딴지에 리뷰노예로 납치된 불가사리. 거액의 제작비로 복수하겠다 다짐했지만, 딴지가 던져준 주제는 온통 싸구려들. 불가사리는 그럼에도 어떻게든 등골을 빼먹으려 노력하지만, 편집장 죽지않는돌고래(이하 죽돌)가 이번에 제시한 미션은 '돈이 들지 않는 리뷰'. 아니 잠깐, 이게 말이여 방구여. 진짜 뭐 이런 데가 다 있어.
불가사리 : 접니다.
죽돌 : 네. 무슨 일이시죠?
불가사리 : 제가 하고 싶은 말입니다. '돈이 들지 않는 리뷰'라니 대체 이게 무슨 일 입니까. 뭐 미세먼지라도 리뷰할까요?
죽돌 : 오 가능하신 겁니까? 신박한데요.
불가사리 : 아니 진짜 뭘 말 같은 소리를 해야죠!
죽돌 : 아시겠지만, 이제 딴지가 '정권교체'라는 새로운 모토로 전환 중이라 회사가 이래저래 어수선하네요. 이럴 때 일수록 필진들이 같은 마음으로 국난극복에 힘껏 동참해 주셔서 참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불가사리 : 지금 그게 맞는 문장 호응인가요? 보통은 "동참해주길 부탁드립니다"라고 합니다.
죽돌 : 엇. 잠시만요. 새 법무부 장관 인선 속보가 떠서요. (뚜-뚜-)
하 진짜.. 잠겨있는 아이폰 마냥 가슴이 답답하다. 아니 뭐 법사님들 도력이라도 리뷰를 해야 하나.. 아니 근데 것도 복채가 들잖아? 아 어쩌라는거야! 이 미친 돌고래.
막 나가는 딴지의 폭압에 연일 계속되는 음주와 폭식으로 지쳐 있던 불가사리, 숙취에 쩔어있다가 우연히 인터넷 기사를 보게 된다.
근래 대통령 인수위에서 ‘만 나이 통일’을 한다는 것. 구체적으로는 ‘세는 나이(한국식 나이, 여기서는 ’세는 나이‘로 통일한다)’를 없앤다는 윤 대통령 당선인의 공약에 따른 것이라고 한다. 이건 또 뭐야..
그래. 나도 막 나가 보지 뭐. 나이나 리뷰해보자. 나이 먹는 게 돈 드는 건 아니잖아? 나도 이제 내가 뭔 소리를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대체 왜 그러는 걸까
그런데 아무리 불가사리가 맛탱이가 가 있다고 해도 이건 좀 당황스럽다. 애초에 대한민국에서 ‘만 나이’가 아닌 나이, 특히 ‘세는 나이’는 공식적으로 인정되거나 사용된 적이 없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의 모든 법에서 나이는 이미 만 나이로 통일되어 있다(‘연 나이’가 있지 않느냐는 반박을 할 수 있는데, 그렇게 보기 어렵다. 이에 대해서는 뒤에서 설명하겠다). 대한민국 민법이 처음 생긴 것이 1960년이다. 이때부터 연령의 계산은 출생일을 산입, 즉, 태어난 날을 1일로 계산하는 만 나이를 표준으로 하였다.
민법 제158조 (연령의 기산점) 연령계산에는 출생일을 산입한다(1960. 1. 1. 제정)
그렇다면 1960년부터 인정된 것이냐고 한다면 그것조차도 아니다. 민법이 생기기 전에는 흔히 ‘구민법’이라 하는 일본 민법에 따랐는데 여기서도 만 나이를 표준으로 하고 있다. 즉 대한민국이 생기기 전부터, 아무리 늦어도 대한민국이 생긴 후부터, 정말 늦게 보아도 1960년부터 ‘세는 나이’는 법이나 제도의 틀 안에서 인정된 바가 없다. 오직 사람들이 관습적으로, 문화적으로 사용할 뿐이다.
즉, 법적으로는 처음부터 ‘만 나이로 통일’되어 있었기 때문에, 이미 통일된 것을 다시 통일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일이다. 그니까 새 정부의 연령 정책은
‘드디어 미터법으로 통일!’
‘드디어 서울말을 표준어로 통일!’
