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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N의 인기 예능프로 <유퀴즈 온 더 블럭(이하 유퀴즈)>이 논란에 휩싸였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자가 뜬금없이 해당 프로그램에 출연했기 때문이다. 덩달아 MC를 맡은 유재석 씨 에게도 화살이 돌아가는 모양새다. 20년 가까이 연예계 정상에 있으면서 한 번도 이렇다 할 물의를 일으키거나 구설에 오른 일이 없는 그이기에, 이번 일로 인한 이미지 손상은 본인에게나, 팬들에게나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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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정치의 시대다. TV를 통해 유명해진 사람들이 정치에 진출하고, 반대로 정치인들이 TV를 활용해 인지도와 이미지를 제고하는 사례도 적지 않았다. 윤석열 당선자의 경우에도 국민의힘 경선 기간에 SBS 예능프로 <집사부일체>에 출연하며 인간적인 면모를 드러낸 바 있다. 경쟁자였던 홍준표 의원에게는 같은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는 점을 생각하면, 상대적으로 예능의 혜택을 본 것만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아마 이번에도, 국민과 함께하는 친근한 당선자의 이미지를 부각하려 예능 출연을 기획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번 출연의 경우는 전과 달리 뒷말이 무성하다. 프로그램 성격에 맞지 않는 정치인 섭외, 그마저도 문재인 대통령이나 김부겸 총리의 요청은 거절하면서 윤 당선자에게만 기회가 주어졌으니 비난의 화살이 집중되는 건 당연한 귀결. 그런 점에서 윤 당선자와 한때 같이 근무(1997~1998년 수원지방검찰청 성남지청)했던 검사 출신 강호성 CJ ENM 대표가 개입했을 거라는 추측에도 일리가 있다.

 

하지만 어떤 조직이든 VIP와 관련된 일이 발생하면 오너에게 보고하게 마련. 나아가 BH나 인수위 쪽에서 사기업에 요청한다면 실무자가 아니라 윗선을 통해 교섭할 가능성이 크다는 점에서, 윤석열의 유퀴즈 출연 계획, 이름하여 '굥퀴즈' 프로젝트는 tvN과 CJ ENM의 모기업인 CJ그룹 차원에서 이뤄졌을 가능성이 높다. 탁현민 대통령 의전비서관의 페이스북 포스팅에서도 문재인 대통령의 유퀴즈 출연 거절을 통보한 것이 'CJ 전략지원팀'이었다고 하니, 제작진의 거절은 핑계고 실제로는 본사 차원에서 결정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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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 탁현민 의전비서관 페이스북

 

CJ의 권력 잔혹사

 

살아있는 권력과 CJ그룹 오너 일가와는 유구한 역사가 있다. 호암 이병철 회장의 장손이자 삼성가의 장자라 할 수 있는 이재현. 그러나 그는 부친 이맹희 씨가 동생 이건희 회장에게 밀려나는 바람에 삼성 대신 CJ의 경영권을 물려받게 된다. 그럼에도 그는 오랜 기간 절치부심 끝에 설탕과 조미료 등 식품이 주력사업이었던 옛 제일제당을 외식업, 바이오, 택배 등 다양한 사업에 두루 진출한 대기업으로 성장시켰다. 특히 2010년대부터는 엔터테인먼트와 미디어 산업에 앞장서 한류의 세계화에 큰 공을 세웠다.

 

그러나 창조경제를 내세운 박근혜가 집권한 2013년, CJ에 대한 가혹한 탄압이 시작되었다. CJ에 엄청난 세무조사를 벌인 끝에 이재현 회장을 탈세, 횡령, 배임 등으로 구속기소 했던 것이다.

 

결국 이 회장은 웬만한 재벌 회장들에게 집행유예를 선고하는 관례와 달리, 항소심에서 징역 3년을 선고받았다. 이후 대법원에서 일부 무죄취지의 파기환송이 있었음에도, 파기환송심에서조차 집행유예가 아닌 징역 2년 6월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이 기간 중 건강이 급격히 악화되어 작고한 부친 이맹희 씨의 장례식에조차 참석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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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회장은 재상고심이 진행 중이던 2016년 7월 19일 상고를 취하하였고, 같은 해 8월 13일 광복절 특사로 풀려날 수 있었다.

 

여기까지만 보면 거액의 비자금을 조성한 재벌 회장이 구속된 이후 환자 코스프레를 하며 솜방망이 처벌에 사면까지 받아낸 반도의 흔한 부패사건.txt로 보인다. 그러나 촛불혁명으로 최순실-박근혜 게이트의 진실이 밝혀지며, 새로 드러난 진실은 충격적이었으니..

