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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에 대해서도 지역별, 업종별 차등 적용에 대한 전향적인 검토가 이제 시작이 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지난 대선 국면에서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한 말이다. 그리고 지금 보니 윤 당선인은 이 주장을 실현하려는 듯하다.

 

우리나라에서 차등 최저임금제가 이뤄진 건 1988년에 업종별 차등 최저임금이 시행되었던 게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이후 34년간 업종별 차등적용은 단 한 차례도 시행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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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머니투데이>

 

윤 당선인은 차등 최저임금제가 도입되면, 월급 150만원에 충분히 일할 용의가 있는 사람들도 일할 수 있게 되어 고용이 창출되고 노동시장 양극화를 해소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했다. 정말 그럴까?

 

그래서 이미 지역별, 업종별 차등 최저임금제를 시행하고 있는 일본의 상황을 소개하려 한다. 

 

 

우선, 일본 매체의 시선을 말한다

 

요즘 오래된 책들을 정리하다 우연히 몇 권의 책을 발견하곤 깜짝 놀랐다. 19세기 후반, 20세기 초에 쓰인 일본의 책들인데 예전에 읽었던 것들이다. 그런데 그 내용은 현재 일본의 현실과 다르지 않은 점들이 많았다. 100년 전의 일인데 말이다. 

 

게잡이 어선에서 일하는 노동자를 통해 일본 제국주의와 산업이 노동자를 착취하기까지 과정을 다룬 것도 있고, 일본 자본주의 발전에 초석을 놓는데 한몫했던 방직공장에서 일하는 여공들에 관한 것도 있었다. 동경 하층 사회에 관한 것도 있었는데 도시의 빈민층이나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의 실상은 다뤄지지만, 당시 일본의 대다수를 차지했던 지방에 사는 농어민의 실상은 다뤄지지 않았다.    

 

오래전, 이런 책들을 집중해서 읽었던 적이 있었다. 그때 여러 책에서 공통으로 인상적이었던 점은 같은 인간에 대한 공감이 있다기보다는 다른 계급에 대한 ‘이질감’이 강조되었던 점이다. 마치 문명국의 인류학자가 미지의 부족사회에 들어가서 관찰한 것 같은 이질감이었다. 같은 일본인, 일본 사회임에도 글을 써서 발표할 수 있는(권력을 가진) 엘리트와 연구 대상이 되는 사람들과의 권력관계를 느끼게 하는 거리감이었다. 이런 거리감은 일본인 연구자나 기자가 외국인이나, 재일동포, 마이너리티에 관해 쓴 것에도 흔히 볼 수 있는 공통점이다.

 

이런 점은 현재의 일본도 크게 다르지 않다. 일본 미디어에서 주로 보도되는 사회의 모습은 거의 수도권 중심의 모습이다. 노동자라고 다루는 사람들은 거의 대기업 노동자를 말한다. 우리에게 일본의 현재 상황이라며 비춰지는 모습도, 일본인들에게 보도되는 모습도 마찬가지다. 지방 사람들, 중소기업에 다니는 대다수의 사람들은 잘 다뤄지지 않는다. 

 

 

일본의 차등 최저임금제 (지역별, 업종별)

 

자! 이제 ‘일본의 차등 최저임금’이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를 다뤄보자. 일본에는 두 가지 '차등 최저 임금제'가 있다. 한국에도 잘 알려진 '지역별 차등 최저 임금제'와 또 하나 '특정(산업별) 차등 최저 임금제'이다. 두 가지 최저임금이 적용될 경우는 최저임금이 높은 쪽을 받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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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기준으로 올해는 아니지만, 한글로 표시된 표이기에

지역마다 최저임금이 어느 정도 차이가 나는지 한눈에 

보여주는 용도로 첨부했다.  

(현재 지역별 최저임금 표는 이곳을 참고하시라.

참고로 일본어로 쓰여있다 링크)

 

'지역별 최저 임금'은 각 지방에 따라 최저 임금이 다르게 정해져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올해(2022) 기준으로 고치현과 오키나와가 시급 820엔으로 가장 낮고, 다음은 이와테현을 비롯한 8개 지방이 시급 821엔이었다. 

 

시급이 높은 쪽을 보면 동경도가 1,041엔, 다음으로 가나가와현이 1,040엔이다. 시급 1,000엔이 넘는 곳은 두 곳뿐이고 세 번째는 오사카 992엔이다. 수도권인 사이타마가 956엔, 도요타가 있는 아이치현이 955엔으로 탑 5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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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매경헬스>

 

'특정(산업별) 최저 임금'은 업종별로 최저 임금이 다르게 정해져 있다는 것이다. '특정 최저 임금'이 높은 지역과 사업을 보면 치바현 철강 1,023엔, 효고현 수송용 기계 기구 제조업 1,002엔, 오사카부 도료 제조업 1,000엔이 톱 3로 1,000엔 이상이었다. 