과 같은 말이라는 거다.
왜 나이를 세는지 생각 해봤냐구
과거에 공공기관 등에서 여전히 ‘만 나이’외 다른 나이의 사용을 하는 경우들이 있었는데, 이를 금지하고 ‘만 나이’만을 사용하게 한 것이 1962년 1월 1일부터이다.
어제 기사가 아닌 1961년 조선일보 기사. ‘새해부터 나이를 만으로 통일’
그렇다면 현실적으로 ‘세는 나이’를 법과 제도를 통해 없애는 방법은, 오직 사람들이 ‘세는 나이’를 사용하지 못하게 금지하는 방법만 남는다. 비슷한 예가 평, 근 등의 표현을 사용하지 못하게 하고, 이런 단위를 사용할 경우 처벌할 수 있게 한 ‘계량에 관한 법률’이 있다.
계량에 관한 법률 제6조(비법정단위의 사용금지 등) ② 누구든지 비법정단위를 계량이나 광고에 사용해서는 아니 된다.
제73조(벌칙)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자는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거나 이를 병과할 수 있다.
2. 제6조제4항을 위반하여 법정단위 표시 명령 또는 제42조제1항에 따른 정량표시 명령 또는 표시의 정정요구를 이행하지 아니한 자
제76조(과태료) ①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자에게는 300만 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한다.
1. 제6조제1항을 위반하여 비법정단위로 표시된 상품을 제조하거나 수입한 자
②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자에게는 100만 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한다.
1. 제6조제2항을 위반하여 비법정단위를 계량에 사용하거나 광고에 사용한 자
국가표준기본법
제10조(기본단위) ① 제9조에 따른 기본단위는 다음 각 호와 같다.
1. 길이의 측정단위인 미터
2. 질량의 측정단위인 킬로그램
계량법에서 현실적으로 주로 처벌의 대상이 되는 것은 공적 문서나 언론이다. 그런데 한국의 경우에는 진작부터 절대다수의 언론들이 ‘만 나이’만을 사용해 왔다. 공공 기관이나 공기업 등도 마찬가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는 나이’가 근절되지 않고 있으므로 결국은 이 개념을 사용하는 민간인을 처벌하는 것 외의 현실적은 방법은 없다.
너 여섯 살인데 일곱 살이라고 했으니 벌금!
부장님 저 만 29세 360일인데 30대라 하셨으므로 고발합니다!
이런 것.
그런데 민간인이 나이를 말하는 것이 처벌까지 할 일인가? 솔직히 반쯤 농담이지 정말로 처벌까지 할 리가 있겠나? 그렇다면 과연 ‘세는 나이’를 없애는 것은 가능한 것일까?
이를 생각하기 위해서는, 우선 ‘세는 나이’란 오직 한국에서만 사용하는 것으로 글로벌 스탠다드에 맞게 변경해야 할, 근절해야 할 악한 것인지부터 검토가 필요하다. 사람들이 오래 사용해 온 이유는 무엇인지, 왜 외국에서는 사용하지 않는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한국에서는 그렇게 끈질기게 사용하고 있는지에 대한 고찰이 필요하다는 거다.
세는 나이
한국인들은 나이를 말할 때 ‘몇 살’이라고 한다. 혹은 한자로 ‘몇 세(歲)’라고도 한다. 여기서 ‘세(歲)’는 한 해, 설날을 의미한다. ‘설날’이란 음력 1월 1일을 말하지만, 한 해 자체를 뜻하기도 한다. 그래서 설에 하는 절을 ‘세배(歲拜)’라고 부르고 설 무렵 하는 풍습을 세시풍속(歲時風俗)이라 부른다. 한편 ‘몇 살’의 ‘살’은 ‘설’이 변화한 것이므로, 결국 ‘세’와 정확히 동일한 뜻이다.
즉 나이를 ‘몇 세’, ‘몇 살’이라고 부르는 것은, 태어난 후 몇 번째 해를 맞았느냐는 것을 의미한다. 불가사리는 2020년 4월에 태어났으니, 2020년은 나의 첫 번째 세歲이고 설이고, 나는 1세(歲)이자 1살(설)이다. 이해하기 어려우면 직장 생활 ‘몇 년 차’, 대학교 ‘몇 년 차’를 생각하면 된다. 내가 직장 생활을 10월에 시작해서 아직 1일밖에 되지 않아도 ‘1년 차’인 것, 3월 3일에도 대학 신입생은 ‘1학년’인 것과 같다.