 

CJ에 강도 높은 세무조사와 검찰수사가 행해진 것은, CJ에서 제작한 <화려한 휴가>,<광해, 왕이 된 남자>,<변호인> 등 소위 '좌파 성향' 영화들, 그리고 tvN <SNL코리아>의 '여의도 텔레토비' 꼭지에서 박근혜 대통령을 희화화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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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슬기 씨가 연기한 여의도텔레토비의 '또' 캐릭터는 당시 박근혜 후보를 패러디한 것이다.

 

일각에서는 2014년 스위스 다보스포럼의 '한국의 밤' 행사 때 이재현 회장의 누나, CJ그룹 이미경 부회장이 부각되면서 같은 자리에 있었던 박 대통령이 불편해했다는 말도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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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다보스 포럼 한국의 밤 행사장에서, 오른쪽 와인잔 들고 있는 이미경 CJ그룹 부회장

 

CJ는 오래지 않아 문제가 된 <SNL코리아>의 '여의도 텔레토비'를 폐지하고 '창조경제를 응원합니다'라는 광고를 대대적으로 내보내며 박근혜 정부의 취향에 맞을만한 '국제시장', '인천상륙작전' 등의 영화를 후원하는 등 안간힘을 썼으나 이미 박힌 미운털은 어쩔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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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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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기야 당시 조원동 청와대 경제수석이 VIP(박근혜)의 뜻을 거론하며,

 

"이 부회장이 버틸 경우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좀 빨리 가시는 게 좋겠다. 수사까지 안 갔으면 좋겠다"

 

이 부회장의 퇴진을 압박했고, 이후 이미경 부회장은 신병 치료를 명목으로 하와이로 출국하여 자의 반 타의 반의 망명 생활을 이어가게 된다.

 

심지어 이재현-이미경 두 사람의 외삼촌이자 옥중에 있는 이 회장을 대신해 그룹을 이끌었던 손경식 회장이 8년간 재직하던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에서 중도에 물러나거나, 대통령 초청행사에서 사실상 문전박대를 당하는 등 박근혜-최순실 정권에 찍힌 CJ는 한동안 고난의 세월을 보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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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링크)

 

CJ는 결국 미르재단에 8억원, K스포츠재단에 5억원을 출연하고, 대표이사 직속으로 CJ 창조경제추진단을 출범한 것은 물론, 최순실과 박근혜의 관심 사업이던 '문화창조융합벨트' 사업(본부장 차은택)에 1조 4천억이라는 거액을 투자하기로 하고서야 한숨을 돌릴 수 있었다.

 

다른 것도 아니고 대중문화 콘텐츠 때문에 VIP에게 찍혀 정권 내내 고난의 행군을 했던 CJ였기에, 서슬이 퍼런 인수위 기간, 한번 출연시켜달라는 당선자의 요청을 거절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CJ의 검찰 트라우마

 

당시 CJ를 가장 괴롭혔던 건 다름 아닌 검찰수사였다. 이를 총괄했던 당시 서울중앙지방검찰청 특수2부장이 바로 윤석열(대윤)의 오른팔이자 새 정권 초대 검찰총장 또는 서울중앙지검장으로 거론되는 윤대진(소윤) 검사였다. CJ 입장에선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도 놀란다고, 혹시라도 윤석열 눈 밖에 났다간 다시 한번 윤대진 검사의 위엄을 느끼게 될지도 모른다는 부담감이 들었을지도 모른다.

 

CJ와 검찰의 악연은 이걸로 끝나지 않는다. 이재현 회장의 장남인 이선호 씨가 2019년 대마초 사건으로 적발되었기 때문. 이때 인천지검의 불구속 수사 방침을 뒤집고, 이 씨를 구속하도록 지휘했던 당시 대검찰청 반부패부장이 차기 법무부장관에 지명된 한동훈 검사다.

 

이선호 씨는 결국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고 석방되었지만, 아직도 집유 기간 중에 있어 검찰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는 상황. 이 기간 중 고의로 인한 형사처벌을 받게 된다면, 새로운 사건은 물론 앞선 사건에 대한 징역 3년까지 덧붙여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CJ라고 해서 검찰에 대한 노력(?)을 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이재현 회장이 구속되어 있던 2015년, 갓 퇴직한 진동균 전 검사를 CJ제일제당 법무팀 상무로 영입했던 것. 진동균 전 검사는 법무부 법무심의관실과 통합진보당 해산 TF에서도 활동할 만큼 검찰 입장에선 '유능한' 검사였으나, 서울남부지검 재직 당시 술자리에서 후배 여검사를 성추행했다는 의혹이 제기되자 사표를 던졌다.

 

당시에는 검찰 내부에서만 쉬쉬했던 이 사건은 정권교체 이후 임은정 검사 등의 노력으로 수면 위로 떠 오르게 되었고, 해외 체류 중이던 진 전 검사는 여권을 무효화한다는 압박 끝에 귀국하여 수사받고 CJ그룹에서도 퇴사하게 된다. 

