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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대통령 선거에서 이재명 후보가 패배했다. 득표율 불과 0.73% 차이. 많은 사람들에게 그렇듯, 2022년 3월 9일은 나에게 잊을 수 없는 기억으로 남게 되었다.

 

이번 대선에서, 나는 이재명 대선후보 캠프에 있었다. 보통 큰 선거가 있을 경우, 국회 보좌진들은 자신이 모시는 의원의 허가 하에 선거 캠프로 파견을 나가서 일을 하기도 한다.

 

사실 좀 힘들었다. 전력을 다했던 선거였다. 후보도 그랬고 캠프 구성원 모두 그랬다. 불리한 여론조사의 홍수 속에도 꿋꿋이 손을 맞잡고 마지막 순간까지 최선을 다했다. 이재명을 민주당 대선후보 중 가장 많은 표를 얻은 사람으로 만들어준 지지자들의 마음 또한 참담했을 것이다. 아무것도 보고 싶지도 듣고 싶지도 않았다. 그저 쉬고 싶다는 생각만 들었다.

 

그렇게 쉴 새 없이 울리던 핸드폰마저 의욕을 잃고 잠잠해질.. 줄 알았는데, 그건 아니었다. 딴지 편집부.

 

근육병아리 : 보좌관님, 좀 괜찮으세요?

 

보좌관J : 안 괜찮죠.

 

근육병아리 : 힘내셔야죠. 지선도 있고,,

 

보좌관J : 네.. 좀 쉬면 나아지겠죠.

 

근육병아리 : 네.. 쉴 때 쉬더라도, 글은 쓰고 누우세요.

 

보좌관J : (이 병아리샛기가...)

 

근육병아리 : 다 들리는데요, 보좌관님. 많이 힘드시죠?

 

보좌관J : 네 몸과 마음이 너덜너덜하네요.

 

근육병아리 : 그럼 그걸 쓰시면 되겠네요! 다음 주까지 보내주실 수 있으시죠?

 

보좌관J : 아 진짜 해도 해도 너무한..

 

근육병아리 : 아 잠시만요 보좌관님! 총수님이 아이코스 빌려달라셔서 (뚜-뚜-)

 

'근병'같은 괴랄한 필명을 쓸 때부터 알아봤어야 하는 건데.. 연재를 해보자는 꼬심에 덜컥 넘어간 내 업보다. 별수 없지. 아직도 좀 얼얼하지만, 선거 이후 2주간의 감정들을 남겨 볼까 한다. 선거가 끝났다고 모든 게 끝난 건 아니니까. 나중에 꼭 다시 볼 날이 있을 것이다.

 

기억 하나, 아침과 아침 사이

 

선거 당일 새벽 내내 잠을 설쳤다. 아침에 눈을 떠서 피곤했지만, 각성된 상태로 티비를 켰다. 선거일이 되면 사실상 모든 선거운동이 종료된다. 캠프에서 더 이상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뉴스에서 전국 투표율 집계가 중계되고 있었다. 아침을 먹는 둥 마는 둥 했다. 괜히 집 밖을 서성거렸다. 캠프 단톡방에서 다른 이야기들이 나오는 건 없는지 수시로 들여다봤다. 특별한 건 없었다. 그날, 캠프 사람들은 다들 그런 아침을 맞이하고 있었을 것이다. 서로가 서로에게 사소한 정보라도 물으며 1g이라도 안도감을 갈구하는 그런 상황. 정치 최일선에서 뛰는 보좌진들도 그날만큼은 특별한 정보가 없는 날이었다.

 

어수선한 하루였다. 사무실에 나갈까 생각도 했지만, 집 청소를 하기로 했다. 선거기간 내내 눈만 붙였다가 다시 나가는 일상의 반복에, 집이 엉망이라는 걸 그제서야 깨달았기 때문이다.

 

청소기를 돌리며, 이재명 후보와 윤석열 후보의 마지막 티비토론을 복기해봤다. 이재명 후보가 질 거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언론 지형이 아무리 기울어있어도, 여론조사와 다른 진짜 여론이 있을 거라고 기대했다. 대한민국 정치사에서 가장 많은 네거티브를 뚫고 살아남은 ‘최종 생존자’ 이재명과 대한민국의 집단지성을 믿기로 했다. 청소기나 행복 회로를 돌리는 것 말고는 딱히 할 수 있는 게 없는 아침이었다.