애초에 ‘몇 살’, ‘몇 세’라는 것 자체가 ‘만 나이’가 아닌 ‘세는 나이’ 또는 ‘당년(當年)’을 의미한다. 반면 영어에서는 25세의 경우 Years old라는 표현을 쓴다. 말 그대로 ‘(태어난 후부터) 몇 년(years)이 흘렀는지’를 말하는 것으로, 말 뜻 자체가 ‘만 나이’를 의미한다.
‘세는 나이’는 동아시아에서 매우 일반적인 것이었다. 황하 문명에서 시작된 중국 문명은 빠른 시간 안에 농업을 발달시켰고, 농사를 위해 역법을 빠르게 확립했다. 어찌나 빠르게 확립했던지 ‘0’이라는 개념이 발명 또는 사용되기 이전부터 시작된 계산이었기에, 무엇이 시작된 시점을 ‘0년’이 아닌 ‘1년’으로 부르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기원 전, 서구권의 경우에는 17세기가 되어서까지도 ‘나이’란 사실 중요하지 않았다. 생일을 챙기는 문화도 나중에야 생겨났고, 태어난지 몇 년이 되었는지를 따지는 것은 힘든 일인데다 할 필요가 없는 일이었다. 기본적으로 달력이 확립되어야 날짜가 의미가 있을 터인데, 동서양을 불문하고 달력이 확립된 것은 기원 후의 일이고 그나마도 일 단위에서 월 단위의 차이는 계속 존재했다. 태양력과 태음력이 확립되어 오늘이 며칠이라고 명확히 말할 수 있는 것은 중세 이후의 일이다. 게다가 달력만 없는 것이 아니라 시계도 없었기에, 오늘이 며칠인지 정확히 아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저 쉽게 파악할 수 있는 달의 모양, 절기 등을 토대로 농사에 도움이 될 정도로만 알면 되는 것이었다. 이렇듯 날짜는 물론이요, 농업과 유목에 ‘나이’란 중요할 이유가 딱히 없었다.
진시황의 ‘병마용’의 모습. 병마용은 진시황의 무덤 중 극히 일부분의 규모로 추정한다.
정확한 ‘나이’를 세는 것에 의미가 생긴 것은 중앙집권화된 국가 또는 제국이 생겨난 이후의 일이다. 시황제가 진나라를 세우고, 법을 만들어 개인을 통치하게 되면서 세금의 징수와 병역 징집 등을 위하여 나이의 기준이 필요해졌다. 법으로 모든 사람을 관리하게 되면서, 사람들의 성장 상태를 묶어낼 기준이 필요해진 것이다.
이를 '나이'라 불렀다. 거대한 나라는 법만으로 다스려질 수 없다. 진나라를 이은 거대 제국 한나라는 통치 이념으로 유교를 도입했다. 유교란 이 세상 모든 일과 모든 사람에게 역할을 부여하고, 그 역할들 사이에는 모두 순서, 질서(禮)가 존재한다는 것이었으며, 이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는 것(君君臣臣父父子子)이 공동체의 평안과 개인의 행복을 보장해 준다고 보는 이념이었다. 유교 이념 아래에서 어린이와 나이 든 사람의 구분이 생기고, 장유유서, 즉, 어른과 아이 사이에는 순서(차례)가 있다는 개념이 생겼으며, 이를 명확하게 하기 위해 나이를 셈할 필요성이 늘어났다.
중앙집권화된 국가와 유교 이념 덕에 나이가 필요해진 부분도 있지만, 문화적, 과학적 발전으로 인해 나이를 셀 수 있게 된 부분도 있다. 당시의 역법으로 정확한 날짜를 특정하는 것은 쉽지 않았으나, 적어도 오늘이 일 년의 언제쯤이고 몇 년인지 셀 수 있게 된 것은 대단한 발전이었다. 이렇게 나이를 셈할 수 있게 되었을 때, 나이의 기준은 당연히 생일이 아닌 새해였다. 당시의 역법으로 정확한 날짜를 만드는 것이 매우 힘든 일이기도 했고, 애초에 ‘나이’란, 구분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었으므로 새해(歲, 설)를 기준으로 몇 년 차인지 정하는 것만으로 충분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에서 동아시아는 ‘세는 나이’를 발전시켰다.
