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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022 한국 대선과 2016 미국 대선의 데자뷰

 

정치 관련 글은 쓰기 참 힘들다. 나는 과학, 기술 분야에서 평생을 일해온 살아온 사람이고, 정치, 사회는 주 관심 분야가 아니다. 하지만 정치, 사회는 사람들과 제일 직접적으로 연결된 분야이기 때문에, 가끔씩 정치 사회적으로 뭔가 일이 벌어졌을 때 글을 쓰지 않고는 배겨낼 수 없는 경우가 있다. 그럴 때는 아무리 바빠도, 밤에 잠을 안 자면서라도 글을 쓰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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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트럼프 연재는, 세상에 전혀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를 나 혼자서 찾아낸 것이 아니다. 이미 다 알려진 이야기이고, 미국에 사는 사람들은 뼈 속 깊이 경험하고 느낀 내용들이다. 내가 과연 한국에 계신 분들게 잘 전달할 수 있을까, 쓰기 전에 많이 망설였다. 

 

하지만 한국에서 트럼프에 대한 이해가 많이 왜곡되었다는 것을 느꼈고, 그걸 제대로 알려드리고 싶었다. 무엇보다도 2016년 미국의 비극이 2022년 대한민국에서 반복되면 안 된다는 생각으로 쓰기 시작했다. '어~어!' 하다가 당할 수 있다. 정신 차려야 한다. 위험은 여러분이 생각하는 것보다 가까이 있다. 이런 입장으로 썼던 글이다. 

 

쓰기 무척 힘들었지만, 사명감을 갖고 썼다. 물론 대부분 독자가 그러했듯, 나 역시 이재명 후보가 당선이 될 것이라고 믿었다. 그렇지 않았으면 논조를 조금 다르게 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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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말이 씨가 된다고, 길 건너는 사람에게 차 조심하라고 소리치자 마자 바로 사고가 나버릴 때, 그 소리 질렀던 사람으로서 느끼는 참담함이란... 참, 입이 방정이다. 그런 소릴 하지 말았어야 했나? 혹은 길 건너기 한참 전부터 잔소리를 늘어놨었어야 했나? 아니면, 이 모든 것이 어차피 벌어질 운명이었으니 그저 받아들여야만 하는 것인가? 생각이 복잡 해졌다.

 

<한국 대선을 위한 트럼프 체험기> 연재를 마치고, 앞으로 정치 글은 안 쓰겠노라고 다짐 했는데, 그로부터 48시간이 채 되기도 전에 번복을 하게 되었다. 편집부에선 온 한 통의 편지(?) 때문이었다. 내용인 즉,

 

“트럼프 체험기만 싸질러 놓고 어딜 내빼려고 하십니까. 후훗~! 시작할 때도 소리쌤, 당신의 의견이 반영되지 않았듯, 끝낼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다만, 우리는 당신에게 미국 지부 딴지특공대를 보낼 일이 없길 희망합니다.” 

 

“우리 요구는 간단합니다. 트럼프만은 절대 안 된다고 외쳤던 많은 미국인들이 그의 당선 이후를 어떻게 버텨냈는지, 그 시간을 겪은 사람으로서 한국 독자들께 하고 싶은 말은 무엇인지 등을 써서 보내주는 겁니다. 글고, 이 메일은 확인 한 시간 후에 자동 폭파할 것입니다. 그럼 이만...” 

 

나쁜 놈들(?!). 암튼 하아... 나 이렇게 방향 정해 놓고 글 쓰는 거 잘 못하는데, 에이쒸, 한번 또 써보게 되었다.

 

 

2. 죄송하고, 아쉬운 감정

 

이번 글을 새로 쓰면서, 먼저 나 자신을 돌아보니 여러분께 송구스런 감정이 든다. 내 글에서 지속적으로 던진 메시지는 트럼프가 뿌린 혐오의 정서가 미국을 병들게 했고, 독버섯처럼 세계로 퍼져 나갔다는 것이었다. 근데 그런 것을 고발하려 한 내 글도, 결과적으로는 혐오를 확대 재생산하는 데 일조 하였다는 것을 깨달았다. 