 

운명의 저녁이 되었다. 투표가 종료되고, 개표가 시작되었다. 개표방송의 발랄함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티비 상단의 득표율과 표차 숫자만 바라봤는데 시간이 어떻게 흘렀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새벽 3시가 넘어서야 겨우 눈을 감았다. 아침에 눈을 떴을 때, 혹시나 결과가 바뀌어 있진 않을까 하는 기대도 있었다. 하지만 그런 일은 없었다. 속절없이 아침이 찾아왔다. 24만 표. 0.7% 차이로 새로운 대통령 당선자가 결정되어 있었다. 알고 있었지만 정치, 참 얄궂다. 운명적인 이것들은 언제나 적응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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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뉴스1/ (링크)

 

기억 둘, 후유증

 

선거 이후, 이런저런 '산재(?)'에 시달렸다. 일단, 뉴스를 제대로 응시하지 못하고 있다. 토론장에서 쩔쩔매던 그분의 성함 뒤에 '당선자'라는 직함이 붙고, 그가 실수할까봐 노심초사하던 사람들이 '인수위'라는 새로운 팀명으로 불리는 것에 대하여, 익숙해지는 데에는 좀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

 

약간의 우울, 약간의 불면, 무기력증, 이따금씩 찾아오는 불안 증세 같은 것들도 있다. 심각한 근손실, 머리카락 손실, 피부 노화, 멀쩡히 잘 지내다가 무심코 나오는 깊은 한숨, 웃으며 잘 지내다가도 갑자기 올라오는 빡침 등등은 덤이다.

 

매번 선거를 겪을 때마다 느끼지만, 선거는 총 칼만 안 들었을 뿐 전쟁이며, 죽고 사는 문제다. 윤석열 본인, 장모, 부인, 장제원, 김웅, 곽상도, MB, 검찰의 봐주기 수사 의혹 당사자들, 관계자들 등등. 많은 사람들이 윤석열 후보가 당선됨으로써 구사일생 살아남아 가슴을 쓸어내리고 있을 것이다.

 

반대로 민주당 진영에선 앞으로 죽어야 할 누군가가 있을 것이다. 설마라고 생각할수도 있으나 윤석열 후보는 선거기간에 정치보복을 공언했다. 많은 선거를 겪었지만, 후보가 정치보복을 시사하는 말을 서슴지 않고 하다니 처음 보는 광경이었다.

 

기억 셋, 져서 배우는 것들

 

캠프 안에서 직접 선거를 뛰며 대선을 치른 건 이번이 두 번째였다. 승리했던 지난 대선에서는 알 수 없었던 것들을 온몸으로 학습하는 중이다. 역시 패배를 통해서 배우는 게 있다. 선거 기간 동안, 캠프를 가장 힘들게 만들었던 건 경쟁 후보 진영의 네거티브도, 언론의 파상공세도 아니었다. 민주당 내부에서 나오는 분열의 목소리였다. 선거가 끝난 후에도 마찬가지였다.

 

“너희들 그럴 줄 알았어”

 

“내가 진작에 경고했지?”

 

“내 말 안 듣더니 꼴좋다”

 

내부의 화살들, 그게 가장 아팠다. 민주당을 지지한다면서 선거 끝까지 우리 진영에 총질을 하고 그것도 부족해 지지자들의 가슴에 대못 박는 말을 서슴지 않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의 지적은 맞는 말도 아니었지만 백 번 양보해서 맞는 말이었다고 할지라도, 해야 될 때가 있고 하지 말아야 할 때가 있는 것이다.

