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 기사 추천 기사 연재 기사 마빡 리스트

 

유승민 후보를 누르고 김은혜 후보가 국민의힘 경기도지사 후보가 되었다. 김은혜 후보는 출마 선언을 할 때도, 후보로 확정된 직후에도 ‘경기도 철의 여인’이 되겠다며 영국의 마거렛 대처 전 수상을 소환했다.

 

연합뉴스 김은혜.PNG

출처-<연합뉴스>

 

우리 정치사에서 대처 전 수상을 소환한 건 비단, 이번의 김은혜 후보뿐이 아니다. 그전에도 주로 국민의힘(전신 포함) 소속 여성 정치인들이 그녀를 소환했다. 이 참에 대처 전 수상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았던 영국 국민들에게 어떤 인물로 인식되고 있는지 다뤄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우리의 보수 정치인들이 소환하며 말하는 것만큼 존경받고 있을까?

 

 

대처, 당신이 죽을 날이 얼마 안 남아 기쁘다

 

대처 이야기를 한다고 했는데, 뜬금없는 이야기 하나 꺼내겠다. 내가 처음 영국에 발을 내딛고 보게 된 뮤지컬은 <빌리 엘리어트(Billy Elliot)>다. 천재 감독이라 호평을 받아왔던 스테판 달드리(Stephen Daldry)의 대표작인 영화 <빌리 엘리어트>를 뮤지컬화 한 작품이다. 1970-80년대 영국 북동부 지역에 거주하는 가난한 광부의 가정을 배경으로 만들어졌다. 

 

빌리 엘리어트 영화.PNG

영화 <빌리 엘리어트>. 2001년 첫 개봉 했다.

 

주인공은 무용을 하고 싶어 하는 한 소년인데, 좋지 않은 집안 형편과 당시만 하더라도 남자 무용수에 대한 선입견이 있던 시절이라 무용수의 꿈을 꾸는 것조차 부끄러울 수밖에 없었던 소년이 가족들의 응원에 힘입어 결국 왕립발레단의 발레리노로 성장하게 되는 이야기다. 영화로도 봤지만, 뮤지컬의 고향이라는 웨스트 앤드에서 <빌리 엘리어트>를 빼놓을 수 없어 봤던 기억이 있다. 

 

뮤지컬의 수준이나 이야기 전개, 배우들의 연기, 무대의 각종 특수효과나 음악도 아주 신선하고 좋았지만, 무엇보다 가장 충격적이면서도 기억에 남는 장면이 있다면, 마지막 커튼콜에서 머리가 헝클어지고 눈이 파이고 머리에 피가 맺힌 마가렛 대처 대형풍선에 돌 모양의 뭔가를 집어 던지며 막을 내리는 장면이었다. 마치 못된 마녀가 사람들을 괴롭혔는데 이에 대한 복수심을 드러내는 듯한 연출이었다. 

 

사진1.PNG

출처-<Ronnie Friend> 링크

 

공연장 내에서는 촬영이 금지되어 있는 데다가, 인터넷에도 해당 장면을 찾을 수 없어 그때 그 장면을 그대로 보여줄 수는 없다는 점이 아쉽지만, 마가렛 대처를 향한 조롱이 담긴 가사,

 

“이제 당신이 죽을 날이 얼마 안 남아 기쁘다”

 

는 노래가 배경음악으로 나오기도 했으니 대처에 대한 적개심이 얼마나 극에 달했는지는 충분히 알 수 있었다.  

 

<빌리 엘리어트>는 영국의 첫 여성 총리이자 철의 여인이라 일컫는, ‘마가렛 대처’(Margaret Thatcher)에 대한 반감을 직접적으로 표현한 작품 중 하나로 손꼽힌다. 1970-80년대, 남성들이 즐비하던 영국 의회를 호령하며 강력한 리더쉽과 투지로 보수당 대표와 영국의 총리 자리까지 올라 ‘철의 여인’(The Iron Lady)이라는 별칭 – 실은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오지 않을 것 같은 냉혈한 인간이라는 뜻이라고도 한다는 – 까지 거머쥔 여인. 

 

하지만 그렇게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다지기 위해, 영국인들이 국가 복지제도로 인해 일하지 않는다고 비판하며 ‘영국병’이라는 말까지 나돌게 했던 그녀의 행보는 해피앤딩을 이끌어내지 못했다. 

