 기왕 이렇게 된 거 자기들이 잘하는 방식으로 승리를 하겠다고 작정을 한 거 같다.

 

이렇게 되면 결국 우크라이나는 손을 내밀 수밖에 없다. 자신들의 땅이 붕괴하고 있는 상황에서는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하는 거다. 이대로는 파멸밖에 없기 때문이다.

 

무력 전교 2등과 22등이 붙어서 싸우고 있는 상황에서 승패는 너무도 명확하다. 체급은 곧 스태미나로 치환된다. 전쟁이 길어지고 서방의 관심이 떨어지는 순간이 찾아오면 이제 우크라이나는 고사될 수밖에 없다. 미그기를 지원하겠다며 몇 번의 협상을 했던 폴란드와 미국도 결국 러시아 눈치를 보다가 포기한 걸 봐도 알 수 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군사력 비교_출처 서울신문.png

출처 - <서울신문 기사 본문 캡쳐>

 

 

서방의 지원은 어느 순간 끊길 수 있다. 서방의 관심이 떨어지는 순간,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내전'으로 전쟁의 성격은 바뀔 것이기에 우크라이나로서도 하루 빨리 출구전략을 찾아야 한다.

 

4. 가능한 경우의 수

 

세 가지를 예상할 수 있다.

 

1) 러시아가 이기는 경우

2) 우크라이나와 러시아가 타협하는 경우

3) 러시아가 철수하는 경우

 

1) 러시아가 이기는 경우로 이 방법론의 핵심은 수도 키이우를 점령하고 젤렌스키를 제거하는 거다. 그다음 우크라이나에 괴뢰 정부를 만들고, 이 전쟁의 ‘명분'이라 할 수 있는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을 영구히 금지하는 걸 서면(헌법이나 조약으로)으로 공식화하는 거다. 이렇게 하면 러시아는 모양새가 그나마 덜 빠지면서 승리 선언을 할 수 있다. 다만 문제가 있다면 이 경우 러시아군은 우크라이나에 주둔해야 한다는 점이다.

 

관건은 러시아가 과연 키이우를 점령할 수 있을까다. 서방 전문가들은 러시아가 작심하고 밀어붙여도 2~4주 이상의 시간이 걸리지 않을까 예상한다.

 

러시아는 화력을 집중해 1차로 사전포격을 한 후 기갑부대를 밀어 넣는 방식으로 아주 클래식하게 밀어붙이고 있다. 제공권을 다 장악한 것도 아니다. 이미 라스푸티차(비나 눈의 융해로 진흙이 생겨 이동하기 어려워지는 현상)가 시작되고 있어 기동로는 제한된다.

 

1941년 11월 진흙에 빠진 차를 밀고 있는 독일 국방군 병사들_출처 위키피디아.jpg

1941년 11월 진흙에 빠진 차를 밀고 있는 독일 국방군 병사들

출처 - <위키피디아>

 

포장도로로 움직이고 있는 러시아군에게 홈그라운드의 이점을 100% 살린 우크라이나군은 ‘상식적인' 대응을 하고 있다. 진격로를 제한하기 위해 다리를 폭파하고, 진격로로 예상 되는 곳에 대전차 지뢰를 매설하고, 보병들은 1인 1대전차 화기라 불릴 정도로 어마어마하게 많은 대전차 화기를 들고 매복한다. 후방에는 발이 묶인 기갑부대를 타격하기 위한 포병 화력도 준비해 놓는다. 덫에 걸리면 냅다 쏘고 박살 내는 거다. 상당히 효과적으로 싸우고 있다.