 

정치인들은 선거 패배 후 꼭 패배의 원인을 어떻게든 찾아내려고 한다. 대개는 엄한 곳에서 그 원인을 찾는다. 의미도 감동도 없는 사과와 함께 통합과 포용이라는 공허한 가치를 제일 앞에 내세우기 바쁘다. 지랄맞은 소수가 당원 게시판을 완전히 장악했을 때, 많은 민주당 국회의원들은 그것을 민주당 내 다수 여론으로 착각했었다. 그들이 다수였다면, 당내 경선에서 이재명 후보가 압도적으로 당선되지도 않았을 테고 과거의 많은 당내 선거에서 그들이 밀었던 후보가 번번이 낙선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앞으로 민주당 비대위의 최우선 과제는 민주당을 지지한다면서 다른 당 후보를 열성적으로 지지했던 해당 행위자들의 처분이 돼야 한다. 검찰개혁, 언론개혁 민주당의 반성, 다 좋지만 당내 정리가 최우선이다. 당장 지방 선거를 앞두고 있기에 더욱 그렇다.

 

기억 넷, 위로의 라떼

 

“나 때는 더 심했어”

 

위로할 때 절대로 해서 안되는 말이다. 그런데, 이번 선거 패배 이후 정치권 선배들에게 들었던 '라떼 이야기'는 참 위로가 많이 되었다. 가깝게는 2012년 대선에서 문재인 후보가 독재자의 딸에게 무려 51.6%(기가 막힌 그 숫자)로 패배했을 때의 충격과 공포, 그 이후 일어난 일들. 좀 더 멀리 가서 1987년 대통령 직선제 첫 선거에서 전두환 가고 노태우가 뽑혔다는 등, 어떤 분은 자신이 선거 캠프 참모로 뛰었던 첫 총선에서 공안검사 출신에게 11표 차이로 졌다는 등의 이야기가 위로가 됐다. 패배의 아픔을 공감해 줄 수 있는 사람들을 만나는 것은 꽤나 도움이 되는 일이었다.

 

기억 다섯, 격세지감

 

선거가 끝나자마자 조선일보는 이제 와서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틀리지 않았다고 보도하고 있다. 언제나 그렇지만 그들의 문장은 기가 막히다. 삐딱한 자세로 노트북을 치던 기자들은 갑자기 동방예의지국에 입국이라도 했는지, 당선자에게 감히 질문하기에 앞서 “정말 외람된다"라며 몸가짐을 바르게 한다. 지금 대한민국에서 가장 중요한 뉴스는 윤석열 당선자의 점심 메뉴다. 꼬리곰탕, 김치찌개, 짬뽕, 피자를 먹었다는 둥의 보도가 포털 메인을 은하수처럼 수놓고 있다. 신문과 뉴스는 MB사면의 가능성과 김건희 팬카페 회원 수가 8만 명을 돌파했다는 뉴스를 버젓이 보도한다. 선거는 2주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풍경은 완전히 바뀌었다. 세상이 변한 걸까. 세상은 원래 그랬던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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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 여섯, 내가 만난 이재명

 

이재명 캠프에는 상근, 비상근을 포함한 2000명 이상의 인원이 있었다. 후보를 가까이서 만나는 일은 흔히 있는 일이 아니다. 나는 임무 상 4번 정도, 후보를 직접 가까이에서 보았다.

 

2022년 대선 캠프에서 내가 본 이재명 후보는 '꿈꾸는 소년'같은 사람이었다. 뇌물이나 청탁은 어른에게나 먹히는 거다. 어른들의 방정식이 통용되는 정치판에서 그는, 어찌 보면 이질적이고 어찌 보면 이상적인 인물로 느껴졌다.

 

“내가 아는 12년 동안 내가 그 사람(이재명)을 지켜보면서 얼마나 트라이(시도)를 많이 해봤겠나. 아유 씨알도 안 먹힌다”

 

대장동 개발사업 핵심 인물이었던 남욱 변호사의 말이다. 씨알도 안 먹힌다는 그의 말을 나는 바로 이해할 수 있었다. 그랬을 것이다. 무슨 짓을 해도 이빨도 안 들어갔을 것이다.