 

혐오 세태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는 것은 필요하지만, 나 역시 지켜야 할 선을 넘어서 트럼프 지지자들에 대해 막말을 내뱉으며 그들에 대한 혐오감을 숨기지 않았다. 독자들로 하여금 트럼프 지지자들이나 윤석열 지지자들을 혐오하는 감정을 부추기게 된 결과가 되었다. 바람직하지 못했다. 죄송스럽다.

 

혐오는 내 앞에서 끊겨야 한다. 내 뒤가 아니고.

 

 

3. 트럼프 시대, 힘들었고 그냥 버텼다

 

대부분 독자는 대선 결과의 충격에서 아직 헤어나지 못하고 있을 것이다. 분노, 현실 부정, 우울, 불면, 짜증 등 온갖 감정이 뒤섞여 있을 것이다. 끊었던 담배를 다시 태운 분들도, 건강상의 이유로 삼가던 술을 다시 입에 댄 분들도, 그냥 펑펑 소리 내어 울었을 분들도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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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럴 때 인생 선배가 생각날 수 있다. 비슷한 일을 먼저 겪은 선배(?) 말이다. 그리하여 트럼프가 당선된 이후, 미국 사람들은 어떻게 버텼을 지 궁금해할 분들도 꽤 있으리라 생각한다.

 

대단한 걸 바라셨으면 죄송스럽다. 사실 잘 버티지 못했다. 지난 연재에서 간간히 언급했지만, 트럼프의 비정상, 비상식적인 행보는 대통령 취임 이후에 더 심해졌으면 심해졌지 이전보다 조금도 개선되지 않았다. 정치인임을 떠나서 아니 인간으로서 어찌 그런 언행을 보일 수 있을까 의심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예를 들어, 기자회견 중 조금이라도 귀에 거슬리는 질문이 나오면 기자의 말을 그냥 끊고 못하게 한다. 그래도 계속 질문을 이어가면 기자의 자질이 없다는 둥, 무례하다는 둥 (여기자의 경우) 못생겼다는 등 인신공격을 한다. 

 

CNN의 짐 어코스타(Jim Acosta)는 트럼프 앞에서 그렇게 '버릇 없게(?)' 굴다가 백악관 출입증을 뺐기기도 했다. CNN의 또 다른 기자, 브라이언 카렘(Brian Karem)은 2017년 당시 백악관 대변인 사라 허카비 샌더스(Sarah Huckabee Sanders)에게 트럼프가 한 혐오적 발언과 불법체류자들을 비인도적으로 대하는 것에 대한 해명을 좀 '쎄게' 요구해서 밉보였는데, 2019년 백악관에서 다른 스태프와 언쟁 후 그의 백악관 출입증도 정지되었다. 거의 1년 후, 연방 항소법원에서는 백악관의 그러한 처사가 잘못되었다는 판결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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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와 CNN 기자 짐 어코스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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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N 기자 브라이언 카렘과

백악관 대변인 사라 허카비 샌더스.

 

트럼프는 기자들과 말싸움(?) 중에도,

 

“내가 그 지역 어디에 땅이나 빌딩을 소유하고 있다. 그 동네의 누구와 내가 잘 안다.” 

 

등의 자기 도취적, 과시적 발언을 계속했다. 그런 전혀 불필요한 말을 기자들과의 말싸움 도중에 왜 해야만 할까? 내가 이만큼 힘 센 사람이니 건드리지 말라는 말인데, 이건 대통령의 모습은 당연히 아니고, 지도자의 모습도 아니다. 자아 성장 발달이 전혀 이루어지지 않은 유아적 인격의 발현일 뿐이다.

 

이전 글에서도 언급했지만, 트럼프는 남 밑에서 혹은 남과 함께 공적인 자리에서 일해본 경험이 전무했고, 남에게 명령하고 호통치고 해고하는 자리에만 있었기에, 말대꾸(?)를 꼬박꼬박 해대는 기자들을 상대하는 것이 무척 짜증 났을 것이다(한국 독자분들은 미국 기자들의 이런 모습을 꽤나 부러워할 것 같다).