 

낮은 곳을 보면 오키나와현 청량음료, 주류 제조업 686엔, 미야자키현 육류 가공업 678엔으로 나오지만, '지역별 최저 임금'이 더 높기에 그게 적용된다. 그런데 이 최저임금이 누구에게나 다 평등하게 적용되는 건 아니다. '최저 임금' 기준을 지키지 않아도 되는 경우가 있다. 

 

'지역별 최저 임금'이 적용되지 않는 경우는 다음과 같다. 일반 노동자보다 노동 능력이 낮은 경우, 최저 임금을 일률적으로 적용하면 오히려 고용 기회를 좁게 만들 우려가 있다고 하여 고용자가 지자체 노동국장의 허가를 받는 조건으로 개별적으로 최저 임금 감액 특례가 인정된다. (관련 내용 출처 링크)

 

1. 정신이나 육체적 장애로 인해 현저히 노동능력이 낮은 경우

2. 시험적으로 채용 기간인 경우

3. 기초적인 기능 등을 내용으로 직업훈련을 받는 사람 중 후생노동성령으로 정해진 경우

4. 가벼운 업무에 종사하는 경우

5. 계속적으로 노동에 종사하지 않는 경우이다.

 

'특정(업종별) 최저 임금'이 적용되지 않는 경우는 다음과 같다. (관련 내용 출처 링크)

 

1. 18세 미만이나 65세 이상인 경우

2. 고용 후 일정 기간 미만의 기능습득 중인 경우

3. 그 외 해당 산업 분야에서 가벼운 업무에 종사하는 경우라고 한다. 

 

이런 구분은 고용자가 정하는 것으로 명확하지 않은 경우도 많다. 거기에 외국인 노동자의 경우도 '차별적'으로 '최저 임금'보다 매우 적은 임금, 예를 들면 최저임금의 반도 안 되는 식으로 고용한 경우가 많다. 외국인 노동자를 '연수생'이나 '견습생'이라는 명칭으로 부르는데 실질적으로는 그냥 적은 임금으로 착취당하는 노동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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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 수산업에 종사하는 외국인 노동자들.

 

일본에서는 '단순 노동'에 종사하는 외국인 노동자를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하지만 실질적으로 '단순 노동'이라고 할 수 있는 1차 산업, 지방 농어촌에서는 외국인 노동자가 없으면 일이 돌아가지 않을 정도다. 1차 산업만이 아니라, 다양한 업종에서 저임금으로 장시간 노동에 종사하는 외국인 노동자가 없으면 일본 사회가 돌아가기 힘든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요새 베트남에서 외국인 노동자가 많이 오는데, 그들은 베트남에서도 일본에 오기 위해 꽤 많은 빚을 지고 온다. 그러나 정작 일본에 오면 베트남에서 듣던 것과는 다르게 매우 적은 임금밖에 받지 못하기에 도망쳐서 '비합법'적으로 체재하며 일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왜냐하면 베트남에서 빚진 돈을 갚아야 하는데 일본에서 그들이 받는 돈이 너무 적기 때문에 정해진 일터에서 일해서는 도저히 빚을 갚을 수가 없다. 때문에 그들도 어쩔 수 없이 '도망'가는 선택을 한다. 그들의 행동은 자신들의 노동 대가에 대한 정당한 임금을 받기 위한 선택이다. 

 

 

내가 겪은 일본의 지방

 

얼마 전 딴지 게시판에 동경에서 일하다가 지방으로 내려가 일했던 경험이 있는 사람이 올린 걸로 보이는 내용이 올라왔다(링크). '차등 최저 임금제'가 가져온 일본 지방의 사회 경제적인 영향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내용으로 글을 올린 사람은 구조적으로 문제를 파악하고 표현할 수 있는 능력이 높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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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인상적으로 느꼈던 점은 게시물에 대한 댓글 수준 또한 이해도가 매우 높다는 것이다. 게시물을 올린 사람을 비롯해서 댓글을 보면 문제를 구조적으로 파악하고 그에 대한 해결책이나 방지책, 대안까지 나오는 종합적으로 수준이 높았다. 솔직히 말하면, 일본에서는 이런 수준을 보기가 쉽지 않다. 

 

수도권에 집중되어 있는 것은 한국만이 아니라, 일본도 마찬가지이다. 일본에서도 지방의 실태에 대해서 단편적으로 알려져도 전체적으로는 그다지 알려지지 않았다고 할 수 있다. 일본에서 실태를 알고 있어도 그런 문제점에 대해서 보도하지 않는 암묵적인 룰 같은 것이 옛날부터 있는 것 같다. '지역별 차등 최저 임금제'로 인해 대도시와 지방, 수도권과 지방의 격차가 심각해지고 지방이 더욱더 피폐해지고 있다. 