 

적절한 심리전까지 더해지니 러시아군으로서는 죽을 맛일 거다. 진격로가 제한된 상황에서 뻔히 매복이 예상되는 곳으로 병력을 밀어붙이는 러시아군 지휘관도 죽을 맛일 터이다. 러시아가 생화학 무기 이야기, 핵무기 이야기를 계속 흘리며 명분을 쌓는 건 러시아군의 조급한 상황을 보여주는 방증이라 할 수 있다. 진격로는 제한됐고, 보급도 벅차고, 제공권도 다 확보하지 않은 상황에서 시가전을 강요받고, 그것도 모자라 무조건적인 공격만 주문 받을 때의 답답함이란... 이들도 푸틴의 닦달에 질려 하고 있을 거다.

 

우크라이나 병사들_출처 경향신문.jpg

우크라이나 병사들

출처 - <경향신문>

 

괴뢰 정부가 우크라이나 국민들의 눈에는 어떻게 보일지, 그리고 우크라이나 내의 민족주의자들이 어떻게 나올지 안 봐도 훤하지 않겠는가? 이들을 억제하기 위해서라도 러시아군은 우크라이나에 주둔해야 한다. 이러면 그냥 꼭두각시 하나가 등장하는 거다. 이 흐름의 큰 그림을 그려본다면 우크라이나가 벨로루시, 러시아와 함께 연방국으로 끌고 갈 수 있는 토대가 되어준다는 점도 현 상황에서 가능성이 0%지는 않다.

 

2) 타협하는 경우이다. 언론에 흘러나오는 러시아의 협상 조건들을 보면 우크라이나에 상당히 굴욕적이다. 러시아는 아마도 지금 점령지를 모두 차지하는 것에 더해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을 영구히 금지하는 것 등등 몇 가지 조건을 내놓을 터이다. 젤린스키 대통령도 하나둘 자기 생각을 언론에 풀기 시작했다. 자기 생각이라기 보다는 ‘타협안'을 내놓은 거다. 영토 조건에 대해서 젤린스키도 어느 정도 타협을 할 수 있다는 걸 언론에 흘리기 시작했다. 이미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은 물 건너간 것 같고, EU 신속 가입도 EU의 거절로 어렵게 됐다.

 

러시아가 군사적으로 가장 필요로 하는 건 크림반도와 연결되는 육로다. 이걸 확보해 오데사까지 차지하면 우크라이나는 얼마 안 가서 고사될 거다. 물론 오데사를 점령하는 게 어렵겠지만, 헤르손과 마리우폴까지만 연결해도 러시아로서는 꽤 괜찮은 소득이다. 러시아가 흑해 통제권과 드네프르강의 수운 통제권을 확보한다면 우크라이나는 고사할 수밖에 없다. 이렇게 가다가 어느 순간 드네프르강 동쪽은 다 러시아 영토라고 하면?

 

러시아 우크라이나 침공 상황_출처 연합뉴스.png

출처 - <연합뉴스>

 

중요한 건 이것이 ‘중재'의 영역이란 점이다. 앞으로 주목해야 할 건 세계 각국 수반들의 움직임이다. 이들이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중재에 들어갈 거다. 이들의 역할에 따라 우크라이나의 영토 크기가 줄었다 늘어났다 할 터이다.

 

3) 러시아의 철군인데 이건 확률이 좀 낮다. 작금의 상황까지 끌고 온 러시아는 국가적 명운을 걸고 우크라이나를 박살 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계적인 제재나 反 푸틴 세력들의 내부적인 움직임 때문에 철군해야 한다면 이때도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에 그만한 명분을 줘야 한다. 그게 영토가 됐든 명문화된 협정이든 헌법이든 간에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에 ‘철군의 명분'을 줘야 한다.

 

우크라이나로서는 억울할 수도 있겠지만 국제정치란 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이미 일은 벌어졌고 이걸 수습해야 하는 상황이지 않은가. 시간은 우크라이나 편이기도 하지만, 우크라이나 편이 아니기도 하다. 러시아는 무조건 끝을 봐야 할 상황에 놓였기에. 

 

아무쪼록 전쟁이... 빨리 끝나길 기원한다. 어린이가 죽는 사진은 그만 보고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