성리학이 고도로 발전하고, 한 국가가 한 사회 하나의 공동체로서의 특징을 명확히 가졌으며, 관계가 아닌 절대적 기준에서 존댓말을 사용하는 어법을 형성시킨 한반도에서는, 나이를 셈하는 것은 굉장히 당연하고 중요한 일이 된다. 조선시대 10년 이내에는 통교를 하여 친구로 생각하는 경우를 종종 발견할 수 있어 나이가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고 보는 경우도 있으나, 한 살 더 먹었다고 서로 말다툼을 하는 기록도 얼마든지 있다. 적어도 나이를 셈하는 행위 자체는 매우 당연하고 흔하게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정리하자면, ‘세는 나이’는 일종의 ‘몇 년 차’, ‘몇 학년’과 비슷한 개념으로, 이는 동아시아에서 폭넓게 사용되었으며, 한국에서는 존댓말과 연관되어 더 적극적으로 사용되었다. 이를 두고 ‘만 나이란 태아였을 때 시기도 계산하는 것’이라는 말을 하는 사람도 있으나 아무런 근거가 없고, ‘만 나이’의 도입에 저항하기 위해 한국에서 70년대 이후 발명된 민간 기원의 도시 전설이다.
만 나이
같은 시기 유럽 문화권에서는 ‘나이’를 동아시아만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한국인들이 자기소개 바로 다음에 나이를 말하는 풍습을 현재에도 서구권에서 당황스러워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서구는 중세시대 내내 봉건 사회였고, 나이를 셈하는 것이 중요해진 것은 적어도 16세기 이후다. 이미 ‘0’의 사용이 보편화되고 역법이 고도로 발전한 시기였기에 굳이 ‘세는 나이’와 같은 셈법이 등장할 필요가 없었다. 게다가 서구의 근대는 집단 속 개인의 역할보다 개인의 자기실현과 그에 대한 집단의 형성을 강조했던 ‘사회계약론’에 기반했기에, 개인의 나이는 태어난 시점을 기준으로 하루하루를 셈하는 것이었다. ‘만 나이’가 일반인들에게도 사용되는 보편적 개념이 된 것이다.
만 나이가 제대로 등장한 이후에도 유럽 문화권에서는 나이를 셈하는 일은 여전히 중요한 일이 아니었다. 나이가 중요해진 것은 일반 징병, 보통교육, 아동노동의 금지, 의료의 발전 등이 이루어진 시점, 즉 18세기가 되어서의 일이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국가 단위에서 중요한 것이지 개인 간의 관계에서 나이를 이야기할 이유는 없었다.
유교와 사회계약론의 차이도 있었고, 중앙집권화 역사의 영향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이 시기를 거치면서 나이에 기반한 존댓말이 거의 형성되지 않았던 영향이 컸다. 그래서 세세하게 연과 달을 따진 나이 'Years Old'보다는, 전체적으로 ‘세대’라는 뜻이 더 강한, 대략 10년 단위 정도는 묶어낼 수 있는 'Age'의 개념을 사용했다. Age는 현대에는 구체적인 나이를 뜻할 때도 쓰지만, Middle Age, The Age of Empires처럼 ‘세대’ ‘시기’라는 뜻이 더 강하다.
사랑했다. 절대로 스타 못해서 대신했던 거 아니다.
보통교육이 보편화되고 의무교육까지 생기며, 근대 국민국가가 법으로 개인을 구분하고 통제하는 시기가 되는 19세기에 들어서부터는 정확한 나이가 중요해지기 시작한다. 역법과 수학의 발전으로 나이를 세는 것이 매우 쉬운 일이 된 영향도 있다. 좀 더 정확하게 내가 태어난 지 몇 년 몇 달이나 되었는지를 알려주는 만 나이가 더 과학적이고 정확한 것이 되었고, 근대화의 상징이 된 것이다.