 

내가 본 또 다른 이재명은 타고난 전략가였다. 선거기간 중, 캠프 참모들과 후보의 견해가 다른 일은 많이 발생한다. 토론을 통해 방향을 잡는 것도 최종 결정을 내리는 것도 후보의 몫이며, 역량이다. 선거가 끝난 지금 돌이켜 보면, 이재명 후보의 판단이 캠프의 판단보다 옳았던 적이 많았다. 한 가지 예로, 유튜브 닷페이스 출연을 두고, 캠프 내부에서 많은 혼선이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출연은 매우 잘한 일이었다. 이외에도, 밝힐 수 없는 여러 사례들이 있다. 참모보다 뛰어난 후보였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이재명 후보는 본인 스스로 처절했던 삶을 살았다고 했다. 빈민가 소년 노동자에서 변호사가 되고 정치판에 들어와 지금까지 살아남았다. 우리가 기억하는 것은 대선에서 석패한 후보 이재명이지만, 그의 개인사 전체로 관점을 확대하면 그는 그의 삶을 기적에 가까운 추진력으로 여기까지 끌어왔다. 그러한 이재명의 삶엔 수없이 담금질 해온 생존 본능과 전략이 있다. 그의 캠프에서 일하며 그에 대해 느낀 점은 명료하다.

 

뭘 맡겨도 잘할 사람.

 

다짐 하나, 그리고 이재명

 

다시 생각해봐도 경쟁 후보였던 윤석열 캠프는 전에 보기 힘든 이상한 팀이었다. 각 단위에서 서로 다른 메시지가 나온다거나 후보가 해선 안되는 말을 너무 많이 한다거나 하는 실수가 많았다. 윤 후보는 선거판에서 절대로 해서는 안 된다고 알려진 말과 행동을 거의 다 했다. 1일 1망언은 성실한 수준이었다. 선거 전략적으로도 해서는 안 되는 말들도 많았다. 오죽했으면 후보가 실수할까봐 극도로 공개 활동을 줄이는 식의 전략을 펼치기도 했다.

 

이재명 후보는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했고, 윤석열 후보는 해선 안되는 모든 것을 다했다. 그런데도 윤석열 후보가 이겼다. 그 점이 중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민들은 왜 민주당에게 표를 주지 않았는가, 거기서 출발해야 한다. 거기서 오답을 찾아야 한다. 오답을 제대로 정리해야 실력을 기를 수 있다. 우리는 실력이 부족했다. 그래서 졌다.

 

민주당의 미래를 생각해야 한다. 민주당의 청년 정치인의 면면은 민주당의 앞날이다. 청년 정치인들이 당내에서 어떤 퍼포먼스를 보여줄 수 있을지, 아직 미지수다. 솔직히 말하면 회의적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회의만 해서 될 일이 아니다. 이상을 지향하며 끝없는 투쟁심을 보여줬던 민주당 선배 정치인들과, 새로운 가치와 뜻을 품고 현실 정치에 뛰어드는 후배 정치인들이 어떻게 같이 성장해나갈 수 있을지 맞대고 맞대고 또 머리를 맞대야 한다. 어쨌든 미래는 그들이 쥐고 있다.

 

우리는 이번 선거를 통해 이재명이라는 소중한 자산을 얻었다. 그는 몇 번이나 정치인으로서 끝났다는 말을 들었던 사람이다. 우리 사람이었으나, 우리 자산으로 평가받지 못했던 사람이다. 주머니의 송곳 같은 삶을 살아온 탓에, 그의 능력과 이미지는 오랫동안 철저히도 오염돼 왔다. 이번 대선의 가장 큰 수확은 그의 재발견뿐만 아니라, 그에게 주렁주렁 달려있던 모든 멍에를 모두의 간절한 염원으로 끊어내줬다는 것이다.

 

이번 대선은 결코 빈손으로 끝나지 않았다. 학습능력, 정책 역량, 추진력을 가진 그가, 문재인 정부가 닦아놓은 선진국의 진입로에서 핸들을 이어받을 가장 적격인 리더라는 것이 이쪽에도 저쪽에도 증명되었다. 대통령만 리더가 아니다. 국민 절반의 염원을 담아낼 야당의 리더 이재명도 우리에겐 절실히 필요하다.

 

대통령 후보로서 피력했던 그의 정치는 거대 야당의 리더로서, 계속 진화할 것이다.

 

성장은 원래 그의 주특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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