 

죄송한 말이지만, 여러분들, 마음의 준비를 하셔야 할 것 같다. 트럼프가 대통령이란 감투를 쓰고서 보였던 그런 행동들, 향후 대한민국에서도 일어날 가능성이 농후하다고 본다. 그런 일이 벌어질 때마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라는 마음을 먹어야 여러분의 정신건강을 지킬 수 있다.

 

영부인에 대해서도, 한국에 계신 분들, 마음의 준비를 하셔야 할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의 세번째 부인인 멜라니아는 패션모델 출신 답게 옷은 잘 입고 다녔는데, 기존의 퍼스트레이디 이미지와는 거리가 멀었다. 즉, 지적이고, 교양 있고, 우아한 모습을 보이며, 대통령의 국정 업무에 직접 참여하지 않으나 넓은 의미로 대통령과 한 팀으로서 사회에 도움이 되는 캠페인 활동을 독자적으로 펼친다거나 하는 그러한 영부인의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오히려 적절하지 못한 행동으로 구설수에 올랐다. 불법체류 구금센터에서 부모와 아동이 분리 수용되어 인권보호 차원에서 트럼프 행정부로 비판의 목소리가 컸던 적이 있었다. 그때 멜라니아가 텍사스의 한 아동구금 센터에 방문하면서 입었던 재킷에, 

 

“I really don’t care, do you?” 

(난 이딴 거 진짜 상관 안 해, 넌 하냐?) 

 

라는 문구가 써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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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기사 링크

 

이것이 일부 언론에 보도되고 구설에 오르자, 트럼프는 의례 그랬듯 미디어가 가짜뉴스를 퍼 나른다고 방어했다. 아니, 되려 미디어에 공격을 하며, 그에 관련된 추가적인 질문에 대한 답변을 일체 거부했다. 

 

멜라니아의 이 행동은 대통령 영부인으로서 매우 적절하지 않은 행동이었다. 더구나 그때는 트럼프 행정부의 불법체류자 구금 정책이 도마에 올라서 나라 안팎으로 시끄러웠을 때였다. ‘I don’t care’라니... 그녀가 나타내고자 하는 메시지가 정확하게 무엇인지는 알 수 없으나, 일상적인 수다나 잡담 중도 아니고 사회적으로 큰 이슈와 관련된 일을 하는 와중에 공개적으로 '아이씨, 개짜증나'식의 표현을 했다는 것이다(패션모델 출신이니 어떤 옷을 입느냐가 자기 표현의 한 방편으로 보아야 한다). 사춘기 중학생도 아니고, 도대체 뭥미?

 

이것 이외에도 ‘호’보다는 ‘불호’ 평가를 내릴 수 밖에 없는 몇 가지 요인이 더 있지만, 그럼에도 남편보다는 덜 구설수에 올랐다. 아마 사람들이 그 남편 욕하기 하도 바빠서 그랬을 것이다. 부창부수다. 암튼 윤 당선자 부인도 멜라니아 못지않게 한 성깔 할 것으로 보이니(더 할 수도?), 한국 분들 긴장하셔야 할 것 같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트럼프 시대를 어떻게 이겨냈나? 딱히 비결이 없었다. 힘들었고, 그냥 버텼다.  

 

 

4. 그래도 많이 도움 되었던 것

 

한 가지를 꼭 집어야 한다면 그나마 도움이 꽤 되었다고 할 수 있는 것이 있다. 수준 높은 정치 코미디 토크쇼들이다. 많은 힐링이 됐다. 나는 특히 스티븐 콜베어(Steven Colbert)의 열렬한 팬인데, 트럼프 등장 이후로 매일 밤 11시 반에 CBS에서 그의 토크쇼 ‘The Late Night Show’를 보면서, 그날 하루 동안 뉴스에서 보고 들었던 트럼프의 개진상 짓에 지친 마음을 위로받았다. 가끔은 옆 채널 ABC에서 지미 킴멜(Jimmy Kimmel) 라이브를 보기도 했고, 유툽에서 트레버 노아(Trevor Noah)의 데일리쇼(Daily Show) 녹화분도 자주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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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 콜베어의 ‘The Late Night Show’

 

이들 코미디언들은 탄탄한 정세 분석, 논리력, 그리고 허를 찌르는 재치로 사람들을 웃기는데, 보다가 아주 배꼽이 빠질 지경이었다. 김어준 총수 같은 통찰력에 유재석 같은 재치와 유머를 가진 인물들이라 생각한다. 