이런 이유에서 동아시아 국가들도 서구적 근대화를 도입할 때 ‘만 나이’를 시도했다. 동아시아에서 역법과 도량을 정하는 것은 황제의 일이자, 국가의 근본을 정하는 것이었다. 이에 태양력의 도입(필연적으로 ‘음력 설날’의 폐지와 함께 한다), 미터법의 도입, 그리고 ‘만 나이’의 도입은 곧 국가의 근본을 서구적으로 바꾼다는 것을 의미했다.
일본은 1868년 메이지 유신부터 ‘만 나이’에 대하여 이야기하기 시작하여, 영일동맹으로 세계열강의 지위에 올라선 1902년에 공식적으로 ‘음력 설날’과 함께 ‘세는 나이’를 금지시켰다. 처벌 규정까지 둔 법이었으나 민간에서는 여전히 설과 나이를 과거처럼 사용하는 경우가 있었기에, 패전 직후인 1950년에는 다시 한번 법으로 음력과 ‘세는 나이’를 금지하고 양력과 ‘만 나이’만을 사용하도록 했다.
중국은 1912년 신해혁명 당시 마찬가지로 ‘음력 설날(당시에는 원일元日이라 불렀다)’과 ‘세는 나이’를 금지시켰는데, 민중들은 별로 반응하지 않았다. 1928년 장제스의 국민당 정부는 ‘신력사용 구력폐지안’을 올리는데 음력(특히 음력 설)의 철폐와 ‘세는 나이’의 금지를 중요한 내용으로 했다. 이에 민중들은,
‘이건 음력을 쓰는 게 아니라 봄을 축하하는 거니까 걱정말라구!’
라고 하면서 음력 설 춘절(春節)을 여전히 고수했다. 마오쩌둥의 공산당은 국민당 정부의 ‘구력 철폐’를 비판하면서 이득을 꽤나 얻었던지라, 정부 형성 이후 양력과 ‘만 나이’를 표준으로 하되 춘절 휴가를 주고 ‘세는 나이’를 금지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1967년 문화대혁명이 시작되면서, 다시 강력하게 춘절이 금지되었다. 폭죽, 용춤, 세배 등도 봉건풍습이라며 금지되었으며, ‘세는 나이’도 엄격히 금했다. 약 10년이 지나 춘절은 다시 부활했지만, ‘세는 나이’는 민중들의 삶 속에서도 거의 없어지게 되었다. 지금은 시골에서나 볼 수 있다.
반란군의 명분 : 한국의 ‘만 나이’
한국에서 ‘만 나이’가 도입된 것은 일본에 의해서였다. 일제는 1910년 조선 병합 이후 ‘만 나이’를 표준으로 사용하도록 한다. 일본에 대하여 적개심이 강했던 조선인들은 당연하게도 ‘만 나이’의 사용이 마뜩지 않았다. 당시까지만 해도 너무나 당연하게 ‘나이’였으므로 아무런 이름이 없던 ‘세는 나이’에 당년(當年)이라는 이름이 생긴다. 일제강점기 한글 신문에서 대부분의 누군가의 나이를 ‘당년 몇 세’라고 표현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일본어 신문에서는 ‘당년’보다는 ‘만 나이’를 사용했음을 알 수 있다.
물론 이때에도 법과 제도는 모두 ‘만 나이’를 기준으로 했다. 흔히 ‘구민법’이라 하는 일본 민법을 기준으로 하고 있었기에 그러했다. 하지만 엄격하게 사용되지 않았고 ‘당년’이라는 표현도 법에는 없으나 제도 내 문서에도 통용되곤 했다. 호적에도 당년이 기재되기도 했을 정도이다.
그러다 1961년 5월 16일, 그가 나타났다.
박정희의 5.16은 명백히 정권 획득을 위한 쿠데타였지만 이를 ‘혁명’이라 불렀고, ‘혁명’이라는 이름에 걸맞은 모습을 보이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 '수많은 정치 파벌들이 난립하는 혼란스럽고 부패하며 과거의 전통이 그대로 존재하는 민주주의 사회'에 지친 사람들에게, '깨끗한 옷을 입고 줄지어 선 군인들처럼, 깔끔하고 확실하며 통일된 국가'의 모습을 제시하려 했다. 명분이 없는 반란군들에게 ‘이것이 근대이다’, ‘우리는 근대화가 필요하다’는 구호가 필요했던 것이다.