 

일본에서는 대부분 미디어가 수도권이나 대도시를 중심으로 보도하기 때문에 지방지가 있어도 지방의 심각한 구조적인 문제를 다룬다고 볼 수가 없다. 지방 미디어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그 지역의 소수 엘리트이기에 수도권이나 대도시 감각에 가깝기 때문에 그렇지 않은 대다수의 사람들과 입장이 다르다. 자신들의 문제를 직시하고 싶지 않은 심리가 있는 것 같다. 지방과의 격차는 동경에서나 동경을 중심으로 한 미디어를 통해서 느끼기는 힘든 구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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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블로그<트립캣(베쯔니)>

 

약 20년 전, 내가 지방 국립대학에서 일할 때, 처음에 동료들은 다 비슷한 말을 했다. 동경에 비해 물가가 싸다는 것이다. 그들은 남성이고 동경에서 생활한 적이 없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동경에서 오래 살다 간 나는 그 말을 듣고 ‘이 사람들은 살림을 직접 하지 않아서 물가를 모르는구나’라고 생각했다. 

 

지방에서 물가가 싸다고 느낀 건 집세나 그 지역에서 직접 생산하는 농수산물 정도로 다른 건 동경보다 더 비싸고 선택지가 별로 없었다. 당시는 2000년 초반이라 온라인 쇼핑은 별로 없었고 대체로 직접 물건을 보고 샀다. 같은 대학에 근무하는 직원은 그 지역에서 몇 시간이나 걸려 더 큰 도시에 가서 유명 브랜드 제품과 다른 여러 제품을 샀다. 

 

굳이 그렇게 멀리까지 가서 사는 게 이해되지 않아서 물었더니, 교통비와 시간을 들여도 그게 더 경제적이고 선택지가 많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리고 제품이 별로 없어 유명 브랜드가 아니면 다른 걸 살만한 것도 없다고 했다. 나 같은 경우는 동경에 출장 오는 일이 많아서 동경에서 지낼 때 다니던 백화점에 들러서 휘리릭 쇼핑하곤 했다. 

 

지방에는 대중교통도 적고 불편해서 차가 없으면 생활이 곤란하다. 나도 처음에는 대학에서 20분 정도 대중교통을 이용해야 하는 곳에 살았는데 너무 멀고 불편해서 대학에서 자전거로 5분도 걸리지 않는 시내로 이사했다. 

 

대학 캠퍼스에서 보면 학생들 차가 다 중형 이상이라, 왜 학생이 경차를 사지 않고 기름값이 많이 드는 큰 차를 몰고 다니는지 궁금해 물었다. 학생들은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를 못 하는 것 같았다. 중고차는 경차가 비싸고 중형 이상이 싸기 때문에 학생들이 그런 차를 산다고 했다. 많은 학생이 차를 가지고 있는 것도 지방은 차가 없으면 생활이 불편하기 때문이다. 

 

학생들이 돈을 쓰는 걸 봐도 90년대 동경 사립대학 학생들이 신발을 1만 엔 줬다면 2000년대 초반 지방 국립대학 학생은 천 엔대였다. 동경에서 사립대학에 다니는 학생들은 자기 집에 살면서 학교에 다니고 알바를 하기에 금전적으로 여유가 있고 다양한 상품을 고를 수 있다. 알바도 많고 시급도 나쁘지 않다. 

 

지방 국립대학 학생은 다른 지방, 시골에서 와서 부모님께 생활비를 받고 알바도 하지만 금전적으로 여유가 없었다. 학비는 국립대학이 훨씬 싸지만, 돈은 더 많이 드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내가 직접 경험하며 눈에 띄게 본 동경 사립대학 학생들과 지방 국립대 학생의 차이점은 지방 학생들이 술 담배를 하는 비율이 훨씬 높고 음주도 많이 한다는 것이었다. 남녀관계도 매우 개방적이어서 내가 물었더니 어떤 남학생이 여기는 다른 오락이 없으니까 어쩔 수 없다고 해서 웃었다. 

 

동경이, 대도시가 여러모로 매우 좋은 조건이 갖춰져 있다고 할 수 있다. 대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지방이나 시골에 대해서 낭만적인 환상을 가지고 있지만 지방의 실태는 심각하다. 안 그래도 젊은 사람들은 도시로 몰리는데, 차등 최저임금제로 인해 그게 가속화된다. 지방 사람들은 소득은 적은데, 인프라가 갖춰져 있지 않은 탓에 지출은 더 많이 나갈 수밖에 없다. 지방정부도 수입(세원)이 많지 않으니 인프라에 많은 투자를 할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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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편에선 내가 직접 겪었던 사례들을 들며, 가볍게 차등 최저임금제로 인한 수도권과 지방의 격차 이야기를 시작해봤다. 굳이 20년 전의 이야기를 예를 들어 말할 수 있는 것도, 심해지면 심해졌지 그때보다 나아진 게 없기 때문이다.

 

<계속>

 

 

※다음 편엔 차등 최저임금제로 인해 나타나는 직접적인 폐해에 대해 본격적으로 다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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