 

모두가 똑같이 세금을 내야 하는 이른바 ‘폴텍스’(Poll Tax, 일명 인두세) 정책을 비롯하여 시장의 자율화를 신봉해 만들어낸 신자유주의 물결은 대다수의 공기업이 민영화되어 단기적으로는 정부의 곳간을 채우는 데 성공했지만 장기적으로 기업의 손해를 고스란히 국민들에게 떠넘겨 일반시민들의 경제적 부담을 가중시키게 했고 이 외에도 숱한 논란으로 (적어도 영국 내에선) 평가가 극명하게 엇갈린다. 

 

 

대처가 한 일

 

신자유주의란 시장은 그냥 시장에 맡겨 두어도 좋다며, 많은 자본을 소유한 큰 기업가들에게나 좋은 경제이념이다. 이 이념을 지구상에 40년간 유행시키며 빈부의 격차를 극단에 치닫게 한 대표적인 이가 마가렛 대처다. 

 

대처대처.jpg

 

노동자들을 거리로 내몰았고 수많은 국영기업을 민영화하여 기업은 부자가 되었지만, 결국 그에 대한 부담은 모두 국민들이 떠안게 되는 결과를 초래한 것. 대처 집권 전까지만 하더라도 영국은 대중교통을 비롯한 수도, 가스, 전기, 자동차 등 대다수 산업을 국가가 소유해 관리했다. 공기업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대처의 집권 기간 동안 대부분의 산업을 민영화했고, 그 여파는 지금까지도 국민들에게 악영향을 끼치고 있다. 

 

이미 수없이 나온 예지만, 영국의 물가 중 교통비는 상상을 초월한다. 우리나라 서울-부산 거리의 기차 요금은 30만 원을 웃돈다. 그도 그럴 것이 영국의 교통 관련 인프라 및 시설은 대부분 100년의 역사를 훌쩍 넘긴다. 

 

1800년대 중반, 우리나라에선 소달구지 매고 다니던 시절, 땅 밑에 터널을 뚫고 기관차를 다니도록 했으니 갖춰진 시설들이 얼마나 오래됐겠는가. 때문에 현대화 작업을 위한 시설개선 및 유지보수에 엄청난 투자가 필요한데, 대처는 이를 국가가 아닌 민간 기업이 부담토록 했다.

 

하지만 이윤을 목적으로 하는 기업은 손해만 보고 있진 않는다. 올리고 올리고 해가 지나면 수십 퍼센트씩 오르는 교통비를 막을 길이 없었다. 한 번 오르면 잘 내려오지 않는 특성상 여전히 영국의 교통비는 살인적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이뿐인가. 전기나 가스 요금도 마찬가지. 방 3개 정도의 집 운영비는 4-50만원. 그래서 겨울에도 난방비를 줄이기 위해 두꺼운 옷을 입는다는 후문까지 있다. 어쨌든. 지금도 국민들에게 꼭 필수적인 사업들, 가령 대중교통이나 전기, 가스 등은 다시 국유화를 추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지만, 한 번 민간에 넘어간 이상 되돌아오긴 힘들다. 

 

왜냐, 대중교통을 비롯해 전기나 가스 등은 기호에 의해 소요되는 것이 아닌 생필품과 같기 때문에 절약을 해 어느 정도의 비용을 줄일 수 있을지언정 안 쓸 수는 없기 때문에 기업의 입장에선 이만큼 좋은 수익 창출 출구가 없기 때문이다. 몇 십년 동안 노동당을 비롯한 각종 진보 진영에선 여전히 국유화를 추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지만(특히 대중교통), 아직 이렇다 할 진전은 없는 상황이다. 

 

지하철.PNG

영국 런던의 출퇴근 지하철 모습.

출처 링크

 

당시엔 당시의 사정이 있을 수 있기에 21세기 세계관으로 1980년대를 평가하기엔 무리가 있다는 지적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영국엔 일할 만한 남성들이 부족하여 어쩔 수 없는 세계화에 따른 개방을 할 수밖에 없었고, 과거 식민 지배를 받던 나라 사람들이 많이 영국으로 넘어와 노동자 계층을 형성했다고 한다. 

 

그런데 이들 중에도 복지정책의 허점을 이용해서 일을 할 수 있음에도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일하지 않고 국가의 곳간을 털어내는 사람들이 많아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되기도 했다. 이런 당시의 상황을 이해해야 하는 측면도 있다.  

 

하지만 아무리 40년 전 그 당시 시간을 돌린다 하더라도 일부러 일을 하지 않고 복지혜택을 받으려는 사람들을 계화시키고자 부자든 가난한 사람이든, 월 100만원을 벌든 1만원을 벌든 똑같이 세금을 걷겠다는 시도, 국가의 산업을 민간에 넘기고 결국엔 부채에 대한 책임을 기업에게 안겨주겠다는 생각(부담은 결국 기업에서 국민으로)을 했다는 거 자체만으로 그녀의 선택에는 분명 의문점이 제기된다. 