 

미국에서 2000년대 이전까지는 코미디언들이 정치색을 보이지 않았다(최소한 모든 사람이 보는 공중파 TV에선). 그런데 2000년대 이후 뻘짓하는 정치인들이 많아지면서 (대부분 공화당 쪽 인사들이다. 때로는 민주당 인물들도 대상이 되기도 한다) ‘Saturday Night Live’를 위시하여 이들을 풍자하는 코미디쇼가 인기를 끌게 되었다. 스티븐 콜베어가 공중파 TV에서 매일 하는 토크쇼에 정치 풍자 코미디를 성공적으로 정착시켰고, 지미 킴멜은 원래 정치 코미디언이 아니었지만, 트럼프가 뜬 이후, 시국이 시국인지라 정치 코미디를 자주 하게 되었다.

 

혐오와 증오에 대한 경계의 메시지를 전하다 보면, 본의 아니게 또 하나의 혐오와 증오에 대한 목소리를 내게 되는 경우가 있다(나도 이전 글에서 그랬듯이). 이들 정치 코미디언들은 혐오와 증오를 웃음으로 승화시켜서 사람들의 마음을 안정시키고 차분한 마음으로 내일을 준비하도록 도와주는 영웅들이었다. 이 글을 보진 못 하겠지만, 당시 내가 버틸 수 있게 해준 그들에게 감사의 뜻을 표한다. 

 

(참고로, 이들의 방송은 유튜브에서 쉽게 검색해서 볼 수 있다. 영어가 좀 되시는 분들, 이들의 특히 2016년 2017년 당시 비디오를 보시길 강력 추천드린다. 여러분도 힐링 받을 수 있다. 1시간짜리 방송 전체를 다 볼 필요 없고, 주로 15분 정도인 오프닝 모노로그를 보시면 그날 있었던 뉴스의 정리와 재미있는 풍자를 보게 된다. 스티븐 콜베어는 주옥 같은 비디오가 워낙 많아서 몇 개만 추천하기 힘들고, 지미 킴멜의 경우 다음의 비디오를 특별히 추천드린다)

 

 

(이 시작 부분은 당시 뉴스를 잘 모르면 이해하기 힘들 수도 있으니, 건너뛰고 중간 5분 정도부터 봐도 된다. 여기서 킴멜은 트럼프 지지자들 이해하고, 그들과 우리 모두 화합할 수 있는 대안을 제시한다. 바로 트럼프를 미국의 초대 왕으로 추대하자는 것! 영국 여왕을 모델로 하여 “그를 왕으로 받들어주고 실제 일은 시키지 말자. 그도 별로 일하고 싶어 하진 않는 것 같다. 그리고 플로리다에 화려한 성을 지어서 거기서 영원히 살게 하자” 뭐 이런 이야기를 아주 재미있고, 심각하게(?) 풀어나간다)

 

마음 한편에서는 이런 미국의 정치 풍자 코미디가 한국에 계신 분들께 얼마나 울림이 될 수 있을까 의구심이 들기도 한다. 분명 2016, 2017년 당시였다면, 한국에서 이런 정서를 이해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젠 상황이 달라지기도 했고, 지난 연말에 개봉한 영화 돈룩업(Don’t look up)에 대해 공감가고 재미있었다는 한국 평을 보며,  

 

“어! 저거 트럼프와 그 주변 인간들 직접적으로 풍자하는 영화인데, 한국 분들도 공감이 되는 부분이 많구나”

 

라고 생각이 들며, 미국의 상황에 대한 풍자라도 각자의 상황에 맞게 받아들이면 한국 분들께도 공감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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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돈룩업(Don’t look up)’

 

 

5. 트럼프 4년 동안 미국이 과연 얼마나 망가졌을까

 

많은 이들이 생각하듯, 트럼프 집권 후 미국은 망가졌을까? 2016년 대선 이후 집단 충격, 우울증, 불안증에 시달린 미국인들이 걱정했던 우려스런 일들이 실제로 벌어졌고, 회복 불능의 길에 접어들었을까?

