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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대학교는 조민 씨의 의전원 입학을 취소했고 고려대학교에서는 조민 씨의 입학허가를 취소했다. 한동훈 검사는 검언유착 의혹에 대해 소환 조사를 한 번도 받지 않고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유시민 작가는 한동훈 검사장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징역 1년을 구형 받았다.

 

대선이 끝나자, 기다렸다는 듯이 사건들이 신속하게 결론나고 있다. 정치는 먹고사는 문제가 아니라 실은 죽고 사는 문제임을 다시 한번 깨닫는다. 누군가에겐 잔인한 계절이 지나가고 있다. 속절없이 따스해지는 봄기운 어딘가에 착잡함이 묻어있다. 그러든가 말든가, 올해에도 어김없이 국회 밖 윤중로에는 벚꽃이 흐드러지게 폈다. 너희들 사정이 어찌 되었든, 그래봤자 별일 아니라는 듯이.

 

그르타. 어차피 시간은 흐른다. 이 헛헛한 봄날이 지나면 좀 다른 여름이 올 것이고, 이어질 가을과 겨울이 되면 생각지도 못한 또 다른 어떤 정치에 우리는 매진하게 될 것이다. 지금 우리가 할 일은, 그때를 위해 할 수 있는 것들을 해가며 후일을 위한 똥꼬발랄한 에너지를 비축해두는 것이다.

 

봄 이야기를 꺼낸 김에, 만개한 벚꽃과 어울리는 선덕선덕한 이야기를 함 해보자. 이름하야 여의도 남녀상열지사. 보좌진들이 국회에서 썸 타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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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근두근 여의도

 

왜인지 국회에 다들 늙다리들만 있을 것 같지만, 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국회는 젊다. 의원 평균 나이도 점점 어려지고 있을뿐더러, 그들을 보좌하는 보좌진과 국회 직원들은 말할 것도 없다. 나이 많은 의원과 선임 보좌관들이 주로 매스컴에 등장하기 때문에 생기는 착시다. 국회 인력의 평균 나이는 웬만한 직장과 비교해도 낮은 편에 속한다.

 

대학 졸업도 안한 20대 초중반의 학생들이 ‘대학생 명예보좌관’, ‘인턴’, ‘입법보조원’ 등의 이름으로 국회에 출근을 한다. 여야를 가리지 않고 각 국회의원실에서 청년 인재를 채용하는 것은 일종의 흐름이 되었다. 덕분에 20대 후반부터 30대 초반의 보좌진들이 대거 국회로 영입 됐다.

 

국회 사람들의 평균 연령이 낮은 또 다른 이유가 있는데, 이건 좀 슬프다. 보좌관이라는 직업은 고용 안정성이 떨어지고 정신적 스트레스가 많은 편이다. 웬만해선 오래 버티기 힘든 직종이다. 40대 후반이 되기도 전에 은퇴하거나 이직하는 이가 많다. 아직 '덜 갈린' 남은 보좌진들의 평균 나이가 어려질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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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jtbc<보좌관>

 

뿐만 아니다. 때깔 좋은 정장을 쫙 빼입은 저년차의 국회 출입 기자들, 이런저런 이유로 국회를 드나드는 각 부처, 기관 실무자들, 모두 비슷한 또래의 청춘 남녀다. 국회만큼 연애 적령기(?)의 사람들이 많이 모여드는 곳도 드물 것이다.

 

봄바람이 분다. 창문 너머 윤중로에 벚꽃이 팝콘처럼 파파박 튀겨 오른다. 봄바람 휘날리면 울렁이는 기분 탓에 나도 모르게 배드민턴 치자고 부르는 장범준의 멜로디가 국회 이곳저곳에서 흘러나오지 않을 재간이 없다.

 

짠내나는 국회생활

 

의원실은 각각의 독립된 회사와 같다. 웬만해선 딱히 엮일 일은 없다. 사실, 각자 회사일 하기도 바쁘다. 그렇지만, 의원들이 같은 상임위라면 다른 의원실 직원들과 회의할 일도 꽤 빈번하게 있다. 진짜로 위험(?) 한 건 사무실이 물리적으로 가까울 때다. 화장실 가는 동선이 겹치고, 밥 먹고 커피 마시러 가는 길목에 자꾸 마주친다. 간단한 목례가 인사가되고, 인사는 안부가 된다. 몸이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지 않은가. 반대도 똑같다.

 

모든 사내 연애가 그렇듯 대놓고 썸씽스페셜한 광경이 벌어지는 일은 드물다. 그런데, 국회에서 염문설이 잘 돌지 않은 것은 좀 다른 이유가 있기도 하다.