 

 

철의 여인의 초라했던 마지막

 

“나는 영국을 너무나도 사랑했고, 그때는 그게 가장 옳은 결정이라 여겼다.”

 

대처가 줄곧 했던 말이다. 하지만, 퇴임 후 눈을 감는 순간까지 그녀의 마지막 인생 여정은 초라하기 그지없었다고 전해진다. 나이가 들면 들수록 그녀를 찾아오는 이는 매우 드물었고, 심지어 동네 슈퍼를 가도 인사는커녕 안면몰수 하는 이들이 대다수였다. 

 

그녀는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다지고자 가정에는 꽤 소홀했는데, 그 때문에 자녀들조차 그녀를 쉽게 찾지 않았다. 신문에 보도된 기사에 실린 사진에는 단란해 보이기도 하겠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고 한다. 물론, 정치에 입문할 때부터 물심양면으로 도왔던 그녀의 남편은 끝까지 옆을 지켰다. 

 

한때 전 세계를 호령하던 영국의 첫 여성 총리, 철의 여인이라는 칭호를 얻었던 사람의 모습이라고 하기엔 대처의 마지막은 초라했던 것은 사실이다. 게다가 그녀가 생을 마감하던 날, 사람들은 거리로 뛰어나와 드디어 마녀가 죽었다며 축제를 벌였다는데, 그런 그녀가 과연 현재의 정치인들에게 표방해야 할 대상일 수 있을까. 

 

사진2.PNG

대처의 죽음을 환영하는 영국 국민.

출처-<로이터>

 

 

그녀에 대한 냉정한 평가

 

그녀의 선택을 존중하는 영국 국민들도 있다. 이들은 대처가 신자유주의를 통해 2차 세계대전의 피해를 극복하고 영국 복지정책의 기반을 다지게 한 케인지즘(Keynesianism)의 한계를 깼다고 한다. (요람에서 무덤까지 책임진다던) 정부의 복지 정책에만 기대어 있던 이들에게 활기(?)를 불어넣어, 산업혁명 이후 제조업에 몰두해왔던 과거에서 탈피하여 정보화 시대에 걸맞은 금융의 허브로서 영국을 있게 했다고 평가한다.

 

200여년이 넘는 기간 동안 파내고, 태우고 뿜어낸 통에 영국 전역이 홍역을 치렀는데 - 런던 스모그의 경우만 해도 숨을 쉬고 있다는 이유로 1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생을 마감해야 했으니 말 다 했다 - 광산이며 화력발전소며 다 문 닫게 하고 ‘우리 강산 푸르게 푸르게’ 자연을 살릴 수 있도록 밑거름을 다지게 한 부분도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단점 혹은 긍정과 부정적 평가에 대한 분분한 의견 뒤에 가려진, 그녀 생의 마지막을 비롯하여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는 그녀의 선택에 대한 대가와 그에 따른 국민들의 희생, 그리고 그녀를 조롱하는 문화까지, 과연 행적을 따라 해야 할 만한 가치가 있는지 생각해 볼 문제다. 대처를 소환하며 자신의 명분을 쌓는 이들은 대체 그녀가 정확하게 어떤 사람인 줄 알고 그렇게 비유를 하는 걸까. 

 

분명한 타이틀은 존재한다. 박근혜처럼. 우리에게도 첫 여성 대통령이 있었다. 아시아에서 몇 안 되게 배출된 여성 리더다. 내가 그녀를 어떻게 생각하는 것과는 별개로 과거, 그녀를 닮고 싶다던 사람들도 꽤 많았던 걸로 기억한다. 지금도 있을지 모르겠다. 그만큼 그녀를 좋아했던 사람들 사이에서도 그녀에 대한 평가가 과거와 같지 않다. 

 

마가렛 대처 역시도 마찬가지다. 여성으로서 강대국 영국의 리더가 되어 권력을 쥐고, 영국을 이끌며 세계를 호령하던 대처. 대처리즘이라는 신조어까지 만들어 내며 새로운 리더쉽을 구축해 나갔던 그녀의 화려함 뒤에 있는 실제 모습과 냉정한 평가는 아마도 ‘타이틀만 있는 요란한 빈 수레’ 일지도 모르겠다. 

 

말년 모습.jpg

대처의 말년 모습.