‘5.16 혁명공약’중 제3장. ‘세는 나이’는 우리 사회의 구악으로 취급되었다.
메이지 유신과 2.26 사건을 레퍼런스로 삼았던 5.16 쿠데타 이후, 박정희 정권은 근대화의 일환으로 음력, 단기(檀紀), 그리고 ‘세는 나이’를 폐지한다. 설날을 휴일로 주지 않고 ‘설날’이라는 표현을 하지 못하게 한다. 그와 더불어 ‘세는 나이’가 번거롭기만 하고 세계 기준과 다른 구악에 해당한다면서 이를 없애는 데 주력한다. 이에 1962년 1월 1일부터 모든 법령, 호적 등 공문서, 공공기관의 문서, 언론 등은 ‘만 나이’만을 사용할 수 있도록 통일한다.
1961. 12. 17. 조선일보 기사. ‘한국식 나이 산정법에 맹점 있다.
삼중연령 시정방법 없나, 동년생에 두 살 차’등의 표현이 나온다.
1961. 12. 19. 경향신문 기사
당시 경향신문의 기사를 보자.
“「혁명의 해」는 재건의 고동소리도 벅찬 가운데 1962년 새해를 맞는다. 그날 516 새벽부터 우리네 생활에는 눈이 부실 만큼 수많은 변혁을 이루었다. 새해부터는 단기라는 묵은 연호도 없애고 나이도 ‘만’으로 셈하기로 했지만 과연 음력 과세라는 누습이 청산될 것인지?”
이렇듯 박정희 정권에게 음력 설, 단기, 세는 나이는 모두 구악, 구습에 해당하였고, 없애야 마땅한 것이었다. 그러나 제도적으로는 이미 셋 다 사용하지 않고 있던 상황이라, 제도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은 설날 휴일을 없애고, 단기 표현과 세는 나이 표현을 없애는 정도뿐이었다. 이를 나름 엄정하게 시행했으나 민간에서 사용하는 것을 막을 수는 없었다. 이에 잊어버릴 만하면 한 번씩 만 나이를 쓰자는 캠페인 등이 뉴스 지면을 장식했는데, 재미있게도 1972년 10월 유신 직후에 이런 운동이 맹렬하게 일어났다.
1973. 1. 11. 조선일보 기사. 학생들이 가정에서도 ‘만 나이’를 쓰도록 하는 운동이다.
1973. 1. 15. 매일경제 기사. ‘만 나이쓰기 운동의 본의, 바른수식관념을’. 한국에서는 만 나이를 사용하기에 수학 관념이 발전하지 못해 수학을 못 하고(뭐?), 사람들이 뭐든 두루뭉술하게 넘어가는 경향이 있어 개혁이 필요하다는 내용이다.
빠른 년생의 탄생
그런데 셋 다 쉽사리 없어지지 않았다. 근거 자체가 불명확한 단기는 그나마 사용이 많이 줄어든 편이었지만, 음력 설의 전통을 막는 것이 매우 힘들었고, ‘구정’이라는 차별적 이름을 부여하고 휴일을 주지 않아도 사람들은 설에 고향에 내려가려 며칠씩 고생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 세는 나이 역시 그러했는데, 양력을 기준으로 하는 세는 나이가 도입되는 정도의 의미는 있었으나 세는 나이 자체는 없어지지 않았다.
오히려 들어가자마자 이등병 지위를 부여하고 입대한 달에 따라 엄격하게 선임과 후임이 구분되는 군대 문화의 영향으로, 비슷한 나이면 서로 ‘김형’, ‘박형’이라 부르며 반 존대하고 대략 5~6년 차이까지는 친구를 했던 느슨한 문화가 사라졌다. 나이를 토대로 형과 누나, 언니와 동생이 구분되어 존댓말의 사용이 요구되었다. 위아래를 가르기 위해서는 기준이 필요했다. 하루라도 생일이 빠른 사람에게 존댓말을 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에 학교의 학번, 학년을 기준으로 반말을 쓰는 동급생이 되고 위와 아래를 나누는 방식의 문화가 정착되었다.