 

보좌진이라는 직업은 바깥에서 보기엔 꽤나 그럴싸해 보일 때가 많지만, 실은 불안과 불확실성에 시달리는 것이 일상이다. 어떤 의원과 일하느냐, 그 의원이 어떤 정치를 하느냐에 따라 언제 어떻게 그만두게 될지 의원도, 본인도, 건진법사도 모른다. 주말 밤낮없이 일하다가 의원 전화 한 통화에 후다닥 뛰어나가게 되고, 가끔은 자존감을 흔드는 상황 속에 속절없이 허우적대는 모습을 서로에게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관계다. 서로가 측은했다가도, 결국 거울처럼 자기 모습으로 돌아오기도 한다. 측은지심이 연애 감정으로 발전하기에 역부족인 때도 많을 것이다.

 

의외로 많지 않다고 했을 뿐, 당연히 없지 않다. 전쟁통에도 사랑을 나누고 오징어 게임 중에도 썸을 타는 법. 어떻게든 커플은 생긴다. 국회는 넓고 남녀는 많다. 봄바람이 부는 마음은 국회의장이 필리버스터를 해도 못 막는다. 다채롭고 다양한 경로로 서로의 마음을 알아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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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jtbc<보좌관>

 

로미오와 줄리엣

 

의원실 사이에 소개팅도 간혹 있다.

 

"우리 사무실 후배가 참 괜찮은데 만나볼래?"

 

물론 이런 경우는 주로 같은 정당 소속에 한해서 일어나는 일이다.

 

자연스럽게 드는 질문. 서로 다른 정당 보좌진들이 연애하는 경우가 있을까.

 

있다. 내 주변에서도 한 커플 본 적이 있다. 여자분이 보수정당이었고, 남자분은 진보정당이었다. 이 눈물겨운 로미오와 줄리엣은 놀랍게도 이미 결혼까지 해서 행복하게 잘 먹고 잘 살고 있다. 로미오 선배와 따로 밥을 먹다가 그들의 부부생활에 대해 물은 적이 있다.

 

"형수님하고 정치적 견해 차이로 부부 싸움을 할 때도 있나요?"

 

누가 보좌관 아니랄까봐 내 질문도 상상력이 빈약했지만, 돌아오는 선배의 답은 더 가관이었다.

 

"보편복지냐 선별복지냐 문제로 미친 듯이 싸우곤 해."

 

같은 정당에서 부부가 탄생해도 상황은 별반 다르지 않다. 민주당 소속 보좌진 부부 커플 중에 TK 출신 여성 보좌진과 호남 출신 남자 보좌진이 있는데 신혼 시절 저녁에 함께 9시 뉴스를 보면서 지역 정치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가 점점 언성이 높아지더니 화가 난 신부님께서 밥 먹던 숟가락을 신발장으로 던졌다나 어쨌다나.

 

여사님이 보고계셔

 

아무튼. 그들이 아무리 국회 내에서 남몰래 은밀하게 치열하게 연애사업을 벌인다 해도, 세상에 완벽한 비밀은 없다. 국회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손바닥 보듯 훤히 지켜보는 이들이 있으니, 국회 청소 및 환경 관리를 해주시는 직원분들과 국회 경비를 담당하는 방호과분들 되시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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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은 보좌진들이 출근하기 전이나 모두 퇴근한 시간에도 일하시는 분들이다. 국회 건물이 아무리 넓고 사각지대가 많아도 이들의 레이더를 벗어나지 못한다. '어느 의원실 누구랑 어느 언론사 누구랑 아무래도 심상치가 않다더라'라는 동향 파악과, '누가 누가 새벽에 어느 복도에서 뭐하고 있다더라'라는 고급 정보나, '어떤 썩을 놈이 국회 내에서 양다리를 걸치고 있나 보더라'하는 특종은 바로 이 국회 수비대분들로부터 나온다는 썰도 있다. 믿거나 말거나. 

 

 

국회 보좌진들에겐 1년에 두 번, 대형 로맨틱 이벤트가 있다. 여의도 ‘봄꽃 축제’ 와 ‘불꽃 축제’. 봄꽃 축제는 많은 보좌진들이 누린다.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에 윤중로 벚꽃길이 있기 때문이고 봄 시기에는 국회가 크게 바쁜 일이 없기 때문이다. 반면, 불꽃축제는 보러 가기 쉽지 않다. 가을은 국정감사 기간이라 보좌진들에게 잠깐의 여유도 없기 때문이다. 국회 10년 차 선배는 여의도 생활하며 불꽃 축제를 딱 1번 봤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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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 일

사진출처 -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