 

이 사건은 직위를 이용한 성폭력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사건 발생 직후엔 사표 수리뿐 입건조차 되지 않았고, 가까스로 수사가 개시된 후에도 검찰 단계에서는 영장이 두 차례나 기각되었을 만큼 미심쩍은 부분이 많았다(결국 진 전 검사는 불구속 기소 후 징역 10월을 선고받고 법정구속 되었다).

 

이와 관련해 귀족검사라 불릴 정도로 막강했던 진 전 검사의 가족관계가 세간에 회자되었으니, 그의 아버지는 대검 공안부장, 대전고검장을 역임했던 진형구 전 검사장(그는 1999년 '조폐공사 파업 유도' 발언으로 한국 최초의 특별검사 수사 대상이 되었다가 무죄판결을 받았다)이고, 누나는 김앤장 법률사무소에 재직 중인 진은정 미국 변호사, 그리고 진은정 씨의 남편이자 진동균 전 검사의 매형이 바로 차기 법무부장관으로 지명된 한동훈 검사다. 즉 진 전 검사는 한동훈의 처남이 되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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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CJ는 이런 진 전 검사의 배경을 이용해 총수 일가에 대한 수사와 재판을 방어해 보려던 것 같은데, 결과는 생각처럼 되지 않았고 한동훈을 통해 이어질 뻔했던 새 정권과의 라인도 끊어지고 만 셈이다.

 

어쨌든 3대에 걸쳐(이재현 회장의 부친 이맹희 씨는 1962년 공무집행방해로 구속된 바 있다) 구치소를 넘나들며 송사에 휘말린, 특히 지난날 영화와 예능프로 때문에 경을 쳤던 기억이 있는 CJ 일가로서는, 윤석열 대통령 당선과 함께 열릴 예정인 검찰공화국 검사시대에 행여 눈 밖에 나지 않기 위해서라도 몸조심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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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링크)

 

유재석과 김병조

 

잘나가는 연예인이 정치적인 바람에 휩쓸려 어려움을 겪은 사례는 최근 이명박근혜 정권 시절의 '블랙리스트' 사태까지 적지 않지만, 굥퀴즈 해프닝을 보니 조금은 오래된 옛날이야기 한 편이 떠오른다.

 

1980년대 오늘날의 유재석 씨에 맞먹는 최고의 예능인은 배추 머리 김병조 씨였다. 그는 공전의 히트를 거둔 MBC 예능 <일요일밤의 대행진>(이 프로는 '일요일 일요일 밤에'와 '우리들의 일밤'을 거쳐 오늘날 '일밤 - 미스터리 음악쇼 복면가왕'으로 맥이 이어진다) MC로 활약하며, 시사 풍자 코미디를 통해 '먼저 인간이 되어라~' '지구를 떠나거라~' 등 많은 유행어를 남겼다. 그는 어린이 프로그램 '뽀뽀뽀'에도 출연하며 세대를 넘나드는 엄청난 인기를 누렸다.

 

그랬던 그가 몰락하게 된 계기가 있으니, 1987년 6월 10일 당시 여당이었던 민주정의당 전당대회(전두환이 후계자 노태우를 민정당 대통령 후보로 지명하는 행사였다. 이날은 공교롭게도 6.10 민주항쟁이 벌어진 날이기도 하다)에 출연해서

 

'민정당은 국민에게 정을 주는 당이고, 통일민주당은 국민에게 고통을 주는 당이다'

 

라는 발언을 했던 것이다. 물론 이는 대본에 나와 있던 대사를 그대로 읽은 것 뿐이었지만 평소 김병조 씨의 이미지에 어울리지 않는 발언이었기에, 대중들은 크게 분노했고 그의 인기는 하루아침에 땅에 떨어지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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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 노태우가 손을 맞잡아 들어올린 그날, 두 사람의 관계와 김병조씨의 인기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굥퀴즈 사태를 김병조 씨의 멘트와 비교할 수는 없겠지만, 국민 연예인으로 오랫동안 호감 이미지를 쌓아온 유재석 씨였던 만큼 대중들이 실망하는 것도 이해는 간다. 피나는 자기관리 끝에 오늘에 이른 그에게도 악성 루머를 퍼뜨리며 이미지를 깎아내리려는 이들이 적지 않으니 말이다(심지어 그는 파란 모자를 쓰고 투표소에 갔다는 이유로 공격을 받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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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민경욱 전 의원 페이스북

 

다만 그때나 지금이나, 무대에 오른 배우에 불과한 이들에게 지나치게 가혹한 공격을 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일지 모른다.

 

그들을 방패로 내세우고 뒤에서 웃고 있을 진짜 연출자, 진정한 흑막은 따로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