당시 제도적으로는 완벽히 ‘만 나이’를 사용하고 있었고, 국민학교 입학은 개학일 이전에 만 6세가 된 사람이 하는 것이었기에, 한국 나이로는 7살이어도 개학일인 3월 2일 이전에 태어난 사람이라면 만 6세가 된 것이므로 입학이 가능했다. ‘빠른 생일’의 탄생이다. 이렇게 1960년대 이후 한국은, ‘세는 나이’와 (만 나이를 토대로 한)‘빠른 생일’을 토대로 위아래를 정하고 높임말을 쓰는 체계가 확립되었다.
연 나이
박정희 정권 이후, 민간 기준에서 ‘세는 나이’를 쓰는 것은 크게 문제 되지 않았고, 잊을만하면 한 번씩 캠페인이 열렸으나 그것도 전두환 정권을 마지막으로 마무리되었다.
다만 이렇게 된 사이에 ‘세는 나이’를 사용하는 나라는 오직 한국이, 그것도 남한이 전 세계에서 유일한 국가가 되어버렸다. 이렇게 ‘세는 나이’의 기세가 강해지자, 사람들은 ‘세는 나이’ 체제의 예외로 ‘만 나이’ 체제의 수호자 역할을 하던 ‘빠른 생일’이 혼란스럽다고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만 나이’를 기준으로 성년을 구분하는 것 등의 문제를 지적하였다. 똑같이 대학에 입학한 친구인데 누구는 술을 먹을 수 있고 누구는 못 먹는 게 말이 되냐? 이런 논리였다.
이에 정부는 2001년 청소년보호법을 개정하여 같은 ‘세는 나이’인 경우 생일이 지나지 않아도 성인의 지위를 인정한다. 우리 법상 ‘만 나이’ 이외의 나이는 존재하지 않았고 새삼스럽게 ‘세는 나이’를 법에 도입하기도 애매했다. 이에 만 나이를 기준으로 하되, ‘19세가 되는 해의 1월 1일을 맞이한 경우’에는 예외적으로 성인 지위를 인정했던 것이다. 이렇게 하면 ‘만 나이’ 체제를 유지하면서도, ‘세는 나이’와 같은 효과를 만들어낼 수 있다.
청소년보호법 제2조 ② “청소년"이란 19세 미만인 사람을 말한다. 다만, 19세가 되는 해의 1월 1일을 맞이한 사람은 제외한다.
이를 흔히 ‘연 나이’라 부른다. 그러나 사실 ‘연 나이’란 제대로 된 ‘나이’가 아니라, ‘만 나이’의 시스템 속에서 행정 편의를 위해 도입된 것에 불과하여 또 다른 나이라고 부르기에는 어폐가 있다. 이러한 행정 편의를 위한 시스템은 한국뿐 아니라 다른 나라에도 당연히 존재하는 것이다.
예컨대 병역법에서는,
‘매년 1월 1일부터 12월 31일까지의 사이에 20세가 되는 자’
에 대해 징병검사의 대상으로 하였다(1983년 개정 이전). 이는 ‘매년 1월 1일부터 12월 31일까지 사이’를 하나의 나이로 하는 것이 아니라, 징병검사의 일정과 군 입대 일정, 대기 일정 등을 고려하여 편의적으로 묶은 것뿐이다. 만약 ‘20세가 된 자는 그 해에 징병검사를 받아야 한다’고 한다면 생일이 12월 30일인 사람은 20세가 된 후 바로 다음날에 징병검사를 받지 않으면 병역법을 위반한 것이 되는데, 징병검사가 매일 아무데서나 할 수 있는 것은 당연히 아니다. 그렇다고 1년 정도 여유를 더 주자니 징병검사가 전체적으로 1년 미뤄질 뿐이다.
실제로 ‘연 나이’를 사용하는 병역법, 아동청소년의성보호에관한법률, 청소년보호법, 민방위법 등은 ‘만 나이’를 기준으로 어떤 행위 의무자를 묶어낼 뿐 ‘연 나이’를 토대로 한 나이 계산을 말하지 않는다. 비슷한 이야기를 반복해야 하는 병역법에서 표현을 일부 묶어서 할 뿐이다. 즉, ‘연 나이’를 독자적인 나이 계산법으로 보는 것에는 무리가 있다.