 

대답은 간단히 말해, 반반이다. 

 

우려 했던 일들은 실제로 벌어졌다. 트럼프는 계속해서 증오심, 혐오심, 불안감을 증폭시켰다. 아무리 뉴스를 안 보고 정치에 거리를 두고 살려고 해도 나라 전체와 사회시스템이 대통령과 그의 영향에 따라 흘러가는 걸 피부로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이 부분은 사람마다 경험이 다를 것인데, 내 경우 트럼프 재임기간에 연방정부의 과학연구, 기술개발 지원 예산이 현격히 줄은 것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았다.

 

참고로 미국에서 대학 교수 혹은 연구원으로 연구 좀 한다는 사람은 대개 국립 보건원 (National Institutes of Health), 국립 과학재단 (National Science Foundation), NASA, 국방부(Department of Defense) 등 정부 부처나 산하 기관으로부터 펀딩을 받는 것이 보통이고, 그것으로 본인의 인건비를 충당하는 경우도 많다. 

 

연구개발 지원 예산 삭감 뉴스가 나올 때 마다 신경이 곤두서는 것은 당연하다. 트럼프 집권 이후, 기초과학 연구나 원천기술개발을 국가에서 지원하는 것이 낭비라고 하던 평소 그의 지론이 그대로 정책에 반영되는 것을 보고, '아, 따귀 한대에 침까지 뱉는 것이 이런 거구나'라는 것을 몸으로 경험했다. 

 

(미국 정부의 재정적자가 지난 20여 년간 슬금슬금 커져서, 어느새 천문학적 수준이 되어버렸다. 공화당 측에서는 이는 오바마 정부 때 정부가 심하게 비대해 졌고, 퍼주기식 복지예산의 남용 때문이라고 공세를 펼쳐왔다. 그런데 트럼프는 집권 후, 부자감세 정책을 밀어붙였고 (물론 본인 자신과 자기 가족들은 그 정책의 큰 수혜자) 결과적으로 적자 폭을 더욱 심화시켰다. 물론 공화당에서는 자기들이 하는 건 괜찮다. 간단히 말해 ‘가난한 사람을 도와주는 건 아깝다. 차라리 그 돈을 다른 정책보단, 부자들에게 배당해 주자’ 이 얘기다. 암튼 이렇게 더 심해진 재정적자는 아직도 오바마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이걸 보면 열이 안 받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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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CNN>

 

자, 이제 부정적이고 비관적인 얘기는 잠깐 접어두고, 최대한 냉정하게 바라보려 한다.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며 미국 국민들에게 끼쳐진 악영향은 분명히 존재하나, 미국의 사회시스템은 대체적으로 건재하다. 행정부가 트럼프 입맛대로 요리된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은 민주주의 국가에서 대통령이 바뀔 때마다 벌어질 수 있는 일이다. 대신, 입법부와 사법부가 제 기능을 하며 대통령의 전횡을 어느 정도 막을 수 있었다. 

 

반 트럼프 진영에서는, 공화당 의원들을 트럼프의 꼭두각시로 보는 시각이 있다(내 이전 글에서도 그런 식의 과격한 표현이 있었다). 영어로 이들을 "lap dog"이라 표현한다(무릎에 앉혀 놓는 반려견이란 뜻). 

 

하지만 이것은 정확한 시각은 아니다. 공화당 의원들은 나름의 철저한 정치적 계산에 의해 움직이지, 트럼프의 개 역할만 하는 것이 아니다. 하원에서 탄핵소추가 두 번이나 통과되었다는 것을 상기하자(상원에서 탄핵이 저지되었던 '결과'만 보지 말고, 하원에서 탄핵소추가 이루어진 과정을 보면 공화당 의원들도 소극적이나마 트럼프에게 저항의 메시지를 보였다고 볼 수 있다).