또 기자들이 연 나이를 사용한다고 이야기 하나, 이 또한 기사 작성 일시를 기준으로 생일이 지났는지를 계산하기 번거롭고, 기사 작성일과 발행일 차이 때문에 나이가 바뀌는 것도 문제가 될 여지가 있으며, 결정적으로 어떤 인물의 생일을 모르는 경우도 많아 어쩔 수 없이 현재 해에서 생년을 빼는 방식의 편법을 사용한 것일 뿐, 이것이 어떤 독자적인 나이 시스템으로 사용된다고 보기는 어렵다. 많은 외국의 프로리그에서는 개막일을 기준으로 한 만 나이를 개막일 이후에도 나이로 표기하는 방법을 택하는데 이 또한 독자적인 나이 시스템이 아니라 편의를 위해 구분선을 정한 것임과 동일하다.
그래서 나이 리뷰는?
이렇게 세는 나이, 만 나이, 연 나이에 대해서 알아보았다. 불가사리의 소비 대모헙답게 불가사리는 나이를 리뷰하는데, 사실상 길게 할 말이 없다.
<세는 나이, 만 나이, 연 나이 모두 나름의 역사와 이유가 있고, 목적이 있다.>
다른 나라의 문화와 달라 번거로운 부분도 있지만, 반대로 2010년대 이후 선풍적인 인기를 끄는 K-문화의 독특함을 더하는 신기한 문화이기도 하다. 사람을 위아래로 나누고 엄격한 존댓말을 강요한다는 단점이 있다고 볼 수도 있지만, 존댓말 문화가 그대로인 상황에서 ‘세는 나이’만 없앤다고 해서 나이 문화가 없어질 수는 없고, 존댓말 문화가 꼭 나쁘다고만 볼 수도 없다. 즉, 이는 문화이고, 문화는 장단점이 존재한다.
이러한 문화를 억지로 없애려 할 필요가 있는지 잘 모르겠다. 세계화에 따라 자연스럽게 없어질 수도 있고, 한국만의 문화로 계속 남을 수도 있다. 어떤 결과가 되건 그것은 언어의 사용자인 국민들의 문화 변화일 것이지, 국가가 주도하여 악습을 혁파하고 개혁할 일이 아니지 않나.
그리고 다시 말하지만, 모든 법 제도는 ‘만 나이’를 사용하고 있다. 그래서 법령의 정비 등으로 ‘세는 나이’를 없애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니 ‘만 나이’로 통일한다는 법안을 만들어봐야 실질적으로 아무런 변화가 없거나, 잘해봐야 무슨 위원회 만들고 예산 사용하는 정도만 이루어질 가능성이 크다. 혹자는 ‘연 나이’도 없앤다고 하는데, ‘연 나이’의 경우 독자적인 나이 시스템이 아니라 ‘만 나이’ 체제하에서 행정 편의를 위해 도입된 것인데 이를 없앨 필요가 있을까? ‘세는 나이’의 문제점은 알겠지만 ‘연 나이’가 왜 문제인지부터 의문이고, 굳이 만 나이를 엄정하게 따지는 시스템으로 변경한다면 쓸데없이 행정력을 낭비한다는 비판에서 자유롭기 어려울 것 같다.
게다가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말이 이렇게 잘 맞는 예도 없을 것이다. 내가 태어난 날과 오늘의 날, 나의 몸과 마음과 세포는 모두 동일한데, 이를 40세라고 부르면 42세라고 부른 것보다 더 어려지는 것인가? 언어는 언어일 뿐이고, 숫자는 숫자일 뿐이다. 불가사리를 불가사리라 부르나 해삼이라 부르나 여전히 불가사리다. 산은 (어떻게 부르건) 산이고, 물은 (어떻게 부르건) 물이다. 이 글을 논평이라 부르건 잡학 모음이라 부르건 리뷰라 부르건, 소비대모험임은 변하지 않는다.
아, 그래서 뭘 소비했더라..
불가사리의 소비 대모험, 다음 편은 초심을 잊지 않고 딴지의 등골을 뽑으러 간다.
다음 편도 기대하라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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