 

트럼프 재임 중 총 54명의 연방 항소법원(Federal Courts of Appeals) 판사가 임명되었는데, 상원에서 인준 과정이 꽤 까다롭기 때문에 함량 미달의 인물이 단순한 트럼프와의 친분이나 이해관계를 타고 임명되는 것은 불가능했다. 

 

한가지 눈여겨 볼 것은, 2020년 대선 결과에 불복하며 트럼프 캠프에서 득표 차이가 압도적이지 않았던 경합 주 몇 곳에서 무더기로 부정선거 소송을 걸었는데, 택도 없는 시도였다. 총 62개의 소송 중 61개가 원고(트럼프 캠프)의 패소 혹은 기각되었고, 1개만 승소했다(이 1개도 일부 투표소에서 사소한 절차의 위반을 문제 삼은 원고의 손을 들어준 것이고 결과에는 영향을 주지 못했음). 

 

해당 판사들은 절반 이상 트럼프나 부시에 의해 지명된, 즉 친 공화당 인사라는 점을 눈여겨봐야 한다. 61대 1이라는 스코어는 스테파너스 비버스(stephanos bibas) 펜실베이니아 제3 연방 항소 법원 판사(2017년 트럼프에 의해 임명됨)의 판결문을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위키피디아  스테파너스 비버스.PNG

스테파너스 비버스(stephanos bibas)

출처 링크

 

그는 판결문에 

 

“Free, fair elections are the lifeblood of our democracy. Charges of unfairness are serious. But calling an election unfair does not make it so. Charges require specific allegations and then proof. We have neither here”

 

(공정한 선거는 민주주의의 핏줄이다. 부정선거 의혹은 철저하게 조사해야 한다. 하지만 주장했다고 무조건 진실은 아니다. 원고 측은 선거 부정 혐의를 구체적으로 밝히지도, 그에 따르는 증거를 제시하지도 않았다) 

 

라고 적었다. (관련 기사 링크)

 

이런 사례를 볼 때, 권력분립의 중요성을 다시금 느낀다. 그리고 이러한 균형과 견제가 올바르게 작동하기 위해서는 대통령 선거 말고도, 상하원 의원 선거, 주 이하 지방자치단체 단위의 선거(예: 주지사, 주 상하원, 시장, 시의원, 교육위원 등 선거)도 매우 중요하게 여겨야 한다.

 

소망의 말씀을 드린다. 대한민국 민주주의에도 견제와 균형 시스템이 잘 돌아가길 바란다. 0.7%의 패배에 빠져 있지 말고, 저쪽이 0.7%로 겨우 이겼다는 것, 따라서 이쪽에서 견제와 균형을 할 입지를 잡았다는 것을 생각하길 바란다. 

 

 

6. 좌절과 분노를 넘어

 

한국의 대통령 임기 5년, 사실 꽤 길다. 강산의 절반이 변하는 시간인데, 일부 성급한 분들은, 다음 대선에서는 이래 저래야 한다 의견을 보이기도 한다. 이런 식으로 대선에 모든 것을 맞추고, 그 승패에 우리의 모든 것이 걸려 있다는 자세를 보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중간중간에 있는 선거들, 대선만큼이나 중요하다.

 

선거는 결과보다는 과정에서 배우는 것이 많다. 이번 대선 직전 어떤 분들은 '5천표 차이라도 이기면 되는 것이다'라고 했다. 글쎄, 한번 상상의 나래를 펼쳐보자. 

 

만약 이재명 후보가 0.7%의 승리를 거두었다면, 우리는 지금 마냥 승리의 기쁨을 만끽해도 되었을까? 아니다. 박빙의 승부에 대한 안도감보다는 미래의 불안감이 더 컸을 것이다. 민주당이 그동안 보여준 실망스런 모습, 불안한 리더십, 산적해 있는 이슈들, 젠더, 세대, 계층 간 갈등, 불안한 향후 부동산 흐름 등의 문제들은 3월 9일에 이재명 후보가 0.7% 차이로 당선 되었다고 해서 순식간에 풀리는 것이 아니다. 이 후보의 공약은 희망 리스트일 뿐, 성공의 보장이 아니다.

 

(물론 이 후보가 당선되는 게 훨씬 좋다. 그러나 상황이 이렇게 된 만큼 지금 상황에서 생각해보자는 것이다) 

 

저쪽에서 0.7%의 승리라는 결과에 취해 있을 때, 이쪽에서는 그동안의 과정으로부터 배워야 한다. 특히 혐오, 갈등 구도를 심화시킨 선거 전략에 대해서는 깊이 반성해야 할 것 같다. 물론 저쪽이 원인 제공자이고 훨씬 악랄하고 심했다고 볼 수도 있지만, 양쪽 손바닥이 만나야 손뼉이 쳐지듯, 무조건 저쪽 탓만 할 수 없다.

 

많은 분들이 2번 찍은 사람들, 그중 특히 20, 30대 남성층에 대해 ‘2번남’이라는 비하 의미가 담긴 표현을 사용하며 아쉬움을 표현한다. 아쉬움에서 원망으로, 원망에서 저주의 목소리로 변하기도 한다. 그들을 향해, “지 발등 찍는 짓을 한다” , “한번 당해봐라” 소리를 날린다. 어떤 사장님은, 앞으로 2-30대 직원들에게 최저임금 이상으로 연봉을 주지 않겠다고 하는 말도 한다. 만약 새로운 정부가 무상급식, 노인 복지 등을 줄이는 정책을 편다면 반대하지 않겠다는 말도 보인다. 심정은 충분히 또 충분히 이해한다. 나도 트럼프 당선 후에 똑같은 생각과 발언을 했었다. 

 

(나는 미국에서 기득권에 속한다. 트럼프가 연구개발 지원예산을 삭감한 것에 마이너스 영향이 좀 있었긴 했지만, 트럼프가 복지를 줄이는 것에 타격이 없고 부자들에게 감세를 해주면 나에겐 이득이다. 즉, 트럼프를 뽑은 이들에 비해 그의 정책으로 인한 타격이 훨씬 적고, 오히려 이득인 부분이 많다)  

 

하지만 그것이 우리의 지속적인 정서가 되어서는 안 된다. 순간의 화를 못 참고 미래의 큰 동력을 놓쳐버리기 때문이다. 

 

새 정부가 이들을 팽하고 혜택을 줄인다 할 때, '니들 한번 잣 되어바라’하며 그들을 완전히 포기할 것인가? 그보다는 그들의 어려움을 대변해 주고, 다음 선거에서 그들을 우리 편으로 만드는 것이 더 좋은 방법이라 생각한다. 아주 높은 확률로 절대(?) 생각이 바뀌지 않을 60대 이상은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젊은 층은, 그들을 이해하며 소통하려 노력하다 보면 희망이 있다. 포기하면 안 된다. 

 

근현대사를 배우며, 독립운동을 하면서도 뜻이 갈라져 있어 답답했던 상황을 기억하고, 오랜 시간이 지나며 공고해져 대한민국의 힘을 갉아먹던 지역갈등을 깨려 그렇게 노력했던 노무현 대통령을 생각해서라도 더 이상 우리 대한민국 국민들이 갈라져선 안 된다. 화가 머리 끝까지 치솟더라도 대화하고 이해하려 노력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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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제16대 총선을 앞두고 부산에서

연설하는 한나라당 허태열 후보와

그의 발언을 씁쓸하게 바라보는 노무현 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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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대 총선 당시, 지역갈등을 타파하기 위해

지역구였던 종로를 떠나

부산 강서을에 출마한 노무현 당시 후보.

큰 결심을 하고 출마했지만, 여건은 쉽지 않았고 낙선했다. 

 

마지막으로 다시 간곡히 부탁드린다. 

 

"혐오와 분열은 안 된다. 혐오는 내 뒤가 아닌 앞에서 끝내야 한다." 

 

 

소리는 어디에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